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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 누가복음 1:5-25

조회 수 16583 추천 수 0 2015.11.16 14:44:29

 

우리는 오늘 세례요한의 탄생예언을 통하여 세례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깊고 높으신 뜻을 깨달으므로 은혜받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삶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파악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원하며, 그 뜻대로 행하기를 소원하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영적 지혜의 빛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첫째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모두 제사장 집안의 출신입니다. 그러므로 사가랴는 제사장이었고 엘리사벳도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 집안출신으로 이처럼 제사장 가문끼리 결혼하는 것은 그 당시 매우 영광스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가문만 좋았던 것이 아니라 이들 자신들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복음 1:6 말씀에 '이 두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라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살려고 몸부림치는 경건한 성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인정하신 믿음의 성도들이 더러 있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시대 사람들의 죄악이 너무 심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람지었음을 한탄하실 정도로 죄악이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이일에 동역할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6:8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9절 말씀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노아의 경건한 삶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의'란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의인'이란 죄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의'로 따질 것 같으면 아담의 후손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입니다라고 나설자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시대에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의인'이라고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완전한 자'라고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창세기 6:8에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들이기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려고 힘쓰고 애쓰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완벽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완벽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음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런데 성도와 불신자 간의 차이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는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지고 자빠지고 실수하시는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십니다.

 

창세기 15:6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인정해 주셨더라'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무슨 말씀을 믿었느냐 하면 100살 가까운 아브라함을 밤에 밖으로 나와 하늘의 별을 보게 하시면서 네 자손이 이렇게 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인간에게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도 믿는 신앙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 여겼습니다.

 

욥기 1:8에서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었느니라'하심으로 욥의 신앙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욥은 아브라함과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자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15:1말씀에 보면 예레미야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크게 범죄하고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도 않고 하나님께로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시려고 하실 때에 그 사악한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해 줍시사고 주의 종 모세와 사무엘이 중보기도해도 그 때는 그들의 기도도 들으시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을 위한 중보기도자로 모세와 사무엘을 인정하십니다. 예레미야 15:1의 말씀을 들으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서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치리라'했습니다.

 

또한 에스겔서 14:14 말씀에는 에스겔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악에 찌들려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노아와 다니엘 그리고 욥이 기도해도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이들을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했습니다.

이상의 하나님 말씀을 살펴 볼 때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도들을 대하면서 우리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이렇게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많은 세월 동안 어려운 환경에 처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들도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잠간 동안이 아니고 수십년 동안 말입니다. 그 어려움이란 그 가정에 자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이 평생토록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결혼은 그 당시 최고 가문인 제사장 가문 출신들로서 어리어리한 영광스러운 결혼식을 올렸고 최고 축복의 부부들로서 찬란한 가정을 이루어 시작했건만 그 가정에 불행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부가 이런 불행을 당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불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경건생활의 표본으로서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신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흠없고 의로웠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자녀를 갖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기업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대단한 수치였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를 얻지 못한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이혼사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유대여인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특히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욕되고 괴롭고 멸시 받으며 고통받았는가를 사무엘상 1:6-11말씀에서 잘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 한나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한나가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남편 엘가나가 세번이나 어찌하여라고 애절하게 아내를 달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나의 마음을 달랠 수 없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에 그 당시 유대 여인들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했는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사무엘 어머니 한나는 연령적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이었습니다.그리고 기도응답으로 사무엘을 낳고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나이가 늙어 생리적으로 임신할 수 없는 연령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고통이 얼마나 심했고, 그 고통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했겠습니까? 한나와 같이 아들을 나을 수 있었으면 몰라도 30년, 40년 고통을 받았지만 결국 경수가 끊어지고 아이를 전혀 낳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또한 아이를 달라고 얼마나 애원하며 부르짖고 기도했겠으며, 눈물도 얼마나 흘렸겠습니까?

 

누가복음 1:13말씀에,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간구란 말의 뜻은 '일반적인 기도와는 달리 특별한 제목을 정해놓고 하는 기도'룰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간구의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내용이 누가복음 1:13에 나옵니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네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하심을 볼 때에 아들 달라고 이부부가 평생동안 고통 중에 부르짖고 간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때까지 아이를 달라고 구했으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연령인데도 아이를 달라고 제사장인 사가랴는 성전에 제사드릴 때도 기도하고 있었던 것을 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반드시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언약을 성취하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언약이 언제 이루어질지 알수 없지만 언약의 불변성을 확신해야 합니다.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며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언약하신 말씀을 굳게 붙들고 아무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간구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가랴부부는 나이가 늙도록 서로 사랑하며 신뢰하여 온전히 연합하여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끝까지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의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두 가지 시간 속에 살아 갑니다. 카이로스라고 하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시계와 달력이 말해 주는 사람의 시간인 크로노스입니다. 크로노스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 1년은 12달, 1년 8760시간을 말합니다. 이 크로노스는 지구촌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일반은총입니다. 그리고 이 크로노스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입니다. 이 시간은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에 의해 구애받지 않는 특별한 시간이요 인간의 상식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인간이 측량하거나 예기할 수 없는 것이 카이로스입니다.

 

베드로후서 3:8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카이로스입니다. 예수님은 계시록 22:20에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했습니다. NIV성경에,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주님께서 속히 오시리라 했는데 2000년이 되어도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soon'은 1분일 수도 있고 1시간일 수도 있고, 우리 인간의 시간인 크로노스로는 길면 1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soon은 2000년이 가까운데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대면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영향 안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적으로도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하나님의 시간이 카이로스로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서 사는 습관대로 크로노스로 하나님을 상대하려 합니다. 기도응답도 내 시간, 세상적인 시간인 크로노스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 합니다. 그러므로 실망하고 좌절하고 불평하며 의심합니다. 기도응답은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때에 인간인 나의 시간인 크로노스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인 가장 적절한 시간인 카이로스에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의 마음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제 까지 가지고 살던 크로노스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바꾸어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바꾸어 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로마황제의 박해를 300여년 받으며 살았습니다. 한 성도가 박해 가운데 온 평생을 살다가 죽고 그 후손들 역시 온 평생을 박해 가운데 살다가 죽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크로노스 적으로 살았다면 그들은 카타콤 굴속에서 그렇게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로마 카톨릭에게 1260년 동안 박해를 받았던 중세기의 개혁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살았기 때문에 그 긴 박해를 인내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종과 같은 삶을 살았지만 라헬을 사랑했기에 7년을 수일 같이 지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카이로스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이왕 자식을 주실 바에야 그의 마음에 그렇게 고통을 주지 말고 주실 것이지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카이로스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은 엘리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너무나 패역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이 제사장을 대신할 인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환경이나 시간에 가장 적합한 때를 기다렸다가 하나님의 카이로스에 사무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세례요한 역시 가장 적절한 시기에 세상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를 세상에 보낼 만한 부모를 찾고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4:4에 때가 차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선구자인 세례요한 역시 때가 찰 때까지 하나님께서 시간을 제고 있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에 참으로 적절한 인물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어 죄용서받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영생받고 영원한 삶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값진 삶을 사는 것을 감격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확신이 있다면 그 외의 것을 갖지 못한다고 믿음이 흔들리거나 말씀의 확신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육신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더 갖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자잔한 것에 응답 받지 못했다고 안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에게 큰 것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25년동안 기다려 100세에 응답받았습니다.

 

욥은 얼마나 긴 고통을 참아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욥이 얼마 동안 고난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해 본즉 있습니까? 아마 한번도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욥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욥이 얼마 동안 고난을 받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좀 쉽습니다. 3일, 3개월, 아니면 3년? 아마도 여러분은 3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욥과 같은 고난이 오래 계속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은 크로노스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카이로스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욥기에서 욥의 고난의 기간을 언급하고 있는 곳은 두 곳 밖에 없습니다. 욥기 2:13에, 고난 받은 욥에게 친구들이 와서 칠일칠야를 함께 있었다고 했습니다. '칠일 칠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했고, 또한 욥기 7:3에, '이와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작정되었구나.'에서 욥의 고난이 여러 달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곳 외에 어느 곳에서도 욥이 얼마나 오래 고난을 겼었는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욥은 무려 30년 가까이 그런 고통을 받아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수 있었느냐 하면, 한글 개역성경과 70인역 성경을 참고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글성경 욥기 42:16-17에,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했습니다. 그리고 70인역 성경에 욥기 42:16-17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욥은 고난이 시작된 때부터 170년을 살았고, 그가 산 햇수는 240년이며, 욥은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라고 기록되었다 합니다.

 

두 성경을 비교해 볼 때에 한글성경은 욥이 고난을 받은 후 140년을 살았다고 했고, 70인 역에서는 욥이 고난이 시작된 때부터 170년을 살았다고 했으므로 욥이 고난을 받은 햇수는 170-140=30입니다. 욥이 30년 동안 고난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욥이 240년을 살았다고 했으므로 고난을 받기시작한 나이를 계산해 보면 욥이 살은 해수에서 욥이 고난을 받기 시작해서 산 해수를 빼면 70세부터 고난이 시작되었고 100세에 고난이 끝났습니다.240-170=70(고난이 시작된 나이)와 70+30=100(고난이 마친 때의 나이). 욥은 고난을 받은 후에 2배의 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고난 받기 전 70년 삶과 고난 받은 후에 140년의 삶을 산 것을 볼 때도 시간적으로도 두배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도 잘하고 하나님 말씀 순종하려고 몸부림치고 의롭고 선하며 기도생활 열심하고, 십일조생활 온전하며, 봉사생활도 잘 하는데 일이 잘 안풀리면 오히려 크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들에게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축복의 계획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시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부부에게와 같이, 한나와 같이, 아브라함과 같이 요셉과 같이, 욥과 같이 말입니다.

 

넷째로 그렇다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주신 세례요한은 어떤 사람입니까?
누가복음 1:15말씀에 '이는 저가 주 앞에 큰자가 되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일생이 다가도록 응답을 보류하신 것은 그들에게 '주님 앞에 큰자'인 세례요한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어떤 자입니까?


1. 세례요한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그렇게 바라고 원하였던 메시야의 오시는 길을 닦은 마지막 주자로서 메시야를 자신의 눈으로 보았고 그분의 오심을 예비한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은 사람으로 오신 메시야를 제일 먼저 인식하고 사람들에게 이분이 메시야이시다고 증거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소개한 위대한 일을 행한 자였습니다. 세례요한 자신도 처음에 누가 메시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베풀라고 했습니다. 물세례를 베풀 때에 그 사람들 중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거든 그 사람이 메시야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1:11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 보다 큰자가 없도다'했습니다. 세례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2. 세례요한은 구약성경의 예언에 따라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말라기 3:1과 4장 5,6절에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자가 올것이라는 예언된 대로 세례요한이 온 것입니다. 말라기 3:1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탄생했다는 것은 세상의 구세주가 세상에 탄생할  때가 가까왔다는 것입니다.

 

3. 세례요한은 400년 전 말라기 선지자 이후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했던 영적으로 암흑시대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이스라엘의 구원의 때가 이르면 선지자가 다시 출현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마지막 선지자 요한의 탄생은 민족의 대망이요 민족의 큰 기쁨인 것입니다.

 

다섯째로 사가랴부부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1. 사가랴에게 가브리엘 천사장을 보내서 엄청난 기쁨의 소식을 전하게 하십니다.
2. 제사장으로서 성소에서 분향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그 반열의 차례에 따라 1년에 2회 성전에서 봉사했는데 1회 봉사하는 기간은 안식일에서 그 다음 주 안식일 까지입니다. 8일간이었습니다. 성전봉사는 그 당시 24반열이 차례대로 했는데 반열의 차례가 되면 그 반열에 속한 제사장들은 누가 각 직무에 합당할까를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뽑힌 제사장들은 각각 불을 준비하고 제단을 청소하는 일, 분향하는 일,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일을 했습니다.

 

성전의 모든 예식 중에서 가장 성스러은 의식은 하나님께 분향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제사장들의 수효는 2만명에 달했는데 각 반열에 9백명 정도의 제사장들이 있었고, 이 가운데서 하나님께 분향할 제사장들을 제비를 뽑았으므로 하나님께 분향하는 것은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사장들은 분향하는 일을 최대의 영광과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가랴로 하여금 그 일을 차지하게 하셨고 더욱이 그 분햘하는 동안에 천사를 보내셔서 요한의 수태고지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섭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이렇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이런 불가능한 모든 일들이 반드시 있게 될 것에 대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사가랴 자신이나 엘리사벳이 나이가  많아 늙어 결코 임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그 일에 대한 표적으로 사가랴의 입을 봉해버렸습니다. 누가복음 1:24에 엘리사벳이 수태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고, 누가복음 1:43에서 예수님의 모친의 방문을 받으므로 요한의 출생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으며, 누가복음 1:57에서 요한이 출생했고 64절에서 사가라의 입이 다시 열려 말을 하게 되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결론으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여러가지 어려운 환경을 만나며 또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데도 기도의 응답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고 고통과 슬픔이 아무리 오래간다 할지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것이며, 더욱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믿음에 굳게서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되 인내하며 끝까지 참게 될 때에 하나님은 가장 큰 축복을 상금으로 주실 것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 큰 믿음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대기만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그릇을 만드시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믿음의 큰 그릇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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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요한 계시록이란? 요한계시록 1:1-20 김준식목사 2016-02-22 16234
81 주님 재림의 때가 가까운 4가지 예언 마태복음 24:32-35 김준식목사 2016-02-22 15953
80 에벤에셀 사무엘상 7:1-14 김준식목사 2016-02-22 15973
79 성탄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마태복음 2:1-11 김준식목사 2016-02-22 16005
78 말 밥통에 누이신 그리스도 누가복음 2:1-20 김준식목사 2016-02-22 14604
77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신명기 11:8-21 김준식목사 2016-02-22 15594
76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마태복음 25: 1-13 김준식목사 2016-02-15 15888
75 오직 여호와만 앙망하라 이사야 40:27-31 김준식목사 2015-11-16 16017
» 하나님의 섭리 누가복음 1:5-25 김준식목사 2015-11-16 16583
73 예수님의 족보 제 2 기 마태복음 1:6-11 file 김준식목사 2015-10-31 17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