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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혼인잔치의 기적 요한복음 2:1-11

조회 수 16780 추천 수 0 2016.02.22 11:38:34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을 때에 그 말씀의 문맥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말씀에서 주시려고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말씀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나혼인잔치의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으로 인해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적이 마리아의 믿음으로 인해 촉발되었습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할 때에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물과 같은 무의미하고 맛없는 인생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포도주와 같은 색깔있는 인생, 맛을 주는 인생,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인생으로 바뀌어졌다고 합니다. 그 스토리 자체적으로는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이 본문말씀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말씀에서 마리아의 믿음과 그 믿음의 결과가 어떠했는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저는 하나님이 너무 어렵고 무서웠습니다. 엄격하고 근엄하고 차갑고 말이 없고 화를 잘내는  분이었고, 칭찬은 전혀 없고, 못하는 것만 골라서 꾸짖는 그런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십년 동안 도망치고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고 나서 말씀을 깊이 깨달으면서 하나님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의 질문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질문이 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잔치를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잔치에는 풍성한 음식이 있고, 음악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춤이 있으며, 웃음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잔치를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첫 기적이 잔치집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될 무렵에 세례요한의 사역이 활발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도 예수님과 세례요한을 비교하곤 했습니다. 그 때에 세례요한은 요즘 말로 하면 인기 있는 설교가 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그의 집회에 몰려 가고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정규적으로 제자들과 함께 금식을 했었습니다. 


한 유대인이 와서 예수님께 묻기를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결혼하는 신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막2:18-19).


신랑은 금식할 수 없습니다. 신랑은 사랑받고 기쁘하고 즐거워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에 혼인잔치에 대해 자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파티를 자주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함께 음식을 잡수시고 파티에 초대되어 음식을 잡수시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줍니다. 그래서인지 마태복음 11:15-19말씀에서 말씀하시기를, 요한은 와서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신랑으로 표현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랑과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크게 웃으시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신 분이십니다. 모세 오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일곱절기를 주었습니다. 절기란 추석이나 설날 같은 날입니다. 절기는 즐겁고 신나는 날입니다. 이 일곱 절기 중에 세번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서 지켜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12살 이상 모든 남자들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 와서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레위기 23:40하반절 말씀에, '..여호와 앞에 칠일동안 즐거워할 것이라.'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기를 즐거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안식일을 주셔서 육일동안 일하고 칠일째는 쉬게 하셨서, 인생들이 사는데 너무 힘들지 않고 즐겁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드리는 삼대절기 때는 아버지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눅 예루2:41-43) 여행을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사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 3-5일 길, 또 예루살렘에서 칠일동안 절기를 지키고 또 내려가는 길 3-5일길을 가는 2주 동안 가족, 친척, 이웃들과 함께 신나게 이야기하고 떠들고 먹고 여행을 했습니다(눅2:44). 그 때에 어른들도 그렇지만 소년 소녀들이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풍경이며 엄마 아버지와 함께 여유있게 대화할 수 있고, 친척들과도 친해지고 이웃들과도 더 친해지는 기회가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절기를 지키려 오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국경을 지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이렇게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신나고 즐겁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이 즐겁고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셔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둘째로 가나혼인잔치집의 문제
어느날 가나동네에 혼인잔치가 열렸습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그 잔치집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니라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벌써 와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잔치집의 음식이 떨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하인들에게 명령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혼인잔치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청함을 받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포도주가 일상적 음료였고 잔치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어 가는 중요한 음료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말하기를 잔치집에 포도주가 없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잔치집의 난처한 상황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잉태된 메시야임을 천사의 방문을 통해 알고 있었으며, 또한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예수님의 권능을 통한 이적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여자여'라고 번역되었는데 어색하고 무례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원문의 단어는 그리스에서 왕이 왕후를 부를 때, 혹은 자기의 아내를 사랑스레 부를 때에 사용된 존칭어였습니다. '여자'라는 칭호를 십자가상에서도 어머니를 부를 때 사용하셨습니다. 이 호칭을 큰 슬픔과 비탄에 젖어 있는 어머니를 향해 가장 인간적이고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를 부를 때에도 이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셨는데 이것은 문자적으로는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입니까'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주님은 어머니의 지시를 따르는 것을 공손한 어투로 거절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마리아가 어머니로서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이것해라 저것해라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요셉이 죽고난 후에 동생들과 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그러나 공생애에 들어와서 이일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지 육신의 모친의 뜻을 따라서는 않됩니다. 이적을 행하는 동기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야지, 어머니의 요청에 의한 것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사람의 입김이 포함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어머니여'한 것이 아니고 '여자여'한 것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시려거든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서 하라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자여' 한 것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여인들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부탁하되 믿음으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때는 약속된 특정한 시간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임을 공공연이 나타내는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신적 권능을 가지셨으나 그의 사역을 수행해 나가시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정된 시기에 지정된 일을 이루어 나가심으로 성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셋째로 마리아의 믿음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하였지만 그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차원에서 현명하게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이제는 인간적인 조급함보다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뜻에 순종케하려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것은 하인들에게 부탁하기를,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잔치집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실 지는 모르지만 그 문제는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그러므로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했을 때에 하인들은 여섯 항아리 모두 아구까지 물을 가득채웠습니다. 여기에 두 세통 더는 항아리 여섯개는 유대인들의 결례에 사용하는 물통들이라 했습니다. 이 돌항아리들은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나 식사 전후에 손을 씻기 위한 것이며 이것은 단순히 위생적인 문제가 아니라 밖에서 접촉한 부정한 것을 제거한다는 종교 의식적인 것입니다. 이 돌항아리 하나는 두세통드는 물통인데  한 항아리에 20갤론 정도 들었습니다. 여섯 항아리는 120갤론의 용량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명하시기를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하인들이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는데 연회장은 물로된 포도주를 맛보고 그 탁월한 맛에 연회장이 놀랍니다. 그리고 신랑을 불러 칭찬을 합니다. 다른 잔치집에서는 처음에는 질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사람들이 취한 후에는 질이 떨어지는 포도주를 내놓데 그 신랑은 그때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었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그 잔치집의 문제에대해 상관이 없다고 하시면서 거절을 하셨는데 어떻게 마음을 변하여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까?


넷째로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결과
본래 예수님은 마리아의 부탁을 거절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로서 아들에게 이적을 행할 것을 부탁한 것에 대해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깨닫고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평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믿음과 신뢰로서 구하였더니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마음을 돌이키사 이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내 때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이적을 행하신 것은 한 여인의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하인에게 말하기를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마리아의 말에서 그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볼 때에 성도의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도 바꾸시고, 하나님의 달력도 바꾸시기까지 하시면서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내 때가 아닙니다라고 하셨지만 한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의 때를 앞당겨서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정된 시간을 변경하시기까지 하셔서 신랑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어머니의 부탁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여인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이 아니라 한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님들이, 그리고 나 혹은 마리아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때도 바꾸시고,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도 바꾸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십니다. 그 원하심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마태복음 9:2-7에서,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저희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또한 마9:27-29에서 두 소경이 와서 눈을 뜨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희들에게 묻기를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하고 물었을 때에 이들이 믿는다고 했을 때에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눈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5:25-34에서 열두해 혈루병으로 고통당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가를 만져도 내 병이 나을 것이라는 것을 믿고 만졌더니 병이 나았습니다. 그 여인에게도 말씀하시기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10:5-6에서 열두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이방인에게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에게도 가지 말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만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타임 스케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한 여인의 믿음이 하나님의 타임 스케줄을 변경시키 사건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마가복음 7:25-30에서,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헬라인 이방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 딸을 구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27절에서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하겠다는 말은 이스라엘백성에게 먼저 복음의 혜택을 줄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는 말은 이방인들의 차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여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은 이방인들을 개같이 여겼습니다. 주님이 이 이방여인을 개같다고 하여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응답하기를 28절에,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이 여인의 믿음에 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의 이 믿음의 말이 하나님의 때를 변경시켰습니다. 하나님의 타임스케줄을 바꾸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베푸는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먼저 앞당겨 복을 취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인의 믿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8:1-8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낙심치 말고 항상 기도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6절에서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소원을 속히 응답하시지 않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기다리게 하시겠는가? 저희에게 속히 응답해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는가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쪽에서는 자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속히 응답에 주시기 위해 안달인데 말세에는 사람들이 믿음이 없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믿음을 보겠는가했습니다. 그래서 하늘 창고에 재고품들이 넘쳐 나는데 기도해서 챙겨가는 사람들이 많아야하겠습니다.


그런데 성자하나님의 기도를 성부하나님께서 거절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십니다. 마태복음 26:39에서,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유는 만약 예수님의 청을 들으주면 우리를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가롯 유다와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포위했을 때에 베드로가 칼을 휘둘러 말고의 귀를 베었을 때에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26: 53-54에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죽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는 인생들을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요한복음 2:1-11을 기록한 의도는 믿음을 가지고 간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믿고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믿어야 구원도 받고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때를 변경하시기까지 하시면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 본문의 결론은 예수님의 가나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이적을 체험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로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들이 즐겁고 기쁘고 재미있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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