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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은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9:51에서 시작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셋째 날인 화요일에 성전 안에서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교훈도 하시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 인들과 논쟁을 벌이셨다가 저녁이 되어 성전을 나와 감람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성전에 대해서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종말에 대해 예언하신 것입니다.

요즘 목사님들은 요한 계시록이나 세계 종말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많은 장로교 목사님들이 말하기를 칼빈도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시 않았는데 사람들이 건방지게 계시록을 건드린다고 화 를 냅니다. 성경의 계시는 점진적입니다. 특히 세계 종말과 계시록의 계시는 점진적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앞으로 될 일을 보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앞으로 될 일을 2천년 전에 보고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은 2천년 전보다 더욱 미래에 서 있습니다. 2천년 전에 밝혀 지지 않았던 계시록의 내용이 오늘날 밝혀 질 수 있습니다.  5백년 전 종교개혁 시대에 살았던 루터나 칼빈 시대보다 계시록의 내용이 더 밝혀 졌습니다.

칼빈이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칼빈이 요한 계 시록을 잘 못 주석했다면 그 이후의 모든 사람들이 잘 못 해석된 계시록을 좇아 갔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칼빈이 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칼빈이 계시록 주석 을 쓰지 않았다고 그 이후의 모든 주의 종들이 계시록에 무관심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한계시록을 주신 것은 계시록의 내용을 알아 종말을 예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에 마태복음 24장이나 누가복음 21장의 예루살렘 멸망과 세상 종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예루살렘 종말, 세상 종말에 대해 말씀하셨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세상 종말에 대해 열심히 예언하셨고 종말을 예비하라고 하셨는데 오늘날 주의 종들 은 칼빈이 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았다고 등한히 하는 것은 칼빈을 하나님 보다 더 위에 올려 놓 은 샘이 됩니다. 칼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격이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5장에서 그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이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15: 3-6에서, ‘3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 명을 범하느냐 4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 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 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그 부모 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라도 목사님들은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요한계시록을 열심히 공부해서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전파괴의 예언 (누가복음 21:5-6)
누가복음20장에서성전 안에서 여러 가지를 교훈하시며 논쟁을 벌이시던  예수님은 성전을 나와 감람 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제자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말한 것을 계기로 장차 예루살렘 성전이 흔적도 없이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 뜨리 우리라’했습니다.  이 예언은 서기 70년에 로마 장 수 디토가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에  그의 부하 중 한 병사가 성전을 완전히 전소시킴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주전 19년에 헤롯대왕에 의해 착공되어 주후 63년에 완공될 정도로 방 대하고도 화려했습니다. 그런데 주후 70년 8월 10일 완공 된지 7년 만에 완전히 파괴되었습 니다. 성전을 파괴할 당시 헤롯이 처음 성전을 건축할 때 성전의 돌 사이에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숨겼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 군인들은 그 금과 은을 찾 아 내기 위하여 성전의 돌 하나 하나를 다 파헤쳤으며 성전의 기초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철저 히 파괴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한 말씀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당시 성전에서는 온갖 비리가 성행했고 인간의 위선과 가증한 종교 형식만이 조장되 었습니다. 따라서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진리가 없었으며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거 룩한 성소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파멸을 선언하심으로써 이스라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전 파괴 예언은 세상 종말에 관한 예언 중 의 하나였습니다. 이 예언이 주후 70년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은 세상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모든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을 사는 우 리 성도들은 말세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어 경성함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세상 종말의 징조 예언(누가복음 21:7-19)
‘7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8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 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9난리와 소 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12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 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 어 가려니와 13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14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15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16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17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8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19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예수님의 성전 파괴 예언을 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예언을 듣고 예루살렘성 전체가 잘 내려다 보이는 감람산에서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은 두 가지 사실을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구체적인 시기에 관한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성전파괴 전에 있을 징조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 파괴란 세상이 존속하는 한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만약 성전이 파괴된다면 세상 종말에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의 이 질문은 세상의 종말의 시기와 징조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답변을 잘 이해하려면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 첫째는 예 언의 복합성입니다. 말하자면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성전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리고 예 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 종말이 같은 때에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이 세상의 종말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답변을 통해 가까이 는 예루살렘 멸망을, 그리고 멀리는 세상 종말적인 사건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말예 언에는 제자들의 질문과는 달리 그 당시에 일어날 사건과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 이 동시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멸망이 세상 종말의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예루살렘의 멸망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지 아니한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의 때 라면 세상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이나 누가복음 21장의 예언을 어느 한 사건에 대한 예언으 로만 볼 것이 아니라 통시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종말의 징조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반면, 종말의 시기에 대해서는 침묵하셨 다 는 사실입니다. 종말의 때를 ‘이 때다’ ‘저 때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세상 종말에 대해 말씀하신 징조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징조는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입니다. 종말의 때와 징조에만 관심 을 가질 것이 아니라 종말에 있을 미혹을 조심하여 신앙을 굳건히 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적극적으로 믿는 사람들을 속여 파멸로 빠뜨리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교회 역사의 각 시대마다 거짓된 이단의 유혹이 많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은 예루살렘의 함락 이전과 이후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들이 때가 가까웠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 사 람들을 속이기 위한 수단으로 임박한 종말을 강조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거듭된 출현은 종말의 확실성에 대한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자칭 내가 그리스도라 하는 자들이 수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종말 성도들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적 태도는 유지해야 하겠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거짓 그리스도의 거짓 주장과 유혹을 구별하고 경계함으로써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세상 종말의 두번째 징조는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전쟁이 종말적인 징조 가운데 하나라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이 로마에 함락되기 전까지 유대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끝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종말을 향해 치닫는 인류 역사 진행 가운데서도 전쟁은 항상 있어 왔습니다. 난리 소문이 들려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런 전쟁이 일어나야 하되 끝은 아니라 했습니다.
전쟁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용되는 것으로서 성도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십니다. 세상의 종말은 주님의 재림으로만 이루어 집니다. 종말에 가까이 이를 때에 국가간에 민족과 민족간에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 종말의 세번째 징조는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지진과 기근과 전 염병은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함락 되기 직전에 예루살렘은 지진과 기근과 온역으로 무수한 사람이 죽어갔다 했습니다. 라오디게 아, 히에라폴리스, 골로새 도시들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후로 큰 지진이 일어나 피해를 입혔 고 특히 로마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디토가 황제가 된지 3년 만에 베스비어스산의 화산 폭발 로 인해 폼페이 시가 화산재로 덮힘으로 디토가 이 사건을 수습하다가 너무 지쳐 과로로 죽었 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지구 역사 이래 온 세계적으로 큰 지진들이 수십 배로 증가했습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지구 곳곳에 물난리, 가뭄으로 인해 기근이 일어나고 온역는 전염병을 말하는데 구제역으로 돼지 소들 수백, 수 천만 마리들이 산채로 땅에 묻히고, 새 종류에게 조류 독감이 일어나는 전염병으로 인해 닭, 오리들이 수백 수천만 마리가 땅에 생매장되고 있으며, 사람에게는 독감, HIV바이러스와 요즘은 슈퍼 박테리아가 나타나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또 종말 징조로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천체적 이변이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 여섯번째 인을 떼실 때에 ‘12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하늘의 별들 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하늘은 두루 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해서 혜성이나 소행성의 지구충돌 같은 사건이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세상종말의 네번째 징조는 성도에 대한 핍박입니다.
’12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13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에서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는 종교적 핍박, 박해를 말하며 임금들과 집권자란 세속 권력자들로 인한 정치적 박해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한 말은 성도가 핍박을 당하는 것은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이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그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말입 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신자가 되는 것은 곧 전도자가 되는 것이요 전도자가 되는 것은 곧 순 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증거란 마르튀리온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마르트 순교, 순교자가 나온 것입니다.

마태복음 5: 11, 12에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우리가 신앙 때문에 잡혀 갈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과 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14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15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누가복음 21: 16-19,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17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8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19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공산치하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형제가 형제를 친척이 친척을 친구가 친구를 고 발했습니다. 여기 모든 사람이라 했는데 이 ‘모든 사람’은 인종, 신분, 국적, 성별, 연령 등을 초 월한 총체적인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을 것이라 했는데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믿는 성도들에 게 핍박이 있을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핍박 박해가 있더라도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 니하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앞 절과 모순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 니다. 앞에서는 분명히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머리 카락 하나라도 주님께서 다 세신다 하였습니다. 주님의 섭리가 아니고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손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핍박 박해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으로서 이는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한 섭리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와 은혜가 요구됨은 물론 우리에게도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로 예루살렘의 멸망 예언(누가복음21:20-24)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1그 때 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22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23그 날에 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24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 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우리가 마태복음 24장이나 누가복음 21장을 읽을 때에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종말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이 구절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하는 것인지 세상 종말 때를 이야기 하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누가복음 21:20-24은 분명히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에 있는 자 들은 성안으로가 아니라 산으로 도망치고, 성 내에 있는 자들은 성 밖으로 나갈 것이라 했습 니다. 옛날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굳건한 성벽이 있는 성 안으로 피난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 입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은 히스기야왕 때에 앗수르군대에 포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사 하루 밤 사이에 앗수르군대 십팔만 오천명을 멸살시킨 유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생각하기를 예루살렘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서 지켜 주신다고 생각하여 전쟁이 일어나면 성 안으로 몰려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멸망 징조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곳에 머물지 말고 성 안에서 도망쳐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패역한 예루살렘 성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지킨 그리 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에 모두 요단강 동편 펠라 지역으로 피신함으로써 주후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에 진격하여 무참한 살상을 감행할 때에 성안에서 죽은 그리스도인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루살렘 성 내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물샐 틈 없는 포위망을 어떻게 뚫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 포위 작 전을 펼치던 로마 장군 베스파시안 휘하의 세스타우스 장군은 포위망을 좁히면서 성을 공격하 다가 특별한 사유도 없이 잠시 물러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했 던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예루살렘성의 멸망의 징후로 보고 풀린 포위망을 지나 데가볼리의 한 성읍인 펠라로 도망을 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당시의 기록을 보면 ‘거룩한 사람들에게 내린 계시 덕택에 전쟁이 있기 전에 온 교회가 요단을 건너 펠라로 이주하여 거기서 혼란기 동안 안 전하게 지냈다.’했습니다.

한편 이때에 베스파시안 장군의 군대가 왜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포위망을 풀었을까입니다. 그 이유는 로마 황제 네로가 죽자 황제자리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베스파시안이 로마로 군 대를 이동하게 됨으로 포위망이 풀린 것입니다. 그후 베스파시안이 황제가 되면서 아들 디토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기 전까지 잠시 동안 포위망이 뚫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을 핍박하던 네 로를 죽임으로 로마에 있던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아울러 그 사이에 예루살렘 성 포위를 잠깐 뚫어서 예루살렘 성 안의 성도들도 구해내셨습니다. 이와 같이 종말의 때에도 하나님께서 성도 들을 지키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4:16-20,  ‘16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 지 말지어다. 19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너희가 도망 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했는데 이 말씀에서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이 얼마나 임박했으며 구원받 을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촉박한 것을 보여 줍니다. 밭에 있는 자들은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 키지 말라고 한 것은 들에 있었으니 옷을 챙겨서 도망치려고 하겠지만 그렇게 꾸물거리다가 목숨을 잃게 될 것을 말합니다.

더욱이 그 당시 열심당원들이 예루살렘 성 안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성을 빠져 나가는 것을 철저히 통제했었기에 시간이 얼마나 겁박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21, 22에, ‘21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 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했는데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예루살렘 멸망 당시 하나님께서 섭리로 그 환난의 기간을 단축하셨습 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진노의 기간을 제어하지 않으셨으면 그 비극은 극에 다달았을 것이고 그 영향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멸망 중에라도 그 택하신 백성들을 보존하시기 위해서 환난의 날들을 감축 하셨습니다. 즉 유대와 로마 사이에 비록 많은 사상자를 내기는 했으나 그 전쟁은 단 시간 약 5개월 만에 끝났음으로 나라 전체가 황폐화 되는 것을 막았으며 더 많은 사상자가 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이처럼 빨리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헤롯 아그립바 가 자신의 재위 기간 동안에 예루살렘 성벽을 공고히 쌓기 시작했지만  이 공사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명령에 의해 주후 42년 경에 중단되었습니다. 만약 이 성벽 공사가 완성 되었더라면 전쟁은 아주 오랜 기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둘째로 예루살렘 성내에 거주 했던 유대인들은 내부적인 분열과 갈등이 심해 로마 군대의 침 입을 막을 하등의 준비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유대인의 종교적 일치성을 기반으로 모든 전력을 다해 로마 군대에 맞섰다면 더 큰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셋째로 로마 군대가 진입 하기 전에 이미 곡식 창고가 소각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러 종파 들의 주도권 싸움에 의해 곡식 창고가 불탐으로써 일부 요새에서는 싸울 의욕을 잃고 투항해 버린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섭리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종말 때에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환난 날을 감하지 않 는다면 아무도 그 환난에서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1:24,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 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이 보낸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이 유월절 순례자로 가득차 있을 때인 주후 70년 4월부터 시작하여 약 5개 월 동안 성을 포위한 결과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때에 살해된 유대인은 110 만 이었고, 포로로 잡혀간 수는 97,000명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예언은 정확히 성 취되었습니다. 이는 종말에 있을 7년 환난의 전조로서 선지자를 잡아 죽이고 메시야를 십자가 에 못박아 버린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종말에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모든 자들에게 더 큰 형벌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21:24 하반절에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했습 니다.  누가복음 21:29에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이스라엘이 다시 소생할 것을 예언하셨는데 1948년 5월 14일에 유엔에 의해 주권과 영토를 얻게 되었고 1967년 6일 전쟁으로 예루살 렘을 반쪽 탈환하게 됩니다. 그래서 24절의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밟히는 역사가 끝나게 되어 누가복음 21:24의 예언도 성취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1장의 종말예언은 예수님의 예언 입니다. 칼빈이 주석을 쓰지 않았다고 요한계시록을 방관하고 무시하면 칼빈을 바라보다가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의 결론에서 종말의 때에 종말을 준비하도록 성도들에게 때를 따른 양식을 공급하지 않고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는 목사님들을 악한 종이라 했으며 엄히 때릴 것이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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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오직 여호와만 앙망하라   이사야 40:27-31 김준식목사 2017-07-22 11632
91 천사와 성도의 관계    히브리서 1:14 김준식목사 2017-07-29 12659
90 천상의 영적 존재들, 그룹(Cherubims)  에스겔서 1:22-28 김준식목사 2017-08-20 11675
89 천상의 영적 존재들, 스랍  이사야 6:1-4 file 김준식목사 2017-08-20 11684
88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1     누가복음 20:20-47 김준식목사 2017-08-20 11615
»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2 누가복음 21:5-24) 김준식목사 2017-09-02 12020
86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3  누가복음21:25-38 김준식목사 2017-09-02 11866
85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4(주님 재림의 때가 가까운 4가지 예언)누가복음 21:29-36 김준식목사 2017-09-13 11771
84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4(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4가지 징조 2)누가복음 21:29-36 김준식목사 2017-09-16 11881
83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5   마태복음 24:42-51, 누가복음 12:35-48 김준식목사 2017-09-16 12448
82 주님이  걸어 가신  십자가의  길  16 (마태복음 25:1-13) 김준식목사 2017-10-15 11435
81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7 마태복음 25:14-46 김준식목사 2017-10-15 11709
80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8  누가복음 22:1-23 file 김준식목사 2017-10-22 11989
79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19 누가복음 22:24-38 요한복음 13:1-20 김준식목사 2017-10-22 13304
78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0 요한복음 14:1-9 김준식목사 2017-11-10 11175
77 예수님이 걸어 가신 십자가의 길  21  요한복음 14:12-31 김준식목사 2017-11-12 11341
76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2   요한복음 15:1-27 김준식목사 2017-11-24 11300
75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3 요한복음 16:1-33 김준식목사 2017-11-26 11283
74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4    요한복음 17:1-26 김준식목사 2017-12-03 11331
73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25  누가복음 22:39-62 김준식목사 2017-12-18 10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