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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7

조회 수 3837 추천 수 0 2018.03.31 08:39:19

우리는 이제까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사건 중심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부활의 성격과 특성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요한복음 20:13-18)
‘11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 이다.’

그 당시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감을 고려했을 때에 저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탈취해 훼 손시킬 가능성은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가족에게나 제자들에게는 매우 치욕거 리였고 불행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살펴 본 후에 숙소로 돌아간 후에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 무덤 앞에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 기 위해 장례를 치룬 후에 와 그리고 안식일이 끝나자 마자 향유와 향품을 두번이나 사서 아침에 해뜨기 전에 찾아 왔습니다. 무덤의 돌이 굴러지고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 도둑맞았 다는 것을 알고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나 허황되고 슬퍼서 무덤 문 앞에서 대성통곡하고 있었습 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이렇게 만난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울면서 시체가 없어진 예수님의 무덤 속을 우연히 들여다 보게 되었 습니다.

울다가 우연히 무덤 안을 들려 봤을 때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아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 때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어떤 상황 설명도 하지 않고 어찌하여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천사의 물음은 마리아가 우는 이 유를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왜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는 질책조의 물음인 것입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 이다.’라고 대답하므로 마리아가 자신이 골몰하고 있는 문제인 예수님의 시신이 도적질 당했다 는 이야기만을 하고 있습니다. 무덤 안의 천사를 천사로 알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4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예 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마리아 가 무덤 안의 천사와 대화를 하다가 등뒤에 대해 직관적으로 무엇을 느끼고 뒤를 돌아 보니 예수 님이 서 계시는데 마리아는 예수님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로 생각하고 그 사람에 게 혹시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으면 자기에게 되돌려 달라고 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 이 예수님과 같이 상당한 거리와 시간 동안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인 줄 깨 닫지 못했던 것과 같이 마리아 역시 신령체를 가지신 예수님을 얼른 알아 내지 못했습니다.


‘16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 이라).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 다 하라 하시니 18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이 때에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심으로 마리아의 눈에 끼었던 안개가 걷히고 예수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친숙한 음성에 마리아는 지금까지 동산지기인 줄로 여겼던 자가 바로 예수님인 것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마리아는 예수님께 ‘랍오니’여 했습니다. 마리아가 순 간적으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을 볼 때에 마리아가 평소에 주님께 이 칭호(내 사랑 랍비여)를 사용 한 것 같습니다. 이 칭호 랍오니는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의 지극한 사랑이 담긴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끌어 안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으로서 부활 후 아버지를 뵙기 위해 천국으로 가는 데는 지구와 천국 간을 순식간에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정말 살아나셨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놀라와 예수님을 끌어 안았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의 예수님인 줄로 생각하고 다시금 주님과의 관계가 이전 과 같이 이 지상에서 지속되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단순히 이전의 모습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으로서 승천하시어 새로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셔야 했습니다. 마리아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같이 계실 것을 바라며 예수님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끌어 앉는 것을 중지하고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에 막달라 마 리아가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증거했습니다.


둘째로 엠마오 도상에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누가복음 24:13-35)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의 증언을 듣고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였 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자신의 부활을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 단락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과의 대화부분입니다. 이 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애통 해 했지만 단지 메시야이기를 바랬던 한 선지자가 죽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듣고도 다른 제자들과 같이 전혀 믿지 않은 채로 갈릴리로 돌아 가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들은 예수님의 열 두 사도들은 아닙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 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갔을 때에 33절에서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에게 가서 예 수님을 만났다고 증거한 구절에서 이들이 예수님의 열 한 사도에 속하지 않은 갈릴리에서 예수 님을 따라 온 다른 제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13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에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 지 거리를 25리라 했습니다. 이것은 12km되는 거리입니다. 시간으로는 걸어서 3시간 되는 거 리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엠마오로 출발한 때는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날 늦은 오후였습니다. 이 들은 따라 올라 왔던 예수님이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졸지에 십자가에 죽으셨고 예수님이 부활하 셨다는 말은 들었으나 믿기지 않고 소망을 잃어버리고 다시 이 두 사람은 갈릴리로 돌아가는 길 이었습니다. 엠마오는 걸어서 3시간 정도의 거리였기에 예수님을 길에서 만나 같이 대화하면서 엠마오에 도착할 무렵에 해가 져서 예수님을 강권하여 같이 유숙하기를 원하여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눈이 떠져 예수님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엠마오로 내려 가면서 길에서 예수님의 잡히심과 죽으심과 여인들로부터 살아났단 말을 듣고도 나머지 제자들을 뒤로 한 채 갈리리로 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면서 서로 이야기 하고 토의하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문득 이들의 뒤에  나타나서 그들에게 접근하여 같 이 동행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보면서도 예수님인 줄 인식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덤 앞에서의 막달라 마리아도 처음에 예수님을 인식하지 못했고 이 두 제자들도 예수님을 보고서도 알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사람들이 본래 수수하 게 차리고 있다가 화장을 하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손질을 하고 다른 옷을 갈아 입으면 사람들이 잘 못 알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죽으시기 전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다가 부활하신 신비로운 영광의 거룩한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인 줄 얼른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예수님은 죽었 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들 앞에 나타나자 알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4: 10에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라 했는데 헬라어 ‘크라테오’는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 으로 이는 두 사람의 의식이 설마 예수님이 나타나시리라고는 예상치도 못했기에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죽기 전이나 부활한 후에라도 그 모습이 변화되어서 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 앞에 섰을 때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었다가 부활한 그 예수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손에 못 자국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으며, 발에 못 자국, 옆구리에 창 자국을 그대 로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국들을 없앨 수도 있었지만 당신께서 부활하신 예수 그 리스도이심을 알리기 위해서 그 상처들을 그대로 놓아 두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부활 할 때는 죽기 전에 가졌던 모든 불구와 기형들이 다 원상대로 복구하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면서 길에서 이 두 제자들이 대화하는 중에 길가던 한 사람이 자신들과 동행하게 된  한 사람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하는 중에 그 사람이 자신들의 대화에 끼어 들었습니 다. 묻기를,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 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19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우리 대 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너희들이 길가면서 주고 받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에 그들 중에 글로바라 하는 자가 말하기를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 요즘 거시서 된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을 거요 하면서 힐란조로 말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고 되물었을 때에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일과 오늘 아침에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천사들을 만난 일과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무덤에 들어갔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나 부활의 증거인 예수님의 부활체는 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예수님의 부활은 믿고 싶지만 부활을 믿을 물증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앞에 두고도 이런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주님께서 미련하고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라 책망하시면서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주 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성경말씀을 가지고 예수님 자신의 부활을 입증하셨습니다.


‘25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엠마오로 가던 이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들의 어법이 부활한 주님에 대한 표현을 두번 이나 건너 전해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두번이나 건너 뛰어 자신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살으셨다는 소식을 여자들에게 들었 다고 하고 또 여자들은 천사들에게 들었다고 함으로써 이중 전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면 자신도 만나기를 힘쓰든지 아니면 천사들이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찾아가 직접 그들의 진술을 듣고 예수님 의 부활을 믿었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예수님이 죽었다고 하여 모든 소망을 접어 버리고 고향으로 떠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24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에서 이들은 여자들의 말만으로는 믿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이 가서 확인하여 보았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두어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을 의미한 것입니다. 예수의 시체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나 부활의 증거인 예수님의 부활체는 보지 못하였다는 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는 싶지만 믿을 증거가 없다는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이런 말은 하는 것을 볼 때에  이 두 사람의 불신앙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8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29그들이 강 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 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 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31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 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 고’

이들은 갈릴리 사람들이므로 갈릴리로 향하여 가는 길이었습니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어 이들은 엠마오의 어느 여관에 머물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은 더 가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엠마오에서 머물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 보다는 두 사람의 강권에 의해 예수님께서 엠마오에 머무시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 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자세하게 설명해 준 낯 선 사람에게 엠마오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를 선생으로 모시고자 간청하여 같이 묵 기를 원하였습니다. 주님의 설명을 들을 때에 마음이 뜨거웠던 두 사람은 그가 누구 인 지는 몰랐지만 대단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따라서 같이 묵으면서 더 가르침을 받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비록 하늘의 진리는 깨닫지 못했지만 진리와 진리를 설명해 주는 귀한 입에게 자신들의 마음과 귀를 여는 순수한 자세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다른 유대인들과 달리 그들을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 중 일원이 되 게 하였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비록 책망은 하셨지만 그들을 어여삐 여기시 고 그들에게 나타나 진리를 깨우쳐 주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된 우리들도 비록 큰 믿음과 능력은 갖지 못하고 있을 지라도 말씀에 자신의 마음과 귀를 항상 열어 놓은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들의 강권함에 못이겨 함께 저녁식사를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고 축사하고 떼어 주실 때에 그들이 예수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알아 보는 순간 예수님은 홀연히 사 라졌습니다. 비로소 이들이 깨닫기를 길에 오는 동안 말씀을 풀어 주실 때에 그들의 마음이 뜨 거워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 즉시로 그들은 일어나 돌이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갑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의 제자들의 숙소에 다달았을 때에 그곳에 열한 제자들과 다른 제자들 이 함께 모였는데 그것은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곧 그 대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엠마오로 갔던 두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전하러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에 낮에 예루살렘의 한 곳에서 시몬 베드로도 주님을 만났다고 하면서 모여 흥분 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만났다고 하여 부활의 소식이 점 점 신빙성을 얻고 있을 때에 글로바 일행이 돌아와 엠마오로 가는 길에 주님을 뵈었 다고 증언함으로써 주님의 부활은 더 확실한 사실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의 주님 만남과 엠마오로 가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두 사건 이 한 곳에 모이자 예수님의 부활은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셋째로 처음으로 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누가복음24:36-49, 요한복음 20:19-20)

‘‘36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 을지어다 하시니 37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누가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육체를 매우 물질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데 이것은 예수님께 서 완전한 육체의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표현하려는 의사인 누가의 노력에서 나온 것입니 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엠마오에서 돌아온 두 사람들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들어서 알 고 있었지만 직접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유령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글로 바 일행이 증언을 하고 있을 때에 홀연히 나타나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지 못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0:24에서 이때는 도마가 없었습니다.


‘38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 고 45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눈 앞에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면서도 제자들은 믿지 못하심으로 부활의 몸의 특징을 말씀하시고 보여 주시고 만져 보게 하시고 먹어 보이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부활 에 대한 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몸에 대한 확실하고 많은 정보를 후대의 우리에게 제공되었 습니다.  부활의 몸의 첫째 특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물론 천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먼저 본문에서 홀연히 나타나시고 홀연히 사라지십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홀 연히 나타나셨고(눅24:15) 엠마오에 도착해서 식사하던 중에 두 사람들이 예수님임을 인식하는 순간에 홀연히 사라졌습니다(눅24:31). 요한복음 20:15,16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홀연히 나 타나셨고 다른 여인들에게도 홀연히 나타나셨습니다(마 28:9). 그리고 요한복음 21:4에 베드 로를 비롯해 일곱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고 있을 때에 해변에 홀연히 나타나셨 습니다.

두번째 예수님의 부활의 몸의 특징은 살과 뼈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 이면서 살과 뼈가 있습니다. 방에 들어 오실 때에 문으로 통과해 들어 오시고 문으로 나가시는 것이 아니라 벽을 통과하셔서 들어 오시므로 공간을 초월하십니다. 그러면서 살과 뼈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번째 부활의 몸의 특징은 먹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생선을 먹어 보이셨습니 다. 영체라고 해서 먹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영도 인간의 음식을 먹는 것 같습니다. 불신자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이 와서 먹도록 음식을 차리고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 나 불신자들의 영이 아니라 귀신들이 와서 먹는 것입니다. 귀신에게 바친 음식은 동물들도 안 먹 는다고 합니다. 왜 안 먹습니까? 영양분이 다 빠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몸이 먹는다는 것 은 우리가 부활해서 천국에 살 때도 먹고 지낸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었는데 시편 78:24,25에 사람이 천사의 음식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NIV ‘25 Men ate the bread of angels; he sent them all the food they could eat.’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생명강 좌우에 매달마다 열두 과실을 맺는 생명 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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