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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만 앙망하라 이사야 40:27-31

조회 수 16789 추천 수 0 2015.11.16 14:52:00

 


오늘 본문으로 삼은 이사야 40:27-31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 시대로부터 150년 후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언한 말씀입니다. 역사적 배경은 앞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갖은 수모와 고통을 당하면서 좌절과 절망에 처한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향한 불평, 원망이 있을 것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포로 생활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다고 생각할 것인데, 이때에 이와같은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야곱'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이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이들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당하고 있는 극심한 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심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모든 의심하는 일과 원망을 버리고 한 없는 위로와 능력을 공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앙망하라는 신앙의 권면을 주는 것이 본문의 골자요  오늘 말씀의 요지입니다.

첫째로 성도는 여호와를 앙망하라.


이사야 40:27에, '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합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시간 속에 갇혀 있는 존재입니다. 때문에 어려운 일이나 고난, 원통한 일들이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조급해지고 나아가 하나님께 대한 의심과 원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시간 감각(크로노스)으로 계산해서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도우심이 지체된다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좀더 멀리내다 보는 하나님의 시각(카이로스)으로 세상 역사를 바라보는 믿음의 높은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같은 믿음의 성도들은 세상 역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또 내 사정, 내 주위 환경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오직 여호와 만을 앙망하는 신앙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곤비치도 아니하며 피곤치도 않을 것입니다. 새힘이 넘치는 환희의 삶을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 성도들은 비록 생활 중에 고난의 일이 있을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와 축복의 손길이 곧 임할 것을 소망하며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나님께 대해 어떤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의 시각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의 눈을 이 세상과 이세상에 있는 것들을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하고 있습니까? 오직 우리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로서만 말미암는 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본문 28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왜 하나님을 끝까지 기다려야 하며, 왜 하나님만 오직 앙망해야 하는 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창조주이시며, 피곤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시며, 하나님은 인간이 지닌 약점이 없으신 분으로서 피곤해 하시거나 곤비치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한 순간이라고 피곤하거나 지치신다면 그리고 능력의 제한을 받는다면 그가 다스리시는 이 우주는 혼돈의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한계성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초월자이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므로 당신의 백성이 무능하면 그들에게 넘치는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로 피곤하며 연약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새힘이 되실 것이라는 약속인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약해져 오직 여호와만 전적으로 의지할 때 여호와께서는 가장 강하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피곤해져 있거나 낙심될 만한 일이 있을 때에 힘써 더욱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소망하며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원기 있고 왕성한 시기의 소년과 장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자주 피곤하며 지쳐 쓰러질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신흥 왕국인 원기 왕성한 바벨론제국도 결국 패망하고 말 것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0:8말씀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리라' 했습니다. 인생의 가장 강하고 왕성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곧 시들고 떨어지 풀과 같고 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약한 인생이지만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영원히 피곤치 않는 새힘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40:31말씀에 '새힘'을 얻을 것이라 했는데 성경에 보면 새힘을 얻는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새힘과  독수리와 함께 사용되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 본문 31절에 독수리가 새힘을 얻어 날개치며 창공을 날 것이라 했고, 시편 103:5에 '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명철이 한 이 없으신 분으로서 독수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독수리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훈련과 독수리의 훈련
독수리의 특성을 집중적으로 알아보면서 성도들의 믿음생활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자는 땅위 짐승들 중의 왕자입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공중의 새들 중에 왕자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때에 만물을 내려다 보는 공중에서도 또 왕자라고 하니 땅위서 왕된 사자보다도 독수리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닭이나 새 종류들은 일년에 두번 털갈이를 합니다. 가을에 털갈이를 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월동준비를 하듯이 새들도 월동준비를 합니다. 여름동안 입고 지내던 헐렁한 여름 옷을 벗어 버리고 추운 겨울을 지낼 수있도록 두꺼운 털로 바꿉니다. 털이 짙게 많이 나서 추위가 몸속으로 서며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요, 봄털갈이는 겨울에 입었던 두꺼운 옷을 입고서는 여름에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겨울털은 벗고 가벼운 여름 옷으로 바꾸기 위해 봄털갈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수리의 털갈이는 특이합니다. 다른 새들은 털갈이 할 때에 적당히 털을 솎아 내는데 독수리의 경우는 털갈이 할 때에 모든 털을 다 뽑아버려 벌거숭이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양볕에 몸을 굽기위해 태양볕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새 털이 나면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독수리와 같이 새힘을 얻는다는 것이 그런 의미입니다.

 

1. 독수리의 새끼 훈련
출애굽기 19:4말씀에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32:11말씀에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것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32:11말씀은 독수리가 어떻게 그 새끼들을 훈련시키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생활하던 애급에서 해방시켜 40년 동안 광야를 통과케 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영적으로 성숙하게 키우시기 위해 이렇게 강훈련시키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왕자답게 이끌어 올리시는 것입니다. 훈련은 고달픕니다. 훈련은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훈련의 세월이 길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훈련기간은 하나님의 시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다윗은 10여년 동안 훈련 받았고, 요셉은 13년 동안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을 통해 애급나라의 총리대신이 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영적성숙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의 믿음의 용사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독수리가 그 새끼들을 어떻게 훈련시키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들을 키울 때에 보금자리를 만듭니다. 나무가지와 가시나무로 밖을 만들고 안쪽으로는 풀잎, 새털, 옷조각 같은 것으로 둥우리 안쪽을 부드럽고 따뜻하고 아늑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둥지에 먹이를 물어다 주어 새끼들을 키우다가 두 서너달이 지날 때에 어린 새끼들을 훈련시킵니다. 그 어린 새끼들이 훈련에 임하도록 잠을 깨우며 분발시키기 위해 둥지 안의 부드러운 헝겁이나 털과 마른 풀들을 뜯어 냅니다. 풀이나 헝겊을 뜯어내면 그 다음은 나무가지와 가시들입니다. 그 가시들이 밖으로 노출되면서 어린새끼들을 찔러 괴롭힙니다. 어린새끼들이 이제까지 폭신하고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어미 독수리가 물어주는 먹이를 먹으며 오손도손 잘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훈련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훈련은 겁이나고 아찔아찔하고 고달프고 괴로운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할 수만 있으면 안일하게 지내고 싶어 합니다. 기도생활, 말씀생활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세상적으로 물질적으로 평안하고 안일한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들을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독수리들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공중의 새들의 왕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왕자가 되기는 커녕 먹이도 제대로 찾아 먹지 못해 생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존재와 생존을 위해 가혹한 훈련을 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털을 다 뽑아 어지럽게 만들어 새끼들이 더 이상 보금자리에 안일하게 있을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끼 독수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어미 독수리의 날개 쭉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미 독수리가 새끼들을 등에 엎고 공중 높이 날아 올라 갑니다. 그리고는 그 새끼들을 흔들어 허공에 떨어뜨립니다. 새끼들은 겁먹습니다. 안죽으려고 날개를 퍼득거립니다. 그 때에 어미 독수리는 그 새끼들 위에 너풀거립니다. 그래서 땅이나 바위나 나무가지에 부닥치지 않게 보호합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쏜살같이 새끼들을 등에 다시 받아 또 다시 공중 높이 올라가 떨어뜨리고 또 등에 엎어 공중 높이 올라가 떨어뜨리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끼들이 얼마나 고달펐겠습니까? 그 훈련이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습니까?

 

2 하나님의 성도 훈련
신명기 32;11 말씀에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하신 말씀이 새끼들로 하여금 강하고 힘새고 튼튼한 날개를 갖도록 이런 강훈련을 수 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미 독수리가 새끼들을 훈련시켜 공중의 왕자로 훈련시켜 내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하늘의 왕이 된 것이 왕의 가문에서 태어나서 왕이 된 것이 아니고 이렇게 혹독한 훈련에 의해 왕이 된 것입니다. 이 독수리의 새끼훈련이 동물학에서 한 이야기가 아니고 신명기 32:11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32:11을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연단하시기 위해 독수리가 새기들을 훈련시키듯이 그렇게 훈련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 참혹한 애급의 종살이를 하게 하시고 그 오랫동안의 괴로운 광야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배우고 율법을 받고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달은 백성들로 훈련시키기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들이실 때에 그들은 강한 군대가 되어서 가나안 땅의 31왕들과 싸워 승리하였고 그 땅을 차지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성도들도 독수리와 같은 믿음의 용장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상황이 어렵고 괴롭고 힘들고 고달프며, 일마다 잘 안되고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의심스럽고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마음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어렵게 오랫 동안 훈련시키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큰 그릇으로 쓰시려고 하시나 보다 하고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독수리의 특성과 성도들의 특성

성경말씀에 독수리같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독수리 같이 창공을 날아 올라간다라고 하심으로 우리 성도들을 독수리에 비유했습니다. 독수리는 시간당 120마일을 달릴 수 있고 공중높이 2400피트를 날아 올라간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이 새냐하면 양을 발에 움켜지고 몇마일까지 날아가며, 태풍, 폭풍이 부는 공중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뜰 수 있고 태풍 속에서 유유히 날개짓하면서 즐기기도 합니다. 독수리는 될수 있으면 절벽이나 키큰 나무의 꼭대기의 가장 높은 곳에 둥지를 만들어 삽니다. 독수리의 눈은 시력이 너무나 좋아 공중 2마일 높이에서 토끼만한 크기의 먹이를 분명히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명 눈꺼풀이 있어 눈을 감아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1. 독수리는 높은 곳에 집을 지음
 독수리 같이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살며, 높은 곳을 좋아 하듯이 우리 성도들도 신앙의 높은 경지에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하박국 3:17-19 말씀에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하시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라 했습니다. 성도의 고도의 믿음 수준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높은 영적 경지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고도의 고난 훈련을 통과하였기 때문입니다.

 

욥도 극심한 고통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욥기 23:10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는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 말씀 역시 욥이 높은 영적 수준에 이르렀음을 봅니다.
독수리는 800미터 공중 높이 까지 올라가 밑을 내려다 보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공중 높이 올라가고 높은 곳에 둥우리를 트는 것은 시야를 넓혀 자기 관할지역을 잘 살피기 위함입니다. 자기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요 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 성도들이 높은 영적차원에 다달으면, 원수들이 그 높은 곳까지 올라와 공격할 그런 존재들이 많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음의 용사들로서 적들이 감히 넘나보지 않을 것이요, 높은 지경에 올라 밑을 내려 보듯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합니다. 고린도전서 2:15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했습니다.

 

2. 독수리의 에너지 효율성
또한 독수리가 높은 절벽 위나 높은 나무 꼭대기 위해 집을 지었으므로 날려고 할 때에 위에서 아래로 뛰어 내림으로 날기 위한 에너지를 아끼게 됨으로 다시 날아 오르는데 힘을 쏟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도 높은 신앙경지에 오르면 신앙생활하기가 쉽습니다. 기도도 쉽게 줄이 잡히고, 오래 기도할 수 있고, 말씀에도 쉽게 은혜받게 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에 가야만 은혜받는 것이 아니고 혼자서 예배를 드려도 은혜 충만하고 사막이나 숲속이나 혼자 들에서 예배를 드려도 은혜로 충만해지고, 특별히 유명한 교회나 목사의 설교가 아니라도 어느 누구의 설교를 들어도 은혜가 되고, 마음에 말씀이 충족해서 영적 허득임이 없으며, 말씀도 잘들리고 성경을 읽어도 깊은 은혜가 됩니다.

 

3. 독수리의 시력
또한 독수리는 눈이 아주 밝다고 합니다. 공중 2마일 위에서 땅위에 기어가는 토끼 만한 크기의 물체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먹이감이 풍족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깊은 수준에 이르면 성경을 보면 영적 눈이 밝아 남들이 도저히 볼 수 없는 그 속의 보화를 무수히 발견하고 캐내어 누릴 수 있습니다.

 

4. 독수리의 통찰력
또한 독수리는 눈을 감아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눈꺼풀이 투명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우리도 독수리같이 창공을 높이 나르는 높은 수준의 영적 사람이 되면 영적 통찰력이 예민해지고 눈을 감아도 영적 눈으로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치 야곱이 나이가 들어 장님이 되었는데도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알아보고 손을 어긋맛겨 축복기도를 하는가 하면 그 아이들의 먼 장래에 일어날 일들도 보고 있었습니다.

 

5. 독수리의 강한 날개의 힘
또한 독수리는 날개가 강하고 튼튼하고 힘이 새어 태풍이 불어도 공중 높이 올라 태풍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날개를 활짝 펴 뜨있을 수도 있고, 태풍 속에 유유히 날기도 합니다. 이것는 독수리 만이 할 수 있는 특성인 것입니다.

 

보통 날씨 때나, 시절이 좋은 날에 석양에 노을이 질 때에 큰 나무에 무수한 새들이 모여들어 대화의 광장을 펼칩니다. 모든 새들이 모여 지지배배 이야기들을 합니다. 모두들 자기들이 줏어 들은 지식들을 뽑냅니다. 목에 힘주고 목청을 높여 이야기들을 합니다. 내 얼굴이 더 예뻐니, 내 집이 더 비싸다너니, 내가 더 좋은 대학을 다녔다느니, 내 차가 더 고급 차라느니 내 아이가 더 잘 생겼다느니, 내 아이가 머리가 더 좋다느니, 내가 돈을 더 잘번다느니 온갖 잡새들이 모여 지지배배 자기 자랑들을 하느라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태풍이 불어 닥칩니다. 그렇게 재잘났다고 목소리 높이던 잡새들이 날개야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쳐 숨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 큰 나무에 많은 새들이그렇게 잘났다고들 떠들 때에 그 나무의 꼭대기에 앉아 밑을 내려다보며 아무 소리 안하던 독수리는 때를 만났다는듯이 태풍 속을 향해 창공을 박차고 올라 태풍을 타면서 두 날개를 쭉펴 오히려 태풍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때는 사람들이 제 혼자 잘믿는 것같이 으시대고 뽑내고 큰 소리치던 자들이 시험이 오고 역경이 들어 닥쳐 인생풍랑, 인생태풍이 불어오면 어쩔줄 몰라하고 당황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지만, 평소 역경의 강한 훈련을 받은 높은 경지의 영적 사람들은 오히려 그 때에 당당해지고 돋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없으므로 전에는 무능하게 보이고 전에는 힘이 없어 보이고 무지하게 보이든 그가 새힘을 얻어 힘차게 솟아 오르는 것입니다. 뛰어가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여호와만 앙망하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앙망한다'란 우르러 본다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만 우르러 보는 것입니다. 시절이 좋거나 나쁘거나, 상황이 급박하거나 평온하거나, 건강이 좋거나 나쁘거나, 형편과 처지가 좋거나 나쁘거나, 소득이 많거나 적거나 관계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며 끝까지 오래 기다리며 인내하는 충성심을 '앙모한다' 앙망한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40:27-31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150년 후에 일어날 일을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오랫동안 고생하겠지만 그 포로 생활로 괴로울 때에 이 성경구절을 보고 믿음있는 자는 용기를 가지며 위로받고 끝까지 견디라고 주신 예언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150년 후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노예로 잡아갔던 바벨론이 페르시아왕 고레스에 의해  망하고 이방의 정복왕 고레스가 이스라엘사람들을 자유 해방시켜 돌아가게 하면서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포로가 되어 잡혀 갈 때에 70년 후에 다시 고토로 돌아오리라 하신 말씀대로 그들은 자유 해방되어 돌아오면서 지은 시가 시편 126편입니다.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무능하고 힘 없고 피곤하며 곤핍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새힘을 주셔서 독수리 같이 창공을 차고 오르게 하셨고 능력과 힘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갔던 바벨론은 영영 망하였지만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안풀린다해서, 그리고 그 어려움이 오래간다고 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심하거나 불평, 원망하던 것을 멈추고 오늘 이 시간부터 우르러 주님을 앙망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새힘을 얻는 독수리와 같이 창공을 차고 오르는 믿음의 높은 차원으로 날아 올라 갑시다. 그리할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고 새힘을 주셔서 은혜의 높은 곳을 향해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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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하나님의 섭리 누가복음 1:5-25 김준식목사 2015-11-16 17245
73 예수님의 족보 제 2 기 마태복음 1:6-11 file 김준식목사 2015-10-31 18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