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삼위일체 하나님 (2) 요한복음 14:9-11

조회 수 14166 추천 수 0 2017.02.06 08:31:18

우리는 지난 주일 삼위일체의 구약에서 보여 주는 삼위일체 하나님, 신약에서 보여 주는 삼위일체 하나님, 성자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형체를 가지시며,  신 구약에서 꿈으로나 환상 가운데서나 현실세계에 사람에게 나타나실 때에 항상 형체를 가지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오늘은 잘못된 삼위일체론을 살펴 본 후에 내적 삼위일체 혹은 원래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 혹은 역할적 삼위일체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잘못된 삼위일체론


1. 양태론
사람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제 역시 목사로 서 목회를 하면서 삼위일체를 양태론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가 르쳤습니다. 삼위일체에서 가장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 양태론입니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던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이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목회자 들도 이러한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로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양태론이 무엇인지, 그 정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양태론은 물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기본적인 양태론을 쉽게 설명하자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한 한 인격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삼위일체론이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오랫동안 삼위일체에 대해서 좀 쉽게 설명하고 이해해 보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 물방울이 셋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로 합하여지는 것이 삼위일체를 보여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삼위적인 양태를 물과 수증기와 얼음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물을 두고 생각해 볼 때에 액체 상태의 물에서 수증기가 되고 고체인 얼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양태론적인 자들은 그들이 즐겨 사용하던 물에 대한 비유 외에도, 수박과 수박조각과 수박 즙으로 비유하여 삼위일체를 동일한 수박의 다른 형태로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나의 경우 교회에서는 목사요 아내에게는 남편이요 자녀들에게는 아빠인 것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혹은 한 삼각형이 세 면으로 되었음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세상의 어떤 물질로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삼위일체를 아주 쉽게 이해하기 위한 위의 여러 가지 비유는 우리가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에 약간의 도움은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바람직한 설명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비유는 한 실존적인 인격의 세가지 양태(Mode)를 보여줍니다. 이런 것을 단일 신론적 양태론이라고 하는데, 일반 성도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된 주장이기도 합니다. 본인의 세 양태인 목사와 남편과 아빠라는 사역적인 직분은 상호간에 인격적 교류나 관계를 갖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 양태가 동일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인격이 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삼위라고 합니다. 삼위의 ‘위’를 영어로는 person즉 인격으로 말합니다. 단일신론적 양태론은 한 인격의 하나님이 사역 면에서 구약에서는 성부로, 신약에서는 성자로, 십자가 이후로는 성령의 세 양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양태론 입니다.  즉 어원적으로 한 배우가 세 가지의 배역을 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세 사람의 가면을 쓰고 다른 역을 맡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인격의 하나님이 세 역할, 즉 창조자로서, 구속자로서, 성화자로서의 삼중적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에서 언급되 는 삼위 간의 인격적인 교통에 대해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음으로 비 성경적입니다.  또 십자가에서 죽은 분이 성부하나님 자신이 됨으로 성부 수난설이라고 불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어느 때라도 기독교의 성부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성부 하나님이 돌아가신 적이 있거나, 돌아가실 가능성이 있다면, 하나님은 생명의 근본이시며 전능하신 영원불멸의 하나님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정통교회의 목회자 중에도 종종 이단의 가르침과 유사하게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사에서 이런 양태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벨리우스, 노예투스, 파락세아스등이 있었습니다.


2. 군주신론(Monarchianism) :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일신론
신약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으나, 유대교의 오랜 뿌리에서 나온 일신론적 사고 방식은 쉽게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어로 독재군주정치체제를 의미하는 이러한 군주신론은 2세기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3세기에 많은 추종자를 얻었습니다. 군주신론은 로마 제국의 황제 체제를 강화하고 유지시키도록 제공된 신론입니다. 한 일신론 사상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하나님이 삼위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필요에 따라 그리스도의 신성, 또는 인성의 본질을 변형시켰습니다.


이런 자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므로,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착한 인간인데 하나님께서 신적인 능력을 부여하신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 어떤 자는 예수는 보통 인간이었는데 세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양자로 선택하시고 신적인 능력을 부어주셔서 그리스도로 삼았다고 합니다. 또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를 다른 자녀들 보다 먼저 창조된 피조물로 보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의 영적 아들이 되었다고 주장 합니다.  예수는 처음에는 보통 인간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 머묾으로 말미암아 점차 그리스도의 위치로 승격되었다고 합니다. 부활 후에는 하나님과 거의 비슷한 경지에 이르러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오늘날 이와 관련된 이단들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성령의 인격성을 부정하며, 성령은 여호와 신의 단순한 활동력으로 이해합니다.


또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했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자 그리스도의 모양과 형태(양태)로 세상에 오셨다고 주장합니다.


요한복음 10:30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말씀과 요한복음 14:9의 “나를 본 자는 아버 지를 본 것이다”라는 말씀을 풀어서 성부가 성자로 오셔서 수난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성 부와 성자의 구별을 무시하고, 성자의 신성만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인성을 철저히 무시하는 입장입니다. 노에투스(Noetus)는 성부께서 육신을 취하셨고, 성부와 성자는 한 하나님이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신 것에 불과하므로 성자가 수난 받은 것은 성부가 수난 받은 것으로 봅 니다.


사벨리우스(Sabelius)의 양태론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만 언급한 다른 양태론과는 달리 성령을 포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서 혹은 계시가 발전함에 따라서 하나님은 포장(가면, 양태)을 달리하여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주시는 성부 하나님으로, 복음서 시대에는 성육하신 성자 하나님으로,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성령으로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태양으로 비유컨대 성부는 태양이며, 성자는 태양 빛이며, 성령은 태양 열이고  인간으로 비유한다면 육, 혼, 영이라고합니다. 사벨리우스는 성부, 성자, 성령은 단지 한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모습(가면, 양태)을 바꾸신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가르치는 자들이 레마 선교회와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입니다. 


3. 종속론(Subordinationism)
이들은 삼위를 인정하나 성자와 성령은 성부에, 또는 성령이 성자에 종속된 것으로 봅니다.  2세기에 들끓었던 영지주의의 유출설은 종속론적 경향을 지녔습니다. 종속론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들은 서열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영원한 성부이신 한 분의 위대한 하나님이 있으며, 성자와 성령은 뛰어난 피조물이거나 성부보다는 열등한 신들입니다. 종속론은 4세기 초의 아리우스주의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났습니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리우스 종속론 이단의 주장은 하나님은 시작이 없으신 분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시작이 있다. 성부 하나님만이 영원 전부터 계신 유일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어느 시점에서 아들을 창조하셨기에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따라서 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 완전한 하나님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4. 삼신론
삼신론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고 하는 본질과 인격이 다른 세분의 하나님이 각각 분리되어 계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삼신론은 인격뿐 아니라 본질도 셋으로 분리시키는 주장입니다. 삼신론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은 세 분의 개별적이고 분리된 신들을 지칭 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구약성경에서 명령하시고 예수께서 가르친 그 명령, 곧 하나님은 하나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삼위일체론은 결코 ‘세 하나님들’ (three gods)을 말하는 삼신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명확하게 비 기독교적인 삼신론에 대항했습니다. 만약 고대 교회가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지 못했다면, 기독교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기독교의 신앙의 대상과 내용은 삼신론으로 전락했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적 영웅으로 숭배했든지, 아니면 열등한 제 2의 하나님으로 간주하는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삼위일체에 관한 논의를 우리의 실천적 신앙과는 상관없는, 쓸모 없는 논쟁거리쯤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회는 지난 2천년 동안 삼위일체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으며, 예배의 축도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와 무관한 신학자의 사변적 놀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삼위일체의 교리를 알려고 하지 않거나, 알아도 잘못 알아서 이단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세 인격의 하나님이 ‘하나’ 즉, ‘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 인격의 하나님이 어떻게 ‘일체’가 되십니까?


둘째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성
우리는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가 종속적인 관계도 아니고, 양태론적인 관계도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떤 관계로 이해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일체성 가운데에 있는 세 인격과 세 인격 가운데에 있는 일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일신론에 빠지지 않으면서 세 인격의 일체성을 말할 수 있고, 삼신론에 빠지지 않으면서 일체성 속에 있는 세 인격을 말할 수 있습니까? 이를 점유(appropriatio)와 순환 (perichorese)의 개념으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1. 점유(appropriatio)  
점유라는 개념은 신적인 세 인격들의 속성과 사역은 각 인격에게 점유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 인격의 사역인 창조와 구원과 성화는 각 인격이 서로 다른 인격들에게 참여하여 공동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주체는 성부이지만 성자와 성령도 창조자 하나님이요, 구원의 주체는 성자이지만 성부와 성령도 구원자 하나님이요, 성화의 주체는 성령이지만 성부와 성자도 성화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이 공동의 사역들은 각 인격에게 점유된다는 것입니다. 즉 창조는 성부의 사역이요, 구원은 성자의 사역이며, 성화는 성령의 사역으로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유의 개념은 일체성 속에 있는 세 인격들의 구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순환(perichorese)  
순환이라는 개념은 희랍어 ‘페리코레시스’에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이 처음으로 말한 개념입니다. 신적인 세 인격들은 서로 구분되어 있으나 서로 다른 인격들에 참여하고 그들의 삶 속에 침투하여 하나의 순환운동을 형성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그들의 존재와 사역에 있어서 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는 성자와 성령 안에, 성자는 성부와 성령 안에, 성령은 성부와 성자 안에 참여 하며 그 안에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의 힘으로 각 인격은 서로 다른 인격 안에서 살며 일체를 형성합니다. 이와 같이 순환의 개념은 서로 구분되어 있는 세 인격들의 일체성을 표현합니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요한복음 14: 10-11에, ’10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결국 점유의 개념은 삼위일체의 삼위성을 표현하는 반면에, 순환의 개념은 삼위일체의 일체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적인 세 인격은 삼위성 가운데에서 일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며, 일체성 가운데에서 삼위성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일체성 때문에 삼위성이 약화되지 않으며 삼위성 때문에 일체성이 약화되지 않습니다. 일체성은 삼위성 안에 있고 삼위성은 일체성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삶은 단 하나의 주체, 하나의 지배적 존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되어 있고 상대방 속에서 살고 있는 세 인격들의 사귐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내재적 삼위일체(the immanent Trinity)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영원히 자기 자신 안에 계신 삼위 일체 하나님을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참 자녀들을 얻기 위해 영원한 인류구속 계획을 설정하시고 그 사역을 위해 사역을 각각 담당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온 우주를 창조하실 일을 담당 하실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고, 그 일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성육신하시기 위해 인간 세계로 오실 하나님은 형상을 가지셨기에 그 형상을 인간에게 주시고 인간 세계로 오실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라 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신 후에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인간 세상에 오셔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성화시키시고 보존하실 일을 담당하실 하나님을 성령하나님이라 하여 각각 사역을 담당하셨습니다. 내재적 하나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 영원한 하나님 자신에 있어서의 본질적인 삼위일체입니다. 


3. 경륜적 삼위일체(사역적 삼위일체)(the economic Trinity)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적 경륜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역은 성부의 창조, 성자 의 구원, 성령의 성화를 말합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십니다.  본래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형성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은 하나님 자신이 영원 전부터 그의 내적인 삼위일체의 존재 속에서 결정하신 것입니 다. 그러나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는 서로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습니다. 창조의 행위는 성부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이 창조의 행위에는 인간구원을 이루실 성자와 창조의 능력 으로서의 성령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성부의 사역인 동시에 삼위의 공동사역 이며, 하나님의 내재적 삼위일체의 삶에 속합니다.


성자의 구원의 행위는 성자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이 행위에는 성부와 성령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성자의 사역인 동시에 삼위의 공동사역이며 하나님의 내재적 삼위일체의 삶에 속합니다. 성령의 성화의 사역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이 사역에는 성부와 성자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성령의 사역인 동시에 삼위의 공동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내재적 삼위일체의 삶에 속합니다.


인류구속사의 사역은 성자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사역인데 이것에는 성자 하나님의 인간구속을 위한 성육신,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과 재림과 죄인들의 심판이 포함됩니다. 요한복음 5:22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 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7절,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 셨느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심판권세를 위임 받으신 때는 마태복음 28:18의 부활하신 후부터입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24에 의하면 심판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친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했는데 여기의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이란 온 세계를 통일해 전 지구 단일국가를 형성해서 다스리던 권세를 가진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잡아 산채로 불못에 빠뜨린 것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천년왕국이 끝나면서 있게 될 곡과 마곡전쟁에서 사탄을 잡아 불못에 던지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일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위임 받았던 심판권세를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 드리게 됩 니다. 삼위하나님의 성자로서의 인류구속사역을 다 끝내시고 영원세계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세계에 계셨습니다. 영원세계는 시간과 공간도 없고 물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삼위 하나님께서 한가지 목적을 가지시고 시간세계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우주와 지구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것은 지구를 창조 하기 위함이요 지구를 창조하신 것은 그 가운데 사람을 창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단지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그의 최종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를 골라서 그들을 영원세계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그분의 최종 목적이었습니다. 영원한 인류 구속역사 즉 하나님의 참 아들들을 골라내는 과정 가운데는 사탄의 타락, 우주창조, 인간창조, 인간의 타락,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천년왕국, 불신자들의 백보좌 심판과 사탄과 그 졸개들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 후에 선택하신 하나님의 아들들과 함께 영원세계로의 귀환합니다. 참 아들들을 얻기 위해 경륜적 삼위일체로 각각의 사역을 담당하신 후에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영원세계에 들어가시면 경륜적 삼위일체로서 삼위 하나님의 서로의 사역을 끝내신 후에 영원세계로 들어가시면서 다시 내재적 삼위일체로 되돌아 가셔서 영원히 사십니다. 앞으로 올 영원세계는 전과 갖지 않습니다. 이전의 영원세계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올 영원세계는 우주도 존재하며 우주를 운행하시는 우주본부가 지구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지구에 좌정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올 영원세계에는 물도 있고, 식물도 있고 동물도 있습니다(계22:1-5). 왜 동물들이 있을 것을 기대하느냐 하면 에스겔서에 스랍천사들과 그룹천사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들 천사들은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창조된 영적 존재들입 니다. 그런데 이 스랍, 그룹들의 얼굴이 사람의 얼굴, 독수리의 얼굴, 사자의 얼굴, 소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주와 지구가 창조되기 전에 이들의 얼굴들이 존재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지구에 이들의 얼굴을 가진 존재들을 창조하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올 영원세계에도 이들의 존재가 있을 것을 보여 줍니다.


셋째로 삼위일체론의 의의
삼위일체론은 하나의 신학적 사변이 아닙니다. 고대의 종교적인 세계에 있어서 기독교가 외친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은 기독교를 다신론, 범신론, 일신론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론이었습니다. 과거 양태론이나 종속론과 같은 일신론적 교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한 황제, 한 제국을 보장하는 단일군주론적 체계의 종교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교주에 의해 유지되는 이단들이 왜 그렇게 군주신론에 집착하고 있는 지를 가늠하게 합니다. 결국 이단들이 삼위일체론을 거부하는 것은 삼위일체 사상이 그들의 교주 중심의 단일군주 체제 의 근본을 흔들어 놓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단일군주론적 지배체제를 종교적으로 보장하여 주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의 사귐 속에서 하나를 이루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탐욕과 불의로 무너져가는 우리의 공동체를 바로 세우고, 정의, 평화, 생명의 공동체로 부활시키도록 영감을 줍니다. 기독교인의 사회윤리는 이러한 삼위일체 신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든 전체주의에 대하여 물음을 제기하고 모든 종류의 폐쇄주의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저항하는 것을 의미합     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2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 누가복음 9:51 김준식목사 2017-05-21 12440
151 예수님이 걸어 가신 십자가의 길 (2) 누가복음 13:22-35 김준식목사 2017-05-15 12855
150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누가복음 9:27-31, 44-45, 51-53 김준식목사 2017-05-09 13348
149 에브라임, 잃어버린 열 지파의 신비 마태복음 4:12-17 김준식목사 2017-04-30 18432
148 옷, 의의 옷, 구원의 옷 마태복음 22:1-14 김준식목사 2017-04-24 13212
147 에덴 동산의 잃어버린 강 - 2-  스가랴 14:4-10 file 김준식목사 2017-04-15 15965
146 에덴 동산의 잃어버린 강 -1-, -2- 창세기2:10-14 file 김준식목사 2017-04-11 21397
145 하나님이 구상하시는 예루살렘 계시록 22:1-5 file 김준식목사 2017-04-02 13701
144 승천 후의 성자 하나님의  사역  마가복음 16:17-20 김준식목사 2017-03-30 13239
143 구약에서의 성자 하나님의 역할 다니엘 10:5-6 김준식목사 2017-03-20 13660
142 가나안 여정에서의 두 사람 갈렙의 역할 역대상 2:4-7, 18-20, 48-50, file 김준식목사 2017-03-12 20872
141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고린도전서 6:19, 20 김준식목사 2017-03-06 23000
140 이스라엘의 가나안 여로에서의 삼위일체 하나님  민수기 9:15-23 김준식목사 2017-02-25 14555
139 구약에서의 성부 하나님 출애굽기 33:18-23 김준식목사 2017-02-19 14376
138 지상에서의 예수님과 삼위일체 빌립보서 2:5-11 김준식목사 2017-02-12 14587
» 삼위일체 하나님 (2) 요한복음 14:9-11 김준식목사 2017-02-06 14166
136 삼위일체 하나님 마태복음3:13-17 김준식목사 2017-01-30 14448
135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세례 요한의 생애와 그의 사명) 요한복음1:29-34 김준식목사 2017-01-22 20760
134 영원 지복의 하나님의 나라(계시록 22:1-5) 김준식목사 2017-01-15 14330
133 새 하늘과 새 땅과 하나님의 나라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계시록 21:1 김준식목사 2017-01-07 17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