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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언약의 신비 창세기 9:8-17

조회 수 35591 추천 수 0 2014.12.21 10:16:14


저는 카나다로 이민 간지 1년 6개월, 결혼한지 6개월 만에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이 기계에 압착되어 3년간 오른손 수술을 6번 받으면서 손이 많이 복원되었습니다. 손이 기계에 들어가는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10년 동안 손이 부분적으로 아팠고, 지금도 내게 그 후유증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가끔씩 자동차 운전을 할 때에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갑니다. 그래서 항상 운전하기 전에 기도합니다. 40년 전 일입니다. 트라우마란 단어를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해를 돕겠습니다. 트라우마란 사람이 큰 사고를 만나 크게 놀라거나 상처를 받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는 것을 트라우마라 합니다.


1. 인류의 트라우마,
사고를 당하면, 그 사고가 사람심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교통사고 같은 경우, 비단 신체적인 외상이 없더라도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되어 두고두고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정서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우울증’, ‘트라우마’, 같은 용어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문제는 그 상황이 자꾸 떠올려지거나, 당시 연관되었던 물건이나 사람들만 보아도 괴로운 기억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가 살아가면서 어떤 큰 충격을 받으면 그것은 분명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가 때로는 꿈으 로, 때로는 그 비슷한 일만 보아도 튀어나와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한 사고들이 무의식으로 숨어들어가 있다가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무의식적 으로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트라우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느냐 하면, 노아의8 식구들의 트라우마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 입니다. 노아시대의 홍수 전에는 지구 상에 수십억의 사람들이 살았었는데 그중에 8사람 만 살아 남았다고 생각할 때에 두려운 생각을 갖지 않았다면 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셈과 함과 야벳이 그 자손들에게 홍수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이것은 전 인류의 트라우마였습니다. 그래서 지구 상의 모든 종족들에게는 홍수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그림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네 장면의 노아 홍수를 그림으로 묘사했었습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건축도 아마 이런 인류의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창세기 11:4에,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에서 탑을 건설하여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해서 노아시대 홍수같은 것이 오더라도 죽지 말자. 탑을 높이 쌓자, 그래서 홍수를 보내어 인간들을 죽게 하는 하나님을 몰아내고 우리 끼리 똘똘 뭉쳐 흩어짐을 면하자하고 탑을 건축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류는 홍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2. 노아도 인간
과연 노아라는 인물이 이 땅에 실재한 인물이었다면 실제 행동에서 사람의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믿음의 인물을 만나면 일단 최고의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생 각해서 그런 사람은 흠과 티가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노아의 경우도 마찬 가 지입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노아는 “의인이며 당대에 완전한 자이며 하나님과 동행 한 사람”(창6:9)이었습니다. 또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였다(창6:22, 7:5)고 합 니다. 무엇 보다도 그 당시 수십억 인구 중에서 살아 남은 8사람 중에 한 사람이니 얼마 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그런 믿음의 사람이었으니 홍수가 끝난 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후에 다시 믿음의 굳건한 모습으로 살아갔으리라 는 추측도 가능합 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구태여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창 9:11)고 별도로 노아에게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시간과 공간을 압축한 책이라 했습니다. 창세기 8장과 9장에 상세히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홍수 후에 노아에게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발생한 어 떤 문제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 본문의 말씀을 하시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보시고 ‘내가 가서 확실히 해주어야겠다’고 판단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노아의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은 다시는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나님 스스로 다짐하셨건만, 그것을 모르는 노아는 두러움에 빠지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다시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지는 않을지, 또한 가끔씩 홍수 생각이 떠올라 그 때의 처 참한 광경들, 아비규환의 장면들이 노아를 괴롭혔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 를 지을 설계도를 주실 때에 창문을 하늘로 향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방주 밖에서 일어 나는 처참한 광경을 보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방주에서 나왔을 때에 시야에 들어 온 사람들과 짐승들의 해골들의 그 참담한 광경을 보면서 너무나 두려웠을 것입니다. 지 난 번 일어난 일본의 쓰나미 재해 현장을 사진 또는 영상을 통하여 보았다면, 이해가 빠 를 것입니다. 홍수 후에 노아 가족이 방주에서 빠져 나와 바라 본 곳의 형편이 일본의 쓰나미 재해와 방불했을 것입니다.


노아가 이런 트라우마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 것이 9장 20-21 절입니다. 노아가 술에 취한 사건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 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지라'는 말씀을 감안한 다면 그리 틀린 추측은 아니리라고 봅니다. 그런 고민이 없었다면, 노아는 실재한 인물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그런 상처를 감안하지 않고 이 본문을 읽는다면, 우리는 노아를 상상 속의 인물로 생각하든지 아니면 창세기의 노아 홍수 사건을 소설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현장이 노아가 실제적으로 겪었던 홍수의 현장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노아는 자기와 자기 가족만 살아남았다고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자기는 살아남았지만 자기의 이웃사람들은 모두다 홍수에 휩쓸려 내려가 버리고 그들의 집과 땅과 마을이 다 사라진 마당에 노아의 마음이 결코 편할 리 없습니다. 어떤 커다란 사건을 겪고 난 다음에 사람들은 두려움이 생깁니다. 인간에게는 기억이라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과거의 무서웠던 사건을 경험하고 나면 두려워서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엄청난 홍수 심판의 진노를 겪고 난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입니다. 노아의 심리를 살펴본다면 이 세상이 언제 다시 물로 심판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걱정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허물어 진 땅을 바라볼 때마다 그의 마음 속에 숨어있던 트라우마가 드러났을 것입니다. 이런 노아의 심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노아와 대화를 나누고 계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 본문을 읽는다면 이 본문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홍수가 없을 것이라는 언약에서 노아의 심리를 면밀히 읽고 계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돋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반복은 강조를 나타냅니다.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본문 창세기 9: 8-17사이에 많은 반복이 사용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내가'를 무려 8번 이나 반복하십니다. 둘째 '무지개'를 3번 반복하십니다. 셋째 '언약의 증거'도 3번 반복하십니다. 이 중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내가'입니다. 내가, 내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마치 겁 에 질린 아이를 달래기에 급급한 엄마를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3. 무지개 언약, 하나님이 기억하신다
그런 트라우마가 노아의 마음 한 켠에 들어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하나님은 노아 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문의 무지개 언약을 통하여 두가지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보여주시면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 9:11)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무지개를 증표삼아 그 언약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시면서 일부러 노아에게 기억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기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노아의 트라우마를 염려한 까닭입니다. 노아의 심리를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1. 그래서 그것을 없애주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고 약속하시면서 '내 무지개' 즉 '하나님의 무지개'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 에게 심지어 무지개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기억하라고 노아에게 명시적 으로 이야기를 하면, 그 기억에 홍수로 인한 비참한 모습들의 기억이 따라 붙을 것이기 때문에 기억하라는 말을 애초에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대신 무지개를 보여주시되, 그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겠다고 다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억은 내가 맡으마, 나만 기억하마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라 믿습니다. 노아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트라우마까지 살피셔서, 몸소 찾아오셔서 그것을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 또한 그의 근심 걱정을 아시고 무지개를 보여주시며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니 그러한 걱정 근심 역시 하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노아에게는 기억하라는 말은 전혀 꺼내지 않습 니다. 기억하라는 말은 하지 않고 그저 무지개만 보여주시면서 하나님 당신 자신이 기억 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 쌍방적,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방적 특성이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언약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내가'가 강조됩니다. 너희가 받을 만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은혜를 베푸는 것이고, 너희가 물의 심판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의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너희로 물의 심판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3. 홍수 이전에는 물이 풍족했습니다. 창세기 2:5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다'고 합니다. 홍수 이전에는 비가 없이도 식물들이 잘 자랐습니다. 그러나 홍수 후에는 비가 내려 생물들이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비를 내려 주셔야 하는데 비를내리기 위해 구름을 만드시면 구름을 본 인생들이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가 온 후에 무지개가 뜨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한다.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으리라'이 무지개는 무지개 언약을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신다는 언약의 징표인 것입니다.

 

두려울 때 구름을 보지 말고 구름 속에 둔 무지개를 보라는 것입니다. 구름 속에 무지개 를 두셨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 구름처럼 보기만 해도 부들부들 떨게 하는 트라우마의 대상이 있음을 하나님이 잘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그 만큼 피조물을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두 가지 중의 하나를 택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에 빠지게 하는 구름을 볼 것인지 아니면 구름 속에 두신 무지개 언약을 볼 것인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무지개 언약을 바라보면 더 이상 구름이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베드로가 주님께 간청합니다. '주님, 당신이시거든 나로 하여금 물위로 걷게 하소서' 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생각하면서 베드로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풍랑으로 죽음의 두려움에 떨던 그 사람입니다. 또한 물 위로 걸어 오는 주님을 보고 모두 유령이라고 두려워 했습니다. 그렇게 혼이 나갈만한 두려운 상황에서 주님을 향해 물위로 걷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마음의 여유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나같으면 그 상황에서 베드로 처럼 주님께 물위로 걷게 해달라고 요청할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 갔습니다. 풍랑 위에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 볼때가지 말입니다. 그러나 몰려 오는 파도를 봤을 때에 두려움이 생겼고 그는 물에 빠져 내려 갔습니다. 우리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찌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같이 하심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우리에게 수 없이 몰려 오는 인생 풍랑, 인생 트라우마 속에 나타나는 주님의 무지개,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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