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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그의 하나님 창세기 30:25-39

조회 수 35127 추천 수 0 2015.10.11 11:16:57

 

오늘 전하려는 말씀의 의도는 하나님 앞에선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아 보기 위해서 입니다. 먼저 야곱의 성품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야곱에 대해서 우리가 알기로는 협잡군, 속이는자, 마마보이, 간교한 자로 알고 있습니다.

 

1. 야곱의 품성
창세기 25:27에 야곱의 성품에 대해서 말하기를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나'에서 종용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탐'이란 단어인데 옥스포드사전에 의하면, complete, sound, perfect, innocent 완벽한 사람, 도덕적으로 죄를 안짓는 사람,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종용이란 단어를 조용한 사람, 말이 없는 사람, 집안에만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도록해서 야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탐을 히브리어 원문에 따라 해석하면 '그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도덕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완벽한 사람, perfect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7:35에서 야곱이 이삭에게서 장차축복을 받고 떠난 후에 에서가 들어왔을 때에 이삭이 에서와 말하는 장면에서 한글성경에서' 이삭이 가로되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라고 번역해서 사람들로 야곱을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으로 오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간교하게 라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나 영어에서는 '속였다(deceived)'는 단어로 쓰였습니다. 맞습니다. 야곱이 자신을 '에서'라고 속여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간교하다'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아버지 이삭이 잘못되었습니다. 그 장자 축복은 에서에게 주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될리 없겠지만 만약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권축복을  주었다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과 하나님 사이에 맺었던 언약관계가 끊어지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속였다는 말과 간교하다는 말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간교하다는 말로 번역하지 않았어야만 했습니다. 또 '네 복을 빼앗았도다'라고 번역한 것도 한글번역은 의도적으로 야곱을 폄훼하고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take'했다고 했습니다. 취했다고 번역해야지 빼앗았다고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장자권 축복은 야곱의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에게서 오래전에 팥죽 한 그릇으로 샀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야곱의 것이지 에서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러 간교한 사람은 에서이며 장자권을 빼앗으려 한 사람은 에서입니다. 자기가 팔아넘긴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간교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며 야곱의 것을 자기가 취하려고 했으니 에서야 말로 야곱의 것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였다고 하는데 야곱의 본심은 아버지를 속이려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가 아버지에게 가서 장자축복을 받으라고 했을 때에 그것은 내가 아버질 속이는 자가 되고 복은 커녕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리브가는 말하기를 만약 네가 들어가서 발각이 되면 내가 하나님께 말씀드려 그 저주를 내가 받겠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야곱이 간사하고 속이는 자였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해서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기는 했지만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또 창세기 29:11에 야곱이 밧단아람에 와서 라헬을 보고 소리내어 울었다고했습니다. 이 말은 야곱은 솔직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감정을 억제하지 않고 자기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속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창세기 29:13에서 야곱이 라반에게 자기의 모든 일을 고했다고 했습니다. 고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카르인데 영어로는 recount입니다. 이것은 차근차근 빠짐없이 순서에 따라 죽,,, 이야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라반은 아주 악랄하고 야비하고 물질에 눈이 어두운 사람인데 이 라반에게 자신의 모든 일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나중에 라반에게 이용당하게 됩니다.

 

라반의 집에서 20년 산 삶을 면밀히 관찰해 볼 때에 야곱은 약아빠지고 속이고 간사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어리석고 둔한 사람 같이 보입니다. 이 사람은 너무나 정직하고 솔직해서 라반에게 이용만 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므로 7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했는데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7년이 아니라 14년을 수일 같이 여길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어린애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라반은 자기의 두딸을 이용해서 야곱을 14년 동안 종과 같이 부리었는데 야곱은 그 일을 해냈습니다. 야곱이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라반은 처음에 야곱이 자기 집에 있으면서 한 달 동안 일하는 것을 보고 깜짝놀랐습니다. 라반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자기 집에 복을 주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창30:27).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통해서 자신에게 복을 주시는 것을 그 사람들이 확실히 깨닫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창세기 39장에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서 보디발 자신에게 복이 내리는 것을 보디발이 확실히 깨닫습니다. 또한 아비멜렉과 아브라함과의 관계(창21:22)와 이삭과  

아비멜렉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창 26:28,29).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리 야곱을 통해서 라반의 집에 복을 주시려해도 야곱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계산적으로 나가고 순수하게 일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야곱을 도울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 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일에 대해 순수한 마음으로 열정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도와달라 하지 않더라도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그것이 야곱의 삶이었습니다.

 

라반은 이제 본격적으로 야곱을 잡아두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이  신부감을 구하려 온 것을 압니다. 야곱이 라반을 위해서 얻을 보수라면 라헬을 신부로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라반은 뛰어난 장사꾼이라 자기가 라헬을 줄테니 너는 몇년간 일해라 하지 않고 야곱이 먼저 말하게 합니다. 급한 사람이 먼저 내놓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먼저 7년이라고 제시를 합니다. 라반은 2-3년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레아는 안질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 태양을 직접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힝상 집안에서만 있고 라헬은 양떼를 돌보는데 그래서 야곱과 라헬은 항상 함께 있게 됩니다. 전승에 의하면 레아도 예뻣다고 합니다. 리브가가 잘생겼다면 그 오빠 라반도 잘 생겼을 것이고 라헬이 예뻣다면 레아도 예뻣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게 된 것은 첫눈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떠나 신부감을 만나려 밧단아람으로 오는 길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양떼에게 물먹이는 우물가에  상상치도 않았던 너무나 예쁜 라헬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그래서 야곱이 라헬을 붙들고 엉엉울었다고 했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신부감을 구하려 가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신부감을 순적히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마자 리브가가 제일 먼저 나타났던 것과 같이 야곱에게 라헬이 그렇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이란 야곱이 열심히 일하니까 라반이 감동을 받아 7년을 3년 반으로 깎아주는 것이 복이 아니라 7년을 수일 같이 여기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다 고난을 당합니다. 고난 속에서 좌절하지 아니하고 고난 속에서 든든하게 가되 그 고난이 순식간에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 순식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가는 것이 아니고, 세월이 순식간에 갈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내 마음이 수일 같이 여겨질 때에 그것이 복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고난을 벗어나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삶에 고난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고난이 우리를 빗겨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고난 속에서 고난을 고난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하고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즐거움이 되어 하루하루가 신나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야곱의 고난의 삶이 라헬과 연애를 함으로 7년이 수일 같이 여겨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늘 마음에 품고 살면 바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늘 승리하며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창29:21-30에, 라반은 7년째 되어 결혼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밤에 라헬 대신에 레아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결혼 잔치는 7일간 입니다. 7일 후에 라헬도 주면서 라헬을 위해서 다시 7년을 일하라고 합니다. 라반은 오래 전부터 레아도 야곱에게 주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업적인 관점에서 야곱을 자기 사업에 더 붙들어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을 주시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자기 집에 굴러 들어온 복덩이 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두 딸을 준다는 조건으로 야곱을 종과 같이 불어 먹었습니다. 라반이 그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 잔치했다고 했습니다. 결혼식이니까 그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 잔치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라반이 라헬 대신에 레아를 주는 일에 야곱만 속이면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동네사람들은 어떠할까요? 동네사람들이 이미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7년 동안 일하는 것을 라헬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아니라 레아가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동네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동네사람들이 라반을 망칙하고 형편없는 인간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레전드'라는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라반이 먼저 동네사람들을 불러 설득했다고 합니다. 동네사람들을 모아 라반이 말하기를, '여러분, 야곱이 오기전에 우리는 어떤 형편이었습니까? 비도 오지 않아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습니까? 그런데 야곱이 우리에게 오자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를 많이 주셔서 비가 많이 와서 얼마나 농사도 잘 짓고 목축을 잘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야곱은 우리의 복덩이 입니다. 우리가 7년 동안 잘 살았는데 야곱은 결혼하려 온 사람이지 살려 온 사람이 아니므로 라헬을 주면 데리고 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좋은 묘책이 있는데 먼저 레아를 주고, 그러면 야곱이 펄펄 뛰겠지요. 그때에 라헬을 주는 조건으로 다시 7년을 붙들어 둘 생각이요.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요,' 그래서 라반이 먼저 동네사람들을 설득한 후에 레아를 먼저 주고 다시 7일 후에 라헬을 주면서 7년을 더 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레아와 라헬 그리고 다른 두 여인까지 해서 네 아내를 통해서 11자녀를 가지게 되는데 14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14년 동안 아내와 자녀를 얻었지만 아무 재산이 없습니다. 야곱은 두 아내를 14년 만에 취한 후에 고향으로 떠나갈 결심을 했습니다. 14년 동안 라반의 집을 섬겼지만 자신을 포함한 16명 식구들만 늘었지 이들을 양육할 기반이 전혀 없습니다. 빈털털이 입니다. 라반과 함께 있다가는 앞날에 대한 전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라반의 욕심은 야곱을 놓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 신뢰하는 야곱의 믿음생활
창세기 30:25-30 이 구절은 야곱의 믿음을 보여 줍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14년 동안 일하면서 얻은 것은 처자식 밖에 없습니다. 그외에는 빈털털이입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에 라반이 다시 제안을 합니다. 이제부터는 보수를 위해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0:31에 '라반이 야곱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가로되 외삼촌께서 아무 것도 내게 주실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보수조건을 제안합니다. 말하자면 양들 중에서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검은 양을 가리어 내고, 염소 중에서는 점 있는 자와 아롱진 것을 가리어 내어 이것이 자기의 삯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양들은 거의 99퍼센트가 흰 양들입니다. 아롱진 것이나 점있는 양이나 검은 양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염소들 중에는 검은 염소들이 있습니다만 점 있는 것이나 아롱진 염소도 거의 보기 드뭅니다.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보수조건입니다. 그리고 라반의 양떼 중에서 그런 것들을 다 골라 냈습니다. 이제부터는 라반의 양떼는 모두 흰양들 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어떻게 점박이, 아롱진 것들이 나오겠습니까? 이제 이런 것들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은 불가능인 것입니다.

 

야곱은 라반과 14년 동안 지나면서 라반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무정하고 야비한 자인 가를 압니다. 그리고 약속한 것을 언제든지 뒤집는 사람이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기에 참으로 불가능한 거래를 제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안을 받은 라반은 속으로 야곱을 천치 바보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14년 동안 자기에게 속아 레아와 라헬을 위하여 14년 동안 전혀 불평이나 게으르거나 꾀부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보면서 힘만 세고 우직하면서 모자라는 인간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부려먹었는데 야곱은 이제 정말 미친사람 수준의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왜 이런 조건을 제시했을까요?
야곱은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넘겨 받았고, 그래서 아버지 이삭에게서 장자에게 주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라반에게서 14년 동안 종노릇하고 나이가 91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 때에 야곱은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부터 나는 내 뜻대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에게 몇년 동안 일하겠다고 년수를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년을 제시했던 그 때와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야곱은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모든 때를 하나님의 때에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되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고 때와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때와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 하루 믿음 안에서 살다보면 어느 땐가 하나님의 때에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제까지 우리는 야곱이 약삭바르고 약았고 속이고 협잡하는 자라고 알고 있는데 만약 야곱이 그런 자였다면 이런 제안을 도저히 할 사람이 아닙니다. 또 라헬을 얻기 위해서 14년 동안 종살이 하다시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핑계를 대던지 그 계약을 취소하고 년수를 낯추려고 해서 적당히 타협을 해서 아내를 얻어 고향으로 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라헬을 위해 자청해서 7년을 일하겠다고도 제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이야 말로 순진한 사람입니다. 왜 이런 보수조건을 제안했느냐하면 그래야만 라반이 야곱의 조건을 들어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3/7제로 하자든지 2/8제로 하다든지 하면 라반이 들어주지 않을 것이요 또 그랬다 하더라도 소용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30:26에,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했습니다. 야곱은 14년 일해서 얻은 처자를 자기 것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외삼촌이 허락지 않으면 가지고 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 것이라 할지라도, 외삼촌집에 있는 한 그것은 자기 것이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라반은 야곱이 정당히 일해서 얻은 처자와 재물을 야곱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창세기 31:43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딸들은 내딸이고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다 내것이요 네가 보는 것은 모두 다 내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야곱으로 봐서는 막다른 골목이요 라반으로부터 얻어야 하는데 달라고 해봤자 줄리 없고 야곱은 하나님만 의지해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렇게 제안해야만 라반이 기뻐게 허락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해서 라반의 동의를 얻으려 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렇게라도 해서 고향에 가기전에 쥐꼬리만한 재산이라도 확보해서 16명의 대식구를 먹여 살릴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에서 야곱이 거부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야곱이 왜 그런 상태에서도 거부가 되었는가 그 왜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두가지 요소를 생각하겠습니다.

 

첫째로 창세기 30:37-43에, '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했습니다.

 

야곱은 이런 제안을 한 후에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곱으로서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래볼까 저래볼까 하면서 무엇이든지 대책을 세워 행동해 보는 것입니다. 신풍나무, 버드나무의 껍질을 벗겨 양들의 물먹는 것 앞에 그 가지를 세웠는데 그렇다고 이 나무껍질이 무슨 신통한 영력이 있어 이런 일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이런 최악의 상태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해보는 노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야곱이 나무가지를 꽂았다고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응답한 것입니다. 야곱은 더 이상 내려갈 래야 내려 갈 수 없는 최악의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도우시는 것을 창세기 31:7-12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금하사 나를 해치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그 양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있는 것,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네 눈을 들어 보라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있는 것, 점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느니라'했습니다. 라반의 양떼 중에는 아롱진 것이나 얼룩무늬 있는 것이나 점있는 수양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가운데서 얼룩무늬, 점, 아롱진 양들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야곱이 라반과의 계약조건이 양떼 중에 얼룰무늬, 점있는 것, 아롱진 양들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쏟아저 나오니까 라반이 얼마나 놀랬겠습니끼?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래서 계약을 다시 바꿉니다. 아롱진 것만 네 것이 되리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양떼들이 낳는 새끼 양들이 모두 아롱진 것들만 나옵니다. 또 놀래서 라반이 야곱을 불러 아롱진 것이 아니라 얼룩무늬 있는 것만 네 것이 되리라 했을 때에 이제는 얼룩무늬 있는 양들만 나옵니다. 또 놀래서 이제는 점박이 있는 것들만 네 것이 되리라 했는데 이제는 점박이 새끼들만 생산됩니다. 이런 방법으로 열번이나 계약을 바꾸었는데도 새 계약이 바꿔지는 조건대로 양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말입니다.

 

두번째는 창세기 31:38-39에서, 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했습니다. 야곱이 최선을 다하면서 일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야곱은 밤잠을 못자면서 일을 합니다. 덥다거나 춥다고 불평도 아니하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않았다는 것은 야곱이 그만큼 짐승들을 정성드려 돌보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직할 수가 없습니다. 외삼촌의 양떼의 양들을 자기는 잡아 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짐승이 와서 잡아가거나 죽이거나 하면 그것도 물어내고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낮에 도둑을 맞았으면 그것도 물어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기도만 하고 앉아서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쓰며, 그리고 어떻게 든지 바르고 정직하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니까.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 정직치 못하고 하는 행동이 게으르고 바르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은 잘못된 것입니다. 야곱은 최선을 다하면서 정직하며 그리고 절대로 라반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야곱은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분명히 알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정직하고 신실하고 순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일이 성취될 것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모본을 보여 줍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31: 1-5에,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라반의 아들들이 등장합니다. 처음으로 아들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야곱이 라반의 집에 올 때에는 이 아들들이 없었습니다. 20년 전에는 레아와 라헬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이 없으니 딸 라헬이 아버지의 양떼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누나들과의 나이 차이가 많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오면서 라반에게 자식축복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들은 십대의 청소년들입니다. 이 십대들이 불평을 말하기를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부자가 되었다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부터 라반의 안색을 보니 야곱에 대해 전과 같지 않은 것을 봅니다.

 

라반은 야곱의 재산이 불어 나는데 대해 마음으로 심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자기 아들들이 이말을 하니 화가 불근나서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야곱이 위험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고향으로 떠나라고합니다. 야곱이 자기 재산을 위하는 6년 동안 일하는 동안은 한번도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말 없이 야곱이 하는데로 도와주시기만 하시다가 이제야 나타나셔서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십니다. 야곱은 라반과 계약을 맺을 때에 레아와 라헬을 위하여는 자기 스스로 7년을 위해 일하겠다고 제안을 했으나 라반과 봉급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때에는 기간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하면 가고 하나님께서 머물라하면 머물겠다는 믿음에서 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고난이 계속된다 할지라고 하나님이 그 고난을 멈추실 때까지 그 고난을 감당하겠다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떠날 때가 되었다는 사인을 하나님께로부터 그리고 라반이라는 환경으로 부터 받고 떠나게 될 확실한 때임을 깨닫고 아내들을 들로 불러내어서 아내들의 동의를 얻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낳은 91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라반과 전혀 불가능한 계약을 맺고 일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그는 6년 동안 일하면서 완전히 빈털털이가 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주시고 초자연적 방법으로 야곱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불가능을 결행하는 것이 예수 믿는 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믿는 자의 생명도 지켜주십니다.
야곱은 생명의 위기 의식을 느낍니다. 라반에게는 말하지 않고 떠나야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라반이 양털깎는 행사가 있어 들로 나갔습니다. 이때가 거사를 행하는 날이라 해서 온가족과 가축들과 종들을 거느리고 탈출합니다. 삼일 길을 걸었습니다. 삼일 후에야 라반이 야곱이 떠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추격합니다. 7일 만에 야곱을 포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라반이 야곱을 만나기 전날 밤에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해치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창세기 31장에서는 라반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창세기 32장에서는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을 향하여 달려 오는 온가족 몰살의 위기를 모면해야 했어야 했습니다.

 

창세기 34장에서는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일로 야곱의 십대 아들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복수극을 벌려 주위 백성들의 추격을 당해 일가족 몰살의 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위기를 모면했고 창세기 37장에서는 그렇게 사랑했던 요셉을 잃어버린 극한 슬픔으로 몸부림쳤습니다. 야곱에게는 계속적으로 고난과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요셉을 잃은지 22년 만에 다시 요셉을 만납니다. 바로 앞에 자신을 소개하기를 자신의 나이가 130인데 험악한 세월을 보냈었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 만년에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다시 만나게 하시고 총리가 된 아들 요셉과 17년을 함께 살게 하시다가 그를 하나님 곁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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