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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이란? 요한계시록 1:1-20

조회 수 17279 추천 수 0 2016.02.22 11:13:32


요한계시록 1장은 요한계시록의 서론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6-21절은 계시록의 결론입니다. 서론과 결론의 내용을 보면 비슷한 내용이 많습니다. 오늘은 계시록 1장을 다루고 다음 주일에는 계시록의 결론을 다루려고 합니다.


첫째로 요한계시록의 상징성에 대한 문제
많은 목사님들이나 성도들이 계시록에 대해서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계시록은 이해하기에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모르면 어렵습니다만 계시록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또 계시록은 추상적이고 상징적이라서 어렵다는 것입니다.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것이 많기는 하지만 추상이나 상징성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계시록 1:1에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라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계시록을 기록할 때에 구약의 선지서나 신약의 서신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눈으로 본 것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3절에서도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이 무엇을 보았다고 합니까? 그것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 비추어서 생각해 볼 때에 요한계시록은 1세기 사람인 사도요한이 21세기 문명을 환상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문명이라 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과학, 역사, 기후, 전쟁을 총망라해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1세기 사람이 21세기 문명을 보았는데 그것을 책에 글로 기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1세기 문명 안에 사는 사람이 21세기 문명을 보고 어떻게 그것을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21세기 문명을 보았지만 1세기 사람이니까 1세기 식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요한이 21세기 문명 기기인 기차를 보았다고 합시다. 이것을 기술해야 합니다. 기차는 빨리 달립니다. 그 당시에 빨리 달리는 것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 빨리 달리는 기차가 철로 만들어졌고 철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고 1세기 문명으로 21세기 문명을 기록하기를, 철마가 철길 위로 달린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렇게 기록된 요한계시록을 21세기의 성도들이 볼 때에 추상적이다 상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 추상적이라고 생각되거던 이것이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좋은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이사야 60:8에, '저 구름같이 비둘기 같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비행기를 타고 이스라엘 땅으로 오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가 환상으로 비행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하늘을 나는 것은 구름과 새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구름 사이로 날아오는 사람들을 주전 700년에 살았던 사람이 어떻게 묘사해야 했겠습니까? 저 구름 같이 저 비둘기 같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라고 묘사했던 것입니다. 이 구절을 비행기가 없었던 150년 전에 살았던 성도들이 볼 때에 이 구절은 추상적이다, 상징적이다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것이 비행기를 타고 본토로 돌아 오는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했구나하고 디코딩(DECODING)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차가 생기기 전인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살았던 성도들이 이 계시록을 볼 때에 기차에 대한 계시록의 진술인 철마가 철길을 달린다는 말이 추상적이요 상징적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철마가 철길을 달린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우리 성도들은 그것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기차를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기차를 보고 또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이해는 점진적인 것입니다. 2천년 전의 성도들이 계시록을 30퍼센트 이해했다면 6세기의 사람들은 40퍼센트, 150년 전의 성도들은 이 계시록을 70퍼센트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며 오늘날의 성도들은 90퍼센트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안 풀리는 부분이 조금 남았습니다. 예를 들면 계시록 10:4말씀에서 일곱우뢰가 발할 때에 요한이 그것을 기록하려고 했을 때에 주님이 그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요한계시록의 저자와 계시록을 주신 목적
1.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1절에 보면 원 저자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알리시려고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성부하나님이 성자 하나님께 드리고 성자하나님은 천사에게 주어 환상으로 사도요한에게 전달하고 사도 요한은 자기가 본 것을 기록하여 주의 종들에게와 성도들에게 전달하신 것입니다.


2. 이 책을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라 했습니다. 여기 읽는 자들이란 유대인 회당에 가면 인도자가 두루마리 책을 읽고 그 구절을 해석해 줍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지도자가 읽고 설명하는 것을 귀로 듣습니다. 여기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란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말하며 듣는 자들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읽고 듣는 자들이 읽고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언의 말씀대로 행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복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여기에 예언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이 예언의 말씀을 어떻게 지켜 행합니까?
그것은 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면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을 깨닫고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거듭나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계시록 13장의 짐승표 666을 받지 않아야 하고 죽기 까지 믿음을 지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될 때에 이 사람은 행복자인 것입니다.


4. 이 요한 계시록은 묵시록을 편지로 보낸 것입니다.
이 계시록을 그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7 교회들에게 편지 형태로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소아시아 지역에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7 교회에만 편지를 쓴 것은 이 7교회들이 그 당시 전 교회들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칠일 동안 창조하셨다는 그 일곱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절대적 완성을 상징하는 완전 수요 전체를 나타내는 수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에 보내는 이 서신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한 모든 교회에게 보내는 서신인 것입니다. 이 일곱 교회는 일곱 패턴의 교회들입니다. 그 당시는 물론 이거니와 교회의 전체 역사를 통해서 이런 일곱 성격의 교회들을 말합니다. 에베소 같은 첫 사랑을 잃은 교회, 서머나와 같은 박해받는 교회, 필라델피아 같은 전도, 선교하는 교회, 라오디게아 같은 세속적이요 재물에 눈이 멀은 타락한 말세 교회 등등입니다.


셋째로 계시록을 주신 주님의 모습

1. 구름타고 오시는 주님
그 당시 교회들은 로마정부에 의해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을 때입니다. 이 계시록이 성도들이 세상에서는 핍박을 당하나 곧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죽기까지 신앙을 지키도록 권면과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재림의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 아멘'했습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박해와 죽임을 당하나 구름타고 오시는 주님을 맞이 하고 다 부활하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여기서 구름 타고 오시는 주님을 '각인의 눈이 그를 본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림하실 때는 소수의 사람들이 탄생을 목격했지만 주님이 재림하실 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했습니다. 이 구절이 이해가 안됩니다.


이 말씀은 스가랴서 12:10의 내용과 같습니다. '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했습니다.


2.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해 통곡하리니'했습니다.
스가랴서 12:12이하에서도 유대인들과 세상 사람들이 회개의 통곡을 하는 것을 봅니다. 계시록 1:7에서도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그를 인하여 통곡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공중강림하실 때에 구름타고 오셔서 성도들의 몸을 부활시키시고 살아 있는 자들을 순식간에 변화시켜 하늘로 데려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신들은 들림 받지 못한 데 대해 통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 중에 불신자들은 자신들이 당할 심판을 생각하고 통곡할 것이요 들림받지 못하고 남은 신자들은 들림받지 못했음을 통곡할 것이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그 때야 회개하며 통곡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 한 로마 병사가(요19:34)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를 찌른자들'로 복수로 표현되었습니다. 계시록 1:7과 스가랴서 12:10에서 그를 찌를 자들도 보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을 찌른 자들이 어찌 재림의 주님을 본다고 할 수 있느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찌른 자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 것을 깨닫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 병사로 하여금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도록한 배후 세력인 로마 관원들과 유대 관원들까지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더 나아가 주의 제자들을 박해하던 유대인들과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모든 유대인들도 역시 주를 찌른 자들에 포함됩니다. 또한 주님께서 모든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사 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로마 병정에게 옆구리를 찔렸다면 주님의 찔림은 우리 모든 인간들의 죄악을 위한 것이므로 광범위하게는 우리 자신들도 그 찌른 자에 포함됩니다.


셋째로 사도요한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
사도요한은 교회 전승에 의하면 로마의 제 10대 황제 (AD 81- AD 95)인 도미티아누스가 사도요한을 끓는 기름가마에 넣어 죽이려고 했지만 사도 요한이 죽지 않자 밧모섬으로 귀양을 보냈는데 그 때가 거의 100살 가까운 나이였다고 합니다. 주후 95년에 11대 황제인 넬바가 황제가 되면서 풀려 났었는데 밧모섬의 유배는 AD95- AD 96년의 약 1년 사이의 기간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어느 주일날에 성령에 감동되었는데 주님께서 요한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팔소리 같이 큰 음성이 뒤에서 들렸는데 그 주님을 보기 위해 뒤를 돌아 봤습니다.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시는 주님을 목격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장차 될 일을 보여 주시면서 그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교회에 보내라고 합니다. 사도요한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런 모습이 아니라 천상에 계시는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1. 그 주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이러한 차림은 대제사장의 옷 차림과 같습니다(출28:4, 8, 레위기 16:4). 또한 왕의 차림과도 같습니다(사6:1).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의 대제사장과 왕으로서 존귀와 위엄을 지니고 계신 분임을 묘사합니다. 사도요한은 환상 중에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대제사장이시요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단10:5,6).


2. 또한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같으며(단 7:9))했습니다.      양털 같고 눈과 같은 흰 머리털은 영생, 지혜, 성결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흰 머리는 노인을 상징하는데 노인은 지내온 인생의 긴 연륜 만큼이나 지혜와 경험을 축적하고 있으며, 희다는 것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시고 지혜로우시며 성결하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니엘 7:9에, '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했습니다.


3. 또한 '눈은 불꽃같고'                                                   

다니엘서 10:6에서 언급된 메시야에 대한 묘사인 '그눈은 횃불같고'라는 말을 반영한 것입니다. 여기서 눈이 불꽃 같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과 인간의 마음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통찰력과 냉엄한 공의를 나타냅니다. 사실 모든 인간의 불꽃 같이 밝은 그리스도의 눈 앞에서 아무 것도 숨길 수 없으며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지 않아 죄악의 더러움으로 얼룩진 자들은 모두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다니엘 10:4-6에, '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5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6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4. 또한 '주님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서 10:6에 의거한 표현입니다. 발은 몸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견고하여 장차 그 원수를 짓밟을 때에 영광된 승리를 성취할 것임을 보여 줍니다. 장차 심판의 주로 오시는 주님의 발은 세상을 딛고 원수를 심판하실 영광과 권능의 발인 것입니다.


5. 또한 '그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같다'고 했습니다.                         

에스겔서 43:2에 의하면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음성을 표현할 때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많은 물은 거대한 홍수가 엄습할 때 나는 소리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권능과 위엄을 나타냅니다. 주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다는 것은 주님의 권능이 불가항력이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카전서 4:16에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에서 주님의 호령이 이와같을 것입니다.


6. 또한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오른 손은 능력과 힘을 상징합니다 (출 15:6, 시 45:4, 겔21:22) . 그러므로 주님의 오른 손은 주님의 절대적인 권능를 상징합니다. 일곱 별은 교회의 사자들 곧 우주적 교회를 지키는 하늘의 천사들을 지칭합니다. 주님은 천사들을 세워 자신의 교회를 지키고 그 천사들은 주님의 권능의 오른 손 안에 온전히 사로잡혀 그 오른 손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사자(앙겔로서)는 일반적으로 천사를 의미하나 때로 인간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눅7:27, 9:52).그래서 혹자는 본문의 사자가 요한이 일곱교회에 본서를 전달하기 위해 보낸 사자이거나 혹은 아니면 당시 그곳 교회의 감독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묵시문학에서는 이것이 인간을 지칭하는 예가 없으며, 본서에서도 67회 사용되고 있으나 모두 하늘의 천사들을 지칭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에 본문의 사자는 교회를 지키는 하늘의 천사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7. 또한 주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런 비유는 신약과 구약성경에 자주 나타납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살아 운동력이 있는 말씀을 상징합니다.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하나님의 말슴의 정확성과 뭇 사람.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예리함을 나타냅니다(이사야11:4, 49:2, 시 149:6, 눅2:35, 엡6:17 살후 2:8, 히4: 12) . 계시록 19:15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계시록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8. 또한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7:2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영광 되고 거룩하며 진실되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9. 또한 주님은 처음이요 나중이며, 전에는 죽었지만 이제 세세토록살아 계시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부는 헬라어로는 하데스요, 히브리어로는 스올이라 합니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의 구별 없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가는 곳으로 묘사되었습니다(왕상 2:2, 9, 욥 3:13, 30:23, 시 89:48, 사14:9, 겔 32:28) 그러나 이러한 음부개념은 점차 발전하여 불신자의 영이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중간기 처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낙원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영혼들이 몸의 부활을 하기 전까지 거하는 사후의 중간기 처소를 의미합니다. 구약시대는 누가복음 16장의 죽어 음부에 간 홍포부자가 눈을 들어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홍포부자는 뜨거운 불속에서 고통을 받았고 구원받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앉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서 음부에 내려 가셔서 선한 자들의 처소를 음부에서 낙원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사망은 죽은 자의 몸이 묻히는 장소를 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0:28말씀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했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이 성도들의 몸은 죽일 수 있지만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몸을 죽이는 세상 권력자들을 무서워하여 박해 때문에 신앙을 변질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믿음에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믿음은 양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은 언제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의 권력자보다 더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몸도 멸하시고 영혼도 멸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나중에 성도들을 죽였던 세상 권력자들과 사탄과 그 무리들을 지옥에 멸하시기 위해 지옥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우리 구주가 아니라 우주적 교회 공동체의 머리로서 무한한 권능과 권한을 가지고 만유를 다스리시며 종국에는 자기 백성의 집합체인 교회가 승리하도록 역사하시는 전능자시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사도요한에게 이른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인간 세상에서 박해받고 순교하는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며 영광과 권능을 가지신 분으로서 때가 되면 성도들을 박해하던 모든 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보여 주심으로 박해와 핍박에도 굴하지 말고 끝가지 인내하며 죽기까지 승리하도록 그 당시 성도들을 격려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 박해 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상 사탄은 끊임 없이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여 왔는데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은 나그넷 길인데 나그네 길을 행할 때에 몰아 닥치는 환란과 핍박과 박해에도 참고 인내하여 세상을 심판하려 오실 주님을 바라보고 신뢰하여 죽기까지 충성할 것을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승리한 초대교회 신앙선배들을 생각하며 우리의 승리를 온전하게 보증하시는 전능자이시며, 구주되시고 심판주되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마지막까지 승리하기를 원하셔서 주님의 이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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