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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이기는 종교입니다. 초대 교회시대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이겨왔습니다. 교회는초대교회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영적 전쟁이요 우주 교회적인 전쟁입니다. 또 교회에 속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각개 전투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평탄하게 지내온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시대부터 끊임 없이 핍박, 박해를 받아 왔습니다. 세상 권력에 의한 박해와 종교나 타 문화에 의해 핍박, 박해를 받았습니다. 초대교회는 무려 300년 동안 로마정부에 의해 박해를 받았습니다. 중세교회는 무려 1000년 가까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박해를 받을수록 교회는 더욱 강해졌고 더 팽창해 갔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강한 박해에도 견뎌내어 이겼습니다. 로마정부가 교회를 그렇게 박해 했는데 오히려 로마정부가 기독교에 굴복하여 나중에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승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끝까지 싸워야 하며 싸워 이겨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편지형식으로 그 당시의 일곱 교회에 보내 서신형식의 묵시록입니다. 예수님은 계시록 처음부터 각 교회에게 선언하시기를 이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록을 주신 의도는 믿음에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의도는 각 성도들이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소아시아 지역에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곱 교회는 그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의 모형입니다. 에베소 교회와 같은 교회, 서머나 교회와 같은 교회, 버가모 교회와 같은 교회, 빌라델피아 교회와 같은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교회들을 대표하는 교회들입니다. 각 교회마다 상황이 다릅니다. 교회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환경이 열악하고 박해와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교회는 승리할 것이며 각 성도들은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곱 교회 모형은 그 당시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있었으며 현재에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 일생의 신앙여정 가운데 개인적으로도 에베소 교회 유형의 삶에 처할 경우도 있고, 버가모 교회와 같이 성적으로 유혹을 받을 상황에 처할 수도 있고, 서머나 교회와 같이 가난, 실패, 핍박, 박해를 받을 상황에 처할 수도 있으며,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세상적으로 잘 풀리고 형통하며 물질적으로 부요할 때도 있을 텐데 이런 각각의 상황에서도 신앙을 놓치지 않고 믿음의 승리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에 좀더 주님께 가까이 오다가 세상적으로 잘 풀리고 물질적으로 부요해 질 때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상태는 믿음을 놓친 경우요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패배한 상태입니다. 주님이 일곱 교회마다 이기는 자가 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 인생 여정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의 승리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요점은 끝까지 승리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에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 2,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 모형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각 경우의 교회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승리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에베소 교회(계2:1-7)
에베소 교회는 당시에 아시아주의 수도였습니다. 상업과 교통,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유명한 아데미 신전이 있을 만큼 우상숭배가 성행하였으며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중심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니골라당이라는 이단의 공격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 있었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 교인들은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그렇지 않은 환경 속에 있는 다른 어떤 지역의 교회 교인들보다 몇배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교인들은 주변 상황에 물들지 않기 위해 주변의 이교숭배 사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확고한 교리를 세워 그것을 열심히 붙들게 되었습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바울사도가 세운 교회요 디모데가 목회한 교회요 밧모섬의 유대에서 돌아온 후에 사도 요한도 목회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외부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세월이 지나면서 주님을 믿는 자로서의 삶의 실천에 대한 열정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신앙의 교리를 지키는 소극적인 일에는 성공하였으나 지킨 교리를 삶 속에 실천하는 적극적인 신앙의 행위에 있어서는 실패한 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정통교리는 지켰으나 교리가 주는 참된 의미는 실천하지 못한 채 교리만을 붙들고 있는 형식적인 신앙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오늘날의 정통을 주장하면서 교리를 앞세우고 또한 이단을 경계하는 일은 잘하는데 활기가 없고 소극적이고 주님과의 깊은 관계를 상실한 교회였습니다. 오늘날도 에베소 교회와 그리고 에베소 교회와 같은 교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결점을 벗어나 믿음에 끝까지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계시록 2:2, 3에서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은 것과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어디서 그 첫 사랑을 잃었는지 깨닫고 회개하여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이기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십니다. 여기 ‘이기는’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시제가 현재 분사형으로서 계속적인 진행을 나타냅니다. 이긴다는 말은 군사용어로서 전투에서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마지막 최후까지 군사처럼 비장한 각오와 자세로써 싸워 이겨야 할 것을 말합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2. 서머나 교회(계2:8-11)
서머나는 에베소와 버가모와 함께 소아시아지역에서 당대 최고의 도시라고 불리우기를 다투던 중심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당대 일급 도시라는 호칭은 세상적 관점에서는 좋은 것일지 모르나 기독교인의 관점에서는 결코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와 비슷합니다. 그 시대 그 지역에 있어 일급 도시라는 그 만큼 우상숭배가 성행했고 그리고 서머나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서 정착한 도시입니다. 따라서 서머나 교회는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로마정부 세력과 유대주의적 기치아래 기독교를 배척하는 유대인들이라는 커다란 두 세력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앙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환난과 궁핍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신앙 때문에 직장을 잃거나 재산을 몰수당하여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실상은 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적으로 물질적으로 부요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는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불쌍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극심한 어려움과 박해 속에서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비록 몸은 가난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신앙만은 변절시키지 않아 영적으로 부요함을 유지하는 참된 신앙을 지켜 필라델피아 교회와 함께 꾸지람은 듣지 않고 칭찬만 듣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잠깐 더 계속될 고난 가운데서 참으며 죽기까지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며 둘째사망의 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결국 이 믿음을 굳게 지켜 교회 역사상 순교의 교회로 유명하며 그 중 12번째 순교자 폴리갑과 같은 유명한 순교자를 배출하는 신실한 교회, 이기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폴리갑 감독은 유대인들에 의해 안식일에 화형을 당했습니다. 믿음의 정절을 지켜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가 이기는 자이며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3. 버가모 교회(계2:12-17)

버가모는 로마가 아시아주에 편입시키기 이전에는 무시아 주라 불리우던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이곳은 BC130년 경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이 도시에 의학교가 있었고 20만권이 넘는 책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에는 제우스, 아테네, 디오니소스를 모신 신전이 있었고, 그 외에도 수 많은 신들을 섬기는 신전이 있어 우상숭배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버가모는 에베소나 서머나 보다 먼저 황제숭배를 위한 신전이 건립될 정도로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버가모 시를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 칭했고 사단이 거하는 곳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뱀을 신으로 상징하는 아에스쿨라 피우스를 섬겼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가 극심한 도시의 버가모 교회에 안디바라는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이 안디바는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버가모 교회의 감독이었는데 도미티아누스 황제 통치 때에 황제숭배를 거부하다가 체포당해 불에 벌겋게 달구어진 놋쇠 황소 위에 얹히어 타 죽었다고 합니다. 사실 버가모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으므로 그곳 성도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이교도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한편 버가모 교회는 이교도들이 가하는 박해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내부로부터 오는 거짓 교훈에 미혹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발람의 교훈을 좇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발람은 민수기 22-25장과 31:8, 16에 나오는 인물인데 이스라엘백성들을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게 하고 모압의 우상숭배에 참여시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징벌을 당하게 한 장본인입니다. 발람의 교훈과 마찬가지로 버가모 교회에 거짓 선지자들이 들어와 버가모 교인들을 꾀어 음행하며 우상숭배하게 하고 그 제물을 먹게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인들에게 니골라 당의 교훈을 좇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계시록 2:14, 15에서 발람의 교훈을 좇는 자들을 니골라당의 교훈을 좇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했습니다


니골라란 이름의 뜻은 헬라어의 의미로 백성을 이긴다, 삼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발람의 히브리어 의미는 백성을 삼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니골라나 발람이나 같은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발람이란 한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시켜 삼키는 무리를 통칭합니다. 그래서 14절과 15절에 의하면 니골라당의 가르침과 발람의 가르침이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니골라와 발람의 이름의 뜻이 같고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발람의 가르침과 같기에 발람의 교훈을 따라는 이들을 두고 니골라당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버가모교회 성도들에게 경고하시기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일차적으로 니골당의 교훈을 좇는 무리들에게 하시는 경고요, 또한 버가모교회 교인 전부에게 하시는 경고입니다. 버가모 교회를 두고 볼 때에 세 그룹의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안디바로 대표되는 예수님 신앙 때문에 순교도 불사하는 성도들과 또한 니골라 당을 좇는 교인들과 이러한 것을 묵인하는 교인들입니다. 죄는 그것을 짓는 자들에게 돌아가지만 죄 짓는 자들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 역시 간접적인 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악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이에 맞서 싸우지 아니하면 주께서 친히 이 모든 자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거짓 가르침이 난무한 곳에서 주님을 믿노라 하는 자들이 진리를 수호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계시록 2:16절에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일제 점령시대에 우리 한국교회가 생각납니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그 때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매맞고 헐벗고 굶주림을 당하며 주기철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순교까지 하는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앞장서서 교인들을 대리고 신사참배를 하던 사람들과 그것들을 방관하던 목사나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버가모 교회와 같았습니다. 계시록 2장, 3장의 일곱 교회는 전 시대 전 세계의 교회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엄청난 박해가 우리 시대 교회에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와 같은 시대상황에 처한 교회들에게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인 만나를 줄 것이요 또 흰돌을 줄 것이요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할 것이요 그 흰 돌 위에 새겨진 새 이름은 받는 자만 알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의 만나는 시편78:23,24에서 천국에서 천사들이 먹는 양식이라 했습니다. ‘23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24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25 사람이 힘센 자의 떡을 먹었으며 그가 음식을 그들에게 충족히 주셨도다 25 Men ate the bread of angels; he sent them all the food they could eat.’했습니다. 여기에서 ‘힘센 자의 떡’이라 했는데 영문에는 ‘천사들의 떡’이라 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늘의 천사들이 먹는 양식을 먹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천국에 가서 먹을 만나를 이스라엘백성들이 몇 천년 전에 먼저 시식했습니다. 이기는 자들이 만나를 먹는다는 것은 천국에 가 있을 것이요 그곳에서 만나를 먹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만나를 ‘감추인 만나’라고 했습니다. 왜 감추었다고 하느냐 하면 이스라엘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소산을 먹은 그 다음 날부터 하늘에서 내리던 만나가 다시는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5:10-12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하늘양식 만나를 먹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항아리에 만나를 넣어 법궤에 보관했습니다(출16:32,33). 그 만나는 몇 백년이 지나도 썩거나 구더기가 설거나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보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유다나라가 바벨론에 멸망될 때에 이사야나 예례미야 선지자에 의해 그 법궤가 은밀하게 보관되어 졌는데 장차 메시아가 오면 그 만나가 다시 공개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바룩 29:8). 그래서 그 전설에 근거하여 이 구절이 기록되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감추인 만나란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에게 ‘흰돌’을 주신다고 했는데 이 흰 돌은 고대 운동경기에서 우승자의 이름을 새겨 주던 흰돌이었습니다. 따라서 환란과 핍박을 이겨내고 죽임을 당하기 까지 끝까지 잘 싸워 신앙을 지키며, 거짓 가르침과 싸워 이긴 자에게 주님은 만나로 상징되는 영생과 아울러 하늘나라에서 이긴자에게 주시는 상급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새겨 준다고 했는데 이 새 이름은 고대 경기에서 우승자의 이름을 흰 돌에 새겨 주었듯이 잘 싸워 이겨 천국에 온 성도들에게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불려질 하나님이 주시는 새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의 이름을주셨고,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 이름을 주셨고,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듯이 믿음의 싸움을 잘 싸우고 승리하고 천국에 입성한 성도들에게 흰돌에 새 이름을 지어 새겨 주시는데, 그 새 이름은 받는 자만이 안다고 했습니다.


4.  두아디라 교회(계시록 2:18-29)

두아디라는 옛 무시아 지역의 수도였던 버가모가 천연적인 방어 요새를 갖추지 못해 이 버가모를 지키기 위해 두아디라에 항상 수비대를 주둔시켰던 작은 도시입니다. 이처럼 수도 방위군이 항상 주둔했을 만큼 두아디라는 이 지역의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이 도시는 지역적으로는 작지만 염색산업으로 크게 번창했습니다. 이 도시의 염색공업 발달은 동업조합이 생겼는데 발달된 조합은 조합원의 친목이라는 명목으로 우상숭배와 음행을 성행하게 했습니다. 두아디라도 앞의 거대한 세 도시인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와 같이 우상숭배와 행음이라는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런 죄악의 문화 속에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두아디라 교회는 한편으로는 경제적 이권을 계속 지키기 위해서 우상을 섬기고 행음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계시록 2:19에서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일부 성도들에게 칭찬을 합니다.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처음 것 보다 많도다.’했습니다. 여기의 ‘사업’이란 말은 뒤에 오는 사랑, 믿음, 섬김과 인내를 다 포함하는 대표적 낱말입니다. 섬김은 구제를 말하며 인내는 환란과 박해 가운데 이 세상의 고난을 이겨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정리하면 사랑과 믿음과 소망입니다. 이와 같이 두아디라는 기독교의 삼대 덕목을 신실하게 잘 지키고 행한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사랑의 실천에 남달리 힘쓴 것으로 보입니다. 두아디라 성도들은 이렇게 온전한 기독교 덕목들을 지키고 실천하면서 더욱 귀한 것은 처음 믿을 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온전한 자세와 행위를 보였습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잘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의 실천이 점점 식어져 간 에베소 교회와는 정 반대입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첫 사랑을 잃어버렸으나 두아디라 교회는 더욱 큰 믿음과 더욱 따뜻한 사랑과 깊은 소망을 키워나갔습니다. 두아디라 성도들은 나날이 진보하고 성장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도 문제가 있습니다. 지상교회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두아디라는 많은 우상신들 중에 특별히 아폴로를 가장 열렬히 섬겼습니다. 그리고 이교 신전에서 종교제의에 따른 음행이 성행하였습니다. 그래서 20절의 이세벨은 이러한 신전의 여사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세벨이란 여자는 두아디라의 신전의 여사제의 역할을 하던 여인인데 교회 안으로 가만히 들어와 자칭 선지자라 하며 교인들을 미혹시키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를 상징적으로 이세벨이라 칭한 것입니다. 이 교회에 자칭 선지자라하는 여자 이세벨을 교회가 용납하여 주님의 종들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고 그 제물을 먹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니골라당의 가르침과 같습니다.


당시 두아디라에는 상공업과 관련된 각종 조합이 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자주 모여 친목을 도모하였는데 식탁에는 우상신상에게 바쳐진 제물이 올랐으며, 식사 후에는 부정한 성행위가 동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거절하면 조합원으로서의 권리에 침해를 받고 불이익을 당하게 되므로 교인들 중에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두아디라교회는 에베소 교회와 대조가 되는데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을 잃은 대신 거짓선지자들을 끝까지 물리친 반면(2-4절), 두아디라 교회는 형제 사랑을 점점 키워나간 대신 거짓선지자를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온전치 못해서 교리에 치중하면 사랑의 실천을 등한시 하게 되고, 사랑에 치중하면 교리적인 면이 약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을 잘 조화시키도록 성령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은 이런 죄를 회개하도록 하였으나 이 교인들은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삶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과 같이 죄인 줄 알면서도 사업을 잃을까 봐, 가난해 질까 봐 그 죄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시록2:22-23에.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했습니다. 여기에 ‘그의 자녀’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세벨의 교훈을 좇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마귀의 자녀들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에 이런 죄에 빠지지 않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계시록 2:24에서는 ‘남아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남은 자들은 19절의,’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란 말씀대로 다 잘 지킬 뿐만 아니라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신앙정절을 지킨 두아디라 교회 내의 소수의 무리들입니다. 20절에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했다는 말씀 속에서 대부분의 교인들이 이세벨의 교훈을 따랐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두아디라 교회가 구구절절이 오늘날의 교회를 두고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이 남은 자들이 이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가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2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했습니다. 여기 ‘사탄의 깊은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니골라당이나 발람의 교훈이나 이세벨의 교훈은 그 당시 유행했던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들입니다. 이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사단의 깊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단의 가르침을 비꼬기 위해 소위 사단의 깊은 것, 사단의 심오한 사상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남은 자들에게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두아디라 교회의 남은 자들은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 와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지 않은 것들 외에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들만 끝까지 잘 지키면 된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2:25-28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급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했습니다.


26절에서, 두아디라 교회의 남은 자들은 주의 재림 때까지 계속해서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와 이세벨의 교훈인 우상숭배와 음행의 유혹을 이기면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두아디라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요점은 주님의 일을 지키되 끝까지 지키라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끝까지 주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는데 마태복음 28:18에서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셨는데, 여기서는 예수님이 이 권세를 끝까지 지키는,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이기는 자들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27절에서,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 같이 하리라 했습니다.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린다는 것은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절대적 통치권과 심판의 권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끝까지 신앙정절을 지키고 이긴 자는 만국을 다스리는 주님의 권세에 참여할 것입니다.


28절에서,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했습니다. 끝까지 이긴자에게 주시는 두번째 약속입니다. 새벽별은 계시록 22:16에서 주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광명한 새벽 별로 묘사한 것은 주님의 영원한 통치와 찬란한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인데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이른 축복을 함께 누리게 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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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열 처녀 비유 (마태복음 25:1-13) 김준식목사 2016-07-23 35021
109 에덴동산 에스겔 28:13-17, 창세기 2:8-10, 계시록 22:1-5 김준식목사 2016-07-23 31094
108 하나님의 축복의 수도꼭지 고린도전서 10:1-13, 출에굽기 17:1-6, 민수기 20:1-11 김준식목사 2016-07-23 29220
107 영의 세계의 신비한 능력 사도행전 12:1-11 김준식목사 2016-06-26 29976
106 무엇이든지 네 손이 보는 대로 행하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 김준식목사 2016-06-26 29680
105 에덴동산과 새 하늘과 새 땅 (3) 계시록 22:1-5 file 김준식목사 2016-06-04 29629
104 에덴동산과 새 하늘과 새 땅 계시록 21:1-7 김준식목사 2016-06-02 28642
103 에덴동산과 새 하늘과 새 땅 창세기 2:7-17 file 김준식목사 2016-05-22 31673
102 흰옷 입은 자들 마태복음 22:1-14 김준식목사 2016-05-22 30989
101 예수님이 자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마태복음 13:9-23 김준식목사 2016-05-22 34011
100 사람의 영의 기원 창세기 2:7 말라기서 2: 13-16 김준식목사 2016-05-22 28127
99 사람의 영 혼 육의 관계와 동물의 혼 창세기 1:20-28 김준식목사 2016-05-22 31687
98 끝까지 이기는 자의 축복 계시록 3:1-6 김준식목사 2016-05-22 31949
» 끝까지 이기는 성도들( 일곱 교회) 계시록 2:1-28 김준식목사 2016-05-22 31691
96 예수님이 자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마태복음 13:9-23 김준식목사 2016-05-05 29556
95 사람의 영의 기원 창세기 2:7 말라기서 2: 13-16 김준식목사 2016-05-05 33405
94 사람의 영 혼 육의 관계와 동물의 혼 창세기 1:20-28 김준식목사 2016-04-18 37196
93 그리스도냐 적 그리스도냐 계시록 6:1-2 file 김준식목사 2016-04-07 44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