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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과 성례 마태복음 26:26-29

조회 수 34626 추천 수 0 2015.04.12 09:29:33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예배 중에 성만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지난 2주 동안 우리는 고린도전서 15장 전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과 세례와 성만찬이 무슨 관계가 있으며 세례와 성만찬의 성경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깊히 깨닫고저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부활과 세례
우리는 루터교회가 가르치는 세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세례에 대한 성경구절들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6:15,16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 으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사도행전 2:38,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1. 세례의 신학적 의미 .
'세례’라는 말에 대한 본질적인 뜻을 알아보면, 먼저 신약 성경에서 사용된 헬라어 원문에서 ‘세례’라는 말은 ‘밥티스마’라고 하는데 이는 ‘물에 가라 앉히다’, ‘물에 잠그다’ 혹은 ‘물에 적시다’ 그리고 ‘착색하다’입니다. 특히 ‘밥티조’는 '물로 완전히 젖게하다’, ‘세례를 베풀다’ 혹은 ‘물로 씻다’는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물세례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의미합니다. 물을 얼굴에 붇거나 뿌리는 것은 물을 얼굴에 부음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뿌려짐을 의미합니다. 세례 받음에 있어 물로 몸을 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영혼을 죄로부터 씻어내는 것을 나타냅니다. 히 10:22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했습니다. 세례는 전통적으로 세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로 과거의 모든 죄를 씻음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남을 나타내고,
둘째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됨을 나타내며,
셋째로 이제부터는 교회공동체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2. 세례의 형식                                                       

침례와 세례가 있습니다.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카톨릭등은 세례를, 그리고 침 례교와 오순절은 침례를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4:5에 바울사도께서는 “주도 한분 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 이십니다”라했습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물세례는 일생에 한번 받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침례와 세례가 서로 사용된 것을 봅니다. 물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침례를 받고, 병자와 어린아이는 침수시키기 어렵기에, 그리고 물을 구할 수 없는 곳에서는 세례를 베 풀었던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물뿌리는 세례냐 침례냐 등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세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을 몸에 뿌리는 세례는 예수님의 피를 우리 몸에 뿌려서 죄씼음을 의미하며, 침례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 가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다는 의미입니다. 두 가지 의미가 다 우리에게 필 요합니다. 죄씻음 받는 것과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다는 의미 말입니다.


3.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침례받은 의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요한에게 친히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 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의를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 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사 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라 하시면서 세례요한이 물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때에 성령이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보거든 그 사람이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성 령으로 세례를 베풀자임을 알라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 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그 메시야이심을 아무도 모 릅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전령자로서 메시야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자신도 메시야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말4:5,마17:10-12).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임하 였습니다. 그리고 하늘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성령과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 도이심을 증거해 주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너무나 중요한데 신학자이나 목사님 들이 간과하고 있습니다. 온 인류가 창세기 3:15이후 몇 천년 동안 대망하던 여 자의 씨, 메시야가 나타난 순간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순간이 예수 님의 공생에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4. 루터교가 가르치는 세례의 의미
우리는 보통 과거에 세례를 받았기에 세례는 지금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 라고 생각합니다. 세례를 일과성의 행사로만 취급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입 니다. 우리는 세례의 의미를 매일매일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 에.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윈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세례의 근본적인 의미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 습니다. 430년간 종살이를 한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 구출해 나와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갑 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가로 막힌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맨 땅으로 홍해를 건넙니다.


바울은 이스라엘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을 이스라엘백성들이 세례받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과 세례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죄악된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전하는 것입니다. 그 변화가 바로 홍해를 건너는 것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전에 죄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사단에 매여 살았습니다. 죽 음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자유인이 되었습 니다. 사망의 결박에서 해방되었으며,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과거의 삶 은 모두 죽고, 새로운 삶으로 살아 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의 의미 입니다. 과거의 삶에서 죽고 새로운 삶으로의 부활의 의미를 가진 세례는 오직 우리에게만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 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세례란 우리의 과거의 삶을 예수님 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면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부활한다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세례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홍해가 갈라졌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후에 홍해는 다시 합쳐졌습니다. 다시 애굽 땅으로 돌아 갈 수 없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어려우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소리 쳤습니다. 갈 수 없는 곳으로 가려고 했으니 그들은 광야에서 고통받으며 살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죽 었다가 살아 났습니다. 다시 죽음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례받은 것은 과거의 일이지만, 우리는 결코 과거의 삶, 죽음의 삶, 죄악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매일 매일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루터교회는 세례가 구원의 한 방편이라고 가르칩니다. 마가복음 16: 15,16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했는데 여기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믿고 구원받았으면 세례를 꼭 받아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세례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행2:38, 16:33-34, 18:8).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과 성만찬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만찬을 가지십니다. 떡과 포도주를 주시며 이것 이 나의 살이고,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성찬을 거행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명령에 따라 성찬을 거행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떡조각 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만찬의 떡은 그냥 떡이 아니고, 성만찬의 포도주는 그냥 포도주가 아닙니다.

천주교에서는 의식을 통해 떡이 예수님의 살로,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변한다 고 말합니다. 그래서 화체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루터교에서는 단지 떡과 포도 주를 먹고 마시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피요 나의 살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 다.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성만찬 때에 우리가 먹는 그 떡과 포도주가 어떻게 예수님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는 알바 없고 그렇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진지한 것입니다. 또한 즈빙글리는 떡은 떡이고, 포도주는 포도주이며,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요 단지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성찬을 단지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만찬에 대해 소홀하기 쉽습니다.

 

많은 주석책을 조사를 했는데 그 주석책들이 루터교회가 카톨릭의 화체설을 믿는 다고 알고 있는데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만찬 때에 주님이 말씀하신 떡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이요 주님의 피라는 말씀은 신비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이성적 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화체설은 그 신비를 인간적 으로 풀어보고자한 시도이며, 기념설 역시 최후의 만찬에서의 떡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라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이성적으로 풀어 보고자 설명하려는 시도가 기념설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화체설과 기념설을 조화 해서 영적 임재설을 주장했습니다. 말하자면 성찬식에서 나누는 떡과 포도주 에는 성령님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가 있어서 구속의 효과가 주어 진다 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인간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습니다.

 

기념설은 최후 만찬 때의 떡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이요 주님의 피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혀 부정하는데 비해 그래도 천주교에서는 이성적인 조작이 있기는 해도 그 말씀을 그대로 믿어보려는 노력이 보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에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주님의 살이요 주님의 피라고 주님께서 농담한 것입니까 아니면 거짓말을 한 것입니까? 루터교가 믿는 대로 우리가 이해되든지 안되든지 상관 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믿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믿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한갖 떡이요 포도주가 주님의 살과 피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남자 장정만 5천명을 먹이신 그런 능력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과 성찬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장정만 5천 명을 먹이신 때에 요한복음 6장 53-55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 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 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리리니 내 살은 참 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라고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 만이 생명을 얻게 되고, 결국 영광의 부활을 입게됨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 니까? 주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먹어야할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신다는 말은 물론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성만찬까지 포함된다고 믿습니다. 이것에 대한 해답이 마태복음26:26-29에 있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 먹으라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14:22-25, 눅 22:18-20)'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떡과 포도주를 주님의 살, 주님의 피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루터교에서는 요한복음 6:53-55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리리니 내 살은 참 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의 말씀과 마태복음 26:26-29의 '받아 먹으라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 의 피니라'의 말씀에 의거해서 성만찬을 세례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방편으로 가르칩니다. 저는 성만찬을 단지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배워서 그렇게 믿었 기에 이 구절 들을 읽을 때에 내눈에 최후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 주님의 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인 이 단어가 눈에 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찬이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라고 믿 습니까? 자주 성찬에 참여하다보니 그저 하나의 의식 정도로 이해하고, 아무 생 각없이 떡조각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살을 찢어 주셨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그 귀한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 성찬입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없이, 그 의미를 새기지 않고 성찬에 참여한 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고린도 전서 11장 27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 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꼭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살을 찢어 주셨고, 피 흘려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미래의 부활을 위한 것도 되지만,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꼭 필요한 식량이요, 음료가 됩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만나와 생수가 필요하듯,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가 필요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성찬의 의미는 더욱 절실하게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하나님 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 없이는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의 영생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결론
예수님의 부활과 성례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알아 보았습니다. 세례는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어지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 과거의 삶은 죽고 새롭게 태어난다 라는 부활의 의미를 가집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분은 어쩌다가 세례를 받았기에 별다른 경험이 없다 라고 할 것입니다. 관계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세례가 무엇인지 마음 속에 새기며 살아 가십시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은 광야길입니다. 세상에서 참된 식량과 음료를 먹고 마셔야만 살아갈 수 있습 니다. 이 세상에는 결코 참된 양식과 음료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살과 피만 이 참된 식량이요, 음료입니다. 그 살을 먹고 마시는 사람만이 생명이 있습니다. 그 살을 먹고 마시는 사람에게만 부활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다시 말씀드려 예수 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삶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와 성찬이 중요 한 것입니다. 그저 형식만이 아니고, 그 내용 그 의미를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신앙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단지 눈물과 슬픔만이 남 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소망이 충만해진 것입니다. 이제 그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능력은 바로 세례와 성찬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의 의미를 날마다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하고, 성찬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와 같은 복이 부활주일을 맞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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