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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5년 동안 중형사이즈의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내 마음은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일 아침 저녁마다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저 이세상에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대려 가 주십시오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물론 남들이 알아들으면 안되니까 방언으로 그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의 설교나 간증을 들어보면 정말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랑하시고 모든 기도마다 응답하시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어떤 때는 주님이 직접 찾아 오셔서 위로하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설교제목과 같이 무엇이든지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마다 형통하고 그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기를 이 목사님의 하나님은 참으로 인자하시고 자비롭고 응답도 잘하시고 자상하신 분인데 나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분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들립니다. 그분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인데 그 목사님에 대해 좋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또 어떤 교회에서는 부흥회 강사로 초청을 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봅니다. 


마태복음 7:20-23에,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도 행하는 자들에게 주님이 모른다고 하시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납니까? 이런 사람들이 처음부터 불법을 행한 자들이 아닐 것입니다. 처음에는 순수했고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충성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되지 못하는 선지자도 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주의 이름으로 권능도 행하고 귀신도 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능력이 나가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돈이 생기면서 하는 일마다 잘되니까 방심하게 되면서 변질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변질되면 옆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꿈으로 환상으로 또 사람을 통해서 경고하시는 데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알면서도 회개하지 못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솔로몬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까? 이 세상에서 솔로몬 만큼 물질, 명예, 지식, 지혜, 권력, 장수와 영성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의 우상신들에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두번이나 깨닫고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할 수 없었습니다.


열왕기상 11:9-11,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은밀하게 죄를 짓고 음란을 행하고 하나님의 물질을 자기 것인 양 함부로 사용하는데도 제재하는 사람이 옆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신의 설교를 듣고 은혜 받고 여전히 귀신도 쫓고 권능도 나가니까 자신이 은밀하게 행하는 모든 악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마태복음 7:20-23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크게 성공하고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반대로 아무리 가난하고 실패하고 고통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것에 상관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인생여정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밤낮 부르짖기도 하고 금식기도도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사울이 왕으로 세움 받는 과정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원하대로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가를 생각하고,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축복의 상태를 끝까지 잘 유지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하심
사무엘상 9, 10장의 배경은 사사 시대가 끝나갈 무렵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들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간구하는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들어주시려고 백성들 중에서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선택하신 것은 그의 겸손함과 성실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날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사울의 집의 암나귀 몇 마리가 도망을 쳤습니다. 아버지 기스가 사울에게 그 암나귀들을 찾아 오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삼일 동안 온 베냐민 땅과 에브라임 산지를 헤매었습니다. 사흘 동안이나 암 나귀들을 찾아 헤매었지만 찾지 못하자 이제는 아버지가 암 나귀보다는 자기를 걱정하겠구나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동행하는 하인이 이 동네에 사무엘 선지지가 계시는데 그분에게 가서 암 나귀에 대해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소소한 일까지도 선지자에게 물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 하면 우리의 적은 문제까지도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는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사무엘 선지자에게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암 나귀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사울은 단지 도망친 암 나귀들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사무엘 선지자에게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사울 자신은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암 나귀를 찾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는데 하나님은 그를 사무엘 선지자에게로 인도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될 소식을 듣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하루 살면서 길을 가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내 길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사울은 자기 집의 귀중한 재산인 암 나귀들을 잃어버린 불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불행한 일이 상상치도 못할 축복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길에 어려움이나 실패나 좌절이나 질병으로 고통이나 고난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원대한 계획이 있어 이끌어 가시는 과정인 것입니다. 고통, 고난의 과정이 필요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에 그는 형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노예로 팔아 외국에서 노예생활을 했지만 형들을 원망하면서 주저 앉지 않았습니다. 그의 형들이 요셉을 에굽에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에굽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시기를 네 후손들이 에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있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오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 예언의 성취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보디발 아내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살았는데도 그 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도 괴로워하지 않고 주어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열심히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요셉이 감옥 안에서 바로왕의 술맡은 장관을 만나게 되어 감옥에서 나오게 되고 에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 일로 야곱 가족이 에굽에 안착하게 됩니다.


둘째로 사울의 심성 
1. 사울은 암 나귀를 찾으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산지 사방을 삼일 동안이나 돌아 다닐 만큼 순종적이고 성실했습니다(삼상 9:1-6). 자기에게 맡겨진 일상의 작은 일부터 순종적이고 성실하게 책임을 다했습니다. 만약 사울이 암 나귀를 찾는 일을 작게 여기고 도중에 포기하였다면 사무엘 선지자에게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망쳤을 것입니다.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자에게 더 큰 일을 맡겨 주십니다. 누가복음 16:10이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이런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도 사울과 같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이끌어 가실 텐데 도중에 포기해버리지 않았나 지난 날을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불순종하여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나안 정복사업도 1 세대가 아니라 2세대로 넘어갔습니다.


2.  사울은 사환의 충고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았습니다(삼상9:6-8). 그 일로 사무엘 선지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사환의 말을 무시했다면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요 그는 왕으로서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환상이나 음성으로나 성경이나 기도를 통해서도 주시지만 목사님의 설교나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도 들여주십니다.
3.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찾아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4. 그는 사무엘이 말한 나라의 일을 공적인 절차에 의해 밝혀 질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만큼 겸손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자신이 나라 임금이 될 것이란 말씀을 들었고, 또 실제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 대해 말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에 대한 세 가지 징조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에게 떠 벌리며 다닐 텐데 신중했습니다. 자신이 사람들 앞에 왕으로서의 공적인 검증을 얻기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사무엘 10:14-16, ‘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이르되 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니 15 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하니라. 16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 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니라.’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 왕으로서의 기름부음을 받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심으로 사울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한 것을 보고 그 숙부가 사무엘 선지자를 만남으로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알게 되어 사울에게 물은 것입니다.

5. 사울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왕으로 추대되었을 때에 숨었습니다. 사무엘상 10: 21-23,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 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22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23 그들이 달려 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 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6. 그는 경건했을 때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사람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사무엘상 10:6, 9-10,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세번째 무엇이든지 네 손이 보는 대로 행하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

사울은 사무엘에게서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환상이나 꿈이나 혹은 예언기도 하시는 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았을 때에 그것에 대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자신이 말한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검증을 주기 위해 세 가지 징조를 말합니다.


첫째 징조는 삼상 10:2에서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인데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그 암 나귀들을 찾았고 암 나귀들의 염려 대신에 아들과 사환을 걱정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라 했는데 사무엘 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둘째 징조는 네가 다볼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벧엘로 가는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인데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세 마리를 이끄는 사람과 떡 세덩이를 가진 사람과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인데, 그 중에 떡 세 덩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네게 떡 두 덩이를 줄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일들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셋째 징조는 하나님의 산에 이르러 그 성읍으로 들어 갈 때에 산당에서 악기를 불면서 내려 오는 선지자 무리들을 만나게 될 것인데 그 때에, 네게 성령이 크게 임하여서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게 될 것이고 네가 크게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징조가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한 가지 징조뿐만 아니라 세 가지 징조가 사무엘 선지자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에 대한 예언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징조를 받아야 합니다.

사울의 경우, 이 세 가지 징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거든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네가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망설이지 말고 무엇이든지 행하라는 것입니다. 투자하고 싶으면 투자하고, 사업을 하고 싶으면 사업을 하고, 직장을 구하고 싶으면 직장을 구하고, 어떤 특정 대학에 입학하고 싶으면 시험을 치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입니다.
‘ Once these signs are fulfilled, do whatever your hand finds to do, for God is with you.’


이런 경우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상태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습니다. 주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요 내 생각이 주님의 생각입니다. 주님과 내가 일치된 상태입니다. 요한복음 15:5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했으며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본문 말씀의 제목과 같습니다.


빌립보서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울가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말씀은 우리 마음에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소원을 넣어 주십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내 생각이라고 했는데 실상은 주님께서 내 마음에 넣어 주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게 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상태에서 주님이 내 생각이요 내 생각이 주님의 뜻입니다. 내안에 행하시는 이가 주님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 즉 생각을 주시고 그 일을 행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내가 하기로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 마다 다 성공이요 형통인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참으로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 있을 때에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대로 행하게 하시는데 그 책임을 우리에게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놓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1. 우리의 삶에서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내 야망, 야심이 없이 하나님 영광 만을 위하여야 합니다. 사울의 경우, 그는 전혀 왕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왕이 되자마자 암몬왕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행하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 말씀대로 사울은 싸움에 나가 승리했습니다. 그 이후로 사울이 가는 곳마다 승리했습니다. 교회당을 건축할 경우입니다. 교회당 건축이므로 당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당 건축이 목사의 야심일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려는 목적일 수 있습니다. 그 교회당을 짓지 전에 그 교회당을 최고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일부 이부 삼부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사업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자본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할 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업확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때에 자신의 선입감이나 현재의 경제상황 같은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무조건 따를 마음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기가 한 곳에 투자하겠다고 생각해 놓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결정에 동의하도록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곳에 투자하라고 하십니다. 그 때에는 햇갈립니다. 자기가 받은 것이 잘 못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합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일에 실패합니다. 이 일을 하는데 있어 1%도 자기 야심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나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 일은 성공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에 자기를 비우는 작업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이 선명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고 해서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롭게만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극심한 방해와 난간과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사람들은 의심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확실한가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어떤 고난 고통이 있더라도 밀고 나가야 합니다. 인내하면서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과 태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2.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방심하면 교만해 집니다. 하는 일마다 일이 형통하게 되면 방심하게 됩니다. 참피언이 되기까지 너무나 긴장하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참피언이 되면 더 이상 오를 때가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감이 풀어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려고 해도 그것이 그렇게 잘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얻으려고 했던 목표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참피언쉽을 빼앗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참피언쉽을 빼앗기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달려서 어떤 큰 일을 이룬 후에는 긴장감이 풀어집니다. 하는 일 마다 잘됩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줄어들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일이 잘됩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행할 때마다 일이 잘 되니까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되니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놓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잘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놓쳐 버리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탄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려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26:41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릴 때는 더욱 기도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일에 방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3. 주의해야 할 것은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해이해져 있지 않은지, 방심하고 있지나 않은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사울의 경우 그렇게 겸손했던 그가 왕이 되고, 교만해 지면서 마음에 하나님을 떠나 보내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후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태평하면 방심하게 됩니다. 축복을 받으면서 일이 바빠지고 기도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아사왕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사왕의 경우 초기 때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사에게 엄청난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20년간 나라가 태평했습니다. 태평하니 하나님께 간구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 신앙을 망각했으며 하나님 마져 잊어버렸습니다.

역대하 14:1-, 7‘1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 2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3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4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5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6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7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역대하 15:10-19, ‘아사 왕 제십오년 셋째 달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11 그 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 12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1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14 무리가 큰 소리로 외치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여호와께 맹세하매 15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16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므로 아사가 그의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그의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17 산당은 이스라엘 중에서 제하지 아니하였으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 18 그가 또 그의 아버지가 구별한 물건과 자기가 구별한 물건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을 하나님의 전에 드렸더니 19 이 때부터 아사 왕 제삼십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역대하 16:1-5,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2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다메섹에 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3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4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들을 쳤더니 5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 공사를 그친지라………’

역대하 16: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역대하 16: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역대하 14:1에서 아사가 왕이 된 후 10년 동안 평안했다 했습니다. 그리고 15:10 아사 왕 제십오년 셋째 달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이유는 아사왕 군사 58만명과 구스왕 세라 군사 백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전리품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15:19에서 이때로부터 아사왕 35년까지 나라가 태평하였다 했습니다. 아사왕 시대 20년이 태평세월을 가졌기에 이 기간동안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역대하 16:1-5에서 이스라엘왕 바아사가 유다를 침범했을 때에 겁을 먹고 아람왕 벤하닷에게 성전과 왕궁 곳간에서 은금을 내어다가 바치면서 이스라엘을 침으로 이스라엘왕을 물러가게 했습니다. 이런 불신앙을 꾸짖는다고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바른말 하는 자들을 학대했으며 발병이 났을 때에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원에게 구하였더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14장의 아사왕과 20년이 지난 후의 역대하16장의 아사왕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너무 태평성대의 기간이 길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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