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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에서는 예수님과 성도와의 관계, 성도와 성도들 사이의 관계와 예수님과 성도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교훈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주의 복음을 최초로 전한 사도들과 모든 시대의 성도들을 사탄의 사주를 받은 세상이 박해할 것에 대한 경고와 이 박해를 대처하기 위해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실 것을 개략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앞둔 당시의 사도들과 나아가 교회사를 통한 모든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아무리 극심한 핍박을 받을지라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보다 구체적 인 이유를 예수님이 교훈하십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께로 돌아간 이후에 세상 끝날까지 환난이 닥칠 것이나 이 모든 것이 종말을 향하여 구속사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 는 것에 불과하므로  제자들과 성도들은 염려 근심하지 말고 이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을 거듭 권면 하십니다.

첫째로 교회에 대한 박해 예고(요16:1-6)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2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 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 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 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예수님은 자기가 당할 엄청난 고난과 죽음을 염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죽음 후에 제자들이 겪게 될 박해에 대해 제차 언급하시면서 이런 고난을 받을 지라도 곧이어 있을 성령강림에 대한 약속 으로써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본문에 소개되는 세상의 박해는 휠씬 구체적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출회를 당하고 순교도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 공동사회인 이스 라엘에서 회당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출회나 출교는 사실상 죽음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 상실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동족들과 더불어 교제하는 것이 금지되어 지는 것입니다.

또한 죽임을 당할 것인데 박해자들은 이렇게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여긴다는 것입 니다.  AD1세기에 성행했던 유대의 열혈당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의 열혈당 운동 은 민수기 25:3-15사건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출애급 후 광야시대에 모압인들과 음행하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중단시키기 위해 주동자를 창으로 찔러 죽인 비느하스의 전통을 이어 받아 신 구약 중간시대에 마카비의 혁명으로 보다 구체화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시몬은 열혈당 이었다고 소개 됩니다. 고대 랍비들의 율법의 주석을 붙여 놓은 미드라쉬 중에 비느하스의 사건 을 기술한 민수기 25:13에 보면 ‘악인의 피를 흘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울의 그리스도인 박해도 이런 정신으로 행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임할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의 박해가 바로 그런 ‘하나님의 섬김’이라는 명분 으로 전개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교회사 2천년을 돌아 볼 때에 참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 의 역사는 이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중세시대에 종교재판으로 처형된 그 수 많은 사람들도 하나 님의 뜻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박해자들의 손에 죽었습니다.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자 살 태러 역시 알라에게 충성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강림에 대한 약속(요16:7-15)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 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그가 와 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 를 믿지 아니함이요 10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예수님의 계속적인 떠나심과 박해가 있을 것에 대한 예고로 인해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제자들에 게 주님이 가시면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 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지 않으면 성령님이 오시지 않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 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 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했습니다. 예수님이 구속사 역을 완성하신 후에 오시는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신자들의 마음 속에 적용하시는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은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께서 필연적으로 공간의 제약을 받으실 때보다 성령님은 더 광범위하게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 역사하실 수 있 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성령님이 오셔서 하실 일을 열거하십니다. 첫째로 죄에 대해 책망하실 것이라 했 습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했습니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죄란 예 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십니다. 이런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죄인들의 심령 에 죄책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은 그 죄인으로 하여금 믿음을 불러 일으켜 구원을 가능하게 하십 니다. 사도행전 2:37-41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마 음에 찔려 회개한 사건이 주님의 이 말씀을 실증합니다.

둘째로 성령님은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데 의에 대하여는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 께로 가기 때문에 너희가 주님을 보지 못함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세상은(유대인들은) 의를 이룬 다는 명목으로 예수님을 행악자로 취급하고 죽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행동 인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인해 인간의 의보다 더한 진정한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음 당하신 예수님을 부활이라는 표적으로 신적인 의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심은  세상이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하 는 것은 세상의 거짓된 의를 책망하고 진정한 의를 밝히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세속적이고 허위 적인 의에 대한 엄정한 책망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 성령님의 사역인 것입니다.

셋째로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인데 이것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은 것이라 했습 니다. 여기 세상 임금은 사탄입니다. 창세기 3:15이후에 구약의 일관된 예언들은 예수님이 오실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 그 자체가 이미 사탄에게는 심판의 시작이 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사탄을 굴복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탄에게는 심판이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 를 깨뜨리시고 사탄에게 승리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패배했지만 아직도 세상의 권세 잡은 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에 사탄을 잡아 불못에 가두지 않은 것은 사탄을 이용해 하나님의 참 자녀들을 얻기 위함입니다. 사탄으로 하여금 성도들을 핍박하게 해서 그 가운데서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 지 믿음에 승리하는 자들을 알곡으로 고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의도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이 끝났을 때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 자는 불못에 가두고 사탄은 가두지 않은 것은 한 번 더 써먹기 위해서였습니다. 사탄을 무저갱에 천년 동안 가둔 후에 천년이 끝날 때에 풀어준 것은 세상을 미혹해서 천년왕국 동안에 살았던 자 들을 골라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곡과 마곡 전쟁이 끝난 후에 불못에 처 넣은 것은 이제 다 써 먹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성령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은 진리로 인도하시고 장래 일을 알게 하십니다. ( 요16:12,13)
‘12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 많은 진리를 알려 주고 싶었지만 제자들이 감당치 못한다고 말씀하시면 서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 은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직 들은 것을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의로 말하지 않 은 다른 한 분이 또 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자기 자신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들은 것을 말씀하신다 했습니다(요12:49, 14:10). 성령님은 우리에게 장래 일을 알리 실 것이라 했습니다. 장래 일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장래 일이란 말세에 일어날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말론을 외치는 자는 모두 성령운동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주로 성령운동하는 교회나 주의 종들이 계시록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가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계시록이나 종말론은 성령님께서 조명하지 않으시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다섯째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요16:14, 15).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성자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일을 힘썼습 니다 (요13:31, 17:4). 그런데 성령님은 성자가 떠나신 후 성자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 님은 제자들과 있으면서 여러 번 주님의 죽으심과 이와 연관된 일들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이 깨 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신 후 그것을 밝게 증거하심을 통해 제자들이 그 사실을 모 두 확고하게 믿게 되는 일을 통해 그리스도께 영광을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사 역은 철저히 하나님중심과 영광이었고 성령의 사역은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이었습니다.  예수 님이 성육신하여 이루시는 구속사역은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협력하는 구조였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총괄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순종으로 완성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적용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예수님 것이요 성령님은 또한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우 리에게 알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 14절과 15절에 내 것을 가지고 하셨는데 ‘가지고’라는 동 사는14절에서는 미래로 15절에서는 현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그 때로부터 지 금까지 그리고 주님 재림 때까지 예수님 중심으로 사역을 이루실 것입니다.

셋째로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요16:16-33)
이제까지 예수님은 그 어떤 박해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도록 제자들을 교훈하심과 동시에 보혜 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을 통해 앞으로 고난에 직면해야 할 제자들을 격려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제자들에게 십자가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고하십니다. 이 제 주님은 자신이 지시게 될 십자가 죽음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자신의 교훈을 끝맺으심은 물론 자신의 공생애를 정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예고는 영광 스러운 부활에 대한 예고와 아울러 주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제자들을 절망으로 몰아 넣는 대신 오히려 큰 기쁨과 소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17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 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요한복음 14:22에서 가롯 유다 아닌 유다가 예수님 말씀에 대해 질문한 이래 예수님의 오랜 독 백체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나 여기서 한 제자의 질문으로 인해 주님의 강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듭니다.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주님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쉽게 이해 했는데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는 말씀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후에 예수님 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잘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을 볼  때에 당시 제자들의 궁금함이 심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 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 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 따라가면서 가슴을 치고 통곡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로 향하실 때나 장사 되었을 때에 슬피 울었고, 심지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이 부활하신 후에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슬피 울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 악심을 품고 있던 유대인 지도자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있어 주님이 떠나가신다는 근심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다시 오심의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 기쁨은 이전의 슬픔을 완전히 압도하는 최상의 기쁨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여인이 겪는 해산에 비유하시면서 여인이 해산할 때를 자신의 십 자가 죽음의 때로, 아이가 탄생할 때는 자신의 부활의 때로 결코 자신의 죽음이 패배가 아니요 아 이를 통해 온 집안이 기쁨을 누리듯이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잠시 후 제자들이 엄청난 기쁨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21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 하느니라 22지금 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 으리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다시 나를 보리니’한 것은 주님이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성령강림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 날에는’ 했는데 이 그 날은 성령님이 강림하시는 날 입니다. 제자들이 이제까지 예수님의 말씀에 이해가 부족하지만 성령님이 임하시면 성령님이 제 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모든 의문이 풀릴 뿐만 아니라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 나님께 구하면 주님 이름으로 다 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셨으므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 들에게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지도 않으셨으므로 그 때까지 제자들은 예수님 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구하면 받을 것이고 따라서 기쁨 이 충만할 것이라 했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화로 하나님 아버지의 구속사적 진리가 보다 밝히 드 러나게 될 것입니다.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 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5이것을 비유 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 히 이르리라.’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 니 29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우리가 지금에 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 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고 성령강림 이후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강조하십니다.  성령님이 오신 후 제자들을 비롯해 성도들이 스스로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한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들을 사랑하시기에 성 도들이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성 도들을 사랑한다는 이 사랑은 헬라어로 필레오란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대개 하나님께서 성도 들을 사랑하신다는 동사는 아가파오가 사용됩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필레오로 표현 된 것은 본문이 유일한 경우입니다. 이렇게 필레오로 표현된 의도는 인간적인 애틋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이렇게 친구같이 따뜻하고 애틋하고 가깝게 느껴  지기 위해서 입니다.

요한복음 16:27의 본문에서는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조건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 했는 데 요한복음 14:21, 23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조건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했 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사랑과 믿음과 계명을 지키는 순종은 구분할 수 없는 요소인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 믿음과 사랑과 순종이 계속 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잡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텐데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 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 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 때야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님을 믿는다는 고백이 완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잠깐 후에 예수님이 체포될 때에 제 자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미리 아시고 제자들에게 예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적 통찰력으로 고난의 때가 바로 목전에 임박했음을 깨닫고 비록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알고 계셨지만 이들을 다시 한번 사랑하시고 준비시킨다는 의미에서 때의 임박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예수님을 버린 상황 가운데서도 십자가를 향해 늠늠히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성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절대 확신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식은 공생애 전반에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 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 평안은 현재는 제자들이 근심하지만 장차 누리게 될 기쁨이요 세상이 주 는 안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한 후에 얻을 수 있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인 것입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 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 노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했습니다.  이 문장의 앞의 세상은 인간이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세상을 말하고 반면에 뒤에 나오는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 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방해하는 모든 사탄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받 으심과 같이 제자들과 성도들도 환난을 받을 것이나 이 역시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같이 제자 들도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이 세상 임금을 쫓아 내신 예수님의 승리에 제자들과 성도들이 동참 하게 될 것을 선포하십니다

결론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로 인한 구속 사역의 성취의 결과 이제 성도들은 과거 죄 때문에 야기 되었던 하나님과의 단절을 극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완전히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된 하나님 과의 교제를 심화시키는 일은 성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과거 예수님의 제자들이 인간적인 나약함 때문에 예수께서 잡히시던 때에 그를 버리고 달아났었으나 후에 부활 한 주님을 다시 만난 후에 담대한 복음의 사도가 되었듯이 우리 성도들도 나약하여 넘어짐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혹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 세상의 권세자인 사탄을 이기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다시 그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전진하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늘 변하는 인간의 불성실로 친해졌다 또 멀어졌다 하고, 또 강하 다가  약함의 차이가 있지만 절대 불변하는 하나님의 성실로 마침내 천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절대로 단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구속사의 영원한 철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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