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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유대교에서 성령님은 무엇보다도 은사적인 성격이 강한 예언의 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일시적으로 예언을 했습니다. 또한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사울이 예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예언을 한 것은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있다는 증거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예언의 은사가 얼마나 민감한 성격을 가졌는가를 알아 볼 것입니다.


첫째로 예언은사의 민감성
사울은 예언의 은사와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그가 왕이 될 것에 대한 예언의 성취로 그에게 성령님이 임하셔서 예언을 하게 했습니다. 그 후 왕이 되었고 다윗이 등장하면서 사울이 다윗을 질투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수많은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런 때에 성령님께서 예언의 은사를 통해서 사울의 악행을 제제하고 다윗을 보호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때에 임한 예언은사는 강력했음을 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언은사가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활동까지도 저지하는 능력으로 역사했음을 봅니다. 사무엘상 19장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함으로 다윗이 라마나욧에 있는 사무엘에게로 가서 피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이 신하들을 보내어 다윗을 체포하려 했습니다. 그 때에 사무엘과 선지자무리들이 예언을 하고 있을 때에 성령님이 사울의 신하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예언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체포해서 사울에게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다른 신하들을 보냅니다. 이들도 성령님이 임하시고 예언을 하게 되어 사울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사울이 또 다른 신하들을 보냈는데 이들도 예언을 하게 됩니다. 사무엘상 19:22에서 이번에는 자기가 라마라욧으로 갔는데 사울에게도 성령님이 임하셔서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 벗은 몸으로 누웠었다고 했습니다. 왕이 무슨 챙피입니까?


민수기23,24장에 미디안의 왕 발락이 사술자 발람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초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님께 붙들려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성령님이 그 사람을 압도합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압도해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전하기는 하지만 그 방법은 사술이었습니다. 사술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였다가 민수기 24:1에서는 여호와께서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축복하는 것을 기뻐하심을 보고 사술을 쓰지 않고 예언을 한다고 말합니다. 민수기 24:1-5, ‘‘1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여 2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천막 친 것을 보는데 그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3 그가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4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5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했습니다.


이말을 보면 발람이 자기가 사용했던 점술로 성령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예언했다가 이번에는 점술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예언을 받아 말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점쟁이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예언했느냐가 아니라 그 예언이 누구에게로부터 왔으며 그 예언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분별하는 것은 아주 미묘합니다. 사무엘상 28장에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침입하여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왕이 너무나 두려워 접신녀에게 찾아가 사무엘 선지자를 불러 올리라고 합니다. 접신녀에 의해 사무엘의 영이 땅에서 올라 온다고 했습니다. 사울은 보지 못하나 접신녀는 봅니다. 사울이 그 나타난 영의 모습이 어떻냐고 묻습니다. 접신녀가 그 영의 모습의 설명을 듣고 사무엘의 영임을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의 영이 하는 말은 하나님의 메시지와 같습니다 이 영이 말한 대로 그대로 사울에게 임하여 사울은 전쟁에서 죽게 됩니다. 이런 경우 이 사무엘의 영이란 존재는 악한 영입니다. 그런데 이 영이 한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경우 그 영이 한 말이 그대로 되든지 아니 되든 지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은 악한 영을 가진 자에게 가서 묻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출애굽기 22:18에에,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라’했습니다. 레위기 20:27에는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 가리라 ’


레위기 19:.31에는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거나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여호와니라.’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해 사울왕은 신접한 자를 이스라엘에서 쫓나 내기도 했지만 그는 자기가 궁급한 때에 그 접신녀에게 찾아가 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매체를 사용하시더라도 그 매체를 통해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람에게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십니다. 심지어 당나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 매체에게 가서 물어서는 안됩니다. 마귀에게 속게 됩니다.


둘째로 선지자와 예언사역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예언사역은 참으로 민감하고 위태로울 때가 많습니다. 감옥에 갇힐 수도 있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왕에게 아브라함은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고 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산 까지는 삼일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두 하인들과 함께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향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대해 의심 없이 받아드리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히브리서 11:19에서 이삭이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줄 믿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이 자신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어려운 시험에 능동적으로 순종한 아브라함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창세기 22:12에서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했습니다. 누가복음 18:29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우리 중에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누가복음 18:29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그 음성에 속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했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서 책임 지시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이 그렇게 숨기려고 했던 밧세바와의 간음과 우리야를 죽인 사실을 직고했습니다. 이런 경우 나쁜 왕이었다면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열왕기상 13장에서 북국 여로보암왕이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그 단에 올라 제사를 집전할 때에 남국 유다에서 파송된 선지자가 그 단을 향하여 예언합니다. 그 선지자에게 지시하시기를 예언을 한 후에 그 곳에서는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왔던 길로도 돌아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이 선지자가에게 다가가 자기도 선지자인데 천사가 자신에게 지시하기를 남쪽 선지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먹이고 마시게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늙은 선지자가 그 남쪽 선지자를 불러 먹이고 마시울 때에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그 선지자를 책망하십니다.  북쪽에서는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고 했는데 먹고 마셨으니 너는 죽에 될 것이라 예언합니다. 그 예언대로 이 선지자는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사자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 선지자는 사람의 말을 듣기 전에 하나님께 물었어야만 했습니다. 거짓말 한 선지자는 살고 말씀에 순종하다가 거짓말에 속은 선지자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쪽 선지자의 예언은 400년 후에 성취되었습니다. 예언 사역은 이렇게 민감하고 복잡합니다.


열왕기상 20장에보면 아람왕 벤하닷과 이스라엘왕 아합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아람군대가 패배하고 벤하닷은 숨어 있다가 아합왕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했을 때에 살려 보냅니다. 이 때에 35절에,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동료 선지자 한 사람에게 너는 나를 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동무 선지자가 치기를 싫어할 때에 말하기를 너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했는데 그 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선지자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자기를 치라 하였더니 아주 심하게 두르려 팼습니다. 맞은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그 얼굴의 상처를 매고 아합 왕에게 접근하여 자기 자신의 고충을 왕에게 말합니다. 내용인즉 한 사람이 자기에 한 포로를 끌고와서 그 포로를 지키라고 말하면서 만약 그 포로를 잃어버리면 네 생명을 저의 생명으로 대신하든지 아니면 은 한달란트를 내야 하리라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일로 그곳에 신경을 쓰다가 그 포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때에 아합왕이 말하기를 네가 스스로 한 일이니 네가 책임을 저야 하리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지자가 얼굴의 수건을 풉니다. 보니 아합왕이 잘아는 선지자였습니다. 그 선지자가 아합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를 여호와께서 멸하기로 작정한 벤하닷을 네가 살려 주었으니 네 목숨을 벤하닷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벤하닷의 백성의 목숨을 대신하리라고 예언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북국 이스라엘에서 여호와신앙을 바알우상 숭배로 대치하려는 악한 왕 아합에게 찾아와 당신의 죄로 인해 이 나라에 삼년반 동안 기근이 있으리라 하고 도망쳐 숨어버립니다. 그 나라에 기근이 임했습니다. 아합왕이 엘리야를 찾아 온 나라를 뒤지고 이웃 왕들에게 엘리야를 숨겼으면 내놓으라 하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말 한디로 인해 온 나라와 백성들이 기근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언의 은사가 위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므낫세 왕에게 톱으로 켜 죽임을 당했습니다.


셋째로 예례미야 선지자와 에스겔 선지자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가 멸망 당하기 100년 전의 선지자였으며, 예례미야 선지자는 유다가 멸망할 직전과 직후에 예루살렘에서 사역한 선지자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가 바벨론에 삼차에 걸쳐 포로로 잡혀 갔는데 에스겔은 2차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 중에서 이들을 향해 선지자 사역을 했습니다. 이들 두 선지자는 국가적으로 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었습니다.


1. 예레미야 선지자
먼저 예레미야 선지자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예례미야는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로 택함받았다고 합니다. 예례미야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유다백성들은 바벨론에 멸망할 것이요 바벨론에 잡혀가 그곳에서 결혼하고 아이들도 낳고 집도 짓고 포도원도 만들어 살라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예언은 왕이나 정부고관들 그리고 백성들이 들었을 때에 매국노입니다. 누가 나라가 망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누가 포로로 끌려 가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왕이나 신하들이 예례미야를 거짓 선지자라 하여 죽이려 했습니다. 예례미야 11:21-23’ 21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22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23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니라.’

이 말씀에서 아나돗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언하면 죽이겠다고 합니다. 아나돗은 제사장집안 동네입니다.


에스겔 12;24에, ‘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라.’아첨하는 복술이란 잘 될 것이다 평안이다고 사람들에게 아첨한다는 것입니다.


2. 에스겔 선지자
에스겔 선지자는 제사장인데 성령님이 임하시사 선지사역을 하십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 중에서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라고 예언합니다. 이 시기의 포로민들은 선지자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로 하여금 이상한 행동을 하도록 지시합니다. 포로민들이 선지자의 말은 듣지 않다가 선지자가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할 때에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묻습니다. 그 때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며 에스겔서 4장에서 에스겔은 진흙으로 만든 판 위에 예루살렘을 바벨론 군대가 포위한 그림을 그리고 왼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게 하십니다. 북국 이스라엘을 위해서 일년을 하루로 계산하여 390일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면 오른쪽으로 누워 일일을 일년으로 40일을 유다족속의 죄를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왼쪽 오른 쪽으로 누워지내는 동안에 곡식을 가지고 밥을 지어 먹는데 사람의 똥을 말려 그것을 뗄감으로 밥을 지어 먹도록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그런 더러운 것으로 몸을 더럽힐 수가 없다고 호소하자 쇠똥을 말린 것으로 뗄감으로 삼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서 5장에서는 날카로운 칼로 머리털과 수염을 잘라 저울에 달아 삼분지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마치는 날에 머리털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날라가게 했습니다. 성읍 안에서 불사르는 것은 사람과 성읍과 성전이 불로 파괴될 것을 말하며, 삼분의 일의 터럭을 성업 밖에서 칼로 치는 것은 성읍이 무너지자 도망치는 사람들을 칼로 쳐 죽이는 것을 말하며 터럭 삼분의 일을 바람에 날리는 것은 유다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가고 다른 나라로 도망치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행동입니다. 그 외 이상한 행동들을 지시하는 많은 예들이 있습니다.


넷째로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나라가 멸망할 때에 나라가 망할 것이라 예언하는 자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길한 예언을 하는 자들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언으로 인해 박해 받고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더욱 몸조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례미야 시대에 수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선지자는 예례미야 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예례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은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살리실 것이다 보호하실 것이다. 바벨론에 잡혀 갔던 자들이 다 돌아 올 것이다고 예언했습니다. 작년에 한국에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해서 나라를 어지럽힌 자들이 많았는데 만약 그런 예언을 한다고 감옥에 가둔다면 과연 그들이 그런 예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례미야 20장에 보면 제사장 바스훌은 성전에서 총감독이라 했습니다. 그가 선지자 예례미야를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그 다음 날에 내 놓습니다. 예래미야 20:7-9의 예례미야는 자신의 고통스런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했는데 영어성경 niv에서는 주께서 나를 속이셨고 나는 속았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자기를 속여 예언을 하라 하셨기에 그렇게 속아 예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이 말은 주님께서 나보다 강하시므로 예언을 하게 하셔서 예언을 한 결과는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8절에,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라 했는데 예례미야 선지자가 예언하는 내용마다 예루살렘은 망한다. 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불태움을 당할 것이다. 사람들을 포로로 잡혀 갈 것이다란 말을 크게 외치니 사람들마다 욕하고 조롱하고 협박한다는 말입니다.


9절에 그래서 예례미야는 다시는 그 예언을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결심을 합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란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 다시는 예언하지 않겠다고 하여 입을 다물면 오히려 성령께서 마음을 짓누르시므로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답답하고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친구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의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고 하는 것은 예례미야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 타락하면 우리가 그를 이기는 것이요 그래서 원수를 갚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을 하는 자들은 타락하지 않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살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여 타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례미야 27: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예례미야의 예언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을 그렇지 않다고 예언합니다. ‘9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복술가나 꿈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자가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너희는 듣지 말라.’


예례미야 28:1-4에서 선지자 하나냐가 제사장들과 모든 백셩 앞에서 예언하기를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이요 바벨론으로 옮겨간 성전기구와 포로로 잡혀간 여고니야와 모든 포로들을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오게 할 것이라는 여호와의 예언을 전달했습니다. 그 러니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겠습니까?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우선 포로가 돌아 온다고 하니까 사람들 사이에는 인기가 있는 예언입니다.


‘1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4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니라.’


만약 우리가 이런 경우에 처하였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겠습니까? 선지자 예례미야는 계속 말합니다. 예례미야 28:9-11,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 10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11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으면 예례미야로서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예례미야 28:15-17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 도다.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17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예례미야 29장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곳에서 시집가고 장가가서 아이들을 낳고 농사도 짓고 집도 지어 평안하게 살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말것이며 바벨론을 위해 평안하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이 평안해야 너희들도 평안하게 될 것이라 말씀합니다. 가만이 생각하면 맞는 말인데 적개심으로 가득찬 마음에는 이런 말이 설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포로민들에게 고토로 돌아올 때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일년 이년 내가 아니라 70년 후에 될 것이니 너긋한 마음으로 애들을 많이 낳아 식구들을 많이 불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례미야 29:1-10, ‘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2 ……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제까지는 아직 바벨론에 잡혀 가지 않은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 거짓 예언하는 선지자들과 맞서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이제는 일찍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의 포로민들 사이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칩니다. 그런 가운데 있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활동을 보겠습니다.


에스겔 14: 2-8,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 경고하여 예언하되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 6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들에게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그들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7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8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 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런 자들도 보고 듣습니다. 여호와로부터가 아니라 거짓 영이 여호와라 하면서 거짓 것을 보여 주고 말하는 것에 속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에스겔서 14:9,10을 말씀을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9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를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거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를 멸할 것이라. 10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이 말씀이 무슨 뜻이냐 하면 선지자가 거짓 예언을 하는 것은 명예심이나 돈에 욕심을 갖고 있거나 또 어떤 인간적이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예언을 가지려는 선지자에게 그런 유혹을 하나님이 받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엉터리 거짓 선지자에게 묻는 자도 같은 벌을 받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이런 자에게 와서 묻는 자나 이런 자에게 예언을 하는 자들이 똑같다는 말입니다. 이런 예언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엉터리 예언자들이 생긴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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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능과 그 범위 계시록 20: 12, 15 김준식목사 2017-01-04 27591
131 성탄의 신비 누가복음 2:1-19 김준식목사 2016-12-25 30913
130 욥의 생애와 고난 받은 기간 욥기 42:7-17 김준식목사 2016-12-17 43075
129 대 백보좌 심판과 그 이전과 그 이후 (계시록 20:7-15) 김준식목사 2016-12-10 28274
128 아마겟돈 전쟁(인류 최후의 전쟁) 계시록 19:14-21 김준식목사 2016-12-04 33752
127 천년왕국에 대한 질문과 해답 이사야 65:18-25 김준식목사 2016-11-26 27733
126 천년 왕국의 시민들과 곡과 마곡전쟁 계시록 20:7-10 김준식목사 2016-11-19 33732
125 천년왕국( 2) 요한계시록 19: 11 - 21, 20 : 1-10 김준식목사 2016-11-14 27528
124 천년왕국 (1) 요한계시록 19: 11 - 21, 20 : 1-10 김준식목사 2016-11-10 32695
123 무덤의 시체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 요한복음 5:24-29 김준식목사 2016-11-02 27615
122 북국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 열왕기하 2:1-6 김준식목사 2016-11-02 27330
» 구약의 성령님과 선지자와 예언(2) 에스겔서 14:9,10 김준식목사 2016-11-02 27622
120 구약의 성령님과 하나님의 백성 요엘 2:28-32 김준식목사 2016-11-02 27395
119 구약의 성령님과 예언사역 열왕기 상13:1-10 김준식목사 2016-11-02 27605
118 구약의 성령님과 그의 활동 (2) 이사야 61:1-3 김준식목사 2016-11-02 27629
117 구약의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성령님 이사야 61:1-3 김준식목사 2016-11-02 27590
116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 시편 127: 3-5 김준식목사 2016-11-02 37864
115 구원의 확신 갖는 법 로마서 10:9,10 김준식목사 2016-11-02 27853
114 창세기 원역사의 비밀 (2) 마태복음 24:37-39, 누가복음 17:26-30 file 김준식목사 2016-11-02 27760
113 창세기 원 역사의 비밀(1) 창세기 6:1-7, 11:1-5 file 김준식목사 2016-11-02 29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