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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우리는 삼 주 전부터 누가복음 9:51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 다.  누가복음 9:51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6개월을 남겨 놓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 해 가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길에 각 성 각 촌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도 고치시고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내용들을 살펴 볼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에 한 바리새인 지도자로부터 식사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청한 것은 호의적인 의미에서 초청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목을 잡으려고 함정을 파놓고 그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첫째로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생긴 일(눅14:1-6)
누가복음 14:1-6,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 가시니 그 들이 엿보고 있더라. 2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 교사 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4 그들이 잠잠하 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 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 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이 날은 안식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식탁을 더 풍성하게 차리고 남을 초대하여 대접하는 풍습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경건하고 율법에 충실한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했는데 예수님이 이에 응하여 그 집에 도착하자 마자 한 수종병 든 사람이 예수님 앞에 밀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바리새인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나 주시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청한 것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으로 안식일을 범하는 자로 트집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예수님이 먼저 선수를 쳤습니다.


주위에서 엿보고 있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묻기를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냐 라고 물으심으로 바리새인들의 음모를 공개적으로 폭로한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자신 들의 음모가 발각되었다는 사실 앞에 잠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의 주장에 의하 면 생명에 지장이 없는 한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안식일에 무조건 아무 노동도 해서는 안된다는 유대인 들의 전통에 의한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유전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냐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잠잠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이들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불법이라 하면 예수님이 성경적 근거를 대라고 하시면 이들은 그 근거를 될 수 없기 때문입니 다. 그리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된다고 대답하면 이제까지 자기들이 주장해온 유전이 거짓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잠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분위기를 재압하신 후에 그 병자 의 병을 고쳐 보내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도 끌어내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 바리새인 중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것인데 사람들은 안식일을 사람을 억압하고 굴레를 씌우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수종 병은 병자의 몸의 여러 부위에 물이 차이고 그런 관계로 몸이 썩어 죽게 되는 병이라 했습니다.  당 시에는 불치병인데 예수님께서 쉽게 고쳐 보내심으로 바리새인들을 완전히 압도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잔칫집에 들어서자 마자 식사가 시작되기 전 병자가 나타나 고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잔칫집 분위기를 살펴 볼 때에 바리새인들이 서로 상석에 앉으려고 다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 잔치 자리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을 보여 줍니다.


둘째로 겸손과 자비에 관한 교훈(눅14:8-11)
누가복음 14:8-11,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 르시되 8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 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 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 지리라’


유대인들의 잔치 자리는 ㄷ자 모양입니다. 주인이 앉는 자리의 오른편 옆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 라고 합니다. 이 자리는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자나 명예로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앉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보실 때에 초대된 사람들이 서로 상좌에 앉으려고 몰려드는 장면이 예수님의 시선에 잡힌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학문, 지위, 경건 등을 스스로 높이 평가 하여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무시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 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혼인잔치는 격식을 가장 중요시하는 잔치이기에 무엇보다도 의식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좌석의 구분 또한 명확한 잔치였습니다. 따라서 혼인잔치의 상석에 앉는다는 것은 그 잔치의 매우 귀중한 손님이라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본문에서와 마찬가지로 무턱 대고 상석에 앉았다가 나중에 주인에 의해 말석으로 쫓겨나는 경우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는 매우 경거망동한 사람의 대표적 표본으로 그가 당하는 부끄러움과 수치는 바로 교만한 사람들이 받아야 할 당연한 결과입니다.


본래 사람은 교만 덩어리 입니다. 교만 그 자체입니다. 죄의 속성이 교만입니다. 죄의 근본이 사탄입 니다. 사탄이 사탄이 된 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대항을 했습니다. 도끼는 사람 이 사용하는 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도끼가 그것을 잡은 사람에게 도전을 하는 것과 같습 니다. 그러므로 죄의 속성이 교만이기 때문에 죄 때문에 교만해지고 교만하므로 죄를 짓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앞잡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의 속성인 교만을 붙들라고 하십니다. 내가 교만해지겠다고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교만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교만하겠다고 해서 교만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교만 그 자체이기에 겸손은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겸손할 수 없으므로 성령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만이 우리로 겸손하게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3-7 ‘아무 일에 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그리고 예수님은 잔치에 초청된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잔치를 베푼 주인에게도 비유로 교훈을 주셨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 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잔치를 베풀 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주인에게 하신 이 말씀은 잔치를 베풀어 사람들을 먹이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좋은데 이왕이면 하늘나라에서 상급을 받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상급 받는 일을 하 라는 것입니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자 이웃을 청하는 것도 좋은데 가난한 자나 장애자들과 맹인들까지 돌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되갚아 주지 못하므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 청함 받은 자(눅14:15-24)
예수님께서 식사에 초대된 한 사람이 예수님의 겸손과 자비에 대한 교훈을 받은 후 말 하기를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것이 복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다시 하늘 나라 잔치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15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 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종이 돌아와 주인 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 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 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 말씀의 내용은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교훈입니다. 유대인 들의 메시야 사상은 메시야께서 오시면 유대인들을 중심한 지상 메시야 왕국이 건설되고 죽었던 의인들이 부활하여 메시야가 다스리는 영광된 삶을 살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본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라고 한 사람은 예수님이 의인의 부활과 그에 따른 복된 상태를 말씀하시자 선뜻 그것을 유대주의적 사고로 이해하여 맞장구를 친 것입니다.  역시 자기는 당연히 하늘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큰 잔치에 들어갈 자는 스스로 자신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구원받았 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들만이 하늘나라 잔치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서 큰 잔치는 하늘나라의 잔치 즉 계시록 19장에서의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말합니다. 잔치의 주인은 하나님, 종 가운데 처음 보내진 종은 구약의 선지자들이며, 나중에 보내진 종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오고 오는 모든 주의 전도자들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당시 풍습에 의하면 주인은 초청할 사람들에게 미리 초청을 합니다. 이 때에 그 잔치 날에 사정에 의해 초청에 응할 수 없으면 안되겠다고 이 때에 거절해야만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잔치 준비가 다 되면 다시 종들을 보내어 손님들을 모시고 오게 했습니다. 만일 두 번 째 초청에 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적대감을 표현하는 행위로 인식됩니다. 이 비유에서 세 번의 초청이 이루어 집니다. 각각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초청은 당시 스스로 아브라함이라고 자칭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첫번에 초청된 자들이 이들이 잔치 준비가 되기 전에 초청되었을 때에 거절했다는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잔치에 초대된 모든 사람이 이 잔치를 수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잔치 준비가 다 되었을 때에 다시 종들을 보내어 잔치 준비가 다 되었으므로 잔치에 참석할 것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 일치 하게 사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일치하게라는 뜻은 잔치 초대에 대해 사람들 간에 서로 공모하여 초대를 거부했다는 말입니다.


초대를 거부한 첫째 이유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가봐야 하겠다는 것인데 밭을 사기 전에 조사해서 사야 하기에 이 사람의 초청거부 이유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입니다. 잔치가 끝난 후에도 가 볼 수 있습니다. 초대를 거부한 둘째 이유는 자기는 소 다섯 겨리 샀는데 그것을 시험하려 간다고 한 것도 거짓말입니다. 소 다섯 겨리는 10마리입니다. 열 마리의 소를 사기 전에 알아 보고 사야 하는데 사놓고 시험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 거절 이유는 자신은 장가들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유대인 율법에 장가든 자는 군대복무도 하지 말고 공적인 직무도 맡기지 말라고 한 율법을 오용하는 오만한 말투입니다. 이렇게 첫 번째 초대한 사람들이 다 거절했습니다.


두 번째 초청된 사람들은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 장애자들과 맹인과 저는 자들 이 초청되었습니다. 여기 시내의 거리는 사회 전반의 다양한 사람들이 다니는 넓은 길을 말하며 골목은 도시에서 소외된 자들이 다니는 좁은 길입니다. 이들은 첫 번째 초대자들에 비해 자격이 없는 자들이지만 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할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이 그 당시 무시했던 가난한 자, 세리, 창녀, 장애자들이 완고하고 패역한 유대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이 될 것을 보여 줍니다.


세번째 초청자들은 두번째 초청자들을 채운 후 자리가 더 남는다고 종들이 주인에게 보고 했을 때 에 이제는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칫집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볼 때에 이 잔치는 굉장히 규모가 큰 잔치인 것을 봅니다. 여기 길은 도시 안의 거리와 골목과는 달리 외곽 의 주변 도로를 말하며, 산울가는 도시를 싸고 있는 산줄기를 말합니다. 거리와 골목이 유대를 나타 내는데 여기 길과 산울가는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길과 산울가로 보내는 주인의 모습은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는데 폭력이나 강제적인 방법이 아니라 촌에 사는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의 초청을 받았을 때에 주저하는 것과 같이 망설임이나 주저하지 않게 권면의 말로써 잘 설득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24절에서 ‘전에 청하였던 사람은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예수님이 비유하신 잔치가 천국의 예수님의 잔치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초청 없이는 그 잔치에 감히 아무도 들어 갈수 없다는 말입니다. 유대인은 물론이거니와 이방인 중에 서도 복음을 배척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넷째로 제자 될 자의 조건(눅 14:25-35)
25-27절 말씀은 이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잔치집에서 나오셔서 길을 가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 습니다. 이때 쯤에는 예수님의 명성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와 이방 나라에까지 자자했습니  다. 죽은 자를 세 사람이나 살리고 그 당시에 불치병인 나병이나 반신불수, 소경을 눈을 뜨게 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시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 만명을 먹이시니 사람들이 예수님 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죽음 문제, 질병문제, 의식주 문제를 다 해결 받을 수 있으니 천하에 이와 같은 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분이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예루살렘에 가시면 먼가 큰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이 몰려 왔고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5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따라오는 사람들을 향해 뒤를 돌아 보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 다. 그리고 부모, 처자, 형제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한다는 말에서 미워한다는 것은 덜 사랑한다 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면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진실성과 믿음을 확고히 하여 다른 모든 애착, 심지어 자신의 목숨에 대한 애착까지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굴복시켜 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일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결정하라는 신앙생활의 원리를 제공 하는 교훈 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주님은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 십자가를 지려 가는 길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자들도 언젠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고통과 수 치와 고난과 가난과 핍박과 박해가 있을 것인데 이 모든 것을 감당할 각오를 가지라는 심장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 자의 자세를 세 가지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망대를 세우는 자의 비유인데 망대를 세우는 비유는 그 당시 헤롯왕 일가의 유명한 건축 사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헤롯왕 일가는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여러 도시에 큰 건축물을 세웠는데 재정이 따라 주지 못해 대부분 미완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망대를 세우는 자가 철저한 준비와 계획을 세운 다음에 건 축을 하는 것처럼 제자가 되려는 길이 어떠한 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예수님을 좇음으로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둘째는 전쟁에 참여한 왕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도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빌어온 것입니다. 헤롯이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 첫번째 아내였던 그 당시 세력이 막강했던 아라비아 왕 아레타스의 딸과 이혼을 한 일로 아레타스왕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대패하였습니다. 전쟁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한 일입니다. 전쟁을 눈앞에 둔 왕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후에 전쟁에 임하듯이 영적 전쟁에 임하는 제자들도 그래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사탄에게 시련과 어려움을 당할 때에 쉽게 좌절하고 말 것입니다.


셋째는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해에서 나오는 소금을 사용했는데 이 소금은 석회물질이 혼합되어서 쉽게 그 맛을 잃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희생과 충성의 정신을 끝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조금 박해와 핍박이 있다고 해서 믿음의 변질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입니다. 끝까지 그 맛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 히듯이 맛을 잃은 자들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끝으로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을 들을지 어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9:51절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하는 길에 함께 동참하여 이제 누가 복음14장까지 왔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과 같이 우리도 예루살렘 을 향하여 가는 자들입니다. 그 길은 십자가를 지려 가는 길이지만 십자가의 길은 부활과 승천의 길이요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 즉 예수님이 준비하신 하늘나라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누가복음 9:51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로 작정하셨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승천할 기약이 가까웠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하시고 승천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의 참 제자가 되는 길을 보여 주셨기에 우리는 끝까지 그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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