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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에서의 관계 재조명

조회 수 15701 추천 수 0 2014.08.18 13:22:46


 

대부분의 목사님들의 설교나 주석책에서 에서가 400명 군사들을 이끌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을 죽이려 왔다고 하지만 저의 견해는 다릅니다. 우리는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 다시 면밀히 조사함으로써 말세를 살아 가는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1. 야곱과 에서의 성격

우리는 먼저 성경을 통해서 야곱의 성격과 에서의 성격을 알아 보겠습니다. 먼저 야곱의 성격은 조용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야곱은 집안에 있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조용한 성격이라는 말은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어머니 리브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하여  자기 가문에 주신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장자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들사람이라 했습니다. 사냥군이라 했습니다. 사냥할 짐승의 꽁무니만 좇아 다니는 사람입니다. 성격은 호탕하고 단순합니다. 반면에 물질주의자요 현실주의자입니다. 물질주의자란 눈에 보이는 것과 손에 잡을 수 있는 것만 추구하는 자입니다. 현실주의 자란 현재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며, 현재를 중요시 여기는 것입니다. 미래니 장래니 소망이니 내세 같은 것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장자권이 무엇입니까? 장자권은 영적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요, 손에 만져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에게는  아예 장자권 같은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할 가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자권은 영적인 것이요, 눈에 보이거나 현재에 무슨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자권이 영적인 것이란 말은 그 후손이 ‘택한 백성’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요 궁극적으로는 구원받고 영생을 갖고 누리는 것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공동 후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런 구원의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훈련은 길고 어렵고 고달프고 괴로운 것입니다. 현세적인 것이 아니고 미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와 같이 물질주의자요 현실주의자들에게는 이런 영적인 것에 도대체 취미가 없는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가 장자권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을 알고 장자권을 넘겨받기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야곱은 에서를 관찰하여 사냥하고 돌아 오는 길목에 의도적으로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팥죽과 장자권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알지 못했으며 또한 알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서의 이런 면에 대해서 에서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미래적이요 눈에 안보이지만 영적인 요소인 장자권에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복이 장자권적 축복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 대해 주목하시고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창세기 27  장에서 이삭이 나이 많아 눈도 어둡고 기력도 세약해져 더 늦기 전에 자녀들에게 그 집안의 영적 축복이요 비밀인 장자권 수여를 행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물론 장자인 에서가 당연히 장자권을 물려 받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삭은 장자 에서를 좋아했습니다. 이삭의 성격은 차자 야곱과 같이 조용한 사람이요, 순종적이요 양보하는 사람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백세에, 그리고 어머니 사라의 구십세에 얻은 아들이기에 어머니 사라의 극성스런 지극한 과잉보호 속에 자랐기에 그런 환경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반면에 이스마엘은 젊은 엄마에게서 출생했습니다. 자유분방하게 자랐습니다.

 

이삭은 자신이 자랄 때에 형인 이스마엘에게 항상 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라가 그것을 간파하고 이스마엘을 집에서 쫓아 냈지만 이삭은 형 이스마엘의 호탕하고 활달한 성격을 좋아했습니다. 자신도 형 이스마엘과 같이 활동적이요 활달한 성격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에서에게서 형 이스마엘의 성격을 발견하고 은근히 아들 에서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에서의 성격과 이스마엘의 성격이 비슷합니다. 들사람, 군인 기질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에서가 큰 아버지 이스마엘과 상통합니다. 창세기28:9 에 에서가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취합니다. 이삭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들 장자 에서에게 장자권을 물려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의심없이 장자권을 물려 주려고 하는데, 아내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25:23  에서 자신이 쌍동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예언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두 아들들의 성격과 행동과 삶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장자권은 사모하는 야곱에게 넘어 갔습니다. 에서가 사냥을 해와서 아버지 이삭에게 들어갔더니 이미 그것은 야곱이 가로채 간 후였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장자권축복을 빌 때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이 때의 이삭의 나이는 98세쯤의 연령이었습니다. 그는 180세까지 살았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장자권 축복기도를 해준 연령은 이삭의 생애의 절반에 해당하는 나이입니다. 그렇다면 요즘의 우리의 나이와 비교하면 40세나 50세 정도의 연령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27:1에서,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했으며, 2절에서 이삭이 말하기를, '내가 이제 늙어 어느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에 이 때에 이삭이 굉장히 약해졌고 병에 시달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성이나 판단력이 아주 흐려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창27:22에 보면, '...이삭이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했으며, 23절에,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했습니다. 여기에서 이삭은 분명히 야곱의 음성임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야곱과 리브가가 아무리 염소털로 야곱의 몸을 위장시켰다고 하지만 무슨 접착제로 위장했는지 모르겠지만 자연적인 에서의 몸털과 염소털로 위장한 야곱의 몸털을 분간하지 못하는 이삭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33절은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고 나간 후에 진짜 에서가 들어와서 축복을 빌기를 원했을 때에 에서인 줄 확인한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다고 말합니다. '이삭이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 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 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했습니다. 여기서 왜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습니까? 자기가 야곱에게 속은 사실을 깨닫고야 창세기 25:23의 하나님의 계시를 생각하며,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탈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심히 떨었던 것입니다.
 
에서가 애걸복걸합니다. 자기에게도 축복을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축복은 커녕 오히려 그 내용이 저주스럽기만 합니다.

에서는 동생 야곱에 대해 괴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를 두번이나 속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구시렁거리면서 하는 말이 야곱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자신이 서둘러서 야곱에게 장자권 축복을 받게 하고서 큰 아들 에서가 어떻게 행동하나 눈에 안보이게 살피는데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말하는 것을 보고 남편 이삭에게 가서 야곱을 밧단아람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당분간 보내서 에서의 화가 풀린 후에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삭은 야곱이 에서와 같이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취하여 자신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아내를 얻어야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의 딸들을 아내로 얻기는 얻는데 그일을 성취하기 까지 14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후에 고향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지만 야곱의 마음은 항상 에서에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의 성격과 장자권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 좀더 깊이 따지고 생각했더라면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서는 성격이 단순한 사람입니다. 성격이 활동적이요, 화통한 사람입니다. 야곱이 자신의 장자권을 쟁취한 사건에 대해 처음에는 괴심한 생각이 들어 죽이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야곱을 죽이기까지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에서는 장자권에 대해 그렇게 중요하다거나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곧 그 사건을 잊어버렸고 오히려 자기가 동생을 죽이겠다는 말 때문에 동생이 집을 떠난지 20년이나 돌아오지 않는데 대해 마음으로 죄책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에서가 400명 군사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말을 지레짐작하여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오고 있다고들 생각하는데 실제로 에서가 야곱을 향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오는 것은 야곱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랑하는 쌍둥이 동생 야곱을 환영하고 호위 하기 위해서 마중 나온 것입니다. 에서가 20년 동안 야곱에 대해 이를  갈고 칼을 갈고 있었을 정도로 그는 장자권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 야곱에 대해 그렇게 원한을 품고 20년 동안 이를 갈고 칼을 갈았겠습니까? 야곱이 자신의 장자권을 빼앗았다는 생각 때문에 20년 동안 이를 갉고 있었다면 그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 20년 동안 원수 갚겠다고 이를 갈고 있을 필요없이 군사들을 이끌고 가서 아예 처죽였을 것이 더 현명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어린 자녀들과 수없이 많은 가축들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 오는 거리라면 말을 타고 가면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나의 견해는 에서가 야곱을 죽이기 위해 20년 동안 이를 갈고 있다가 야곱을 죽이기 위해 400명 군사를 이끌고 나타날 정도로 그는 장자권을 잃은 데 대해 그렇게 분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에서가 장자권을 야곱에게 넘겨 주었지만 현실주의자요 물질주의자인 에서가 장자권을 넘겨준 일로 인해 현실적으로 물질적으로 잃은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이익을 얻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거부입니다. 그 아버지의 재산을 송두리채 물려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명색상의 장자이기 때문입니다. 장자권은 물리적 재산권입니다. 성경에도 장자에게는 상속할 때에 다른 자녀에 비해 갑절을 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그리고 자녀와 자녀간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재산 때문입니다. 에서는 동생 야곱과 재산 때문에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장자권, 재산권을 야곱에게 속아 잃었다면 20년 동안 이를 갈면서 복수할, 죽일 마음을 가졌을 런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야곱이 집을 떠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산을 자신이 홀로 다 물려받았습니다.

 

오히려 동생이 옆에 있었다면 동생에게 아무리 나누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 야곱이 집을 떠난지 20년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산을 송두리채 물려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아버지 이삭의 재산을 상속받아 거부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주의자요 물질주의자인 에서가 생각해 볼 때 장자권을 야곱이 가져갔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장자로써 잃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20년 동안 야곱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 이를 갈고  칼을 갈고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자기 때문에 동생 야곱이 집을 떠나 20년 동안이나 돌아 오지 않고 있다가 소문에 동생이 돌아 오는데  거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형 에서에게 주기 위한 선물이 떼를 이루고 있다는 말을 듣고 동생을 맞이하기 위해 또 들으니 짐승 떼들이 수없이 많다는 말을 듣고 동생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 집에 고용하고 있는 인부나 하인들을 이끌고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에서가 얼마나 부자이면 자신의 가신을 400명이나 거느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현실적으로 손해 본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동생이 선물로 주겠다는 것도 거절할 정도로 그는 물질이나 재산이 풍부합니다. 장자권으로 인해 야곱에게 탓할 것은 없습니다.

 

2. 야곱의 경우
 야곱의 경우는 다릅니다. 야곱은 너무나 장자권을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기까지 장자권을 쟁취하고 아버지에게 장자권에 따르는 축복을 가로채고 도망을 쳐왔지만 항상 그에 대한 죄책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입니다. 그 만큼 야곱은 장자권을 중요시 여겼고 에서는 오히려 장자권을 잃은 데 대해 일시적으로는 분한 마음에서 야곱을 죽이겠다고 했지만 곧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장자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또  장자권을 잃은데 대해 현실적으로 잃은 것이 없기 때문입 니다.

 

반면에 야곱은 장자권 때문에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를 떠나고 정든 집을 떠나야 했으면 외삼촌 집에서 20년 동안 죽어라고 일했고 속임을 당하고 고생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장자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주목거리가 된 관계로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험악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얼마나 고난을 당했습니까?  인류 역사상 이스라엘 민족만큼 고난 당한 민족은  없습니다. 왜? 장자권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드렸는데 무슨 생각이 있습니까? 에서는 불신자를 표상하는 것이요, 야곱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불신자들은 현실주의자들이요 물질주의자 들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것은 현실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이요, 우선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 지는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 미래적이요,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천국이 있다 지옥이 있다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취미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예수를  믿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왜 이곳에 와 있습니까? 권력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위해 여기 왔습니까?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을 칭송하는 사람들을 보면 톱으로 켜 죽임을 당하고 유리하며 방황하면서 믿음에 승리했다고 합니다. 로마서 8장에 믿음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핍박, 박해 , 죽임당함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로써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사람들이라 했습니다.

 

3.  장자권이란?

장자권이 무엇입니까?  장자권은 하늘나라의 장자권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12,13에,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했습니다. 로마서 8장 16,17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했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이어온 장자권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이요, 하나님의 후사 즉 하나님의 상속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야곱이 물려 받은 장자권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땅의 것의 상속을 위한 상속자가 아니요 하늘나라에서 갖게 될 기업의 상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잘먹고 잘되고 형통하리라는 말은 없습니다. 잘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장자권에게는 별로 관심거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왕 사업도 잘되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상속자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로마서 8:17에 하나님의 후사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것이라 하면서 고난이란 말이 연결되어 나오는 것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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