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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가복음 9;51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로 작정하시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셔서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동안에 성전에서  유월절을 지키려 세상 곳곳 에서 모여 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화요일 저녁이 되어 감람산에 오셔서 예루살렘 을 내려다 보면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앞으로 있을 세상 종말이 있을 것과 세상 종말이 있게 될 시기에 세상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종말의 징조를 보면서 세상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신 것이 지난 주 일의 마태복음 25장이었습니다. 그것이 감람산 강화였습니다. 이 감람산 강화를 끝내시고 그 후 에 일어난 일들이 누가복음 22장의 내용들입니다. 이 후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이를 준비 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첫째로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다(눅 22:1-6)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2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 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3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 이 들어가니 4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 하매 5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니산월 14일이고,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 날인 15일부터 21일까지 입니 다. 이 두 사건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유월절인 14일 해질 무렵에 허리에 띠를 띠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은 채로 양고기와 쓴나물 과 무교병을 급히 먹었고, 무교절은 누룩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 이 때는 이틀 후면 유월절이 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잡아서 죽일까 산헤드린 공회에서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은 종교와 정치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고 서기관들은 법에 대해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로 보아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해 정치, 종교, 사법권 의 권세가 최대한 동원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유대지도자들의 핍박이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 메시야라고 주장하며 많은 사람들이 주님 을 따름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주님을 죽이기로 한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은 예수님을 당장 죽이고 싶었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로 인해 감히 예수님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 때는 유월절이기에 각지에서 몰려든 많은 사람들로 인해 섣불리 잡 으면 폭동이 일어날 수 있기에 이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이 때에 사탄이 가롯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마리아가 예수 님께 향유를 부었을 때에 가롯유다가 마리아를 비난한데 대해 예수님께서 가롯유다를 책망한 일 로 가롯 유다가 예수님께 앙심을 품어 배반하려는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가롯유다의 배반은 사탄으로 인해서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 장, 서기관에 의해서라기 보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에 대한 사탄의 도전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꼬셔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의 실과를 따먹게 해서 범죄하게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탄을 저주하시기를, 너는 여자의 후손 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나 그는 너의 머리를 찍으리라 예언하셨습니다. 이렇게 사탄이 예수 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것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무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려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머리를 찍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한편 가롯 유다는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 사탄의 도구로 사용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방책을 연구하는 대제사장들에게 뜻밖에 나타난 가롯 유다의 출현은 예수님을 잡기 위한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이들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군중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가롯 유다에게 군중이 없을 때에 예수를 잡아 넘기도 록 지시했습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긴 동기는 그가 물질의 탐욕 때문입니다. 요한복 음  12장에서는 그는 돈을 훔치는 도둑이라 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을 때에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기 때문이요 세번째는 정치적인 메시야로 기대했던 예 수님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유다의 배반은 스승을 저버렸다는 도의와 인륜을 저버린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옛날 자 신이 스스로 범죄하고 마침내 인간까지 타락시킨 후 현 세상의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의 도구가 되어 죄 가운데 빠진 인간을 위하여 구속사역을 행하심으로  사탄의 세력을 혁파하시려는 예수 님에 대한 사탄의 발악의 앞잡이 역할을 담당한 구속사적 범죄였습니다.  이것은 사랑과 정의의 복음을 거스리는 심히 악한 범죄인 동시에 태초에 에덴동산의 예언대로 겨우 예수님의 발뒤꿈치 만 물려고 하다가 그 머리가 깨져 영원히 죽을 사탄의 편에서는 어리석은  범죄이기도 합니다. 사탄의 음모는 구약에서 예언된 것이었고 가롯 유다의 배신도 스가랴 11:12에 예언된 것이었습 니다. 가롯유다의 배신 사건은 화요일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수요일 행적에 대 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에 성경의 진리를 알면서도 이를 거스리며 천국 보다 세상의 것을 더 추구하며 또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앞세우는 자는 누구나 다 또 가롯유다의 심성이 없는지 엄숙히 자성할 일입니다.

둘째로 유월절 최후의 만찬 준비(눅 22:7-13)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했습니다.  본문은 목요일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날에 주님의 최후의 만찬과 주님의 성만찬의 법 제정과 관련된 전후 사건의 기록입니다. 주님 께서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에게 준비시킨 자리에서 유월절 만찬을 새로운 성만찬의 법으로 제 정하셨습니다. 7절에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이라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무교절 첫날이라 했고  마가는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이라 했습니다. 이날은 보통 유월절의 전날인 니산월 13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유대 사회에서의 하루는 해가 질 무렵에서 다음날 해질 무 렵까지를 가리킵니다.

유월절 양은  니산월 13일인 금요일 낮에 잡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18:28에 의하면 예수님 께서 성만찬을 베푸신 날은 유월절 당일이 아니라 유월절 예비일이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니산월 12일 저녁에 성만찬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날 밤에 잡히셨습니다.  그리고 니산월 13 일 아침 9시 경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 경에 운명하셨 습니다. ‘무교절’ 이라 불린 것은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준비함에 있어 보통 유월절 이틀 전부터 집안에서 누룩을 제거했습니다. 이러한 관습에 따라 누룩을 제거한 날을 무교절에 포함시킨 까닭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본 절의 ‘무교절의 첫날’은 니산월 14일이 아니라 니산월 12일 낮(목요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날에 베드로와 요한이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그 집을 찾아 갔고 니산월 12일(목요일)에서 13일(금요일)로 넘어가는 시점(저녁)에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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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절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면서 유월절음식을 준비하라 하셨습니다(니산월 12 일 낮, 목요일 낮).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준비시키기 위해 보낸 제자들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누가복음에만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도 제일 사랑받던 자 들로서 초대 교회에서 주요 인물이었습니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루살렘성은 이 때에 유월절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 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멀리서 온 사람들을 위해 방을 예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오기에 이때에 유월절 만찬을 위한 장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어디에서 할 것인가를 물었던 것입니다. .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아직 예루살렘 성 밖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감람산이나 베다니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 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2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3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 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때에 제자들이 만나야 할 물 동이를 가지고 가는 그 사람이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지나갈 것을 미리 보고 있으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때에 나귀 새끼를 준비케 한 상황과 비슷합니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과 인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이 미리 연락을 취하신 것이 아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예수님의 전지성과 모든 만물을 자신의 의도대로 섭리하시는 신적능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갔을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예수님에 대해 선생님이라고 한 것을 보아 이 사 람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내가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한 말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나귀 새끼를 구해오라고 명하실 때도 ‘주 께서 쓰시겠다 하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실 때에 그 명 령뿐만 아니라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편 누가 복음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주도적으로 준비하신 것을 보면 유월절 만찬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유월절 만찬사건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속에서 진행된 것 으로 구속사적으로 볼 때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2, 13절에서 ,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3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 씀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나눈 마지막 유월절 만찬은 이와 같이 예수님 의 신비적인 능력을 체험하는 가운데 준비되었습니다.

셋째로 성만찬 제정(눅 22:14-20)
14절은 첫 마디가 때가 이르매로 시작합니다. 갈라디아서 4:4의 때가 차매의 말씀이 연상됩니 다. 때가 이르매는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갈라디아 4:4의 때가 차매는 창세기 3:15에서 사탄의 꾀임으로 죄와 사망의 저주 아래에 처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야를 우리에게 보내 주시 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 메시야께서 오실 때가 찼으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말씀하고, 누가복음 22:14의 때가 차매는 인간을 구원하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이제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찼음을 알리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이루어진 유월절 만찬의 구속사적 의미를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말입니다. 

유월절 만찬은 니산월 13일 저녁입니다. 유대인 시간으로는 니산월 13일이 막 시작된 시간 입 니다. 유대인의 하루는 해질 무렵에서 그 다음날 해질 무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목 요일 저녁입니다. 사도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의 최후의 만찬이 자 첫 성만찬이 된 유월절 만찬은 사실은 본래의 관습보다 하루 앞당겨 실시되었습니다. 왜냐 하 면 예수님은 유월절의 공식개시일인 다음날 저녁이 되기 전에 십자가 수난을 당하실 것을 아시 고 유월절 만찬을 하루 앞당겨 먹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하루 앞당기시면서 유월절 만찬을 드신 데에는 그만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이란 다름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통하여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 원되어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 차 영원한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택한 백성들을 죄악 된 이 세상에서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려갈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 유월절 양이 예표했 던 실체로서 이제 십자가 수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입성한 유월절 사건이 예표한 실체인 만민의 천국구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제 예표 에 불과했던 구약의 유월절 기념의 법을 그 실체인 자신의 십자가 구속 수난을 기념하는 성만찬 의 법으로 바꾸기 위하여 굳이 날짜까지 하루 앞당겨 유월절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성만찬의 법을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을 일관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하나의 원리, 하나의 주권, 하 나의 은혜로 진행해 오셨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또한 주님은 그 옛날 구약시대에 유월절 의 법을 제정하셨고 이제 이 세상에 오셔서 성만찬의 법도 제정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드신 유월절 만찬에는 그에 필수적인 어린 양의 고기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떡과 포도주만 있었 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양 잡는 시간인 니산월 13일 오후 3시에 십자가 처형을 당하셔 임종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인 신약의 영원한 어린 양 이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5절, 16절에, ‘이르시되 내가 고난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 라’ 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전에 이 땅에 공생애 기간 동안 동 행했던 열 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심으로 마지막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받으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유월절 만찬을 통해 제자들에게 교훈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 자가의 고난 사건을 기념하는 새로운 언약의 성례 제정을 염두에 둔 식사였습니다.

16절에서 ‘1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하신 말씀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그의 죽음입니다. 주님은 이 말 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기 까지는 유월절 만찬을 먹지 않을 것을 밝히심으로 그가 곧 죽게 될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유월절 만찬의 완성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친히 유 월절 어린 양이 되사 희생되심으로 유월절 만찬이 완성되고 이제 그의 대속적 죽음을 기념하는 성만찬 예식을 사람들이 지키게 될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유월절은 궁극적으로 하나 님의 나라에서 완성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해방을 의미하 는 유월절은 지킬 수 없고 오직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 다.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이 참여하게 될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17-20절에서 이제부터 예수님은 성만찬의 법을 제정하십니다.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 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 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했습니다. 마태복음 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먼저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떼어 준 후 잔을 받아 사례하신 것으 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먼저 잔을 받아 사례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 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관복음이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관점의 차이에서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에 보통 처음에 포도주를 마시고 기도를 드리며 기 도가 끝나면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음식을 먹으면 손을 씻고 다시 잔을 든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날 무렵이 되면 다시 세번째 잔을 들고 가장이 축복 기도를 하게 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바로 이 세번째 잔과 그에 앞선 식사를 기록한 것이며, 누가복음은 첫번째  또는 두번째 잔과 식사와 그리고 20절에서 세번째 잔을 기록한 것입니다.

19절에서 ‘19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 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하셨습니다. 유월절 식사 때에 사용하는 떡 은 누룩 없는 굳은 떡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떡을 떼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그 떡은 주님의 몸이라 했습니다. 이 떡은 내 몸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지 않고 내 몸이라 했습니다. 카톨릭에서 는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떡과 포도주에 예수님이 영적으로 임하신다는 ‘영적 임재설’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루터교에서는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에 대해서 예수님이 직접 예수님의 몸, 예수님의 피라고 하 셨기에 그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주님의 몸이 되고 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주님은 성찬식을 행하여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리신 이 명령은 신약교회의 성찬식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성찬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 사람으로서의 삶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성찬식은 예수님의 재림할 때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을 예표합니다.

이제 유월절 만찬에서 세번째 포도주를 마시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20절에, ‘저녁 먹은 후에 잔 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했 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내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했으며 누가복음에서는 내 피로 세 우는 새 언약이라 했습니다. 구약에서 사람들이 상호 간에 언약을 맺을 때에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림으로 피흘린 생명을 근거로 맺은 것임을 상기시켜 철저히 지키기를 노력합니다. 그리고 출 애급기 24:5-8, 히브리서 9:6-13에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 실 때에 짐승을 잡아 그 피로 언약의 보증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 희생 제사의 핵심은 짐승의 피를 흘려 인간의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2에 피흘림이 없이는 제사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자신의 피로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새 언약이란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 다. 따라서 새 언약은 그 효력이나 가치 면에서 구약의 옛 언약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옛 언약은 불완전한 짐승의 피를 근거한 반면, 새 언약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언약과 새 언악의 차이점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로 새 언약에서의 성도들은 돌비에 새 겨진 모세의 율법이 아닌 그들의 심비에 새겨진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옛 언약이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들과의 언약이라면 새 언약은 하나님과 영적 이스라엘 즉 민족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과 맺어진 언약이라는 점입니다(롬 10: 12, 13). 셋째는 옛 언약은 짐승의 피로 말미암았으나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말미암았 습니다. 넷째는 옛 언약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 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처럼 옛 언약은 새 언약에 비해 그 가치나 효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으며 새 언약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넷째로 가롯유다의 배신 예고(눅 22:21-23)
21-23절에서, ‘21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인자는 이미 작 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23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가롯 유다의 배반에 대한 말을 성만찬 이전에 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가롯 유다가 만찬 도중에 나간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누가복음에서는 가롯 유다가 배반할 것을 성만찬 이후에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롯 유다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 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이 기록은 누가의 저작 의도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누가는 아마도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성만찬 뒤에 나열함으로써 유월절 만찬에 암시된 그의 수난이 필연적으로 닥쳐올 사건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은밀한 중에 예수님을 팔 계획을 진행시켜 왔으나 주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 니다. 예수님의 이 선언은 가롯 유다를 제외한 다른 열 한 제자들에게는 충격과 놀라움으로 받아 들여졌을 것입니다. 가롯 유다에게는 자신의 계획을 예수님께서 알았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끝까지 가롯 유다의 이름을 말씀하지 않은 것은 가롯 유다 에게 마지막 자비와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미리 가롯 유다의 배반 을 예고하신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수난을 당한 것이 주님이 약해서거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해 서가 아니라 이처럼 미리 다 아시면서도 스스로 당하신 것으로서 결국 우리의 구속을 위한 희생 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조차 가롯 유다 같은 배신자가 동석하고 있었 다는 것은 세상 끝날 바로 그 순간까지 주님의 선택된 백성과 주님께 배반하고 심판 받을 자가 뒤섞여 있을 것을 보여 줍니다. 마태복음 26:23에서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라고 했 는데 이 그릇은 으깬 과일과 초를 혼합하여 만든 소스를 담은 대접을 말합니다. 유월절에 무교 병을 먹을 때에 떡을 떼어 바로 이 소스에 찍어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손을 넣는 자 가 나를 팔 자라고 했지만 제자들 모두 함께 그 그릇에 손을 넣었기에 팔자가 누군지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22절에서,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했는데 메시야의 죽음은 하나님의 구속 경륜 속에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주 권적인 경륜에 순종함으로 스스로 자기 몸을 죄인들의 구속을 위해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 로 메시야의 죽음은 악한 세력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과 승리의 계획이 실현되 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죽게 하시려는 하 나님의 뜻과 유다의 배신의 의지는 각기 평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정된 것이지만 그 렇다고 유다의 배반이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그는 그의 악한 의지와 생각에 따라 행동했 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도 하나님의 뜻을 방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예정된 일이라 해서 인간의 죄악이 합리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악한 의지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것 입니다. 누가복음 22:23에서,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26:25에서는 누가복음 22:22에서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고 할 때에 가롯 유다가 말하기를 랍비여 내니이까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뻔뻔스럽고 위선적인 자인 가를 잘 드러내 줍니다. 유다가 이 질문을 한 것은 예수님의 의중을 떠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제자들은 주라고 호칭하는 반면 유다는 통상적인 호칭인 랍비라는 호칭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의 구주로 영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으로 예수님은 구약의 유월절 기념의 법을 그 실체인 자신의 십자가 구속 수난을 기념하는 성만찬의 법으로 바꾸기 위하여 굳이 날짜까지 하루 앞당겨 유월절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성만 찬의 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만찬을 통해 자신의 피로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고 계신 것 입 니다. 그 새 언약이란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성도들은 성만찬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새 언약을 세우시사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게 된 예수님의 그 은혜를 깊이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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