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첫째로 사마리아
북국 이스라엘은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북국 이 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앗수르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포로 로 잡아가 많은 지역에 흩어버렸습니다. 또한 앗수르는 자신이 정복한 여러 지역 사람들을 사마리아 지역에 살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지역은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혼 합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유대인이 사마리아 지역 사람 들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마리아  땅을 밟는 것 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이상 한 것은 다 같은 북국 이스라엘 지역인데 유대인들이 갈릴리 지역은 인정하고 사마리아 지 역은 싫어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살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열왕기하 17장에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7: 24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 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 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해서 멸망한 북왕국 전체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사마리 아 성과 그 주변의 성들에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갈릴리 지역은 제외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은 피가 혼합되고 종교도 혼합되었다고 해서 회피했습니다. 로마가 이스라엘 땅을 지배하게 될 때에 세 구역으로 분할했는데 갈릴리 주와 사마리아 주 와 유다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주는 옛 이스라엘 땅의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역 인 것입니다. 포로귀환 때에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만 돌아왔고 북국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으며 역사적으로 소멸되고 없어졌습니다.


둘째로 에브라임과 에브라임 지파
1. 에브라임
요셉이 에굽의 총리가 되어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인 아스낫을 통해 얻은 아들. 므낫세 의 동생인 에브라임은 칠 년의 흉년이 시작되기 전에 이집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에브라임 이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 준 것인데. 그 의미는 창세기 41:50-52에서 “[요셉이] 말하 기를 하나님께서 내가 비참함을 맛보던 땅에서 나로 번성하게 하셨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요셉의 이 두 아들에 대한 섭리를 생각해 볼 때에 너무나 오묘합 니다. 요셉의 두 아들들을 열두 지파에 속하게 합니다. 야곱은 손자들을 자신의 아들들로 삼아 열 두 지파에 속하게 합니다. 또한 르우벤이 첫 아들입니다. 첫아들이면 장자의 명분을 가지는데 르우벤이 범죄를 하므로 자격을 상실하게 되면서 넷째인 유다가 장자가 됩니다. 장자는 다른 아들들 보다 두 배의 상속을 받게 되는데 요셉은 열두 지파 중에 두 지파를 갖 게 되므로 유다지파와 함께 장자의 명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너무 나 오묘합니다.


그리고 또 오묘한 것은 요셉의 두 아들 중에 장자인 므낫세 대신에 차자인 에브라임이 장자 의 명분을 받게 됩니다. 야곱은 요셉이 이방 땅에서 낳은 아들 ‘에브라임’에게 오른 손을 얹 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요셉이 싫어했습니다.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 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창48:19)라고 예언했습니다.


2 . 에브라임 지파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 한 뒤 약 일 년 후에 인구조사에서 에브라임 지파에서 20세 이상 된 군인이 4만 500명이어서 므낫세 지파의 장정 수보다 8300명이 더 많았습니다 (민 1:1 -3, 32-35). 하지만 40년의 광야 방랑 끝에는 에브라임에서 등록된 남자의 수가 3만 25 00명뿐이어서 므낫세 지파보다 2만 200명이 적었습니다 (민 26:34, 37).  그런데도 모세 가 죽기 전에 한 예언에서 에브라임이 더 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축복할 때, “에브라임 사람들”에게는 “수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므낫세 사람들”에게는 “수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신 33:17).


광야를 행진할 때 행진 항오의 서편에 엘리사마가 이끄는 에브라임 지파가 주축이 되고  므 세 지파와 베냐민 지파와 함께 진을 치도록 지정되었습니다. 이 세 지파 부대는 행진할 때 세 번째 위치에서 행진하였습니다(민 2:18-24). 그 뿐만 아니라 가나안 정복전쟁 때에 이미 동쪽에서 땅을 상속받은 므낫세 반지파와 르우벤 과 갓 지파 용사들과 함께 에브라임 지파 가 앞장섰습니다. 므낫세 지파는 에브라임지파에게 장자권은 잃었지만 가나안에 들어와서 요단강 서쪽과 동쪽에 두몫의 땅을 차지함으로 요셉 의 장자권의 복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후계자가 에브라임 지파인 여호수아였습니다. 가나안 정복 후 각 지파별 로 땅을 상속 받을 때에  에브라임 지파에게 지정된 영토는 요르단 강 서쪽, 가나안의 한 가운데 부분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쪽은 므낫세와, 남쪽은 베냐민과 단과 경계를 마주하 고 있었습니다(수 16:1-9). 이 지역은 산과 언덕이 많은 지역이지만 토양이 기름지고 비옥 하며, 고대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습니다(수 17:15, 17, 18). 그리고 에브라임의 영토 안의 실로에 성막이 세워졌습니다(수 18:1). 성막이 실로에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에브라임 지파 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도피 도시인 세겜 뿐만 아니라 다른 레위 사람들의 도시들 몇 개도 에브라임의 영토 안에 위치해 있었습니다.(수 21:20-22; 대상 6:66-69).


여호수아 시대부터 다윗 시대까지의 에브라임의 영토는 주목할 만한 수많은 사건들의 무대 가 되었습니다. 세겜에서 모세의 후임자인 에브라임 사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모으고 여호와를 충실하게 섬길 것을 그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수 24:1, 14, 15. 또한 마 침내 요셉의 뼈가 이곳 에브라임 땅 세겜에 묻혔으며, 여호수아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 두 사람 다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묻혔습니다(수 24:29-33). 에브라임 지파 출신 여 선지자 드보라가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서 바락과 함께 야빈 왕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그 승리의 노래에서 에브라임은 제일 먼저 언급된 지파입니다(삿 4:1-7; 5:14). 레위 지파의 예언자 사무엘이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있는 라마에서 태어났으며,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 에브라임 라마에서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삼상 1:1, 2, 19, 20; 7:15-17.).


이런 관계로 에브라임지파 사람들은 지파의 긍지가 도를 넘었습니다. 교만과 탁월해지려  지나친 욕망은 다른 지파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일찍이 사사시대에 이 런 기질이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면,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과 싸울 때 더 일찍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해서 기드온에게 싸움을 걸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기드온이 재치 있게 대답해서 충돌을 막았습니다(삿 8:1-3). 나중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를 도울 기회 를 이전에 거절했으면서도, 입다가 암몬 사람들과 싸우도록 자기들을 부르지 않아 무시 당 했다고 해서 입다와 전쟁을 벌였다가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부터, 북쪽 왕국에서 가장 탁월 하고 영향력 있는 지파 가  에브라임이었습니다. 북쪽 왕국에서 가장 유력한 지파였던 에브라임은 열 지파 왕국 전체를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대하 25:7; 렘 7:15). 첫째 왕인 에브라임 사람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송아지 숭배를 확립하였습니다(왕상 11:26; 12:25-30). 그래서 예언자 호세아 와 이사야는 에브라임에게 강력한 질책을 퍼부은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방 나라들과 섞이고 그들의 일을 배우고 그들의 우상을 섬긴 것에 대해 에브라임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는 에브 라임을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 했습니다, 즉 밑은 구워지거나 심지어 타버렸는데도 위는 익 지 않은 빵에 비하였습니다 (호 7:8. 시 106:35, 36; 호 4:17; 12:14 비교).


이 말은 보기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지만 뒤로는 우상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입 니다. 에브라임은 북국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를 가져왔으며 그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였으며 그 일로 인해 북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게 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런 데 여호와  예언자들은 또한 에브라임 (열 지파 왕국)과 유다(두 지파 왕국) 사이에 존재하는 질투와 적대감의 영이 없어질 것이라는 점도 예언하였습니다 (사 11:13; 렘 31:6). 또한 남  유다백성과 북국 이스라엘이 합쳐 통일국가를 이루고 다시는 갈라지지 않을 것도 예언했습 니다.


셋째로 잃어버린 에브라임과 사마리아의 영적 의미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툥해서 북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에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믿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제부터 잃어버린 에브라임을 찾아 가 보 기로 하겠습니다. 창세기 48:19에서 야곱이 에브라임을 축복하는 예언을 다시 살펴 보겠습니다.


창세기 48:19에,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 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 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창48:19) 예언했습니다. 므낫세는 한 족속을 이룰 것이라 했는데 에브라임에게는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했습니다.‘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 라’이 말은 매우 놀랍고 중요한 예언인데 히브리어로 ‘멜로 하고이’라는 것입니다. ‘멜로’는 ‘충만’을 의미하고 ‘하고이’는 ‘여러 민족들(the all nations)’, 곧 성경에서 ‘이방’을 가리키는 말 입니다.


왜 하나님은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을 더 축복하셨을까, 왜 야곱과 모세는 므낫세 보다 에브 라임을 더 축복하였을까요? 에브라임이란 뜻은 이방인의 충만이란 뜻인데 사도 바울도 로마서 11:25 ‘이방인의 충만’이란 말을 언급했습니다. 로마서 11:25에, ‘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 곧 ‘감추인 비밀’이 ‘이방인의 충만(멜로 하고이)’이 있기까지 유대인들이 ‘어리석음’ 가운데 갇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비밀이고 그 하나님 나라의 경륜입니다.
 
사복음서에  ‘건너 편’에 있는 헬라의 도시들을 ‘데가볼리(decaspolis)라고 불렀는데, 그것 은 헬라어로 ‘10개의 도시들’이라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곳에 북 이스라엘 10지 파들, 즉 ‘에브라임’들이 흩어져 살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10’이라는 숫자는 ‘충만수’ 입니다. 북이스라엘 10지파가 에브라임이라 불린 것도 ‘이방의 충만’이라는 의미를 나타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릴리에서 이방으로 흩어져 버린 ‘에브라임’은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 온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이미 에브라임은 이방 가운데 번성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정해졌던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10지파가 이방에 흩어져간 것은 단 순한 죄악으로 인한 심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이미 ‘시초부터 종말을 말씀하 신’ 하나님의 언약이 그것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수 천년 전에 이미 말씀하신 그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진정으로 아버지의 자녀들, 그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깊이 공부해 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 나라의 역사에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냥 행하시는 분이 아니고 반드시 그 입에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먼저 사역하신 것은 바로 ‘에브라임’에 대한 예언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4:12-17에,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나사 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 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 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했으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서 탄생하셨지만 고향은 나사렛이며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유대인들’은 자기 중심주의에 빠져 에브라임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 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방에 흩어진 이들을 다시 회복하시는 예수님의 역사는 바로 ‘열 방’을 구원하시는 하늘의 전략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로의 전도 여정 가운데 이것과 연결 되는 매우 흥미로운 풍경이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의 수가성에  가셔서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시고 그 여인을 통해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17:11-13에서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11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 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 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19그에게 이르 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시는 길에 갈릴리에서 사마리아 사이를 통과하고 계셨습 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은 2개의 코스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요단강 줄기를 따 라서 여리고를 지나 유대 광야로 올라 가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건이 바로 그 길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길은 유대인들이 극히 꺼리는 ‘사마리아’를 관통하여 가는 길입니다. 당시 이 길은 지름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지나가신 것은 예수님께서 빠른 길로 가시려는 마음으로 그 길을 택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가사 광야로 데 려간 빌립의 사건처럼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언약과 연결된 장소, 사람들과의 만 남들을 미리 아시고 이끄신 것입니다. 요단강과 여리고를 통해서 가실 때 예수님을 간절히 만나기를 원했던 삭게오’를 만나 주신 것처럼, 이 사마리아의 노정에서는 ‘나환자 10명’이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성경에서 나환자는 ‘진 밖에 사는 자들’입니다. 전통 유대인 들에게 이 병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지은 ‘원죄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 밖으로 추방되었듯이 나병에 걸린 자들도 이스라엘의 진 밖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진(camp)’ 밖인 ‘이방에서 고난 받는 이들’을 상징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들을 치유하신 후에 돌아와 감사와 영광을 돌린 사람에게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17:18)에서 이 이방인은 일차적으로 사마리아 출신 나환자를 말하지만 전체적으로 10명의 나환자를 말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마리아’ 지경에 사는 나환자들을 주님은 ‘이방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 나환자가 ‘10명’이라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지경(갈릴리와 사마리아)에서 앗수르에 끌려 간 ‘북이스라엘 10지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여정은 어느 것 하나도 우연이 없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과 언약의 성취를 계시하는 ‘예언의 영’(계19:10)을 담고 있 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마리아인들이 성경에서 ‘에브라임’입니다. 에브라임은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호세아는 그들이 이방에 섞여서 이방인이 되었다 고 했습니다. 야곱이 에브라임에게  이방인 가운데서 풍성함이 있으리라는 예언한 것과 같이 유대인들도 몰랐고 우리 기독교인들도 알지 못한 예수님의 역사가 이것입니다.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사역은 ‘에브라임’, 곧 ‘이방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경륜입니다.


요한복음11:54에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소문이 예루살렘에 퍼지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산헤드린 공회를 열어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유다 지경’을 떠나서 ‘빈들’ 가까운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머무셨다고 합니다. 54절, ’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 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 라.’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9:51에서 승천할 기약이 차매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작정하시고 가버 나움에서 출발하셨는데 그 때가 죽으시기 6개월 전입니다. 이 때에 베다니 마리아, 마르다 의 집에서 한 밤 유하셨고 그 이튿날 예루살렘에 가셔서 핍박을 당하시고 죽을 고비를 당하 신 후 요단강 건너 베레아 지방의 베다니에 계시다가 요한복음 11장에서 유다 베다니의 나 사로가 죽어간다는 전갈을 받고 다시 유대 베다니로 가셔서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으로 인해 유대인 위정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실  때에 갈릴리 에브라임으로 다시 피난가셔서  얼마 동안 사역을 하시다가 마지막 유월절을 맞이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몇 개월 동안에 하필이면 왜 갈리리 에브라임으로 가셨을 까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여 죽이려 하실 때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이라 부르는 갈릴리 에브라임으로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던 것 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사역이 갈릴리 에브라임이었습니다.(예수님이 걸 어가신 십자가의 길 8번 설교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건 이후인 요한복음 12:20에 유월절에 ‘헬라인들(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찾은 장면과 ‘갈릴리 벳새다의 제자들’인 빌립과 안드레가 그들을 예수님께 연결한 사건을 생각해 보겠습 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여정을 그냥 외형적인 사건의 나열로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 다. 성령의 감동으로 주께서 행하시고 걸어가신 길 안에 계시된 깊은 비밀들을 보여 주고 있 습니다. 나사로가 부활한 ‘베다니’는 당시 ‘무화과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나병 환자들’이 살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지명의 특징이 가지는 절묘함을 생각해 보 겠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성전 밖에 있는 곳으로 고대로부터 ‘진 밖의 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나환자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마태복음 26:6-11에 주께서 베다니의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트려 부은 사건(막14:3)은 유명합 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정통 메시아닉 학자들은 베다니가  ‘무화과의 마을’이란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원죄의 상징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고 수치를 가린 ‘무화과 잎사귀’(창3:7)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죽은 나사로를 살 리셨다는 것은 원죄로 인하여 추방되고 죽었던 인류를 다시 살리시는 메시아의 역사를 상 징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거기서 부은 ‘향유 옥합’이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라는 것도 바로 그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예수님의 여정은 그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튼 주님은 나사로를 살린 사건으로 유대인들의 미움을 더 받게 되고 유 대 땅을 떠나 ‘에브라임’이라는 마을에 가셔야 했습니다. 이 감추인 여정이 바로 ‘에브라임 (이방인의 충만)’ 이라는 주님의 사역에 대한 예언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신 후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주님 이 부활하신 후에 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자고 했을까요? 그리고 갈리리 출신들인 제자들을 통하여 이방인들 가운데 흩어진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역사로 인해 바로 지금 교회인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에브라임’이라는 동네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곳이 사마 리아 부근의 ‘오브라’입니다. 오브라는 기드온의 고향이며 미디안과의 전쟁을 위하여 부르심 을 입는 ‘타작마당’이 있는 곳입니다. 곧 ‘기드온의 언약’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 아말렉'등 이방의 연합군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했던 사사 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스블론과 납달리'와 '이방 갈릴리'에 오셔서 행하실 역사를 기드온의 미디안과 의 전쟁으로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9:1, 4에,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 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 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 이다.’했습니다.


기드온이 사사로 부르심을 입은 '오브라'는 예수님 당시에 ‘에브라임’으로 불린 곳입니다. 주께서 그 땅에 가심은 '흑암의 지배'에서 신음하는 '이방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예언적인 여정인 것입니다. 그 마을 이름이 '이방인의 충만'이라는 예언과 뜻을 가진 '에브라임'이라는 것도 놀라운 것입니다. 현재의 지명은 ‘타이베’라고 부릅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에서 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한 신문기사에 의하면 이 외진 아랍 마을은 현재 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그것도 아랍 마을에 그런 일이 있다는 것입 니다. 그런데 한 기자가 그곳을 찾아 가자 정말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답니다. 마침 주일이 어서 예배를 드리고 오는 동네의 소녀들과 아주머니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머리에 모슬렘들의 상징인 히잡을 전혀 쓰지 않고 청바지와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했습니다.


너무나 밝고 인상이 좋은 아랍인들로서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챤들이었던 것입니다. 마을의 교회에서 사역하는 젊은 아랍인 수사가 설명하기를,  “이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오셔서 사셨던 에브라임 땅입니다. 그 때부터 이곳에 크리스챤들이 살게 되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초대교회부터 예수님께서 지내셨던 이곳에서 기독교인들이 살았고 지금까지 계속 그것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주민의 거의 대부분이 기독 교인들로 구성된 마을은 드물 것입니다. 게다가 아랍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만 사는데 말입니다. 마치 에브라임에게 야곱이 예언한 '여러 민족(고이) 가운데 번성하리라'는 것의 성취를 보는 듯 합니다.


마을 가장 높은 지역엔 ‘기드온의 타작마당 터’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요한이 기록한 마을 이름이 ‘에브라임’이라는 것은 매우 영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 ‘10지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떠나 에브라임 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고 ‘우리 밖 (이스라엘 집 밖)'에 있는 '양떼들’, 곧 ‘이방’에 흩어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백성들(이방인들, 그리스도 인들)을 찾아 가시는 것을 암시합니다. 거기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 주님의 전도 여정은 제자들을 통하여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 이방의 교회가 결실 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잃은 양 찾기'는  2천년간 계속되어 결국 ‘땅 끝’에 위치한 한국 인 우리에게 까지 이른 것이며 그것의 시작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선교 여정에서부터였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2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 누가복음 9:51 김준식목사 2017-05-21 12440
151 예수님이 걸어 가신 십자가의 길 (2) 누가복음 13:22-35 김준식목사 2017-05-15 12855
150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누가복음 9:27-31, 44-45, 51-53 김준식목사 2017-05-09 13348
» 에브라임, 잃어버린 열 지파의 신비 마태복음 4:12-17 김준식목사 2017-04-30 18435
148 옷, 의의 옷, 구원의 옷 마태복음 22:1-14 김준식목사 2017-04-24 13212
147 에덴 동산의 잃어버린 강 - 2-  스가랴 14:4-10 file 김준식목사 2017-04-15 15965
146 에덴 동산의 잃어버린 강 -1-, -2- 창세기2:10-14 file 김준식목사 2017-04-11 21399
145 하나님이 구상하시는 예루살렘 계시록 22:1-5 file 김준식목사 2017-04-02 13703
144 승천 후의 성자 하나님의  사역  마가복음 16:17-20 김준식목사 2017-03-30 13240
143 구약에서의 성자 하나님의 역할 다니엘 10:5-6 김준식목사 2017-03-20 13661
142 가나안 여정에서의 두 사람 갈렙의 역할 역대상 2:4-7, 18-20, 48-50, file 김준식목사 2017-03-12 20877
141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고린도전서 6:19, 20 김준식목사 2017-03-06 23002
140 이스라엘의 가나안 여로에서의 삼위일체 하나님  민수기 9:15-23 김준식목사 2017-02-25 14556
139 구약에서의 성부 하나님 출애굽기 33:18-23 김준식목사 2017-02-19 14379
138 지상에서의 예수님과 삼위일체 빌립보서 2:5-11 김준식목사 2017-02-12 14587
137 삼위일체 하나님 (2) 요한복음 14:9-11 김준식목사 2017-02-06 14166
136 삼위일체 하나님 마태복음3:13-17 김준식목사 2017-01-30 14448
135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세례 요한의 생애와 그의 사명) 요한복음1:29-34 김준식목사 2017-01-22 20762
134 영원 지복의 하나님의 나라(계시록 22:1-5) 김준식목사 2017-01-15 14330
133 새 하늘과 새 땅과 하나님의 나라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계시록 21:1 김준식목사 2017-01-07 17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