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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절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그 어떤 종교도 부활절을 기념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1절에서 58절까지 부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부활을 믿습니까? 부활이 믿어지지 않거나 의심쩍으면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이란 말은 주님이 공중강림하실 때 다 부활하여 천국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9에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1:25,26에서,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삼은 고린도전서 15:1-11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이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시절의 사도들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사건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우리 본문 말씀, 1-3에서도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에서 내가 부활에 대한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했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받아 굳게 지키고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이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성도의 부활의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네 가지로 예수님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3-4절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대로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성경은, 지금은 신약성경도 있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는 성경이라 하면 구약성경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메시야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다고 했는데 바로 예수님이 성경대로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그의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려가서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독생자 이삭을 바칠 때의 그 아픔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령을 우리가 깨닫게 하시는 장면입니다. 창세기 22:15-18에서,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에서 여기 ‘네 씨’는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또 출애급기 12장:21-24에서,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에서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죽어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죄인이 죄용서 받고 살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시편 22편은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고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22:6-8말씀은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 일어난 일들을 보여 줍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했습니다. 시편 22:6에서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예수님이 로마군인들에게 매질을 당할 때에 채찍 끝에 뼈조각이나 쇠조각을 달았습니다. 채찍질 당할 때에 뼈조각이 살을 파 냅니다. 그래서 온 몸이 퉁퉁부어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모습이 흉칙한 벌레같이 보였습니다.


마태복음 27;39-43에서,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했습니다. 마태복음 27:39-43은 시편 22:6-8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예수님의 수난을 정말 생생하게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3-5에서,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했으며, 이사야 53:9에서,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예수님이 죽으시고 아리마대 요셉 부자의 무덤에 묻히실 것도 예언되었습니다.


다니엘서 9:26에서,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했습니다.


스가랴 12:10에서,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에서와 같이 메시야의 죽음을 예언했습니다.


부활은 시 16:10에서,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해서 주님이 다시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고,
요나 2:10에서,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했는데 예수님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예수님이 죽으시고 장사지내실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2:39,40에서,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말씀하셨는데 그대로 되었고 또한 주님이 사흘 후에 부활하실 것도 예언하신 데로 살아나셨습니다.


둘째는 5-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증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증인들이 증거합니다. 물론 그들이 신앙이 좋아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에 모두 도망을 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180도로 변해 버립니다. 이제는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와 같이 변화될 수 있을까요? 그들 모두 특별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부활을 전해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 경험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전에는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서 도망을 쳤지만, 이제 이 세상의 삶 다음에 또 다른 영생의 삶이 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과 같이 자신들도 부활함을 믿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다가 모두 다 순교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증거에는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먼저 베드로와 11제자들에게 보이시고, 그리고 500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그 중에 바울사도가 고린도전서 15장을 기록할 당시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에게 보이셨다고 했는데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인 야고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본문 말씀에서 부활의 증인들의 세 가지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증인들의 배경이 다양합니다. 예수님의 아우, 어부 출신들, 지식이 많은 사람, 많은 제자들 그리고 11사도들과 5백명의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둘째, 증인들의 인격이 신뢰할만합니다. 사람들은 신뢰가 안가는 사람과 교제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가서라도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5절 전반에서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또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3장 10절 후반에서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이런 말씀을 남긴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분들의 말은 신뢰할만한 말입니다.

셋째, 증인들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오백여 형제가 일시에 주님의 부활을 보았는데 그 중에 일부는 죽었지만 태반이 살아있으므로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내가 증인을 무더기로 데려오겠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이 증인들은 다양한 증인들이고, 신뢰할 만하며, 언제라도 동원할 수 있는 증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기록하여 전해준 역사적인 사실인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는 베드로이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는 바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이들이 설교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예수가 그리스도요 그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22절에는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이라고 기록되었고, 2장 32절에도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4장 33절에는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라고 기록되었고, 5장 30절에도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10장 39- 40절에도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부터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전도여행이 계속됩니다. 바울은 4차에 걸쳐서 선교여행을 했는데 바울도 가는 곳곳마다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사도행전 13:30에서,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라고 증거 했습니다. 또 데살로니가에서도 증거 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3절에는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덴에서도 사도행전 17:31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고 증거 했습니다. 또한 아그립바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도 사도행전26:8에서,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라며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므로 죽은 자를 살리실 능력이 충분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사도인 베드로 설교의 핵심도,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 설교의 핵심도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사도들 설교의 핵심이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8-11절에서, 바울 자신과 같은 사람이 회심했다는 것이 증거라는 말입니다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바울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5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잡아오기 위해 다메색으로 가던 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고 죽이던 자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에 대한 감격이 바울사도가 죽기살기로 복음을 전하는 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이 두 번이나 자기가 부활한 주님을 만난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6-11절에는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분노한 예루살렘 군중들 앞에서 간증했습니다. 사도행전 26장 12-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왕 앞에서도 동일한 간증을 했습니다.


바울사도께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에 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같이 우리도 그렇게 부활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첫 열매’는 그 다음에 열리는 열매들도 첫 열매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사과나무 묘목을 심었습니다. 심은 지 3년이 지난 후에 첫 열매가 익었습니다. 그것의 색깔은 붉고 씹으면 바삭바삭하고 맛은 달콤하고 시큼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 많은 열매들이 열렸는데 그 사과들의 색깔은 붉고 바삭바삭하고 시큼달큼했습니다. 첫 열매와 똑같았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우리 성도들도 주님의 부활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21에서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했습니다. 누가복음 24:36-42에서 주님은 당신의 부활의 몸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부활을 사람들이 확실히 믿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넷째로 예수님의 부활의 몸의 네 가지 특징
1. 예수님의 부활한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습니다.
누가복음 24: 29-31말씀에서,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에서 예수님은 갑자기 나타나셨다가 갑자기 사라지십니다. 시간을 초월하십니다. 누가복음 24: 36에서도 예수님은 공간을 초월하십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을 통하여 방에 들어 오시지 않고 방에 들어 오셨습니다. 벽을 통과해 들어 오십니다. 마치 빛과 소리가 유리를 통과해 방 안으로 들어 오듯이 예수님의 몸이 이동할 때에 공간의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했습니다.


2. 주님의 부활한 몸은 순간적 공긴이동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예루살렘과 나사렛 마을로 가실 때는 걸어서 이틀 사흘이 걸렸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부산과 서울을 오갈 때는 기차나 자동차나 비행기로 갑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한 몸은 이런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이동합니다. 사도행전 8:39-40에서 빌립이 성령에 이끌리어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자마자 성령님께서 빌립을 이끌어 아소도로 옮겨 복음을 전하게 하실 때에 공간이동을 시켰습니다.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요한복음 20:12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에게 갑자기 나타나십니다.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했으며 또한 요한복음 20: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했습니다.


요한복음21: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에서도 예수님이 갈리리 바다 제자들에게 불쑥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숯불에 구운 물고기와 아침밥을 준비해서 제자들을 먹이신다고 했습니다.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순식간에 사라지시고 또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의 방으로 불쑥 나타나셨습니다.


3. 예수님의 부활한 몸은 살과 뼈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4:38-40에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20:24-28말씀에서, ‘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에서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주님의 몸과 뼈가 있다는 주님의 말씀만 믿었지만 도마는 실제로 주님의 부활의 몸을 만져 본 자가 되었습니다.


4. 예수님의 부활한 몸은 음식물을 먹습니다.
누가복음 24:41-42,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이나 세상에 머무셨습니다. 얼마나 천국에 빨리 가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40일 동안 머무신 것은 우리에게 부활의 몸의 실상을 상세히 보여 주시고 경험하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부활에 대해 확실하게 깨닫고 믿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왜 그렇게 주님의 부활의 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를 원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보고 경험하면서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의 부활의 몸과 같이 앞으로 우리도 부활하면 주님의 부활한 몸과 같이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천국에서도 먹습니다. 맛 있는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비만이 없으며 영양실조나 병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죽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같이 우리도 부활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것이요,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을 하되 온 우주를 다스릴 때에 이와 같이 생각의 속도로 순간이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으로 로스 엔젤레스에서 서울에 간다하면 즉시로 순간이동을 하여 서울에 닫게 됩니다. 그리고 살과 뼈가 있을 것이요, 음식물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에는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100% 신성과, 100% 인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내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나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소망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돈, 지식, 출세와 같은 세상의 욕망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심으로 죽음 후에 부활과 영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 인류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것이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거짓과의 싸움에서 진리의 승리이며, 미움과의 싸움에서 사랑의 승리이고, 사망과의 싸움에서 생명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55-58 의 부활장의 결론부분에서 부활을 믿는 자들의 사망으로부터의 승리의 개가를 외치고 있는 것을 들어 봅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사람은 인생을 승리합니다. 부활을 믿는 자들은 결코 자살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에게 질병, 고통, 가난이 있고, 마음속에 패배, 좌절, 절망의식 있으면 다 버리시고 부활의 승리의식을 가지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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