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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라사인 상육작전 누가복음 8:22-40

조회 수 15617 추천 수 0 2016.03.04 10:09:22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꽃이 나비를 찾아 갑니까, 나비가 꽃을 찾아 갑니까? 물론 나비가 꽃을 찾아 가겠지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꽃이 먼저 나비를 찾아 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식물은 움직일 수 없기에 꽃의 향기를 발하여 나비를 불러 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식물들은 움직일 수 없으므로 추우나 더우나 바람이 부나 눈이오나 비가 오나 그 자리에서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생각하면 식물이 굉장히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물들은 더우면 시원한 곳을 찾아 가고, 추우면 따뜻한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폭풍우가 불면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들은 그 자리에서 이 모든 것들을 다 감당해야 합니다.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식물들은 참으로 무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식물과 같이 너무나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죄로 인해서 병들고 늙고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 으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마귀들에게 온갖 해를 당해도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죄로 인해서 멸망 당할 수 밖에 없는 무능하고 무지한 죄인들이었습 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식물들이 꽃을 통해 향기를 보내어 나비를 부르듯이 인간들은 기도의 향기를 발해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몸을 입게 하셔서 이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낮고 천하고 더러운 세상에 인간들을 찾아 오신 것입니 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소경이라서 예수님께 올 수 없었던 바디메오에게 찾아가셔서 눈을 띄워 주셨습니다. 38년 동안 중풍병으로 움직일 수 없었던 병자에게 찾아가셔서 침상 을 들고 걸어가라 명령하셨을 때에 이 사람의 병이 물러가고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 갈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에 살던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세리장이 기에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죄인 취급 받기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키가 작아서 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피해서 뽕나무에 올라가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멀리서 나마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했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가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난데 없이 예수님이 뽕나무 위를 처다 보면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삭개오야 내려 오느라 오늘 내가 너희 집에 머물 것이라 했습니다.


또 어느 날 예수님은 멀리서 부르짖는 한 사람의 신음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 사 람에게 찾아 가기로 작정하시고 뱃머리를 돌려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에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배 뒤편에서 주무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바쁘게 일하셨습니다. 마가복음4:1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오자 한 배에 오르시고 배에서 해변에 앉은 사람들에게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35에서는 그날 저물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 또 뱃머리를 돌려 건너편 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하루 종일 제자들과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온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평소 너무나 바쁘시게 일하심으로 식사할 시간 조차도 없을 만큼 바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셔서 피곤 하신 데도 불구하고 지금 또 다른 가련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뱃머리를 돌리신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루 종일 일하셨기에 피곤하심으로 사람들을 떠나 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배를 탓다고 하는데,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또 다른 일을 하시기 위해 바다 건너로 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본문의 시작 절이 누가복음8:22이고 마지막 절이 누가복음 8:40입니다. 40절에, ‘예수께서 돌아 오심에 무리가 다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람들을 떠나 단순히 휴식을 취하려고 배를 타셔서 가자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이 쪽 사람들에게 건너편 쪽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 일을 마치고 돌아 오시겠다는 말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흩어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배에 오르시니 잠시 동안 이었지만 일없이 앉아 계시니 곧 잠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난데 없이 광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광풍이라 했으니 얼마나 심한 바람 이었던 가를 짐작합니다. 그 바람으로 인해 파도가 거세게 치고 물이 배 안으로 들어 오므로 제자들이 물을 밖으로 퍼내고 바람과 파도로 인해 배가 뒤집힐 지경입니다.  제 자들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죽을 지경에 이 르렀다고 아룁니다. 예수님이 그 만큼 피곤하셨고 또 깊이 잠드셨던 것입니다. 예수님 께서 일어나사 바람과 파도를 향해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바람아, 잠잠하라. 파도야 잔 잔하라고 명령하시자 마자 바람이 잠잠해지고 파도도 잔잔해졌습니다. 이곳에 오기까지 한바탕 해전이 있었습니다. 이 해전은 예수님 이 거라사인에 오시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귀신들이 벌린 작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거라사인에 오시면 자신들의 운명이 끝장나기 때문입니다. 귀신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파도를 치게 하여 배를 뒤집어 엎을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온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신데 하찮은 귀신들이 작난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앞길을 감히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귀 신들이란 예수님께서 찾아 가시는 그 가련한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귀신들이 벌린 작전에서 쉽게 승리 하시고 거라사인에 상육하셨습니다. 그러 자 멀리서 귀신들린 사람이 달려 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달려 오고 있으나 실상은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들이 달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달려 오면서 부르짖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말하기에 이 사람이 말하는 줄 생각했는데 그 말의 내용을 들어 보니 이 사람의 말이 아니고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의 말인 것을 깨닫습니다.


귀신들이 너무나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귀신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무엇 합니까? 귀신 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데 말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하고서는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잘 안다고 할지라도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그 사람 사이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3:8에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고 하자 베드로가  자신의 발을 예수님이 절대 로 씻을 수 없다고 말하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발을 씻지 않으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 귀신들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해놓고는 나는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그렇다면 이 귀신들은 어떤 자입니까?
 이 한 사람 속에 들어간 귀신의 이름이 군대라고 했습니다. 2천마리의 귀신들이 이 한 사람 속에 들어있어 이 사람의 의지를 완전히 제압하고 귀신이 원하는 데로 이 사람을 조종했습니다. 이 사람을 벌거벗기고 밤낮 무덤 사이에 살게 하면서 산에서나 들에서나  동네에서 늘 고함을 지르게 하며 제 몸을 상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을 제어해 보려고 쇠사슬을 채우나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고랑도 깨뜨려 버립니다.  인간으로서는 통제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없고 귀신이 시키는 말만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는 갈 수 없고 오로지 귀신이 가자고 하는 데로만 갈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이 얼마나 많은 귀신들린 사람들을 치료했습니까? 성경에는 없지만 아마도 가족이나 동네사람들이 와서 이귀신들린 사람을 도와 달라고 간청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족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이 사람도 예수님께 데려 가고 싶어도 데려 갈 수 없습니다. 그 속에 있는 귀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얼마나 예수님에 대한 말을 많이 했겠습니까? 예수님께만 데려가면 귀신을 쫓을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그런 말을 귀신들린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이 들었겠습니까? 이 사람은 말은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예수님께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야만 하는데, 예수님께 가야만 내가 살 수 있을텐데’라고 생각만 하고 갈 수 없었습니다. 귀신들에게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의지까지도 귀신들이 자신을 장악하고 있기에 예수님께 갈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과 동네사람들이 이 사람이 너무나 불쌍해서 예수님께 데려가기 위해서 쇠사슬로 묶어 데리고 갈려고 했는데 그 속에 있는 귀신들이 쇠사슬을 끊어버립니다. 고랑을 채워 예수님께 데려 갈려고 했는데 그 속에 있는 귀신들이 고랑도 깨뜨렸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시는 주님께서 이 불쌍한 영혼을 구하시려고 거라사인을 향해 뱃머리를 돌린 것입니다. 주님은 이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거라사인을 향해 나아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불쌍한 영혼에게 찾아가지 않으면 이 사람은 자기 스스로는 예수님께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와 죄로 묶인 인간들이 자기 스스 로 하나님께 찾아 올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를 내 버리시고 인간을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을 향해 배를 타고 오실 때에 일어난 그 광풍은 물론 기후 변화에 따른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 바람을 이용해  거라사인을 향해 오시는 예수님 을 공격한 것은 이 사람 속에 있던 2천마리나 되는 귀신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 적 전쟁이었습니다. 귀신 나부랭이들이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다니. 그러나 이들이라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인가 발악을 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한 마디 명령 앞에 여지 없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람과 파도를 향해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바람과 파도의 배후에 있는 귀신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거라사인 상륙작전 성공
이런 제목이 너무 거창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적군의 수가 많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이 사람 속에 귀신이 2000마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돼지 이천마리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을 근거로 삼습니다. 그런데 귀신들의 숫자가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 속의 귀신의 이름이 군대라고 했지 정확한 숫자는 모릅니다. 단지 돼지 2천마리가 귀신들려 물속에 빠져 죽었기에  그 사람 속의 귀신이 2천마리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마리 돼지 속에 5마리, 10마리도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돼지 2천마리 밖에 거기에 없었기 때문이지 그 곳에 돼지가 3천마리, 4천마리 있었다면 그 돼지들 모두 물속으로 돌격했을런지도 모릅니다.


군대 귀신들이 합심해서 예수님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바람을 일으키고 파도를 휘몰아쳤습니다. 반면에 아군인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시기에 예수님 한분이 귀신들 만마리 십만마리도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분입니다. 이렇게 보면 많은 군대가 동원된 큰 해전이었습니다. 그 해전에서 예수님이 승리하시고 거라사인에 상육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들을 헤아릴 때에 2천마리라고 했는데, 사람을 헤아릴 때는 한 명, 두명이라 세고, 높은 분들을 헤아릴 때는 한분, 두분이라고 하며 동물을 헤아릴 때는 한 마리 두 마리고 헤아립니다. 그런데 귀신을 헤아릴 때는 딱히 부칠 명칭이 없습니다. 귀신에게 한 분 , 두분, 2천분이라고 할 수 없고, 또 귀신을 두고 한 명, 두명으로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기에 한 마리 두 마리라고 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과분합니다. 귀신들을 한 마리, 두 마리로 계산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거라사인에 상륙하자 말자 멀리서 귀신들이 달려와 예수님 앞에 무릎 끓어 빕 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진 자는 이긴자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나와 잘 보이려고 아양을 떨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때가 되기 전에 우리를 무저갱에 가두시기 위해 오셨느냐 고 하면서 무저갱으로 빠뜨리지도 마시고 이 지방에서도 자신들을 쫓아 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 합니다. 귀신들도 자신들이 지옥에 들어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과 함께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발광을 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귀신들이 분명히 무저갱, 지옥으로 들어갈 것을 알고 자신 스스로 발설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귀신들을 따라 가는 사람들을 볼 때에 참으로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마태복음 25:41말씀에 보면 본래 지옥은 사탄과 그 졸개 마 귀들을 위해 준비한 것인데 마귀에게 속은 인간들도 그 지옥에 들어 가게 되었다고 합 니다.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했습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더디어 귀신들의 속박 에서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 속에 있는 귀신들에게 네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자신의 이름은 군대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자신들은 수가 많기 때문이라 했습 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을 그냥 내 쫓지 마시고 돼지들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현장에 없을 때는 사람 속 이나 짐승 속에 들락날락 하지만 예수님의 임재 앞에서는 예수님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 습니다. 그랬더니 산기슭에서 풀을 뜯고 있던 돼지 떼 2천마리가 바라를 향해 돌진했 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질문할 것은 어떻게 그 한 사람 때문에 돼지 이천 마리를 죽게 하셨나 하 는 질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한 사람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 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돼지에게 들어가게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쫓아 버리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본래 귀신들은 사람 속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이 유는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을 제어해서 말도 할 수 있고 자기가 원하는 데 로 그 사람을 통해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속에 있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냥 내 쫓으면 그 사람 주위를 맴돌다가 다시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귀신의 요구대로 동물 속에 들어가면 자기들이 요구 한대로 주님이 들어 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얼씬도 못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귀신 들린 사람 속에 있는 귀신들을 쫓아 내실 때에 다시는 그 사람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명 령 하셨던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축사 후에 일어난 기적들
이제 이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귀신들린 거라사인의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귀신이 나간 후의 그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으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상세히 말하고 있 습니다.


마가복음 5:14-20 말씀을 보면,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 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 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했습니다.


마가복음 5:15에 귀신들렸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 했다 합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이 사람은 옷을 입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귀신이 벌거 벗게 해서 이 동네 저 동네로 발광을 하면서 돌아다닌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압니다. 그런 사람이 얌전하게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아 있다고 했는데 귀신들이 쉴새 없이 산으로 들로 이 동네 저 동네로 몰고 다녔는데 조용히 앉아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혹시 성도님들 중에 이곳 저곳 너무 싸돌아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좀 조용히 예수님 앞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떠나실 무렵에 이 사람이 예수님께 간구하기를 예수님과 함께 있고 쉽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쉽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고 쉽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좋지만 이 사람은 먼저 그 가족들에게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람으로 인해 이 제까지 그 가족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겠습니까? 이 사람이 벌거벗고 온 동네를 싸돌 아 다닐 때에 동네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 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으로 인해 마음에 병들었던 그 모든 가족까지 치료하시기 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제어할 수 없이 발광하던 이 사람, 정말 이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통제 불가능했던 이 사람이 옷을 입고 깨끗한 정신으로 그 가족에게 나타났을 때에 이 가족들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이 사람으로 인해 멍들었던 모든 가족들이 환희를 느꼈을 것이요 모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을 것입니다. 동네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치료해 주신 예수님을 얼마나 칭송했겠습니까? 온 가족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가족들에게 뿐만 아니라 온 데가볼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병 을 낫게 해주신 예수님을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그 지방에 사는 사람 치고 이 귀신들린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온 동네, 이 동네 저 동네로 귀신들이 몰고 다녔고 행패를 부렸고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도 치료해야 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다는 것을 다 알기에 예수님이 자신을 이렇게 깨끗하게 치료하셨다고 전하므로 모든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데가 볼리 라는 말은 열개 도시란 뜻입니다. 열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귀신에게서 해방 받은 이 사람이 온 도시를 다니면서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듯이 우리들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인데 그 사랑 그 은혜를 땅끝까지 전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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