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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개월 전에 예수님은 누가복음 9:51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로 작정하시고 예 루살렘으로 오시는 길에 각 성과 각 촌을 다니시면서 말씀도 전하시고 병자도 고치시면 서 주로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교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시지만 제자들은 이 땅에 남아서 교회를 이루어 가야 할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고난 주간의 첫 날인 일요 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고난 주간의 셋째 날인 화요일에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시 고 행하신 일들을 누가복음 20:1-18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월요일 아침에 베다니에서 야숙하신 후에 아침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길에 시장하여 잎이 무성 한 무화과 나무를 찾았지만 열매가 없으므로 저주하였습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그 이 튿날 성전으로 가는 길에 어제 저주한 무화과 나무가 완전히 죽어 있는 것을 제자들이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성전에 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에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메시야직을 숨겨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부터는 구속사역을 성취하시고자 주저 없이 구속주로서의 본성 과 사역과 제 2위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의 구주이심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기점으로 구약이 성취되고 최종 천국 구원을 이룰 신약시대가 시작됨을 선포하 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갈등이 일촉즉발의 기세로 고조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며칠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이 있게 됩니다. 누 가복음 20장은 이런 상황 하에서 예수님과 유대 종교지도자들 사이의 각종 논쟁이 있 게 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눅 20:1-8)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5그들이 서로 의 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 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 이라 하고 7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 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날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는 마지막 날입니다. 이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과 장로들이 함께 예수님께 가까이 와서 예수님께 묻기를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 을 하며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군가 말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양과 소를 쫓으시고 환전상을 엎으신 일들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 당시 최고 권력자들에게 도전을 한 것입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자신들의 권위가 손상을 입었고 그로 인해 위협을 느낀 나머지 예수님의 권위 문제를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신적인 것인지 인간적인 것인지 물어 신성모독죄를 덮어 씌워 죽이려 는 교활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 일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굳게 결의합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도 아 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선지자 만이 성전 정화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가르칠 수 있는 권세도 선지자나 제사장 만이 가질 수 있는 권세입니다. 일반 랍비들 조차도 성전에서는 백성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각 마을의 회당에서만 가르 칠 수 있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런 일을 행하는 권세의 근원 이 무엇이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대답대신 세례요한의 권세의 기원에 대해 되물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 대답을 못하자 예수님도 자기의 권세가 어디 인지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지도자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권세의 근원을 알고 싶어 질문한 것 이 아닙니다. 예수가 아무런 권세도 갖지 않으면서 그 같은 일을 서슴없이 행하였다는 사실을 군중들에게 알려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한 말미로 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자기 권세의 출처에 대한 질문에 직접적인 답은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서는 당시의 백성들로부터 의로운 선지자로 추앙 받았던 세례 요한의 세례의 기원에 대 해 되물으심으로써 사실상 간접적인 대답을 주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종교적으로 많 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메 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권세적인 사역은 메시야와 결코 분리시켜 생각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이 사람이 바로 메시야라고 사람들 앞에서 선언한 자 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은 예수님의 신 끈 풀기도 감당치 못할 존재임을 분명히 밝 힌 자입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 냐’라고 반문하는 것은 그들의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권위에 의 문을 제기하는 자들에게 내가 바로 세례요한이 선포했던 그 메시야로서 신적 사역을 수행하고 있다는 정확한 대답을 하셨던 것입니다.


즉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께로부터냐 사람에게로서냐’라는 질문 속에는 자신의 선구자 인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나님께로부터라면 궁극적으로 요한이 증거하던 예수님 자신의 권세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대답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유대지도자들은 이런 의도에서 주어진 세례요한의 권세의 출처에 대한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반문에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저희가 서로 의논하 여’라고 해서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그 자리를 피해 장시간 의논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이 질문으로 예수님을 잡을 구실을 만들려고 했는데 예수님의 세례요한의 권위를 가지고 반문함으로 인해 자신들이 역습을 당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 다.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에서 이들은 이제 질 문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대답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 을 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세례요한의 설교를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 례 요한의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라고 인정했을 때에 세례 요한을 달갑지 않게 여겨 그 를  따르지 않았던 자신들이 비판을 받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세 례 요한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는 순간 요한이 선포한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당연히 믿 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지금까지 예수님을 대적했던 그들의 행동이 신성 모 독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하고야 마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입니다.


‘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 이라’에서 저들은 평상시 인정했던 것처럼 세례 요한의 권세가 사람에게로서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그에 대해 많은 존경심을 갖고 있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백성들의 감정을 격분시켜 도리어 그들 자신 이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자신들이 빠져 들었습니다.


‘7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저들은 ‘우리는 말하고 싶지 않다’라고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자신들에게 닥친 위급한 상황을 충분히 감지한 그들은 그 어떤 것도 감히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도리어 스스로 모순에 빠져 매우 불성실하고 무력한 모습을 백 성들에게 보여 주고 말았습니다. 8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했습니다.


둘째로 악한 농부의 비유(눅20:9-1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 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 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이 비유는 종교지도자들과의 권세에 대한 논쟁과 연결되는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자 신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풍자한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선지 자를 죽이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일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악함을 경고하시기 위해  도입하신 비유입니다. 여기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이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포도원을 만들었다는 것은 단순히 포도 나무만 심은 것이 아니라 포도원 유지에 필요한 즙 짜는 구유, 망대 등을 모두 갖추 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돕고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께 서 물심양면으로 섭리하신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농부들에게 세를 주었다는 것은 농부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말하며, 이들은 소작인 들인데 소작인들이 주인에게 소작료를 지불해야 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열매 를 하나님께 바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유에서 주인이 타국에 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소작인들의 완전한 책임 아래 포도원이 운영되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 께서 종교 지도자들로 하여금 백성들의 신앙을 정진시킬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제공하 시고 소신껏 일하도록 자유의지를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오래 있다가’라고 했는데 하나 님께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신앙의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셨음을 시사합니다


10절에,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 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했습니다. 열매를 거둘 때가 되자 주인은 농 부들과 맺은 계약의 조건에 따라 세를 받고자 종을 보냈습니다. 악한 농부들은 이것이 주인의 정당한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세 내기를 거절하고 주인이 보낸 종을 때리고 보냈 습니다. 여기 종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백성들의 믿음과 의의 행동의 모습을 요구하였던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사 선민 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백성들의 의와 공평과 믿음을 요구했으나 유대종교 지도자 들은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불법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11, 12절에서, ‘11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했습니다. 농부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인내하며 농부들의 성실한 의무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다른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을 더욱 심히 학대함으로써 주인에 대한 그들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며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계속하여 박해하며 더욱 패역한 모습을 드러낸 이스라엘의 완악 함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셔서 그들을 만민 중에 택하여 많은 은혜를 베푸시고 난 후에 그들에게 열매를 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때마다 하나님의 기대와는 어긋난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 악한 농부의 비유는 이사야 5:1-7에 기록된 포도원의 노래와 그 내용이 비슷합니다. 하나님 의 뜻에 불순종한 유대인들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예수님께서 당시 상황에 새롭게 맞추어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1-7,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땅을 파 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 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3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 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 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사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의 잘 못된 행동을 권고하셨 지만 그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도리어 선지자를 능욕하고 무시하며 온갖 학대를 다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과 그 실행 의무는 생각지 않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권 만을 생각하는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악한 농부들이었습니다.
          
14, 15절에서,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4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 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15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악한 농부들의 악한 행동에 대한 강력한 보복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에게 회개의 길을 준 비하는 포도원 주인의 모습은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며 자비 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어찌할꼬는 ‘티 포이에소’ 라는 말은 악한 농부들을 권고하기 위해 깊이 고민하고 숙고하는 포도원 주인의 모습을 잘 표현하는 하나님의 최후의 고려를 표시합니다(창 3:13, 출14:15, 삿 13:18, 삼상2: 29).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최후로 회개시키기 위해 선지자들이 아닌 그의 독생자 를 이스라엘 가운데 보내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농부들의 각성을 위해 아들을 보낸 주인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농부들은 아들을 공경한 것이 아니라 포도원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아들을 죽이기로 모의함으로써 그들 의 악하고 부패한 모습을 더욱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일반적인 관습에 의하면 주 인이 상속자가 없이 죽으면 그 토지에 대한 권리가 그 땅을 관리하는 사람들이거나 거 주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졌다 합니다. 그래서 악한 농부들은 포도원의 상속자인 주 인의 아들을 죽임으로 그 포도원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주인의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이 말은 장차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에 의해 그의 최후를 맞이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비유 속의 주인의 아들을 통해 예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려 나가 죽으실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악한 농부들은 그들의 악한 음모를 실행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포도원 주 인 아들이 도착하자 마자 포도원 밖으로 내어 쫓은 다음 죽여 버렸습니다. 포도원 안에 서 상속자를 죽이지 않고 밖에서 죽였는데, 이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그들이 그 땅의 저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악한 음모를 감추기 위한 개략이었습니다.


15, 16절에서,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 게 하겠느냐 16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 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그 농부들을 진멸한다는 말은 주후 70년에 있을 예루살렘 멸망을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할 것과 아울러 그들이 지금까지 누려 온 특권을 이방인들이 누리게 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17-19절에서,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 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 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이 구절은 시편118:22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22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 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사울왕에게서 버림이 되었던 다윗이 후에 왕이 된 사실을 예표로 하여 예수님에게 이루 어질 장래의 사실을 예언합니다. 예수님은 그 때의 종교가들에게서 버림이 되셨으나 후 에 그리스도로 나타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연결시켜 교회를 이루는 모퉁이의 돌과 같이 되신 것입니다. 모퉁이 돌은 두 벽을 결부시키는 돌입니다. 여기의 돌은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비록 예수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배척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들이 버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사역을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의 굳건한 반석으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서 마태복음 21:42, 43에서는 두 마디를 첨가했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 으리라했습니다.  

    

18절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은 생명의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돌 위에 떨어지는 자’와 ‘돌에 의해 맞을 자’란 악의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즉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치적으로 메시야로 오해했다가 그가 대속의 구주임이 판명되자 실망하여 떠남으로써 실족하여 넘어진 자를 가리킵니다.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대적함으로써 끝에 가서는 재림 주에 의해 철저히 심판 받을 완악한 부류를 말합니다. 따라서 돌 위에 떨어지는 자 는 직접적으로는 그 당시 모든 일반 유대인을 가리키고, 보편적으로는 모든 불신자들을 말합니다. 또 돌에 의해 맞을 자는 직접적으로는 그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 고 보편적으로는 사탄을 비롯하여 예수님을 대적 하는 모든 자들을 가리킵니다.                   


 다음 주일에도 화요일에 있었던 예수님과 유대종교지도자들 사이의 논쟁을 계속하겠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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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0 누가복음 20:1-18 김준식목사 2017-07-09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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