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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부갓네살왕이 첫번째 꿈을 꾸었을 때는 유다나라를 제 일차 침략하여 다니엘과 세 청년들을 포 로로 잡아와 황실의 종교 자문기관의 관리로 등용했던BC 602년의 때였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3장에서는 첫번째 꿈을 꾼 후16년째 되는 해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한 때인 BC 586년이었 습니다. 그리고 본장의 느부갓네살왕의 두번째 꿈은 제 3차 애굽원정이 끝난 해인 BC568년이었 습니다. 이 때는 세계 정복전쟁도 끝나고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왕궁과 바벨론 성을 완공한 때였습 니다. 온 세계를 평정하여 고요하고 평화로운 때였습니다. 다니엘서 4장은 느부갓네살왕이 자신 의 두 번째 꿈인 개인의 신병과 관련된 한 큰 나무의 꿈이 보여준 내용대로 다 경험한 후에 신앙 고백 형식으로 전 국민에게 반포한 조서의 내용 전체를 한 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4장에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조서 내용을 자신의 말로 고쳐 적지 아니하고 그대 로 옮겨 놓고 있습니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두번째 꿈과 그 꿈의 내용 대로 다 경험한 왕의 심정을 보다 실감 있게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대 제국 바벨 론의 황제의 입술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세계와 역사에 대한 절대 주권을 소유하신 절대자이 심이 고백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함으로써 이 진리를 보다 확증하기 위해서 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느부갓네살 왕이 당시까지 가지고 있었던 다신교 신앙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만을 유일한 절대자로 믿었는 지에 대해서는 무어라 단정지어 말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다니엘4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조서에서 자신의 경험을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에게 고백 하고 있는 사실을 볼 때에 왕은 적어도 한 큰 신상 꿈과 다니엘의 세 친구의 풀무불 사건을 경험 했을 때와는 달리 세계와 역사를 지배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이 분명 존재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 의 나라는 실로 영원한 것임을 고백하였음이 분명합니다. 다니엘서 4장의 왕의 조서 구조를 볼 때에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고백이 조서의 첫 부분에 언급하고 있으며 또 뒷부분에서 한 번 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을 볼 때에 두번째 꿈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절실히 깨달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본 장을 통해서 우리 각자의 인생이 오직 여호와의 주권 아래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 인간 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절대 겸손과 절대 순복의 자세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구속사의 근 본 진리를 깨닫게 해 줍니다. 이런 구속사적 진리는 그에 순종해도 그만이고 또 불순종해도 그만 인 단순한 이론적 진리가 아니라 이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 우리 전 인격의 실제적 축복과 저주 가 이 땅과 내세에서 영원히 결정된다는 강력한 교훈으로 귀결됩니다. 실로 한 제국의 군주로서 더욱이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까지도 일시나마 속국으로 거느리고 온 천하를 호령하던 제 왕으로서 끝없이 자고하던 느부갓네살이 여호와의 치심을 받아 일곱 때를 짐승처럼 지냈으며 또 반대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낮아졌을 때에는 다시금 그 왕위를 회복되었던 실증적 사실을 통하여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은 보다 강렬한 설득력을 갖고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첫째로 느부갓네살의 조서(다니엘 4:1-3)
‘1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 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3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 부분과 비슷한 내용이 다니엘3:28-30에서도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풀무불에서 구 원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난 뒤 느부갓네살 왕이 조서를 반포함으로써 고백한 내용은 사드 락 메삭 아벳느고가 섬기는 이스라엘민족의 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벨론의 많은 신들 중에 한 위 대한 신으로 인정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4:1-3절까지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통 치권과 주권의 영원성을 찬양하고 있어 여호와 하나님을 단순히 바벨론 신들 중의 하나로 표현했 던 3:29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 의 두번째 꿈 내용대로 다 경험한 후에 다시 왕위를 회복한 후에 하나님의 주권과 위대하심을 진 심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을 가능하면 모든 세 상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조서를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는 다니엘서에서 세번 있습니다. 첫째는 다니엘 서 2장에서 다니엘을 통해 그의 꿈과 그 꿈의 해석을 알게 하신 것이며, 두번째는 사드락과 메삭 과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구원한 것이며, 세번째는 4장에서 한 큰 나무의 꿈을 통해 하나님의 경 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아 형벌을 받아 일곱 때라는 기간 동안 정신 이상 증세를 일으켜 광야에 서 짐승처럼 지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한 사건입니다. 이 조서의 내용을 보며 느부갓네살 왕 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2장과 3장에서보다는 더욱 하나님께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되었음을 알게 합니다. 한편 느부갓네살왕이 이 조서를 반포 한 목적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두번째로 느부갓네살의 두번째 꿈인 한 큰 나무의 꿈(4-18절)

다니엘서에 기록된 대부분의 묵시들은 대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사 전개 과정과 관련된 반면 에,  4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느부갓네살 왕의 두번째 꿈은 그의 개인 신상에 대한 묵시입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 묵시는 당시 세계 최 강대국인 바벨론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그는 세계와 역사의 절대 주권자이신 여호와의 통치와 주권 하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지고 당신의 선하신 뜻에 따라 세계와 역사를 주관해 나가시되 당신께 순종하는 자 들에게는 궁극적 승리와 구원을, 그렇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심판을 내리실 세상 끝까지 역사 를 유지하시고 전개해 나가실 것이라는 다니엘서의 다른 묵시들과 일맥상통합니다.

4절에서,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란 이 말씀에서 느부갓네 살 왕이 일시적 정신 이상 증상이 발생하였던 연도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 성의 중건이 일 단락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시기는 대략 그가 애굽과의 3차 전쟁에서 승리하여 즉위 초기부 터 시작된 정복 전쟁을 완료한 시점인 BC 568년과 그가 사망한 BC562년 사이의 어느 한 때라 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위협이나 근심거리가 전혀 없는 평안한 상태와 정복전쟁에서의 승리로 원하던 모든 것을 성취한 자로서의 만족감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동쪽으로는 엘람과 메대, 남쪽으로는 에굽까지 정복하였고 다시 서쪽으로는 지중해의 섬들, 특히 당시 가장 부강했던 두로를 정복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왕위를 넘볼 자가 없을 정도로 왕권을 확고히 다져 놓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태평성대의 시기에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업적과 권력에 도취되어 신상의 꿈과 그 해석,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구출 등 몇가지 사건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던 하나님을 잊었으며 이는 교만이라는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왕은 침상에서 밤에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으로 인해 그는 두렵고 떨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꿈이 무언가 불길 한 일을 나타내는 신의 계시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그 자세한 꿈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왕은 첫번째 꿈의 경우처럼 모든 박사와 술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번에는 이들에게 꿈의 내 용을 알려 주면서 해몽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박사와 술객들이 이 꿈의 해석을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왜 느부갓네살 왕이 유명한 꿈 해몽가인 다니엘을 먼저 부르지 않고 박사, 술사 들만 불러 모아 꿈 해몽을 하라고 시켰겠습니까? 이것에 대해 몇 가지 견해들을 소개하면 다니엘 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들의 우상 숭배하는 것과 그들의 점치는 방법에 있어서의 불경건성 등을 이 유로 그들과 합류하기를 거절했든지 아니면 그들이 다니엘의 선함과 지혜로움과 왕의 총애를 받 는 것을 시기하고 싫어하여 같이 행동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왕이 다니엘보다 먼저 갈대아 출신의 박사들에게 해몽의 기회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지난 날의 치욕을 만회하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첫 꿈 사건 때에 이들 박사들이 말하기를 왕이 꿈의 내용을 말씀하시면 자신들이 해석을 해드리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또 다른 이유는 다니엘은 박사들의 어른이었으므로 궁전의 예에 따라 가장 마지막에 불러 자 문하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번에 꿈의 내용을 알려 주었는데도 꿈의 해석을 하지 못하겠다고 솔직히 말한 것은 첫째 꿈 때와 같이 적당히 해석했다가는 왕의 진로를 사서 죽을 지 도 모를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술사들도 왕의 꿈의 내용을 들었지만 그 꿈은 하나 님의 특별한 섭리에 따라 주어진 계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왕은 황실 종교 자문기관의 우두머리인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9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어떤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 노니 내 꿈에 본 환상의 해석을 내게 말하라.’이 말씀 속에서 왕이 다니엘의 지혜와 해몽 능력을 깊이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셋째로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19-27)

‘19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 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다니엘은 왕의 꿈 내용을 듣는 순간 느부갓네살 왕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의 예언임을 깨달았기에 마음에 번민이 일어났습니다. 실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전제주의 시대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에게 그 위를 박탈 당하고 쫓겨나 미친 사람이 되어 들 짐승과 같이 살게 될 것이라 말하는 것은 생명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에게 닥쳐 올 그런 위험보다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선고된 사실 을 더욱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니엘의 왕에게 꿈의 해석을 숨기지 않고 다 말했다는 것 과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고 있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에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 기를 그 꿈 해석으로 인하여 번민하지 말고 이야기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꿈의 의미 를 파악했음을 확신했으며 또한 해석할 내용이 결코 좋은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입 니다. 또한 왕이 다니엘에게 주저 없이 말하라고 종용한 것은 그 만큼 왕이 다니엘을 신뢰하고 있 었으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제 다니엘이 꿈을 해석합니다. 먼저 ‘20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했는데 여기서 나무는 꿈을 꾼 느부갓네살 자신을 말하며 10절에서는 땅의 중앙에 한 큰 나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땅의 중앙에 있다는 것은 느부갓네살 을 최고 통치자로 하는 바벨론 제국이 당대의 세계 패권 국임을 가리킵니다. 

11절과 20절에서, ‘11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그 모양이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한 것은 바벨론 제국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여 점점 강대해져 가고 따라서 느 부갓네살 왕의 권세도 더욱 강해진 사실을 가리킵니다. 느부갓네살은 왕좌에 오르기 전 젊은 시절 부터 주변 국가들을 침범하여 파죽지세로 그 나라들을 정복하기 시작했으며 왕좌에 오른 뒤에는 멀리 이집트, 메대, 지중해의 여러 섬들까지 정복하여 명실공히 당대 최강의 황제로서 명성을 떨 쳤습니다. 그 높이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은 느부갓네살이 소유한 권력이 절정에 닿았음을 의미하 며 땅끝에서도 보이겠고 한 것은 왕이 소유한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상징합니다.

‘12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 12절과 21절에서는 견고하고 거대하게 자란 나무의 역할에 대 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세계 질서가 바벨론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기에 바벨론이 그 휘하의 여러 속국들과 세계 각국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큼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때의 바벨론의 역할은 모든 사람들에게 먹을 음식물을 제공한다는 것 입니다. 바벨론 제국은 거대한 영토에 걸 맞는 많은 수의 백성들을 가진 제국이었지 만 효율적인 제도와 행정을 통해 백성들을 부요하게 했습니다. 왕이 제국의 백성들 에게 선정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느부갓네살은 피정복 국민에게는 잔인한 정복자였지만 그의 제국 내의 백성에게는 자비로운 보호자였으며 자기의 제국으로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안식처를 제공했습니다.

‘13내가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에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 데 14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는 왕의 꿈 내용에 대해서 다니엘은 23절에서 꿈의 내용을 해석합니다. 하늘에서 한 순찰자 즉 천사가 내 려와 말하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라고 합니다. 이것은 나무로 비 유되었던 느부갓네살왕이 장차 자신이 가졌던 극대한 권세를 갑작스럽게 상실하게 될 것을 예언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라고 한 것은 느부갓네살이 하나 님의 징계를 받아 권좌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그 일은 한시적일 뿐 그의 권세가 완전하게 무너지 지는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잠시 권좌에서 떠나게 되나 그 징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 능의 위엄과 통치권을 깨닫게 되면 정하신 때에 다시 과거의 권좌를 회복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 런데 그 그루터기를 철과 놋줄로 동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정신병자에 대한 조치로서 그 몸을 쇠줄로 묶는 것을 뜻하는데 정신 이상의 증세가 짐승과 같이 난폭하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 다. 

‘15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 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에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리라.’ 

느부갓네살은 정복전쟁과 각종 건축사업 등 실로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으나 불행히도 그것이 그 를 극도로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만으로 느부갓네살은 인간 이상의 신적 존재가 되고자 큰 신상을 만들고 사람들로 그것에 경배하게 했지만 이제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인간 이하의 삶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했는데  여기 짐승의 마음을 받았다는 말은 정신 이상 증세 중 에는 야생 생활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느끼는 증세를 보이는 질병이 있습니다. 이 질병에 걸린 환 자는 자신을 짐승으로 여기고 짐승과 같은 광기를 보인다고 합니다. 의학에서 이 질병을 ‘인사니아 조안 프로피카(Insania Zoan Thropica)라고 합니다.

일곱 때를 지내리라 했는데 일곱 때란 느부갓네살이 광기에 사로잡혀 왕위에서 쫓겨나며 모든 권 세를 상실하게 될 일정기간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때’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간을 나타내느냐 하 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일곱 때를 7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일곱 때가 7 년이 아닌 것이 확실한 것은 느부갓네살이 이 두번째 꿈을 꾼 때가 정복 전쟁을 끝낸 때이므로 BC 568 년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해가 BC 562년입니다. 그러므로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568-562=6). 그러므로 일곱 때란 일곱은 완전 수 이므로 느부갓네살을 온전케하는 일정 기간을 말합니다. 그냥 일곱 때라고만 말해야 하겠습니다.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절대성과 위대성을 믿도록 하기 위해 주신 일정한 하나님의 징계 기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25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26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27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27절에서 다니엘은 왕에게 간구하기를 공의를 행하고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시라고 충언을 했지만 느부갓네살 왕은 이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느부갓네살이 일곱 때 동안 정신 병으로 인해 권좌에서 물 러 났다면 그 동안에 그 왕의 자리가 어떻게 보존되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25절에서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에서 그 문제를 암 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 꿈이 하나 님께로 왔으며 다니엘이 그 꿈에 대한 해석을 했으며 그 꿈 내용대로 왕이 정신병이 들어 짐승과 같이 되리라는 예언대로 되었으므로 그 꿈의 내용과 다니엘의 꿈 해석에 의해 느부갓네살이 다시 병에서 회복되어 왕좌를 차지 하리라는 사실도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감히 왕좌를 탐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자 Harris에 의하면 바벨론에서는 계절을 계수할 때에 여름과 겨울만을 세웠다고 하 는데 그렇다면 바벨론의 계수 방법에 의하면 이 일곱 때가 삼년 반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의 사람들은 이 일곱 때가 언제까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왕의 자리를 엿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다니엘이 총리였으므로 왕의 빈자리를 잘 감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서 그 동안 왕의 자리를 지켰다고 했습니다.

넷째로 느부갓네살의 꿈의 성취(28-33)

‘28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29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30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느부갓네살 왕의 두번째 꿈인 한 큰 나무의 꿈의 묵시가 다니엘이 해석한 대로 그 꿈이 주어진 지 정확히 12개월 곧 1년 만에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꿈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와 다니엘의 회개 근면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회개하지 아니하고 교만해 하다가  끝 내 한 큰 나무의 꿈대로 징계받은 사실을 느부갓네살 자신이 말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의 꿈대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인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대략 애굽과의 3차 전쟁에서 승리함 으로써 그의 정복 전쟁이 BC568년에 마감하고,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역사상 보기 드물게 웅장 하고 화려한 바벨론 왕궁과 바벨론 시가 완공되어 문자 그대로 태평성대를 누리던 어느 때일 것 입니다. 실로 천하를 호령할지라도 아무도 그 앞에서 대항치 못하는 절대 권력과 극도의 영화를 누리던 느부갓네살 왕이었습니다.

 이 때에 그는 만 1년 전에 한 큰 나무의 꿈을 통하여 주셨던 하나님의 경고도 까마득히 잊고 자 신의 화려한 치적을 내세우며 극도의 교만에 빠졌습니다. 어느날 그가 바벨론 궁 지붕을 거닐면서 말하기를, ‘이 큰 바벨론은 나의 권세와 능력으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 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하면서 우월감에 도취되어 말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 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궁의 지붕이란 현세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공중정원’ 을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 대제국의 황제로서의 느부갓네살의 위엄이 어떠했는가를 실증해 주는 것 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 공중정원에서 바벨론 도성을 내려다 보며 자기 도취에 빠져 있었 습니다.

‘31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 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33바로 그 때 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느부갓네살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는다는 것은 왕이 미쳐서 들로 쫓겨나가 짐승과 같이 살며 짐승의 음식을 먹고 들에서 노숙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왕의 실제 모습에 있어서의 변화 즉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되고 손톱이 새 발톱과 같 이 된 원인은 물론 왕이 손톱을 깎지 않았고 머리털도 깎지 않았고, 목욕도 하지 않아서도 그랬겠 지만 좀 더 직접적인 원인은 [인사니아 조안 트로피카]라는 정신 질병 탓입니다. 이 질병에 걸린 사람은 짐승과 같이 되고자 하는 정신적인 욕구가 원인이 되어 외형 마저도 어느 정도 그 짐승과 같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다섯째로 느부갓네살 왕의 회복 후 하나님 찬양(34-37)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 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 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에서 ‘그 기한이 차매’는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인 일곱 때, 곧 느부갓네살이 짐승처럼 살면서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의 절대성 및 지고성(至高性)에 대하여 깨 닫고 회복되기까지의 하나님의 징계 기한입니다. 따라서 이 기한이 찼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하 나님께서 정하신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는 것은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그 하나님 만을 경외하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언과 섭리대로 왕은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과 위엄을 깨닫자 곧 하나님의 은총 으로 광인으로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의 이성과 왕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느부갓네살 왕이 정신 병 증세의 상태에서 자신의 교만한 죄를 깨닫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 해 보건대 하나님의 예언에서 일곱 때가 차서 정신이 돌아 오면서 자신의 교만했던 것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 뿐입니다.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 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6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 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하나님께 대한 느부갓네살의 인식이 상당히 변화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인간 보다 좀 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였을 뿐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다를 것이 없는 이방신들 중 하나 라는 관념을 하나님께도 적용시켜왔으나 이제는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세계 역사를 지배하시는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의 속성을 어느 정도 깨달은 상태에서 찬송하고 있음을 봅니다.

‘37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 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이제 느부갓네 살은 자신이 교만했던 것도 알고 자신을 벌주셨다가 다시 회복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찬양하 며 칭송한다고 했습니다. 역사는 여호와의 절대 주권 하에 있다는 진리가 대 제국의 황제의 입술 을 통해서 선포됨으로써 이 진리의 진정성과 확실성이 그 누구에 의해서 선포된 것보다 더 극명하 게 확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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