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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신비 누가복음 2:1-19

조회 수 27444 추천 수 0 2016.12.25 01:32:16


성탄절이 가까워 오면서 성탄의 성경구절들을 읽으면서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성탄절에 관한 지식들이 성경과 다른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출생, 생애, 교훈과 공생애 동안의 행하신 사역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알려 주는 책들입니다. 사복음서 중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 탄생에 대해 서로 다른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동방에서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메시야 예수님께 경배하려 온 이야기를 하고, 누가복음에는 밤에 양떼를 치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마굿간의 짐승 여물통에 누이신 아기가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라고 알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서에서 보여 주는 주님의 탄생 이야기를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누가복음서가 보여 주는 메시야 탄생의 신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중에 누가복음의 탄생기사가 시간적으로 더 빠른 시점을 보여 줍니다. 누가복음의 탄생 이야기는 누가복음 1:26-38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나사렛동네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고지를 알려 주는 데서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2장에서는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께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18-25에서 성령의 덮으심으로 예수님을 임신한 마리아가 약혼자 요셉에게 임신 사실을 알립니다. 아마 임신하여 배가 불러 오기 시작할 때쯤에 이 사실을 요셉에게 알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이 사실을 알자마자 자기 집으로 마리아를 데려 오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당시에 처녀가 임신을 하면 율법에 의해 간음죄로 돌로 쳐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행동하기 까지 요셉은 엄청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마리아의 순결은 믿지만 마리아가 남자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 지면 마리아가 위험하겠기에 가만히 파혼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느날 밤에 가브리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마리아 데려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리아가 한 이야기가 다 맞다 고 확증해 줍니다.


마태복음 1:20-21에,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했습니다. 요셉은 천사의 말을 듣고야 마리아를 집으로 데려 옵니다.


다시 누가복음 2장으로 탄생 이야기는 연결됩니다. 마리아는 요셉의 보호 아래 두문불출하고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유대법은 약혼자들은 한 집에서 살수는 있지만 결혼식을 갖기 전에는 성관계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산할 날은 가까워 오고 있는데 두 사람은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고향으로 가서 호적을 하라는 정부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므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식구들이 다 갈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이나 가족의 대표자가 가서 대표로 호적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출산할 날이 임박한 마리아를 먼 길에 대동합니다. 출산 날이 임박한 임신부를 먼 길에 대동하는 것은 극히 위험합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45km라고 합니다. 145km는 90마일입니다. 임신부를 나귀에 태워 천천히 가야 합니다. 하루에 30(48km)마일씩 가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3일 길입니다. 길에서 출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 간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야는 베들레헴에서 출생한다는 성경(미가 5:2)의 예언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이 미가 5:2의 예언을 알고 행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두 부부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길가는 중에 출산하지 않게 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요셉은 출산 날이 가까운 마리아를 혼자 집에 내버려 두고 먼 길을 갈 수 없었습니다. 또한 마리아의 출산을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먼 길을 결행하기로 했습니다.


누가복음 2: 3-7, ‘모든 사람이 호적 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거기 있 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 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했습니다.


호적을 끝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시간에 맞추어 베들레헴이 고향인 사람들이 모여 들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그리고 로마 통치 모든 지역에 흩어져 살던 베들레헴이 고향인 사람들이 모여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천천히 오다 보니 거할 집이 없었습니다. 호적을 하려 베들레헴에 온 사람들 중에 부모친척이 있는 자들은 그들에게 들어갔을 것이요,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은 여관이나 민가에 민박을 했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호적 마감시간에 임박해서 도착했었기에 여관이나 민박할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마구간을 발견했습니다. 마구간은 길거리 보다는 아늑하겠지만 온방장치가 없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성탄시절의 팔레스타인의 날씨가 어떠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추운 겨울이었겠습니까? 성탄절이 12월 25일이니까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도 추운 겨울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12월 25일은 4세기 이후로 교리적으로 전 교회가 지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12월 25일은 예수님의 성탄을 기념하기 위해서이지 정확한 예수님 생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계절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추운 겨울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목자들이 밤에 양떼를 지켰다고 한데서 추운 날씨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가족들이 온방장치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외양간에서 아기를 출산해서 강보에 싸서 여물통에 눕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추운 날씨가 아니고 밤에도 밖에서 양떼를 돌보고 아기가 태어나 외양간에 눕혀도 될 정도의 온화한 날씨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임의로 결정한 12월 25일을 마치 성경말씀인 줄로 착각합니다. 자신들이 사는 곳의 12월 25일의 성탄절이 추우니까 주님이 나신 때도 그랬을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아우구스투스 황제(Caesar Augustus)의 명령에 따라 실시된 인구 조사에 임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인구조사는 농업국에서는 모든 추수가 끝난 후 가을 파종이 완료된 후에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초막절(수장절)이 9월 22일임으로 10월이나 11월이었을 것이요, 팔레스타인의 10월, 11월은 켈리포니아 날씨와 같아서 추운 날씨가 아닙니다. 그리고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결정한 가장 유력한 12월 25일 설은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날을 채택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다음해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교회의 "로마" 주교는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습니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이날을 축제일로 삼아 농업을 주관하는 Saturnalia라고 불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것은 주후 274년 Aurelian 로마황제에 의하여 되어진 일입니다. 북구라파에서는 이전부터 "태양이 다시 소생"하는 동지 (冬至)를 크게 기념하는 축제(Festival)를 전통적으로 지켜 왔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빛"의 탄생입니다.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 것과 기독교에서 "세상의 빛"이 탄생한 날을 12월 25일로 결정한 것은 이교도들의 "태양의 빛"을 기독교의 "세상의 빛"으로 일치시킴으로 기독교를 이교도들에게 더욱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2월 25일의 성탄절이 이렇게 이교도의 절일을 성탄절로 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교회당이 절간으로 되었으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잘못되었지만 절간이 교회당이 되었다면 그것 잘 된 것 아닙니까?


다시 누가복음 2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느 날 베들레헴 마을 주변 들판에서 목자들이 밤에 양떼를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환해지면서 한 천사가 나타나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할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천군천사가 나타나 하나님을 찬송하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평화로다 했습니다. 지구 상의 인간들에게 천상의 천군천사들이 이렇게 많이 보여 준 것은 처음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번 더 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예수님의 재림 때 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시에 이렇게 천사들의 활동이 빈번해 집니다.


이 목자들은 그 당시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밤에 잠잘 때에 이들은 잠도 잘 수 없이 남의 양떼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때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온 백성들에게 전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이 시간에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받을 사람들은 밤을 지키는 이 목자들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온 인류의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 주님이 오심을 가장 미천하고 소외된 목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천사들이 전하여 준 소식을 확증하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눕힌 아기가 바로 그리스도 주라고 합니다. 만약 아기가 여관이나 집에서 태어났다면 목자들이 그 아기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들은 베들레헴 사람들입니다. 작은 마을 모든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집에 외양간이 있다는 것과 그 외양간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또 외양간이니까 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이 그 외양간에 들어가 아기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외양간의 구유에 눕힌 아기를 찾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자기들에게 일어난 일을 상세히 말할 때에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기이히 여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누가복음 2:19에서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했는데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할 것이라 가브리엘 천사가 말했는데 그렇다면 아기가 탄생할 때에 하나님께서 따뜻하고 아늑한 자리에서 아기를 출산하도록 해 주셔야 할 텐데 마구간에서 태어나 여물통에 눕힌 아기를 보면서 이 아이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 맞나, 내가 천사의 수태고지를 받은 것이 정말인가 의심하고 있었을 텐데 마침 그 때에 목자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위로와 확신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누가복음 2:21로 나아갑니다. 21절에서 아기가 난지 팔 일이 되어 할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대관습에 새 아기가 태어날 때에 여자 아이는 나자마자 이름을 받습니다. 그러나 남자 아이는 할례를 받는 날에 이름을 받습니다. 할례는 집에서 아버지 요셉이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22로 나아가는데, 22절은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다고 합니다. 여기 ‘결례’의 날의 결례는 산모가 행하는 결례입니다. 레위기 12:1-8말씀에 아이를 낳은 산모들은 부정하게 되는데 부정을 씻어내는 정결의식을 행하는 날을 말합니다. 남자아이를 낳은 산모는 40일 만에 정결예식을 행하고 여자아이를 낳은 산모는 80일이라 했습니다.


아마도 여자 아이를 낳은 산모를 80일로 정한 것은 남자아이를 선호하는 세상에서 여자아이를 낳았으니 천대를 받을 텐데 하나님께서 80일로 정하심으로 그 동안 산모로 하여금 충분히 쉬어 몸을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인 것 같습니다. 레위기 1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3여덟 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4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 가지도 말 것이며 5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 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


누가복음 2:22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40일이 되었는데도 자신들이 살던 나사렛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다가 결례를 행하려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리고 23절에서 마리아가 정결예식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가면서 아기를 데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23절, 24절에,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3:12에서 유례한 것인데 출애굽할 때에 애굽 사람들의 첫 아들들이 다 죽을 때에 이스라엘 장자들은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위하여 레위지파가 하나님께 구별 되었으므로 모든 이스라엘 장자가 하나님께 바쳐질 필요가 없고 대신에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그들의 생명을 속하는 5세겔씩 바치고 예물을 드려 자신이 봉헌된 것을 상징적으로 표시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도 요셉과 마리아의 장자이므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예수님께서 대속의 속전을 드려야 할 아무런 죄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속전을 드린 것은 중보자로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렇게 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시므온 할아버지도 만나고 여선지자 안나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39에 이 모든 일을 마쳤다고 합니다.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했습니다. 여기에서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동방박사에 대한 기사를 생략합니다. 이 39절에서는 바로 나사렛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39절에서 시간을 건너 뛰어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의 방문으로 연결됩니다. 나사렛으로 돌아 간 것이 아니고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동방박사들을 만나고 이어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그 후에 나사렛으로 돌아갑니다.


둘째로 마태복음서가 보여 주는 성탄의 신비
마태복음 2장에서는 동방박사들이 등장합니다. 이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님을 만난 장소는 베들레헴의 마굿간이 아니라  이라 했습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 여기 말씀에 동방박사들이 집으로 들어가 아기께 경배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누가복음 2장과 마태복음 2장을 연결해서 성탄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예루살렘에 결례를 행하려 가기까지 40일 동안 베들레헴에 머물렀습니다. 이 40일 동안에 계속 마구간에 머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호적이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떠납니다. 그러나 예수님 가족은 출산을 했기에 결례를 치루는 동안까지는 출산의 몸을 추서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호적이 끝나는 동시에 산모의 몸조리를 위해서 평안한 집으로 옮겼을 것입니다. 만약 누가복음 2:39에서 예루살렘에서 결례를 치른 후에 바로 나사렛으로 갔다면 동방박사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은 결례를 치르기 전에는 베들레헴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결례를 치르기 전에 동방박사들이 방문했다면 예수님 가족은 결례도 치루기 전에 애굽으로 망명가야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가족은 예루살렘에서 결례를 치른 후에 나사렛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호적 하려 올 때에 나사렛으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에 와서 호적하고 또 예루살렘에서 결례를 치루었다 할지라도 그 기간은 40 여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40일 기간 동안 나사렛을 비웠는데 그 후에 돌아 갈 때에 아기를 안고 갔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 아이가 누구 아이냐고 물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사렛 사람들은 요셉과 마리아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약혼한 사이인데 호적하고 돌아 오는 사이에 아이를 낳아 그들 앞에 섰다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임신했을 때는 숨어 지낼 수 있지만 아이가 생기면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렛을 떠날 때에 나사렛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의 헤롯 궁에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했을 때에 헤롯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소동했다 했습니다. 헤롯이 생각하기를 내가 왕인데 또 무슨 왕이 태어났느냐고 경계를 했을 것입니다. 그 아기 왕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왔다고 했을 때에 마태복음 2:7에서,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했습니다. 별이 나타난 때를 물은 것은 유대인의 왕이 언제 태어났을까를 알아 보기 위해서 입니다. 동방박사들에게 부탁하기를 아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헤롯에게 가지 않고 다른 길로 도망쳤습니다.


그후에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베들레헴과 그 인근 마을에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를 다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마태복음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했습니다. 헤롯이 두살 이하의 아이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왜 두살입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죽일 때도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볼 때에 헤롯이 아무렇게나 두살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두 번이나 헤롯이 아이의 출생에 대해서 자세히 물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가족이 동방박사들이 오기전 베들레헴에 적어도 2년 정도 살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는 일에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범위도 베들레헴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마을까지 포함하고 나이도 두살 아래로 하면 틀림없이 아기 예수를 죽일 수 있으리라 해서 넉넉 잡고 2살 이하라고 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근거 없이 두살 이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19-23에,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거기’는 베들레헴입니다.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지역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끄려했는데 하나님께서 요셉의 꿈에 나타나 나사렛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고 나사렛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만약 요셉이 나사렛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면 유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일에 아켈라오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갈릴리의 나사렛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렛은 요셉의 염두에도 없었는데 나사렛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은 후에 나사렛으로 돌아 갑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베들레헴에 얼마 동안 머물렀을 것이요 애굽에서도 어느 기간 동안 피난 살이 하다가 나사렛 동네로 돌아 갑니다. 그 때에는 몇 년이 지난 후이므로 예수님을 안고 돌아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동방박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성탄절에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을 함께 등장시킵니다. 그런데 지금도 대부분의 교회나 목사님들이 성탄절에 동방박사들을 등장시킵니다. 동방박사들은 주님이 탄생하신 그때에 방문 한 것이 아닙니다.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것이 아니고 집에 계신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황과 몰약의 선물을 드렸고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로부터 적어도 마리아가 결례를 치룬 40일 이후요 길면 탄생하신 지 2년 후일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동방에서 왔다고 했는데 아마도 동방이 바벨론일 것입니다. 이들은 유대인의 왕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별을 따라 왔다고 했는데 그 별이 어떻게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별인 줄로 알고 찾아 왔겠습니까? 바벨론에는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그 당시에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유대인들로부터 성경과 그리고 메시아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별이 메시아께로 인도한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특별한 별입니다. 낙타를 타고 느릿느릿 여행하는 박사들을 천천히 인도하도록 충분히 느린 속도로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이 별은 성탄절의 삼대 신비 중에 하나입니다. 첫째 신비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아기로 태어나신 성육신의 신비요 둘째는 성령님으로 인해 동정녀를 통해서 탄생하신 것이요 셋째 성탄신비는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그 별입니다. 이 삼대 성탄의 신비는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입니다. 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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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무덤의 시체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 요한복음 5:24-29 김준식목사 2016-11-02 24339
122 북국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 열왕기하 2:1-6 김준식목사 2016-11-02 23997
121 구약의 성령님과 선지자와 예언(2) 에스겔서 14:9,10 김준식목사 2016-11-02 24362
120 구약의 성령님과 하나님의 백성 요엘 2:28-32 김준식목사 2016-11-02 24364
119 구약의 성령님과 예언사역 열왕기 상13:1-10 김준식목사 2016-11-02 24379
118 구약의 성령님과 그의 활동 (2) 이사야 61:1-3 김준식목사 2016-11-02 24232
117 구약의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성령님 이사야 61:1-3 김준식목사 2016-11-02 24532
116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 시편 127: 3-5 김준식목사 2016-11-02 33505
115 구원의 확신 갖는 법 로마서 10:9,10 김준식목사 2016-11-02 24516
114 창세기 원역사의 비밀 (2) 마태복음 24:37-39, 누가복음 17:26-30 file 김준식목사 2016-11-02 24606
113 창세기 원 역사의 비밀(1) 창세기 6:1-7, 11:1-5 file 김준식목사 2016-11-02 26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