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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제 4묵시 계속 II (다니엘 11:2-20)

조회 수 196 추천 수 0 2018.11.18 07:37:56

다니엘서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서입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여 강대국들의 발흥을 보 여 줍니다. 계시록 11장에서도 바사, 헬라국이 성립되고 헬라국의 4분열과 분열된 두 강대국들의 다툼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박해를 가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힛데겔 강가의 묵시는 다니엘이 바사 제국의 첫 왕인 고레스 3년인 BC 536년 힛데겔 강가에서 3 주간 금식 기도 중에 받은 묵시였습니다. 끝없이 패역하던 구약 선민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 하 나님의 공의의 징계로 야기된 시대였으나 동시에 단순한 징벌이나 저주의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징계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이 각성하여 만연한 죄악을 일시에 청산하고 감연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실현되고 있던 이중적인 전환 의 시대였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의 말미에 포로시대의 신앙영웅 다니엘이 자신과 민족을 위한 회 개 금식기도 중에 받은 묵시가 바로 이 힛데겔 강가의 묵시였습니다.

다니엘11장의 내용이 아주 복잡하게 전개됨으로 먼저 오늘 접할 내용들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먼저 지난 주일의 다니엘10:1-4은 다니엘이 이 힛데겔 강가의 묵시를 받은 때의 배경을 제시했 습니다. 그리 고 10:5-9은 묵시의 궁극적 수여자인 인자의 현현을 보여 줍니다. 이 때 인자는 구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다니엘에게 주어진 묵시의 근원이 성자 하나님, 나아가 삼위 하나님인 것인 바 묵시의 절대 진정성을 갖고 있는 것임을 시사받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주신 종말의 말씀이요, 요한계시록은 예수님께서 천상에서 천사를 통해 사도 요한에게 주신 종말의 말씀이요, 다니엘서 역시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 이므로  종말을 연구하는 자는 마태복음과 계시록과 다니엘서가 일치함을  깨달아야 하며 이 세 책 의 내용들을 다 연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자를 수행하고 묵시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가브리엘 천사가 향후 주어질 묵시는 바사 및 헬라제국과 관련된 묵시임을 서론적으로 알려준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이로서 10:1-11:1은 힛데 겔 강가의 묵시 기사의 전반부로서 일단 전 묵시의 배경, 수여자 및 묵시의 핵심내용을 서론적으로 밝히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은 본문인 다니엘 11:2-4은 힛데겔 강가의 묵시의 중반부 첫 단락입니다. 이 묵시가 주어질 당시의 패자인 바사제국의 영화도 곧 끝이 나고 새로이 헬라제국이 발흥한 후 그 헬라제국도 곧 4분될 것을 예언합니다.

다음은 다니엘11:5-20인데 헬라제국의 창건자인 알렉산더 대제 사후 4분된 헬라제국 중 양대 강국이었던 프톨레미와 셀류쿠스 왕조 사이의 150년 간의 대결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당에 영향력을 끼치고 서로 차지하기 위한 각축 과정에 대한 예언을 보여 줍니다. 먼저 11장의 하일라이트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유대민족에게 어떤 일을 감행했는가를 다음에 살펴 보게 될 것입니다. 11장에서 등장 시킨 후 12장에서는 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종말에 나타날 적 그리스도의 원형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첫째로 바사제국의 멸망과 헬라제국의 발흥 및 분열(다니엘 11:2-4)

‘2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 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 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3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 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4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 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 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 임이라.’

바사에서 일어날 세 왕은  바사제국의 첫 왕인 고레스 2세의 후계자인 캄비세스 2세(B.C.529-522), 스멜디스(B.C.522-521), 다리우스 히스타피스1세(B.C.521-486)이고, 네 번째 일어난 왕이 크세르크세스(B.C486-465)입니다. 여기 네 번째 왕 크세르크스는 에스더에 언급된 아하수에 로왕과 동일 인물입니다. 이 왕의 치세 기간이 바사와 메대에서 전성기였으며 그 부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 최강의 군대를 조직하여 그 군사력이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수에로왕은 마라톤 전투(BC 490)와 B.C.480년 아태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편성된 헬라 도시국가 연합군에게 살라미스 해전에서 크게 실패한 후 나라가 기울게 되었습니다. 

3절에서 “한 능력 있는 왕”이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을 말합니다. 그는 세계 어떤 정복자보다 더 월등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두고 성경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했습니다. 4절의 예언은 알렉 산더 이후 헬라 제국이 나누어 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8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알렉산더 이후 헬라 제국은 네 명의 계승자(카산더, 리시마쿠스, 프톨레미, 셀류쿠스)에 의하여 지배권이 분할(分割)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11:4).  여기 ‘그의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라는 것은 헬라 제국이 알렉산더의 아들에게 계승되지 않을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20년 동안 7명의 장군들이 권력투쟁을 하였고 그 중 3장군이 죽음을 당했고, 권력투쟁의 앞잡이로 이용당해 모친과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두 아들 중 알렉산더 4세는 카산더에 의하여 살해되었고,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형제인 필립 아르히다이우스는 정신 환상 자였는데, 그는 이미 BC317년에 암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에게는 그를 계승할 혈육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서 예언대로 ‘자신이 주장하던 권세 대로 되지’ 않고 말았습니다.

둘째로 남방애굽과 북방 시리아간의 전쟁(다니엘 11:5-19)

다니엘11:5, “5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남방 왕은 알렉산더가 죽은 후 헬라제국이 분열한 뒤 애굽을 통치하던 프톨레미 1세(B.C.323-285)인데 그는 알렉산더 제국을 분할한 네 장군 중 가장 유능한 장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통치 하던 애굽을 부강하게 하는데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른 세 나라 보다 애굽이 월등히 강력했습니다. 그리고 북방 왕은 시리아의 셀류쿠스 1세 니카도르(B.C.312-281)입니다. 본래 니카도로는 바벨론의 안티고누스의 밑에 있던 자였으나 B.C.316년에 안티고누스와 불화하여 프톨레미 1세 편으로 도망하였습니다. 그후 안티고누스가 망하자 그는 BC 312년 프톨레미의 도움을 받아 다시 바벨론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셀류쿠스 1세의 시대가 시작 된 공식적인 시기는 B.C.310년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셀류쿠스 1세는 애굽의 프톨레미 1세에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셀루쿠스 1세는 동쪽으로 인더스 강까지 서쪽으로 시리아와 페니키아까지 이르는 영토를 장악하였기 때문에 그의 권세는 그의 후 원자 프톨레미 1세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애굽과 시리아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시리아 왕국은 독립한 뒤에도 계속해서 국력을 강화시켜 나가고 정복전쟁을 계속하여 나중에는 애굽이 지배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해 소아시아 인근 지역까지 석권하 였으며 안티오쿠스 3세 제위기 이후에는 대 애굽 전쟁에서도 우위를 지켰습니다. (북방 왕 셀루쿠 스 왕조는 B.C.63년까지 지속되다가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망했습니다.)  

‘6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니’

6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 줍니다. B.C.285년에 프톨레미1세가 죽자 그의 뒤를 계승한 아들 프톨레미 2세(필라델푸스)이며,  북방왕은 셀류쿠스 1세의 손자인 시리아의 왕 안티 오쿠스 2세입니다. 남방국은 BC252년까지 셀류쿠스 왕가와 계속 싸웠습니다. 프톨레미 2세는 BC 250년에 지중해와 유대 지역의 확보를 둘러싸고 계속되어 온 시리아와의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딸 베레니케를 당시 ‘신’이라는 의미의 ‘데오스’로 불리우던 안티오쿠스 2세에게 시집을 보내면서 이른 바 애굽-시리아 상호 결혼 동맹을 맺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복잡한 문제를 야기 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안티오쿠스 2세에게는 이미 영향력 있고 막강한 힘을 가진 라오디케라는 부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티오쿠스 2세가 애굽의 프톨레미 왕조와 동맹을 맺으면 정치적 이득을 볼 것이 분명했지만 라오디케는 순순히 이혼을 승낙하려 하지 않았습니다(11:6). 라오디케는 두 아들 칼리니쿠스와 안티오쿠스를 두고 있었습 니다. 안티오쿠스 2세는 프톨레미 왕조와 정략 결혼을 성립 시킨 후 본처였던 라오디케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궁으로 되돌아 온 라오디케는 언제 자신이 다시 내 쫓길지 모른다는 생각 하에 계략을 짜고 자기 남편을 독살하였으며, 베레니케와 그의 아들들을 안디옥에서 죽게 한 뒤 라오디케는 친 라오디케 무리들과 쿠데타를 일으켜 자기 아들 칼리니쿠스(셀류쿠스 2세)를 왕으로 세우고 섭정을 하였 습니다. 그리하여 애굽과 시리아와의 관계는 이전보다도 더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베레니케와 안디옥에서 그를 도와주던 귀족들이 “버림을 당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11:7-9. “7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8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을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9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앞 절에서 언급한 사건들 뒤에 있었던 보복 사건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공주는 프톨레미 2세의 딸인 베레니케입니다. 그리고 북방왕은 베레니케를 살해한 라오디케의 아들 셀류쿠스 2세 칼리니쿠스입니다. 애굽의 프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는 딸의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직후인 B.C.247년에 죽고 아들인 프톨레미3세가 그의 뒤를 이었습니다. 그는 즉위한 후 누이의 복수를 하기 위하여 시리아를 공격했습니다. 그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누이를 죽인 원수인 라오디케와 칼리니쿠스에게 복수를 하고 시리아에서 금 4000달란트와 2,500개 이상의 우상을 전리품으로 약탈해 왔습니다. 이 전쟁은 B.C.246년부터 B.C.241년까지 계속 되었고 프톨레미 3세가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보복을 위한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9절은 북방 왕 셀류쿠스 2세 칼리니쿠스가 또 다시 남방 왕에게 보복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프톨레미 3세에게 수모를 당했으므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BC 242년 그는 4년간 군대를 재 조직하고 훈련시켜 바다와 육로를 통해 애굽을 공격하였으나 끝내는 남방왕에게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목숨 만을 겨우 건진 채 잔류병과 함께 BC 240년에 시리아로 퇴각 합니다. 

이와 같은 세속 역사를 살펴보면서 한 가지 새롭게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세상 나라들은 탐욕으로 인하여 자멸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해방의 날이 가까워 옴을 알리는 신호가 되고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째서 이처럼 다니엘에게 이방 나라 의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말해 주고 있는 지 주목 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의 세계 역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길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1:10-12. “10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프톨레미 3세에게 철저히 패배한 셀류쿠스 2세 칼리니쿠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안티오쿠스 3세요 형인 셀류쿠스 3세입니다. 형인 셀류쿠스 3세는 BC 225년에 왕위에 올랐으나 소아시아 전쟁을 치루는 도중 동료들에게 살해되어 즉위 3년 만에 죽었습니다. 이에 형 셀류쿠스 3세를 이어 안티오쿠스 3세가 즉위한 즉시(B.C.223) 동부지방의 반란을 진압시킨 후(B.C.220), 다음으로 페니키아와 팔레스틴의 원정 길에 나섰습니다(B.C.219-218).  남방 정책을 펼쳐 당시 애굽의 프톨레미 4세 필로파토르의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을 공격하여 점령하였으며 더 나아 가 애굽 본토를 공략하였습니다. 

‘11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안티오쿠스 3세에게 계속 공략을 당하던 프톨레미 4세는 전열을 가다듬고 역공을 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라피아(팔레사타인 지역의 가사 근방) 전투에서 큰 군대를 동원하여 방어하는 안티오 쿠스 3세에게 대승을 거두고 팔레스틴 지역을 안티오쿠스 3세에게 빼앗겼던 옛 영토를 되찿았습 니다. 안티오쿠스 3세에게 대승한 프톨레미 4세는 교만하여져서 자신을 신격화하였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재탈환하였을 때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의 전을 더럽혔습니다. 이것은 12절의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 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의 예언적 성취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죽게 되고 그의 세력은 약화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들을 더럽히는 자의 비참한 종말을 보여 줍니다. 그 저주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니엘11:13-19. “13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안티오쿠스 3세는 프톨레미 4세에게 패전하여 본국으로 돌아온 후 아르메니아와 파르티아, 박트리아 등 주변의 여타 국가들을 정복하여 어느 정도 자신의 명성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애굽을 공략할 기회를 엿보던 안티오쿠스 3세는 BC 203년 프톨레미 4세가 원인 모를 병으로 죽고 그의 아들 프톨레미 5세가 7세의 극히 어린 나이로 즉위합니다. 이 때에 시리아의 남하를 원치 않는 로마의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공격합니다. 안티오쿠스 3세는 마케도니아의 빌립과 애굽을 분할할 것을 약속하고 동맹을 맺고, 연합세력을 형성하여 애굽을 공격합니다. 이 때에 애굽의 장군 스코파스가 이끄는 애굽군을 격파하고 나아가 BC 198년에 팔레스틴 지역까지 완전히 정복합니다.

‘14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했던 프톨레미4세가 죽고 나이 어린 프톨레미 5세가 즉위하자 여러 나라 왕들이 애굽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14절은 이처럼 마게도니아의 빌립왕 및 소아시아의 여러 왕들이 안티오쿠스 3세와 연합하여 애굽을 침공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는 여기서 ‘네 백성’은 다니엘의 민족 곧 유대민족을 가리킵니다. 여기 강포한 자로 번역된 ‘베네 파리침’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시리아의 세력을 빌어 독립을 꾀하려 했던 어리석은 유대인들을 지칭합 니다.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을 도외시하고 당시 이방의 여타 국가들과 동일하게 각종 술수와 군사 력을 바탕으로 유대의 독립을 시도하려는 일 자체를 지칭합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유대는 시리아와 애굽의 중간 지점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안티오쿠스 3세와 애굽의 스코파스 장군이 서로 밀고 당기는 접전을 계속함으로 인하여 양쪽에 의하여 교대로 점령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유대 백성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일부는 오랫 동안 팔레스틴의 정복자로 군림하였던 애굽에게 충성하기를 주장했고, 일부는 새로 강자로 떠오 르는 시리아를 섬기기를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안티오쿠스 3세가 승리함에 따라 세력을 잡게 된 시리아파는 안티오쿠스 3세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리아파가 안티오쿠스 3세에게 제공함으로써 얻어진 결과는 그들이 갈구했던 유대의 독립이 아니라 오히려 애굽의 압제보다 더한 재난인 안티오쿠스 3세의 후계자인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에 의한 살륙 정치와 종교적인 박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간적인 욕심에 끌려 임의대로 행동하였을 때에 필연적으로 받게 될 비참한 결과를 보여 줍니다.

‘15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16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15절에서 북방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한다는 것은 안티오쿠스 3세는 동맹국 마케도니아의 협공과 시리아파 유대인들의 협조로 쉽게 애굽군을 물리치고 유대 땅을 점령했습 니다. 남방 애굽 군대는 시리아왕을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안티오쿠스 3세는 B.C.202년 전보다 더 많은 군대를 이끌고 다시 애굽을 공략했습니다. 그리하여 BC 201년에 가자의 요새를 멸망시켰 습니다(11:13-14). 그때 유대인들 중에는 애굽을 배반하고 안티오커스 3세 편에 선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스코파스 장군이 반격하여 친 안티오쿠스 3세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처벌하였습니다. 이 내용이 14절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코파스는 결국 안티오쿠스 3세 에게 패하여 페니키아 해안의 시돈까지 퇴각하였는데 이것이 15절의 배경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장군 스코파스는 시돈에서도 패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성지는 안티오쿠스 3세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16절은 여기에 대하여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라'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땅’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16절은 애굽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안티오쿠스 3세가 BC 198년에 유대 땅을 점령하였던 사건 에 대해 예언한 것을 말합니다. ‘그 손에 멸망이 있으리라’는 말은 안티오쿠스 3세가 다른 나라를 멸망시킽 것을 가리킵니다. 안티오쿠스 3세에 의해 멸망될 상대는 그에 의해 정복된 여러 나라들 입니다. 다음 주에 안티오쿠스 3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라 제국의 영토를 최고로 많이 가진 자요 알렉산더 대왕에 이어 대왕의 명칭을 얻은 자입니다.

‘17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안티오쿠스 3세는 BC 198년 유대 땅을 점령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애굽 본토를 침략하려던 계획을 수정합니다. 안티오쿠스 3세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정복한 후 애굽으로 진군하 지 못했던 이유는 안티오쿠스 3세와 로마 사이의 전쟁인 카르타고(BC 202년)와 마게도니아와의 전쟁(BC 197년)에서 승리한 로마로부터의 위협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안티오쿠스 3세는 무력으로 애굽을 점령하는 대신에 BC197년에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를 당시 열 살이었던 소년 프톨레미 5세와 결혼 시켜 결혼동맹을 맺고 애굽을 자기 수중에 넣으려는 계략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딸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신의 남편 프톨레미 5세로 하여금 로마와 동맹을 맺도록 함으로써 안티오쿠스 3세의 계략을 실패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는 3세가 B.C.187년에 죽고 클레오파트라는 B.C.181년 프톨레미 5세가 죽은 후 애굽 정부에 의하여 섭정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다니엘11:17).

‘18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19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한편 안티오쿠스 3세는 딸의 배반으로 애굽 정복전쟁에 실패한 후 군사를 돌려 지중해의 섬들과 서쪽 해안 지대를 공격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몇몇 섬들과 헬라-마케도니아의 해안지대를 점령했습니다. 18절에 “연안 지역”이란 이와 같이 연안의 나라들을 의미합니다. 이때 서부 중앙 그 리스의 아에톨리안 동맹(confederacy of the Aetolian League)은 마케돈, 펠로폰네소스와 싸우기 위하여 원병을 요청하기 위하여 안티오쿠스 3세에게 사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안티오쿠스 3세는 B.C.192년 해군을 중앙 그리스의 연안에 상륙시켜 아에톨리안 동맹과 협력하게 됩니다. 이들 동맹과 대항하기 위하여 마케돈은 아카에안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때 로마는 테르모필래에 주둔 하고 있는 셀류쿠스 지휘본부를 압도하기 위하여 그리스 동맹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러한 방해로 인하여 안티오쿠스 3세는 B.C.191년 소아시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8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에 서 ‘한 장군’은 로마의 장군 투키우스 스키피오를 가리킵니다. 스키피오는  B.C. 190-189년에 안티오쿠스 3세는 로마로부터 계속 추격 당하다가 사르디스(sardis) 서쪽 마그네시아 에서 철저히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안티오쿠스 3세는 엄청난 양의 전쟁 보상 금을 로마에 지불했어야 했고 또한 20명의 인질을 로마에 보내야 했습니다. 이 때 20명의 인질들 가운데는 안티오쿠스 3세의 둘째 아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안티오 쿠스 3세 대제의 종말에 대하여 19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1:19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에게 패전하여 본국으로 퇴각하여 돌아온 안티오쿠스 3세는 땅에 떨어진 자기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재기를 다짐하고 자기 영토 내에 있는 여러 성읍들의 재화들을 모아 군비를 재 확충하고자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계획은 반란군에 의해 그가 살해됨으로써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다니엘11:20, “20 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

20절은 안티오쿠스 3세의 뒤를 이어 시리아의 왕이 된 그의 아들 셀류쿠스 4세 필로파토르(BC 187-175)를 지칭합니다. ‘토색하는 자로 ..몇 날이 못되어 망할 것이요.’에서 ‘토색하는 자’는  히 브리어로 ‘노게쉬’라 하여 일반적으로 ‘조공을 수집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래 이 말은 ‘늑봉하다, 강탈하다’등의 뜻을 가진 말로서 금 은 등 재물을 거두어 들이되 강제로 빼앗듯이 수탈하는 관리들을 지칭합니다. 셀류쿠스 4세 필로파토르는 무기력한 왕이었고, 자기 아버지 안티오쿠스 3세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떠맡게 된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재무 장관인 헬리오로루스에게 명을 내려 시리아 본토에 있던 온갖 재화는 물론 유대 반역자 시몬의 말을 듣고 예루살렘 성전의 금을 약탈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재무장관 헬리오도루스의 정책이 지속됨에 따라 예루살렘 민중 소요가 거세어집니다. 그러던 중 그는 환상을 통하여 천사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두려워서 성전 약탈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는 셀루쿠스 4세 필로파토르를 독살하였습니다 (BC175). 이리하여 셀루쿠스 4세는 12년의 통치를 끝으로 그의 생을 마쳤습니다. 이로써 즉위한 날로부터 계속해서 착취와 수탈과 압제를 일삼던 필로파토르의 짧은 생애가 비참하게 마치고 ‘분노도 전쟁 도 없이 몇 날이 못되어 망할 것이라’는 20절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21절부터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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