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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셈의 약력

아담의 11세손 셈은 아담이 에덴에서 나온 이후 인간역사 1558년에 출생하였습니다. 셈은 홍 수 이전 노아 나이 503세에 태어났습니다. 야벳과 함과 셈은 연령생으로 500, 501(2), 503년 에 각각 출생했습니다. 야벳이 셋 중에 맏형이고 함 그리고 셈이 막내 인데 성경은 항상 셈 함 야벳으로 표기합니다. 그것은 셈이 영적 장자이기 때문입니다. 데라의 아들들도 하란 나홀 아브라함인데 성경은 아브라함 나홀 하란으로 표기됩니다. 셈은 홍수 후 2년 째인 그의 나이 100세에 아르박삿을 낳고 500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600세에 죽었습니다. 이 해는 아담 이후 인간 역사 2158년의 해 였습니다 (창 11:10—11). 셈은 아버지 노아와는 448년을 동 시대에 살았습니다. 

셈은 아브라함과 150년 동시대에 살았으며, 셈은 이삭과   50년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셈은 97세에 홍수를 겪었고 홍수 후 502(600-98)년을 살았습니다. 97세까지 홍수 이전에 살면서 증조 할아버지 므두셀라와 97년, 할아버지 라멕과 93년 같이 살았습니 다. 그는 홍수 전과 홍수 후 시대를 정확히 보았고, 8대 므두셀라부터 22대 야곱까지 자기를 포함해 15대 족장들 과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셈의 이름은 명성 혹은 명예입니다. 노아는 셈을 축복 할 때에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 로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셈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그들이 명성 을 떨치게 되기를 소망하며 찬송한 것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대로 셈의 후손들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은 지속적으로 불리었습니다. 10대 자손이었던 아브라함을 통해 아브 라함의 하나님이 이어졌고 계속해서 아브라함은 또한 그 자손에게 신앙의 전수를 철두 철미하게 함으로써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신앙 의 전수를 철저히 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 을 통해 노아에게 노아는 셈을 통해, 셈은 에벨을 통해 에벨은 아브라함에게 구속사의 복음을 전수하게 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 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5장, 10장, 11장을 통해서 족장 들을 장수하게 한 것은 그 자손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의 예언이 마침내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 유다에게 이어졌 습니다. 유다의 이름이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고 유다지파를 통해 찬송 받으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셈은 93세 까지 할아버지 라멕과 같이 살았고 98세까지 므두셀라 증조부와 함께 지냈습니다. 이들로부터 받은 아담으로부터 전해 오는 복음을  아브라함에게와 이삭에게 직접 전 달했습니다. 셈은 아브라함 보다 175년 더 살 았고, 이삭 때에도 생존하였습니다. 셈은 홍수 전 인물인 므두셀라, 라멕, 노아와 같이 살았고, 홍수 후 아르 박삿, 셀라, 에벨, 벨렉, 르우, 스룩, 나홀, 데라, 아브라함, 이삭과 동시대에 살았 습니다. 우리는 노아 보다도 셈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 후의 구속 사를 이어갈 자로서 셈의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란 말씀에서 셈을 지목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노아의 예언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 채로 자고 있을 때에 큰 아들 야벳과 작은 아들 셈이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뒷걸음쳐 아버지의 부끄러운 몸을 가리고 얼굴을 돌이켜 아비의 시체를 보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셈이 본이 되어 형 야벳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술에서 깬후 노아는 세 아들에 대하여 축복과 저주를 할 때에 셈에게 가장 큰 경의를 표하였습 니다. 노아 홍수 시대에 하나님은 노아를 선지자와 재판장으로 만드셨습니다.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야벳과 셈에게는 축복을 했습니다. 이 축복과 저주가 후손들에게 그대로 실행되는 예언적 계시인 것이었습니다. 이제 창세기 9:24-27말씀을 보겠습니다.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이르되 가나 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 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 더라.’

24절에서’그의 작은 아들’을 사람들은 함으로 간주하는데 24-27절에서 함이란 이름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작은 아들은 셈을 말하며 노아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부끄 러움이 덥혀 있는 것을 보고 누가 한 일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표현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작은 아들을 함으로 오해하게 된 것은 25절에서 바로 가나안에게 저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25절의 저주 의 대상이 만약 함이었다면 24절의 작은 아들을 함이라 해도 의문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24-27절에서 함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저주를 받은 것은 함이 아니라 함의 첫 아들 가나안 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함은 저주도 받지 않고 다른 형제들이 받았던 축복도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 24-27절 구절에서 가나안은 세 번 저주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함이 저주를 받은 것으로 말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25절의 가나안에 대한 저주요, 26절은 셈에게 축복, 가나안에 게 저주, 27절은 셈과 야벳과 가나안에게 모두 말씀하고 있습니다. 26절에서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되시리라고 했습니다. 셈이 하나님의 직계 종주손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셈족속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시를 소유한 자로서 구원계시의 수취자요 전달자가 되었습니다. 27절에서 야벳과 셈 두 사람을 상대한 축복입니다. 야벳의 축복은 지상의 번영이었습니다. 셈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거처인 셈의 장막

 27절의 ‘셈의 장막에 거주할 것이다’에서 우리는 이제까지 한글번역은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 할 것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셈의 장막에 거하시는 것은 야벳이 아니라 하나님이며 그러 므로 이 구절은 야벳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야벳을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가 아니고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시며’라고 번역되어야 했습니다. 서양사에서 그리스와 로마 가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셈족을 침략하여 영토를 확장시킨 것과 그 후 영국을 비롯하 여 서방 열강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정복하여 식민지화를 연결 지으면서 27절 의 둘째 문장의 주어를 야벳으로 보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둘째 문장을 ‘야벳을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번역하면서, ‘거한다’는 것이 셈의 영토에 대한 야벳의 정복을 의미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야벳이 셈의 영토를 점령케 하소서’라는 뜻 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정치적인 해석입니다.

이런 해석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보스(Voss)입니다. 그는 ‘야벳을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에서 ‘거한다’는 것이 영적인 동거를 의미하지 않고 실제적인 정복을 의도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야벳이 셈의 장막을 정복한 후 거기에서 구속과 계시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법적으로나 문맥상으로나 전혀 인정될 수 없는 해석입니다. 이 잘못된 해석을 따르게 되면 우리는 본문이 실제로 의도하는 바를 완전히 놓칠 수 밖에 없습니 다. 27절의 둘째 문장의 주어는 첫째 문장의 목적어인 야벳이 아니라 첫째 문장의 주어인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시며’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문법적으 로 문맥상으로 그것이 타당합니다. 

이런 견해는 옹켈로스 탈굼(Targum of Onkelos), 필로(Philo),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라쉬(Rashi), 아벤 에즈라(Aben Ezra), 데오도르트(Teodoret), 바움가르텐(Baumgarten), 그리고 델리취(Delizsch)등이 지지했습니다. 최근에는 현대 구약 신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월터 카이저(Walter C. Kaiser, JR)가 강하게 지지합니다. 그는 27절 둘째 행의 주어가 야벳이 아니 라 하나님으로 간주되어야 할 이유를 다음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두 개의 절로 구성된 문장 안에서 후 절의 주어가 표현되지 않았을 때는 전 절의 주어가 그 후 절의 주어로 간주되는 통례입니다. 그러므로 전 절의 주어인 하나님의 이름 ‘엘로힘’이 둘째 절인 ‘셈의 장막에 거하소서’의 주어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전 절에서 목적어로 사용된 야벳이 후 절에서의 주어로 간주될 경우 그렇게 생각해야 할 뚜렷한 문맥상의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27절에서는 그와 같은 문맥상의 이유가 없습니다.

셋째로 27절이 속해 있는 9장 이후 계속되는 몇 장의 문맥에서 셈이 제일 큰 복을 받은 사람으 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만약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한다고 하여 셈의 영토를 점령하는 것으로 해 석하면 9장 이후에 펼쳐지는 셈과 그 후손에게 약속된 복과는 문맥상 조화가 되지 않습니다. 

넷째로 27절 둘째 문장인 ‘그리고 그가 셈의 장막들 안에 거하게 하소서’에서 ‘그’를 야벳으로 이해하는 것은 27절의 문맥상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야벳은 창대케 되는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노아의 축복과 저주의 말씀에서 25절은 가나안에게 말씀하신 것이 고 26절은 셈과 가나안에게, 그리고 27절은 야벳과 셈과 가나안 세 사람 모두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볼 때에 27절 둘째 절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번역하여 하나님이 셈에게 특별한 복을 약속하신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월터 카이저, [구약성경신학] 생명의 말씀사, 1989, pp113-114).

또 베이커 성경주석 [창세기]에서 발췌한 27절 둘째 절에 대한 해석입니다. 27절 둘째 절을 셈에게 약속된 복으로 바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중요한 유대인의 문헌들은 다른 문헌들과 더불어 엘로힘을 동사의 주어로 삼고 있는데, 그렇게 한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새로 문법적 주어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나님의 ‘두 가지’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보다 자연스럽습니다. 즉 그(하나님)는 야벳을 ‘창대케 하실’ 것이지만 셈의 장막에 ‘거하실’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볼 때에 예언은 보다 영적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셈은 ‘하나님의 거처’였습니다. 단순히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면 이 구절이 지니는 그와 같은 숭고한 개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조셉 S. 엑셀, 이기문 역, [베이커 성경주석 창세기], 서울:기독교문사, 1982, p353)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하나님은 ‘셈의 장막’을 당신의 거처로 삼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셈의 장막은 하나님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노아의 언약의 중심은 ‘셈의 장막’ 과 ‘그 장막에 거하시게 될 하나님’입니다. 실제로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 시고,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급 할 때에 출애급 한지 3개월 쯤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하셔 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내십니다. 그 때의 광경을 출애굽기 19:16-20에서 보여 줍니다. ‘16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7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8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20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나게 보여주 셨습니다.그리고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을 하달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4:9-11에서는 모세 아론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에게 하나님의 실체(성육신 전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도록 보여 주시기까지 하셨습 니다.

‘9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하나님 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그 후 출애굽기 27장에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성막 짓는 법을 알려 주시고 산에 서 내려와 36장에서 브살렐과 오호리압과 여러 사람들에게 성막을 짓게 하십니다. 출애굽기 마지막 장인 40장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정월 초하루(1월 1일) 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게 하셨고 출애굽한지 2년, 2월 1일에 성막이 세워집니다. 그러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 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 었다(출40:34-35)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셈의 장막에 실제로 거하신 표적 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후 성자 하나님께서 나사렛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으로 메시야를 임신 케 하시고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셨고, 유대 땅에서 하나님을 알려 주시고 천국과 천국 가는 길을 알려 주셨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을 열어주셨고 마지막으로 이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후에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 가셨습니다.하나님은 셈의 장막에 거하 리라는 노아의 예언이 바로 성취되었으며 셈의 후예들로 인해 하나님의 인류구속 사역이 전파되고 진행되었습니다. 바울사도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로마에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 셈의 하나님이 야벳의 장막에도 전달되고 셈의 장막인 아시아보다 (사도행전 16:6-10) 야벳이 먼저 복음을 받고 복음의 꽃을 피움으로 인해 종교 개혁, 산업혁명이 일어나 과학의 발달과 경제학과 항해술의 발달로 먼 바다로 항해 하게 되면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각 지역에 식민정책을 수행하면서 야벳족속 들이 창대케됨으로 함께 복음도 식민지에 전달되게 되어 기독교 역사상 가장 빠르 게 멀리, 널리 복음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창세기 9:27의 노아의 예언인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시고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시고’의 예언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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