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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 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 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첫째로 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하면 주님의 오심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의 재림을 재촉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선 교적인 요소와 유대인의 회심의 요소입니다. 선교적 요소는 마태복음 24:14에 있습니 다.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 이 오리라.’이며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요소는 마태복음 23: 37-39에, ’예루살렘아 예루살 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에서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주님을 보지 못하리라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회심이 있을 때까지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리라는 말씀입 니다. 이 두 요소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않은 이유와 관계가 있습니 다.


이사야 6:10에 의하면,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에서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감기고, 귀를 먹게 하고 마음을 둔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미 양심이 완고해 절대로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한 이사야의 예언활동이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결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대의 완고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여러 차례 이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마13:13, 24, 막 4:13, 14, 눅 8:10, 요 12:40).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에서 선지자의 역할이 백성들의 마음을 둔하게 할 것이란 말입니다.
‘10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에서 하나님께서 오히려 이들이 돌아와 고침을 받을가 하노라 하십니다. 이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고침을 받게 될까봐 염려하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남유다 백성들이 돌아와 회개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막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사야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회개치 않는 백성들은 영영히 유기하시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냅니다. 이사야 시대로부터 시작된 유대인들의 둔한 마음이 예수님 시대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사야 6장의 말씀은 메시야이신 예수님께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백성들을 택하신 것은 메시야를 그들 가운데 보내시고 그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전 인류를 구원할 계획인가 하면 그들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게 함으로써 인류의 죄를 도말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게한 것은 장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것을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백성들의 마음을 둔하게 해서 그들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마음이 강퍅하고 완악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로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믿지 않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며 언제까지 주님을 영접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가 되면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영접하게 될 것이며 그 때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인들의 그런 강퍅한 마음을 그대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일정기간 동안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사야 시대의 남유다인들의 강퍅함과 우상숭배와 죄에서 돌이키지 않은 그 상태를 하나님의 인류구속에 사용하신 것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서 6장에서 말씀하시는 이 말씀은 예수님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즉 인류를 구속하려 오신 메시야를 보고도 알지 못하고, 메시야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믿어 예수님을 그들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못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잡아 죽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사야서 6장의 이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13, 14과 마가복음4:12, 누가복음 8:12과 요한복음 12:40절입니다.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으며 마음을 둔하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셨는데도 메시야로 깨닫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수 많은 이적과 표적들을 행했는데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서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어 당신이 우리 가 기다리는 메시야입니까 아니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묻게 했습니다. 그때 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가복음 7:19-22, ‘19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 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그 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 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35:5,6과 이사야 42:7에서 예언되어 있는 말씀으로써 메시야가 오시면 이런 일을 할 것 이라 했는데 예수님이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그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죽 은 자를 살리며 했는데 이사야서에는 없는 말씀으로서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구약의 예언된 내용을 능가하는 것임을 나타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 24에,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도 말씀하셨듯이, 구약에서 메시야께서 오시면 이 런 일들을 하리라 하신 일들을 보고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둔 하여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 즉 죽은 자 를 살리고 물위를 걷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오병이어로 수 만명을 먹이고, 중풍병자를 낫게 하고 나환자를 깨끗하게 치료하는 일들이 보통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인데 이것 들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것인데 너희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시기질투하고 죽이 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는 일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입니다. 하 나님은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이용해 예수님을 죽게 한 유대인들을 심판하십니다. 한편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또한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을 보고 믿어 이들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노심초사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도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영접해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원한 인 류 구속사역이 실패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본래는 유월절에는 예수님을 죽 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혹시 민란이 일어날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1-5, ‘이 말씀을 전부 마치신 뒤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에서 예수님은 유월절에 죽을 것을 알고 준비 하고 있는데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유월절에는 죽이지 말자고 의논합니다. 예수님은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그 계획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수천 년 전에 계획된 그날이 하나하나 맞아지면서 주님은 십자가 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3절에 보면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 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요가 날 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걸 알 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여기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이긴 죽이되 명절에는 죽이지 말자.”


그럼 여기에 있는 대제사장들이 왜 명절에는 죽이지 말자고 그럴까요? 자기들은 말하기 를 “그 동안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고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국민들 가운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명절에 사람들이 다 모였을 때에 예수님을 죽이면 아마 그들 이 반란을 일으키고 어떤 소요나 폭동을 일으킬지 모르니까 말자.” 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기 때문에 정확하게 유월절 날 죽임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인 것이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습니다. 마태복음 26:14에 가롯유다의 배반으로 대제사장 들의 마음이 뒤 바뀝니다. 그들은 가롯유다의 등장이 예수님을 잡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 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배반자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가롯유다를 이용하면 무리 없이 예수를 잡아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잠드는 밤에 예수를 체포하여 정치적으로 빌라도 총독에게 고소하여 모든 사람들이 로마 정부가 예수를 처형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해서 죽이자는 것입니다. 가롯유다는 자신의 탐욕으로 예수님을 배반하여 죽게 했습니다. 가롯 유다에 의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유월절에 유월절 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그의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죽이므로 하나님의 인류구속의 역사가 성취 되었습니다. 이들이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을 처단하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 러면서 사형선고가 난지 불과 9시간 만에 예수님을 처단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기어 코 처단해야 하겠다고 온갖 부정을 행하면서 예수님을 기어코 십자가에 메달았는데 그렇 게 하여 이들은 하나님의 인류구속의 역사를 성취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게 되고 성이 훼파되며 사람들은 온 세상에 흩어지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외칠 때에 그 죄값은 우리와 우리 자 손들에게 돌리라고 말한 결과 이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 살면서 모든 민족에게 멸시와 천 대를 받고 이차대전 때는 600만이 학살당하는 결과를 같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사야 6장에서부터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하고 듣고도 알지 못하고 마음 이 둔하여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지 못하고 죽일 운명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악하여 예수님을 죽인 것이 하나님의 사역을 성취시킨 공로 로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완악함으로 인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 묘막측한 수는 오대양 바닷물이라면 마귀의 수는 바켓츠에 담긴 물 정도이고 인간의 수 는 숫가락에 담긴 정도의 물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에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실 때에 비유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대한 많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 님께 묻기를 왜 사람들에게 비유로만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 사람들이 듣고 깨 달을 가봐 비유로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10-16, ‘10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 하시나이까 11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 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2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 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 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15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 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예수님을 믿어 고침 즉 구원을 받을까 두려워함 이라 했습니다.


누가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예수님이, 즉 하나님이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알면 안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여 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 님을 알고 믿으므로 예수님을 죽이지 않을 까봐 하나님이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 다면 왜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알면 안되었습니까?


둘째로 하나님은 왜 유대인들의 마음을 강퍅한 데로 두셨습니까?
바울사도는 사도행전 28:26-28절에서 이사야서의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 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 였으니 28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 리라 하더라.’했습니다. 바울사도가 사도행전 28:26-28에서 이사야서 6장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로 귀머거리, 당달봉사로 만든 것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 했습니다.


또한 로마서 11: 7-13,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 이니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게 하신 것은 그들로 믿지 않게 하는 동안 이방인의 정한 숫자가 차기까지 유대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1: 25-26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 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 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했습니다.
이사야 6:8-16은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알다가도 모를 것 같은 신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악함을 이용해서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그 사람의 악함은 악한 데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이 계획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셋째로 유대인들은 언제 돌아 올 것인가 (이사야 6:11-13)
‘11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묻기를 언제까지 이스라엘백성들의 눈이 감기게 될 것인가하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사야서 6:11, 12의 예언은 BC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망하고 예루살렘성전은 불에 타고 성은 훼파당하며,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예언은 또한 다시 이루어지게 됩니다.


AD 70년에 유다가 로마군대에 예루살렘이 훼파되고 사람들이 죽고 포로로 잡혀 갈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이 훼파되면서 로마군대에 의해 110만명의 사람들이 죽고 이스라엘백성들은 나라에서 쫓겨나 수 천년 동안 지나는 동안에 이스라엘 땅은 폐허가 되고 집들은 살 사람이 없고 토지는 황폐하게 될 때까지 그들의 눈이 감기게 되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쫓겨 났던 자들이 돌아와 1948년에 나라를 재건하고 이방인들에게 짓밟혔던 예루살렘이 다시 유대인들에게 돌아오고 들에 다시 곡식들이 자라고 집들이 다시 들어서게 되고 쫓겨났던 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주민이 다시 살게 될 때는 그들의 눈이 다시 밝혀 질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 성경말씀들이 오늘날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죽였던 예수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였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인정해 가고 있는 시기입니다. 이제 이사야서 6:10과 마태복음 13:14-16의 저주가 풀렸기 때문에 이사야 6:13의 시기가 도래 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백성들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예수님이 그들의 메시야이심을 깨닫는 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세대에 수 없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라 했는데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 수년내로 종결될 것입니다. 지구 상에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는 지상명령이 성취 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전도 종족들은 복음을 잘 받아 들이는데 비해서 이미 복음을 받아 들인 지역에서의 복음사역은 거의 제로 상태입니다. 전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개척이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알고 믿게 되어 예수님께로 돌아 오고 있으니 예수님의 재림도 멀지 않았습니다.


과거 천주교 영향권에 있었던 유럽 각 민족들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민족이라 하여 온갖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박해와 핍박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온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인류 의 구속사역을 위해 성육신해 오신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다면 우리 인류의 구원은 없었 을 것입니다. 유대인이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어느 민족이든지 그 일을 했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님을 죽인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매를 맞았습니다만  우리 인간들은 형제애를 가지고 유대인 형제들을 감싸주고 위로하고 격려했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죄지은 자녀를 벌주셔야 하겠지만 형제들은 벌받는 형제를 위로했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유대인들이 대신 했음으로, 그 일을 하도록 선택 받았음으로 인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맞을 매를 유대 형제들이 대신 맞았 음으로 우리들은 그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바울사도도 로마서 11:14-24, ‘그들의 넘어   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 함이리요’에서 그들의 충만함이리요에서 유대인들도 구원받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 13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에서도 죽은 자 같은 유대가 다시 살아 날 것을 보여 줍니다. ‘16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17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 려워하라. 21하나님이 원 가지 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그 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 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 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에서 유대인들도 다시 접붙임을 받을 것이요 하나님은 그들을 접붙일 능력이 있다고 하십니다.


'24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25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에서 유대인들을 원가지라고 했으며 이들도 자기 감람나무에 다시 접붙임을 받게 될 것이라 했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주님께서 오시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세계선교와 유대인들의 회심을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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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7 김준식목사 2018-03-31 24082
191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6 요한복음 20:1-17 file 김준식목사 2018-03-11 23691
190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5 김준식목사 2018-03-04 23909
189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4 김준식목사 2018-02-25 23540
188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3 file 김준식목사 2018-02-18 23980
187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2 김준식목사 2018-02-11 23902
» 왜 유대인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못하는가 31 이사야 6:8-13 김준식목사 2018-02-04 24234
185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0 요한복음 19:1-16 김준식목사 2018-01-27 23800
184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9 마태복음 27:15-26 김준식목사 2018-01-27 22966
183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8 요한복음 18: 28-38 김준식목사 2018-01-19 22877
182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7 (마27:1-8). 김준식목사 2018-01-07 23074
181 예수님이 걸어 가신 십자가의 길 26 요한복음 18:12-27 김준식목사 2017-12-31 23727
180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5  누가복음 22:39-62 김준식목사 2017-12-18 23566
179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4    요한복음 17:1-26 김준식목사 2017-12-03 23942
178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3 요한복음 16:1-33 김준식목사 2017-11-26 23972
177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2   요한복음 15:1-27 김준식목사 2017-11-24 24494
176 예수님이 걸어 가신 십자가의 길  21  요한복음 14:12-31 김준식목사 2017-11-12 24539
175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0 요한복음 14:1-9 김준식목사 2017-11-10 24022
174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9 누가복음 22:24-38 요한복음 13:1-20 김준식목사 2017-10-22 29144
173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8  누가복음 22:1-23 file 김준식목사 2017-10-22 24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