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파루시아와 마라나타 요한계시록 22:6-21

조회 수 17158 추천 수 0 2016.02.22 11:20:19


우리본문 요한계시록 22:6-21은 구약과 신약의 결론 중의 결론입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은 신구약의 결론의 책입니다. 구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님은 영원세계에 사시다가 시간세계로 내려 오셔서 지구와 온 우주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참 자녀를 얻어 다시 영원세계로 들어가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지구에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하고 그 인간을 구원하시려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이 모든 구속의 길을 열어주신 후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후에 천국으로 되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재림하시리라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셔서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마귀를 멸하시고 자녀들과 함께 새하늘 새땅으로 들어가셔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을 잃게 되지만 계시록에서는 잃었던 에덴동산을 다시 회복하십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신구약 66권의 결론인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은 또한 신약성경의 결론입니다. 주님께서 성육신하셔서 구속사역을 다 이루시고 승천하실 때에 다시 오신다고 하심 따라 재림하심을 나타내는 계시록은 신약성경의 성취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22:6-21은 신약성경의 결론이요 신구약 66권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들이란 모두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재림은 죄와 질고로 가득찬 이 세상이 종말을 고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예수께서 당신의 십자가 수난으로 이미 성취하신 구속 사역이 이제 온전히 실현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천국이 도래하는 분기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참으며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그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은 오늘날 우리들만이 가진 것이 아닙니다. 영광 중에 다시 이 땅에 오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마 24:30, 44, 행1:11)을 믿는 모든 시대의 신실한 성도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오늘 이후에도 주님이 재림하시는 바로 그 순간까지 모든 시대의 성도들은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 가운데에는 주의 재림과 관련된 것으로서 이러한 성도들의 염원을 생생하게 반영해 주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를 나타내는 헬라어 '파루시아'와 '주여 어서오시옵소서'란 뜻을 지니는 아람어 '마라나타'가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두 마디로 요약한다면 파루시아! 와 마라타나! 입니다. 이제 이 두 단어가 지니는 의미를 먼저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파루시아(παρουσία) (계22:20)
파루시아(παρουσία)” 는 '오다'(마26:50), '이르다'(요7:6)란 뜻을 지닌 동사 '파레이미'의 현재 분사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도착', '임재'란 일차적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인 '방문'을 나타낼 때도 사용하였으나(고전 16:17) 대부분의 경우 이 땅에 왕으로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강림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헬라적 용법이 통치자의 공식적인 방문이나 또는 신적 존재의 현현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4회나 사용되었는데 그 가운데 15회가 이 세상 마지막에 있을 그리스도의 오심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마24:3, 27, 37, 39, 고전 15:23, 살전 2:19, 3:13, 4:15, 5:23, 살후 2:8, 약 5: 7,8, 벧후 3:4, 12, 요일2:28).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만왕의 왕으로서의 강림하심이며 하나님의 신성을 지닌 심판주로서의 강림임을 함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초림하신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초라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지상 사역도 사람들의 질시와 고초를 겪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초림의 양상과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 줄 것이라는 것을 이 '파루시아'란 용어에서 발견합니다. 즉 예수님이 성취하신 구속사역의 최종 실현인 천국 구원은 물론 사단의 무리에 대한 최종적 심판까지 함께 수행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권세를 가진 왕의 임재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영광 중에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구름을 타고 나타나심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한 재림 시에 죽은 자들의 부활이 일어나며 그리스도를 맞기 위해 생존 성도들은 순식간 변화되고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기여한 사람들이 상급으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파루시아라는 말은 바로 이런 모든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본문 가운데 파루시아, 즉 속히 오리라는 말씀을 세번이나 하셨습니다. 계22:7, 12, 20입니다. 속히 오리라, 속히 오리라,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렇게 세번이나 거듭 거듭 강조 하시면서 반드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진실로 속히 오실 것입니다. 여기 속히 오리라는 오리라(에르코마이)는 헬라어 문법상 미래형이 아니고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앞으로 먼 미래에 오실 것이 아니라 이미 오시고 계심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때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고난 받는 자기 백성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속히 오시겠다고 하시고 아직도 오시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베드로후서 3:8,9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했습니다.


우리 인생인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시간관계에 있어 사람의 시간(크로노스)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천년이 하루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2천년 동안 기다린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는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파루시아! 주님은 속히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영광 중에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믿고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 )(계22:20)
'파루시아'가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여 주는 용어라면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 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는 성도들의 자세를 보여 주는 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평상시 사용하던 아람어의 음역인 이 말은 마란과 아다의 복합어입니다. ''마란'은 '우리 주'란 뜻이고 '아타'는 '오다'란 단어의 명령형 혹은 청유형으로서 ''주여 오시옵소서'란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 가운데는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한다는 것과 또한 다시 오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신앙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표현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하는 기도의 형태로서 기도하는 신앙의 자세를 보여 줍니다. 이 용어에는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주인이시며 역사의 섭리자로서 기도의 대상임과 동시에 이 세상을 공의로써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분이심을 신뢰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속히 오시기를 바라고 청하는 신앙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기도는 아무나 드릴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므로서 심판주요 구속주로서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것을 고대하며 기뻐하는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초대교회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성숙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며 '마라나타'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말은 본래 초대 교회에서 성찬예식을 행할 때에 공식적으로 사용한 기도문이라고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금방이라도 재림하시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염원이 이처럼 하나의 기도문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같은 기대 속에서 날마다 핍박을 이겨내며 승리의 삶, 기쁨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흔한 이스라엘 인사말인 '샬롬' 대신에 이 인사말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주님 오시기까지 지상에는 참 평화가 없다는 인식에서였습니다. 초대 성도들이 이 인사말을 애용하게 된 배경은 로마 제국이 성도들에게 황제를 '주' 또는 '신'으로 부르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참되신 주님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에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다 보니 박해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이 그들에게 유일하고 애절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라나타'라는 말은 먼저 극심한 박해 속에 재림에 대한 절박감과 절대적인 갈망에서 우러난 탄식 그리고 통곡 같은 애원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이 땅에서 성도들이 겪던 모든 고통은 끝나고 악도 멸망하고 구원을 입은 모든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 안에 마련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복락과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 모두의 최고의 최대의 최선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언제라도 주님을 맞을 수 있는 채비를 갖춘 가운데 초대 교인들이 날마다 신앙고백하였듯이 우리 역시도 썩어질 이 세상에 얽매이지 말고 담대하게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를 외쳐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재림의 임박성과 불신자들에게 대한 경고
계시록 22:11절에서, '불의를 하는 자는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했습니다. 


본절은 악인들이 더 이상 회개할 여지가 없다는 급박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그만 두라는 의미가 아니라 도리어 보다 강렬하게 죄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역설적인 문장입니다. 이제 종말에 대한 계시가 다 드러났고 그 종말의 때가 가까웠으므로 신속하게 회개하고서 악에서 돌이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가 가까워 회개할 기회가 너무 촉박하므로 어서 빨리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암시입니다.

또한 계22:15에서도,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했습니다.  여기 '개들'이란 상징적인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사악한 자들과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의한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성밖에 있다'는 말은 이들이 단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불못의 지옥에 떨어질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날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불못 사이에 인간이 머물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이 구절을 잘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 계21:8 말씀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사망이라'했습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자들이란 비겁한 자, 곧 핍박으로 말미암아 신앙을 저버린 자들을 가리키며,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란 글자 그대로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한 불신자들을 말하며 흉악한 자들이란 가증한 자들을 말하는데 성경에서는 가증하다는 말은 우상숭배 행위나 사단을 추종하는 것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됩니다. 살인자들과 행음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금하신 윤리 덕목 중에서 가장 큰 덕목을 위반한 자들입니다. 음행은 사단이 말세에 세상을 타락시키는 큰 무기입니다.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악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계22:15의 성밖에 있으리라는 말은 불못에 떨어지리라는 말입니다.


넷째로 구원에로의 마지막 초청과 상급
계22:13에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계1:8과 21:6에도 있습니다. 이 말들은 모두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말로서 그리스도께서 성부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분으로서 우주 만물의 창조주요 최후의 심판자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계22:16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이런 주님께서 초청하시기를, 계22:12에서,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했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지만 믿음은 믿음에 합당한 행위를 수반해야 합니다. 그 행위에 따라 상급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역하실 때에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27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하셨고, 또한 계시록 2:23에서도 행한대로 갚아 주신다 했습니다.


계22:14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을 얻으려 함이로다.' 했습니다. 두루마기를 빤다는 말은 계7:14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의 보혈에 자기 죄를 씼어 속죄함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은 생명나무에 들어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라 했는데 이 문은 예루살렘성 문을 말하며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요 하나님의 로얄페밀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22:17절 말씀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말씀에 대한(7,12, 20) 성령님과 교회의 응답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시겠다고 하자 그리스도의 재림을 열망하는 교회가 성령님과 함께 어서 오시라고 응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교회와 함께 성령님께서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고 있는 까닭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까지 성령님이 교회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보혜사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계시록의 절대성의 증언과 경고(계22:18-19)
첫째로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했습니다.

계22:18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 인에게 증거하노니,'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듣는 각인들이라 했는데 계1:3에서 '읽는 자와 듣는자'라 했습니다. 계시록을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이 본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첨삭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 그 어떤 것도 첨가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 했습니다.


둘째로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 절대적이지 않은 어떤 것들을 첨가하려는 시도만큼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나 전부를 제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불경스러운 죄악이기에 이런 자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결론으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22:10)
구약 다니엘서 8:26과 12:4,9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인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는 인봉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인봉하라고 명령한 것을 이제는 인봉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이유는 계시록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가 실현될 시기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종말 직전에 있을 이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들과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고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질 시기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 시기가 멀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모든 사람이 알도록 인봉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예언들은 점진적으로 밝혀지는 것입니다. 이제 말세 중에 말세에 있습니다. 인봉을 하지 말라는 것은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종들은 모두 반드시 계시록을 연구하여 알아야 하겠으며 성도들은 계시록을 배워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말세를 사는 자들로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깨닫고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 고린도전서 15:1-11 김준식목사 2016-04-07 16116
91 하나님의 자녀들과 수호천사들 마태복음 18:10, 히브리서 1:14, 누가복음 16:20-22 김준식목사 2016-04-07 17042
90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 마태복음 24:42-50, 누가복음 12:35-48 김준식목사 2016-03-04 16981
89 거라사인 상육작전 누가복음 8:22-40 김준식목사 2016-03-04 15980
88 이스라엘과 세계와의 관계 다니엘 9:24-27 김준식목사 2016-02-22 16511
87 하나님은 왜 마리아를 선택하셨는가? 누가복음 1:26-38 김준식목사 2016-02-22 17003
86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 요한복음 2:1-11 김준식목사 2016-02-22 17142
85 계시록이 보여 주는 일곱 가지 복 계시록 1: 3 김준식목사 2016-02-22 16262
84 짐승표 666과 베리칩과의 관계 계시록 13:14-18 김준식목사 2016-02-22 17331
» 파루시아와 마라나타 요한계시록 22:6-21 김준식목사 2016-02-22 17158
82 요한 계시록이란? 요한계시록 1:1-20 김준식목사 2016-02-22 17278
81 주님 재림의 때가 가까운 4가지 예언 마태복음 24:32-35 김준식목사 2016-02-22 17173
80 에벤에셀 사무엘상 7:1-14 김준식목사 2016-02-22 17225
79 성탄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마태복음 2:1-11 김준식목사 2016-02-22 17171
78 말 밥통에 누이신 그리스도 누가복음 2:1-20 김준식목사 2016-02-22 15609
77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신명기 11:8-21 김준식목사 2016-02-22 16729
76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마태복음 25: 1-13 김준식목사 2016-02-15 17045
75 오직 여호와만 앙망하라 이사야 40:27-31 김준식목사 2015-11-16 17200
74 하나님의 섭리 누가복음 1:5-25 김준식목사 2015-11-16 17662
73 예수님의 족보 제 2 기 마태복음 1:6-11 file 김준식목사 2015-10-31 19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