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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 삼일 전에 감람산에서 성전과 예루살렘을 내려다 보시면서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에 있을 여러 징조와 주요 사건들을 말씀하신 것입니 다. 또 이것들에 대한 말세 성도들의 자세에 대해 계시해 주신 감람산 강화입니다. 특히 마태 복음 25장은 마태복음 24:45-51의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깝다는 말씀을 잘 전하 는 충성된 주의 종들과 그렇지 않은 악한 종에 대한 비유와 더불어 종말을 맞이한 성도들의 바람직한 자세와 그 결과에 대하여 교훈하시는 세 비유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비유는 열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에 대한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들은 누가복음에는 생략된 부분입니다.

마태복음 24:45-51의 두 종들에 대한 비유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두 종류의 주의 종들에 대 해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 비유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일반성도들의 태도에 대한 말씀으로서 여기 일반성도에는 목사님들도 포함됩니다.
열처녀 비유는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의 결혼 풍습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비유에 나타나는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을 맞으려 나간 ‘열 처녀’는 신부의 둘러리들로서 성도들을 의미 합니다. ‘등’은 성도들의 외형적인 신앙의 모습을 나타내며, ‘기름’은 이를 유지시켜주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이 열처녀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열 또는 다섯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신 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준비 상태에 따라 둘로 양분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열 처녀를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들로 나눈 것은 성도라 하는 자들 가운 데서도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갈 자와 버림 받을 자가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당시 결혼식은 보통 해가 진 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 루가 해질 무렵에 시작되어 다음날 해질 무렵까지로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은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장가들러 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삿14:5-10). 이때 신부 둘러리들은 순백색의 옷을 입고 손에는 신랑행렬을 비출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려 나가는데 신부 들러리들은 보통 열명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랑이 도착하면 신부 둘러리들은 신랑을 신부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고 그 이후로 문은 닫혀 출입이 금지됩니다. 그것은 당시 강도들이 결혼식장을 자주 침입하였던 까닭입니다.  이런 배경하에 열처녀 비유를 살펴보면 이 비유에 대한 내용이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 니다. 너희는 미래에 세상의 빛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현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했 습니다. 빛은 어둠을 물리칩니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물러 갑니다. 이 세상에 죄와 악으 로 가득 찼지만 그나마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 하기 때문에 망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지만 교회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물러가면 이 세상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빛의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열 처녀 비유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의 역할이 어떻게 작용하는 가를 생각해 보고져 합니다.

첫째로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

본문 속에 나오는 열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불을 밝혀 놓았습니다. 등잔에 불을 밝히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그 하나는 등잔이요 다른 하나는 기름입니다. 등불을 밝히려면 등잔에 기름을 넣어 불을 붙여야 합니다. 열 처녀들이 초저녁부터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불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늦게까지 오지 않으므로 졸며 잤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3-4은 왜 슬기 있는 처녀이며 왜 미련한 처녀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성경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했습니다.
여기 ‘가져 갔더니’라는 말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길을 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라는 이 말은 잘못 오해하기 쉽습니다. 등에 기름을 넣지 않아 불을 켜지 않았다는 말로 들립니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미련한 처녀 들은 등잔만 가지고, 등잔에 기름을 채우지 않아, 초저녁부터 아예 불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오해 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문맥 전체를 살펴 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 처녀 비유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할 때에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에 기름을 채워 불을 밝혔기에 슬기로운 처녀였고,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만 가졌지 정작 기름은 채우지 않았으므로 미련한 처녀들이라 고 말하면서 등에 기름을 채우자고 강조합니다.

열 처녀 모두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신랑이 도착하기 까지 불을 밝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들은 밤에 신랑을 맞이하러 길을 떠나 어떤 목적지까지 나왔기 때 문입니다. 불을 준비하지 않고서는 캄캄한 밤에 신랑을 맞이하러 나올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등에 기름을 가득 채워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8절에 신랑이 왔다는 말을 듣고 다 함 께 깨어 일어나 등을 준비할 때에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있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기름을 좀 빌려 달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미련한 자들이 신랑을 기다리다 가 잠자는 동안에 신랑이 오기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3절의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은 등잔에는 기름을 가득 채웠지만 여분의 기름통에 따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4절의 슬기로운 자들에 대한 묘사 에서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 라고 한 말씀에서, 기름을 가득 담은 등잔 외에 따로 기름병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때의 광경을 상상해 보 면,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러 등에 불을 켜서 어떤 목적지에서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 었는데 신랑이 더디 오기에 곤하여 모두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사람이 밤에 잠을 자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모습을 봅니다. 왜냐하면 ‘졸며’ 라는 말이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졸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 않았다면 그냥 ‘다 잠을 잘 새’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졸다가 나중에는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골아 떨어졌음을 봅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 로 다 졸며 잘새’라는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주님의 오심을 오 래 기다릴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의도가 무엇인지 깨달아 야 하겠습니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슬기로운 자들과 미련한 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 해 보겠습니다.

※ 슬기로운 자들과 미련한 자들의 공통점
1) 두 그룹 모두 신랑을 맞이하려는 마음을 가졌다(1절). 2) 두 그룹 모두 신랑을 맞이 하려 나 갔다(1절). 실천하는 믿음을 보여 준다. 3) 두 그룹 모두 등불을 밝혔다. 두 그룹 모두 신랑이 왔다는 소리를 듣기까지 등불을 밝혔다(8절). 4) 두 그룹 모두 오래 기다리다가 졸았고 나중에 깊은 잠에 떨어졌다. 5) 두 그룹 모두 신랑이 왔다는 말에 잠에서 깨어나 등을 준비했다. 등을 준비했다는 말은 밤새 등불이 켜져 있었기에 불똥을 따고, 심지를 돋우고, 기름을 채우는 일을 말합니다.

※ 슬기로운 자들과 미련한 자들의 차이점
1) 슬기로운 자들은 등에 기름을 가득 채웠을 뿐만 아니라, 다른 기름병에도 여분의 기름을 많이 준비하고 있었다. 2) 미련한 자들은 등에만 기름을 채웠고 여분의 기름병과 기름을 준비 하지 않았다.

이 두 그룹의 차이점은 기름을 가득 채운 등잔 외에 따로 다른 기름병에 기름을 준비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슬기로웠느냐, 미련했느냐가 결정되었습니다. 기름을 준비 했느냐 아니냐에 따 라 슬기로운 처녀, 미련한 처녀로 규정짓고 설교를 마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 보다 는 한 발짝 더 나간 사람들은 말하기를, 미련한 처녀들은 등에는 기름을 채웠지만 따로 여분의 기름병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미련한 처녀들이요, 그렇기에 신랑이 올 때에 기름이 다 떨어져 불을 밝히지 못해서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 는 자가 되자 라고 하며 설교의 결론을 맺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설교를 마치면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신 주님의 참 의도를 잘 못 이해하게 됩니다.

둘째로 열 처녀 비유의 의미의 중요성
이 열 처녀에 대한 비유는 계시록 19장에서 성도들이 공중휴거 되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 여할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이 열 처녀 비유에 대한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들은 ‘보라 신랑이로다 맞이하러 나오라’ 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언제부터 차이가 났느냐 하면 보라 신랑이로다 맞 이 하러 나오라는 말을 듣고 잠에서 깨어난 각 처녀들이 등을 준비할 때부터 차이가 나기 시 작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잠에서 깨어나 등을 준비할 때에 불똥을 따고, 심지를 돋우었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인 등에 기름을 채울 여분의 기름병이 없었습니다.

이 때로부터 신랑을 맞이하려 나가서 신랑을 맞이 하고 잔칫집에 들어가기까지 필요한 기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등불을 켜지 못했습니다. 등에 불을 밝히지 않으면 신랑을 맞이하려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등에 불을 밝히기 위해 할 수 없이 기름을 사려 가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려 간 사이에 신랑과 슬기로운 처녀들은 잔칫집에 들어 갔습니다. 그 후에 기름을 준비해 급히 왔지만 잔칫집 문은 잠겼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잔칫집 문을 두드렸습 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이 하려 나오라는 말을 듣고 신랑을 맞이하여 잔 칫집에 들어가기까지의 그 시간에 불을 밝히지 못해 잔칫집에 들어 가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잔칫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그 원인이 되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신 의도는 기름을 채웠느냐 못 채웠느냐가 아니라 불을 밝혔느냐 밝히지 못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기름을 많이 가졌다 해도 불을 밝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밤새 불을 밝혀 신랑을 기다렸는데 잠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잔칫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다니, 너무 억울 하지 않습니까?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불을 밝히기 위해 서 입니다. 그렇다면 왜 불을 밝혀야 합니까? 왜 빛을 발해야 하는지,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빛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셋째로 성경에서 말하는 빛이란

1.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빛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 더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1:1,4,9).
영원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에 세상을 만드시기로 예정하시고, 우주를 창조하실 때에 이 지구에 빛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구에 육신의 몸으로 오시면서 죄와 사망의 흑암에 처한 지구에 빛을 주셨습니다. 이 빛은 곧 사람들의 빛이요 생명입니다. 요한 복음 8:12에서 주님께서 이 지상에 계실 때에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입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빛을 받은 자들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에 빛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산상수훈에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말씀하실 때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4-16)

3. 빛의 기능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는데 빛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빛은 어두움을 물리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빛은 생명을 줍니다. 이 빛이 없으면 생물들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이 빛이 없으면 생물들은 생명작용을 할 수 없어 죽습니다. 식물은 빛을 재료로 하여 광합성을 해서 스스로 영양분을 만듭니다. 그러나 사람과 동물들은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 수 없으므로 식물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빛이 없으면 생물들은 죽습니다. 빛이 약하면 식물들이 열매를 맺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겨우 맺힌 것도 결국 결실치 못하고 떨어져 버립니다. 또한 빛은 살균작용을 합니다. 빛을 받지 못하면 면역성이 떨어지게 되고 병균들을 죽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냥 빛이라고 하시지 않고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빛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향하여 빛의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빛인 교회가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밝혀야 하며, 생명이 없는 세상에 생명을 주며, 어두움 속에 득실거리는 병균들인 죄와 악들을 소멸해야 합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 생명작용이 충만 해야 하고, 어두운 죄악들이 물러가야 합니다. 불신자들이 모여 음담패설을 하고 있을 때에 신자가 그들 가까이에 접근하면 이들이 입의 말을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빛 된 착한 행실을 보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8-10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예수 믿기 전에는 우리가 어둠이었는데 거듭난 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빛이 되었습니다. 빛의 자녀, 주님의 자녀들로서 빛 가운데 행하라 했습니다.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 했습니다. 착한 행동이 빛 된 자녀들의 첫째 덕목입니다. 의롭게 행하라. 죄 짓는 삶에서 벗어나라, 성도들은 세상에서 진실하라 라는 말씀입니다. 빛 된 자녀들은 진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15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두운 세상에, 불신자들 가운데서 빛으로 나타나라고 당부하십니다. 빛을 발하고 빛의 자녀로서 옳은 행실과 의로움과 진실하게 행하라 하십니다. 등에 기름이 없으면 불을 밝히지 못합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기름은 성령 충만을 말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빛은 능동적이요, 능력입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거하여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물론 착하게 행하는 것도 착한 행실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착한 행실은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로 복음을 전해서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빛으로 이끌어 내어야 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처음에는 등에 기름을 충분히 확보해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고, 오실 주님을 고대하는 삶을 살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기름이 메말랐습니다. 성령 충만함이 식었습니다. 빛을 끝까지 발하지 못했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빛을 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한번 반짝하다가 불이 꺼졌습니다.
 
넷째로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자세
주님은 열 처녀 비유에서 신랑을 예수 그리스도로 묘사하시고, 열 처녀들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믿음 생활하는 성도들을 의미했습니다. 절대로 미련한 처녀들이 불신자, 신앙생활하지 않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교회 다니고 믿음생활하며,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해야할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혼인잔치는 공중 휴거되어 하나님 보좌 앞에서 우주잔치를 하게 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요한계시록 19장의 어린양 혼인 잔치를 연상하셨습니다. 계시록 19장은 들림 받은 성도들이 하늘 보좌 앞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광경을 보여 줍니다. 그 때에 들림 받은 성도들이 입고 있는 옷은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옷인데 흰 세마포 옷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어린 양의 혼인예식이 준비되었고, 신부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신 빛나고 아름다운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혼인식장에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이 땅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동안 빛을 발하는 삶을 끝까지 잘 살아온 성도들에게 입혀 주시는 웨딩드레스가 우리들의 옳은 행실로 만들어진 웨딩드레스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2:1-14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혼인잔치비유입니다. 이 비유 역시 계시록 19장의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의미합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임금이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결혼예식을 준비했습니다. 임금님의 잔치요 왕궁에서 결혼예식을 하게 되니 예식장이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예식에 참여할 축하객들을 초청하였고 초청된 그들에게는 결혼식에 참여할 자격으로 왕이 주는 예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복을 주었는데도 입지 않고, 결혼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임금님의 노여움을 크게 샀습니다. 어린 양의 빛나고 흰 웨딩드레스는 하나님이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 웨딩드레스는 그 신부의 옳은 행실로 짜서 만든 옷입니다. 빛인 성도는 옳은 행실을 행해야 합니다. 빛을 발하지 못하는 자는 공중 휴거되지 못합니다. 옳은 행실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행하지 않는 자는 휴거되지 못합니다. 당신은 빛을 발하고 있습니까? 끝까지 빛을 발할 수 있는 기름, 성령 충만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가서 등에 기름을 채우고 불을 밝혀서 혼인잔치 집 문 앞에 왔는데 잔칫집 문이 닫혔습니다.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주여, 주여 외쳤는데 잔칫집 안에서 들리는 주님의 소리는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이 상징하는 것은 공중으로 들림 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만약 우리 세대에 7년 환란이 시작된다면 주님이 오실 때가 심히 가깝다는 말입니다. 우리 본문의 말씀인, ‘보라 신랑이로다 맞이하려 나오라’와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7년 환란에 들어 전 3년 반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에 있을 박해로 인한 믿음생활의 어려움을 인내하지 못하거나, 이 일로 주저하는 신앙으로 인해 성도로서의 적극적인 믿음의 빛을 발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노라고 세상에 밝히 나타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있을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미련한 자들이라고 했느냐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신랑이 올 때쯤에 기름이 떨어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잔칫집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미련하다는 것입니다. 평생토록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다가 오실 때쯤에 기다림에 지쳐 낙심하거나 의심하거나 시험에 빠져 신앙생활을 포기한 사람들이거나 주저하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공중휴거 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남겨둠을 당해, 적그리스도에게 후 삼년 반의 핍박, 박해와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남겨졌기에 미련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늦게나마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다른 성도들, 신앙생활을 같이 하던 다섯 슬기로운 처녀들이 공중 휴거되는 것을 목격하고 난 후에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그래도 늦게라도 성령 충만하여, 후 삼년 반에 피난처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입니다. 미련하기는 하지만 신앙생활을 했기에 공중휴거가 무엇인 줄을 알고 그때라도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 불신자들은 공중휴거를 목격했어도 깨닫지 못하고 그것으로 끝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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