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첫째로 엑스터시적인 예언과 성령님
선지자와 관련된 부정적인 진술들은 종종 엑스터시적(무아경, 황홀경)인 행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호세아선지자는 선지자들이 어리석고 미치광이라 불리는 엑스터시적인 행동을 하는 자로 간주하던 때에 선지활동을 하였습니다. 예례미야 시대에는 선지자처럼 미친자처럼 행동한다하여 착고에 채웠습니다(렘29:26). 전 선지서(포로귀환 전)와 후 선지서에 모두 엑스터시적인 경험과 성령님의 관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성령님이 일으킨 엑스터시적인 행위에 대해 심한 경멸이 있었습니다. 엑스터시적인 행위가 기록 선지자들에게 있던 ‘말씀’의 우위 때문에 경시되고 제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과 엑스터시의 연관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선지 집단의 한 요소였습니다.

선지자 무리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것에 뒤따른 특징은 집단적인 예언의 엑스터시가 있었습니다. 민수기 11:25에 칠십인 장로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이들이 일시에 예언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없었습니다. 또한 이런 엑스터시는 겉으로 보기에 전염성이 있으며, 사울이 발가벗고 밤낮으로 예언하게 합니다(삼상 19:18-24). ‘


‘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19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1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으므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2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성령님에 이끌린 엑스터시는 긍정적이지만 바알 선지자들에게 일어나는 엑스터시는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합니다. 이들은 큰 소리로 바알을 부르고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합니다. 여기 ‘규례에 따라’라고 한 것을 볼 때에 항상 피를 흘리고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했던 것을 봅니다.


둘째로 성령님과 참 예언과 거짓 예언


1. 미가야 선지자와 아합 왕의 어용 선지자들
예언적 영감을 받는 과정에서 성령님은 열왕기상 22장에서 판에 박히지 않은 방식으로 행하시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열왕기상 22장은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제 3차 전쟁에 대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왕 여호사밧이 연합해서 아람 왕과의 전쟁을 하게 됩니다. 유다왕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의 제안을 받아 들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를 원했습니다. 왕실 선지자들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할 수 있었으며 혹은 왕이 선지자를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번 경우에는 이스라엘 왕이 왕실의 후원을 받는 선지자 사백명을 소집합니다. 이들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길르앗 라못을 왕의 손에 넘겨 주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나 왕에게 속하지 않은 선지자들의 예언은 왕정의 정책이나 계획들과 반대 되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이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사밧은 대중적인 신탁의 영감과 동기와 진실을 의심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선지자를 데려 오라고 합니다. 이 때에 미가야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이 미가야 선지자는 항상 아합 왕과 반대되는 예언을 하는 자이기에 아합 왕이 싫어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사백명의 선지자들은 한 목소리로 전쟁에서 왕이 승리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시드기야라는 선지자는 철로 뿔을 만들어 예언하기를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고 예언합니다. 미가야는 이런 상황에서 왕에게 불려 올 때에 사백명 모든 선지자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예언했으니 너도 그렇게 예언하라고 압력을 받습니다. 처음에 미가야는 예언하기를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런 태도를 간파한 아합 왕은 미가야가 거짓을 말한다고 믿고 진실을 말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미가야는 두번째 예언을 말하기를 이스라엘이 곧 주인을 잃을 것이요 왕이 전쟁 중에 죽임을 당하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천상회의가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미가야는 그 천상회의에서 어떻게 왕을 전쟁터로 유인하여 그의 통치를 종식시킬 것에 대한 여호와의 계획을 논의하는 것을 엿들었다고 합니다. 천상궁정에서 논의하는 도중에 한 영이 앞으로 나와 자청해서 아합을 전쟁으로 유인하겠다고 합니다. 결국 아합과 여호사밧은 미가야의 예언 대신에 사백명 선지자의 듣기에 좋은 예언을 신뢰하여 전쟁에 나갔다가 아합 왕은 죽고 맙니다. 예언의 질보다 량에 무게를 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루아흐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 영’이 누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한 영을 성령님으로 보고 성령님께서 악한 자들에게는 거짓 말씀을 주고 참 선지자에게는 참 예언을 주신다고 합니다. 한 성령님께서 악한 선지자, 선한 선지자에게 동시에 영감을 주시는데 악한 자에게는 거짓 영감을 주고, 선한 선지자에게는 참 영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아합의 어용 선지자 사백명은 어떤 자들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합은 악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알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서 하나님 신앙을 몰아내고, 바알신앙을 세우려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아합을 제거하시려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백명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라 바알 선지자들입니다. 바알 선지자가 아니라도 악한 왕에게 빌붙은 선지자라면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리고 ‘한 영’의 정체는 사탄일 수 있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느냐 질문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천상의 궁정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욥기서 1:6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열왕기상 22장의 천상 왕궁의 회의에도 사단이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선한 천사와는 다른 루아흐(영)이기에 히브리어 성경본문에는 이 루아흐 앞에 정관사를 붙이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사단이 나서서 자신이 거짓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거짓 영감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천상회의에 사단은 왜 참석합니까? 욥의 경우와 같이 성도들을 참소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범죄함으로 모든 인간은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알고 있는 사단은 그 사람을 참소하여 자기 사람으로 묶어 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단이 천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던 때가 끝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만 인류의 죄를 속량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부터 사단이 하나님 앞에 나와 사람을 참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그 성도를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단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와 참소해 봤자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사단은 하나님 보좌 앞에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예언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의로워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거짓 예언을 하는 경우는 여러 시대에 나타났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관심은 하나님의 진정한 메시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짓 예언의 문제는 중재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실 때에 백성들이 중재자를 요청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20:19). 이 요청에 대해 하나님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왕, 선지자를 포함하는 중재자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 있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 때문에 중재 과정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이 단절될 가망성이 많았습니다. 그 단절의 주요한 영역이 선지자의 성격과 예언적 메시지의 내용이었습니다. 구약은 예언 말씀이 여호와께서 영감하시는 것만 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신명기 18:20에서,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선지자들은 이런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참된 예언의 말씀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깨달으며, 주제 넘은 말을 거부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했습니다. 참된 예언을 분별하는 문제는 열왕기상 13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2. 유다의 선지자와 이스라엘의 늙은 선지자(열상 13장)
솔로몬 왕이 죽으면서 이스라엘은 남국 유다와 북국 이스라엘로 분열됩니다. 그러므로 남국 유다와 북국 이스라엘에 국경이 그어집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북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국 유다의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예배하려 가기 위해 국경을 드나들었습니다. 북국 왕인 여로보암의 입장에서 볼 때에 참으로 불안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국경통제를 엄하게 하고 예루살렘에 예배하려 가는 대신에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에굽에서 인도한 너희 신이라 하여 팔월 십 오일을 절기로 정하여 여로보암왕 자신이 송아지 제단에 올라가 제사를 집전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제사를 집전하고 있을 때에 남쪽 유다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받은 한 젊은 선지자가 여로보암 왕이 세우고 제사를 드리는 그 제단을 향해 예언을 합니다. 열왕기상 13:2에,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에 대한 예증을 말하는데 여로보암이 서 있는 제단이 무너지리라 했습니다. 남쪽 선지자의 예언대로 제단이 무너졌습니다. 이 때에 여로보암이 손을 내밀며 저 선지자를 잡으라 명령할 때에 내밀은 손을 거두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여로보암이 그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의 손을 낫게 해달라고 했을 때에 선지자가 기도했을 때에 다시 손이 그대로 되었습니다.

여로보암 왕이 그 선지자에게 자기 집에 가서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을 때에 선지자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곳에 가서 음식을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 오지도 말고 다른 길로 오라고 했다고 하면서 거절하고 돌아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때에 벧엘에 살던 늙은 선지자가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쪽에서 온 선지자를 만나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말하기를 자기가 천사에게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면서 말하기를 열왕기상 13:18에,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했습니다. 성경은 이 늙은 선지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거짓 말을 들은 남쪽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명령을 변경하셨구나 하고 그 늙은 선지자를 따라가 음식을 먹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 늙은 선지자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리라’ 했습니다. 그가 돌아가다가 사자에게 찢겨 죽었음을 알고 그 늙은 선지자가 죽은 선지자를 자기의 묘실에 장사지내면서 아들들에게 부탁하기를 자기가 죽으면 그 뼈를 남쪽 선지자의 뼈 곁에 두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를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지자는 죽었지만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늙은 선지자는 벧엘에 일어난 사건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의 진실성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늙은 선지자는 벧엘에서의 새로운 제사의식을 지지했습니다. 즉 송아지 우상을 이스라엘을 에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제사의식을 반대한 북국 이스라엘의 참 선지자들과 백성들은 남쪽으로 이사를 갔었습니다. 그런데 이 늙은 선지자는 이사를 가지 않았다는 것은 여로보암 왕의 송아지 우상 제사의식에 찬동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둔하고 타락한 선지자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동성애자들을 옹호하고 목사로 세우는 교단이나 목사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남쪽에서 온 하나님의 선지자는 처음에는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왔던 길로도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있었는데 북쪽의 늙은 선지자의 이차적인 계시에 대한 주장에 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명령의 변화를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늙은 선지자는 벧엘의 제사 의식을 반대한 하나님의 사람의 말이 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벧엘의 이 늙은 선지자 뿐만 아니라 북국의 많은 선지자들이 북국 이스라엘의 배교에 동참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선지자들 사이에 정치적인 분열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3장은 열왕기서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참된 선지자들과 배교적인 왕정을 지지하는 선지자들 사이의 투쟁과 선지자들과 왕정 사이의 긴장도 보여 줍니다.

한편 남쪽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서는 예언의 영감적 성격과 완전한 순종이 무엇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북쪽 선지 공동체에게 선포하기를 사악한 왕정과 종교적 배역의 제사에 반대하여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어떤 선지자는 은둔생활을 하는 공동체로 모이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스마야, 엘리야, 엘리사와 같이 배교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는 순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진정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북쪽에서는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왔던 길로도 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쪽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에 속고 말았습니다. 남쪽에서 온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 수행에서 결국 실패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을 알아 냄으로써 영감된 메시지의 진실성과 메시지의 전달자의 도덕적 행동과 관련하여 현재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예언의 악용을 밝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연관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예언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여 한국에 2015년 12월에 전쟁이 있을 것이라 하여 국회에서 논의가 되고 한국정부와 일반 국민에게 큰 파장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불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전쟁을 피하여 한국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세계 전역으로 도망쳐 나온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거짓 예언이 국가와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습니까? 그러나 이런 거짓 예언을 한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 예언을 한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라고 믿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인기를 모으려고 하는 야망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예언의 은사는 아주 델리게이트합니다. 아주 민감합니다. 자칫 속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속고 있는지 아닌지 살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은사를 받은 그 자체에 푹 빠지게 됩니다. 남들이 갖지 못한 은사를 가졌다는데 대해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 당시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들과 직통 계시를 받는다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거짓 예언을 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집단적 거짓 영에 속은 자들입니다. 아합의 사백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같습니다. 온 나라를 뒤 흔든 그 예언이 불발했는데도 자기에게 역사하는 영이 성령인지 악령인지 분별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언이라 하면 무조건 맹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예언을 하는 자들은 자기가 하나님이나 된 것같이 착각합니다.


마태복음 7:17-23에서, ‘이와 같이 좋은 나무가 아름다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했습니다.


우리는 그 예언이 참 예언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위해 먼저 그 예언한 사람이 누군지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지 아닌지. 그리고 그 사람의 예언이 성경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구별해야 합니다. 이 남쪽에서 온 하나님의 선지자는 벧엘의 늙은 선지자를 구별했어야 했습니다. 그는 늙은 선지자가 자기도 같은 선지자라는 말에 귀를 열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대한 경계를 늦추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참인지 아닌지 시험했어야 했습니다. 참 선지자라면 그곳에 있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늙은 선지자는 천사가 자기에게 예언하기를 하나님의 선지자를 불러 먹이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남쪽 선지자는 여기서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벧엘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 늙은 선지자에게 천사가 나타나 하나님의 선지자를 불러 먹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을 때에 깨달아야 했습니다. 어떻게 천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위가 될 수 있습니까? 천사가 하나님 보다 더 우선일 수가 없습니다. 천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경시켰다는 결론인데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어설픈 거짓말에도 이 남쪽 선지자는 속고 있습니다. 성경에 늙은 선지자라 했으니 남쪽의 하나님의 선지자는 늙은 선지자의 경륜에 기가 죽고 그의 말에 솔깃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언을 하는 자는 나이나 지식이나 권력이나 경제력이나 세상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구애 받지 않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택하시면 하나님은 누구든지 말씀하시게 하십니다.
열왕기상 13:21-22에, ‘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 더러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이 늙은 선지자는 배교한 자요 거짓말 쟁이인데 이런 자에게도 하나님께서 쓰시겠다 하면 예언을 바르게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발락 왕의 초청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가는 길에 자신이 타고 가는 나귀가 사람 말을 하여 발람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나귀가 자신 앞에 칼을 빼고 서 있는 천사를 보았지만 발람 자신은 자기를 죽이려고 서 있는 천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예언의 영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하도록 예언하게 하십니다.


4. 남쪽에서 온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
남쪽에서 온 하나님의 선지자는 불순종과 예언사역의 미숙으로 인해 죽게 되었지만 자신이 예언한 내용은 300여년 후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열왕기하 23:15-18에서,
‘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18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2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능과 그 범위 계시록 20: 12, 15 김준식목사 2017-01-04 24615
131 성탄의 신비 누가복음 2:1-19 김준식목사 2016-12-25 27444
130 욥의 생애와 고난 받은 기간 욥기 42:7-17 김준식목사 2016-12-17 37754
129 대 백보좌 심판과 그 이전과 그 이후 (계시록 20:7-15) 김준식목사 2016-12-10 24668
128 아마겟돈 전쟁(인류 최후의 전쟁) 계시록 19:14-21 김준식목사 2016-12-04 29714
127 천년왕국에 대한 질문과 해답 이사야 65:18-25 김준식목사 2016-11-26 24513
126 천년 왕국의 시민들과 곡과 마곡전쟁 계시록 20:7-10 김준식목사 2016-11-19 29669
125 천년왕국( 2) 요한계시록 19: 11 - 21, 20 : 1-10 김준식목사 2016-11-14 24465
124 천년왕국 (1) 요한계시록 19: 11 - 21, 20 : 1-10 김준식목사 2016-11-10 29131
123 무덤의 시체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 요한복음 5:24-29 김준식목사 2016-11-02 24339
122 북국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 열왕기하 2:1-6 김준식목사 2016-11-02 23997
121 구약의 성령님과 선지자와 예언(2) 에스겔서 14:9,10 김준식목사 2016-11-02 24363
120 구약의 성령님과 하나님의 백성 요엘 2:28-32 김준식목사 2016-11-02 24364
» 구약의 성령님과 예언사역 열왕기 상13:1-10 김준식목사 2016-11-02 24380
118 구약의 성령님과 그의 활동 (2) 이사야 61:1-3 김준식목사 2016-11-02 24232
117 구약의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성령님 이사야 61:1-3 김준식목사 2016-11-02 24534
116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 시편 127: 3-5 김준식목사 2016-11-02 33506
115 구원의 확신 갖는 법 로마서 10:9,10 김준식목사 2016-11-02 24516
114 창세기 원역사의 비밀 (2) 마태복음 24:37-39, 누가복음 17:26-30 file 김준식목사 2016-11-02 24608
113 창세기 원 역사의 비밀(1) 창세기 6:1-7, 11:1-5 file 김준식목사 2016-11-02 26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