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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서론 다니엘서 1:1-5

조회 수 488 추천 수 0 2018.08.19 16:38:52

오늘부터 다니엘서를 공부하게 됩니다. 다니엘서는 바벨론을 중심으로 전개 됩니다. 그곳은 다니 엘 선지자가 포로생활을 하던 곳으로 영감 속에서 이상 곧 계시를 받은 곳입니다. 바벨론은 세상 을 말합니다. 마귀가 주인이요, 신이요 죄와 사망의 권세를 휘두르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다니엘은 선조들의 타락과 죄로 인해 죄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온 인류를 말하며 성도들을 의 미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바벨론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바벨론

먼저 역사적 바벨론입니다. 성경에 최초로 나타나는 바벨론은 홍수 후 노아의 후손들이 함의 손자 중 니므롯이 건설했습니다(창10:10, 11, 11:2). 바벨은 시날 평원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니므롯 의 주동 하에 사람들이 바벨탑을 건축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므로 바벨탑 건축 시도가 실패하고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최초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였던 장소입니다. 홍수 이전까지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으 나, 홍수 후 바벨탑 사건으로부터 인간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는 죄로 빠지 게 되었습니다. 이 바벨론은 지정학적으로 고대 인류문명의 발상지입니다. 동쪽은 티그리스강이 있고, 서쪽은 아라비아 사막이요 남쪽은 페르샤 바다요, 북쪽은 앗수르입니다.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있으며, 이 지역은 고대 제국의 교통 요지였습니다.

정치적 바벨론은 느부갓네살을 비롯한 바벨론 제국의 왕들과 앗수르 제국, 페르샤 제왕들은 물론 알렉산더 대왕이 머물던 곳입니다. 바벨론은 세계사에서 나타난 권력의 중심지로 그 도시의 규모 와 문화, 도시의 발달 양태는 역사상에 나타난 제국들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종교적 바벨론은 사실상 종교적 의미로 더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자리 잡은 역대의 제왕들은 언제나 위대한 우상숭배자들이었습니다. 바벨론은 모든 세계의 우상의 온 상이요 중심지였습니다. 인류에게 있어 최초의 우상숭배가 여기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원수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큰 음녀 바벨론이라고 하 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박해하는 강한 세속성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심판의 대상으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계시 록에서는 아마겟돈전쟁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관계된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서는 이렇게 역사적 바벨론, 정치적 바벨론, 종교적 바벨론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둘째로 다니엘이 다니엘서를 집필한 신학적 동기와 배경

다니엘이 가장 마지막으로 받은 묵시가 힛데겔 강가의 묵시인데(단10-12장), 이것이 주어진 시 기가 BC 536으로 명시된 것으로 볼 때에 다니엘서의 기록 시기는 BC 536년에서 그의 사망 연 대인 BC530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다니엘서는 정확히 말하자면 BC 586-BC 539년 사이의 포 로시대 및 BC 538년에 이르러 소위 포로귀환이 갓 허락된 시대 곧 포로귀환(BC 538-400)의 초 기라는 실로 격변하던 과도기적 역사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던 초기에 이스라엘은 절대 초월자요 유일하신 참 신으로 믿어오던 여호와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이 무너지고 왕과 제사장들을 위시한 귀족이 죽음을 당하거나 이방인들의 노예가 되었고, 숱한 백성들도 바벨론 제국의 식민정책에 따라 제국의 수도인 바벨론 근경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큰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포로로 끌려가 곳곳에 흩어진 선민 이스라엘은 특별한 개인적 경우를 제외한다면 바벨론-메대-파사 과도제국 그리고 파사제국 등으로 이어가면서 제국의 체제와 지배자들은 변했으나 특별한 위험 없이 그런대로 살아 갈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때로는 대제국을 일정 수준 안에서 무리 없이 유지하려는 각 제국의 식민 정책에 따라 보호내지 우대까지 받으며 이방 문화에 급속히 동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선민 이스라엘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 하여 마침내 포로귀환이 허락되었을 때에도 이것이 그 옛날 하나님이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회복 성취라는 감격은 극히 일부 사람에게만 국한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저 우 연한 정치적 환경 변화로 받아들이는 형편이었습니다.

한편 근동의 모든 민족들은 그 스스로 그리고 우주에는 저절로 존재하고 있는 많은 신들이 있어서 각 지역과 민족에 따라 신들이 각각 다를 수 밖에 없고 어떠한 신들을 얼마나 잘 섬기는가에 따라 각 민족이나 민족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다신교 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미묘한 격  변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 두 가지의 극단적 오류에 빠져들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더 이상 당신의 선민으로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 절대 유일신이지만 선민 이스라엘이 끝없이 패역한 결과 마침내 저주를 받아 이스라엘은 하나 님의 선민의 지위를 영원히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북국 이스라엘의 멸망과 남국의 멸망은 일개 민족국가의 멸망을 넘어 하나님과 그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관계의 철 폐이며 아울러 다윗 언약 즉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의 왕권을 영원히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삼 7: 11-16)을 파기하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두 왕국의 멸망은 이스라엘 백 성들에게 있어서 더할 수 없이 절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또 한편 다른 오류는 여호와 하나님 자체가 절대 초월자로서 유일신이신 것이 아니라 다만 여러 신들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지금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방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더욱 열등한 한 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오류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포로시대의 걸출한 신앙영웅인 다니엘은 여호와 절대 신앙의 지조를 사수하려는 와중에서 끝없이 극한 시련을 당해야 했으나 언제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련이 하나 님의 역동적 개입으로 오히려 더욱 더 큰 승리와 영광의 전환점으로 반전됨으로 해서 평생에 걸쳐 포로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영육간에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 엘에게 초월적 지존자요 창조주로서 전 역사에 대해 주권을 홀로이 가지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작 정하신 바 선민의 종말론적 구원과 승리를 위하여 진행되어간 구속사의 전개 과정이라는 웅대한 주제를 대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측면과 관점에서 다중적으로 보여 주는 놀 라운 묵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중심한 사건과 묵시들은 모두 다 앞서 말한 양대 오류의 가능성을 극복할 수 있 게 해 주었습니다. 즉 선민 이스라엘이 그 국권을 상실하고 또 끝없이 포로나 속국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셨거나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방신들보다 무능하셔서가 아님을 확인케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만 끝없이 패역하던 자 신들을 향한 일시적 징계일 뿐이며 하나님은 곧 자신들을 회복하사 선민을 중심으로 완전한 종말 론적 평화와 승리가 오는 그 날까지 자신들은 물론 지금 당장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대 제국들 의 역사까지 주관 섭리해 주실 것이라는 원대하고도 성숙한 역사 인식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한편 이제 다니엘 말년인 BC 538년에 이르러 바사 제국 초대 황제 고레스가 이스라엘  포로의 귀 환 허가 조서를 공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이스라엘 출신의 많은 포로들이 고토로 돌아가 다 시금 옛 땅의 주도 세력이 되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아직 완전한 독립국가 체제를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성령의 영감으로 포로시대의 연장선에 있는 이런 미묘한 상황에 처한 선민 이스라엘의 후예들에게 과거 자신이 평생에 걸쳐 체험한 역동 적 사건들과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접 간접으로 주신 대 묵시들을 후 시대에 기록 전수하고자 본 서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즉 선민의 후예들이 그 어떤 상황 하에서도 역사의 겉 모습만을 보고 일희일비를 거듭할 것이 아 니라 역사의 이면에 있는 실체 곧 절대 초월자로서 전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 그리고 선민의 종말론적 승리와 구원을 위해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목적과 그 기본 전 개의 틀과 그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민 지위의 불변성을 확신하고 여호와 안에서 선민의 축복 과 평안을 온전히 누리게 해 주시고자 본서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포로시대를 배경으로 기록된 에 스겔서와 다니엘서를 비교해 볼 때, 에스겔은 제사장이요 다니엘은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은 평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사역을 했으나, 다니엘은 궁중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사역했습니다. 에 스겔서는 주로 성전 중심으로한 선민 자신들의 종교적 회복을 보여 주고, 다니엘서는 이방 대 제 국들에 대한 선민의 정치적 회복과 승리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전 12장으로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전반부 제1-6장까지는 상호 연이어 일어나는 이방 대 제국의 황실에서 다니엘이 여호와 절대 신앙 지조를 사수하려는 와중에 서 겪어야 했던 시련과 그 시련이 여호와 하나님의 궁극적 개입과 강력한 구원 행동으로 결국에는 오히려 더욱 더 큰 승리와 영광을 얻는 도약의 기회로 반전되던 파란만장한 대사건들을 보여 줍니 다. 그러한 대 사건들의 와중에서 다니엘이 여호와의 계시와 명철에 의지하여 자신이 섬기던 왕들 의 꿈이나 이상을 통해 받은 묵시들의 해석자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다니엘의 입장에서 보자면 간 접적으로 받았던 묵시들을 중심으로 전개 됩니다.

그리고 후반부 제 7-12장은 다니엘이 직접 받은 4대 묵시들을 각 묵시가 주어진 연대순으로 제 시됩니다.

셋째로 다니엘의 바벨론 왕실에서의 성장 배경(단 1:1-7)

다니엘은 계시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고 큰 계시의 환상을 받아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예언한 선지자였습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을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예 언은 메시야와 그의 왕국에 대하여 열렬히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함 께  4대 선지자의 위치에 오르고 있습니다. 최악의 시대에 최선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서가 우리에게 주는 네 개의 중요한 메시지는 첫째로 하나님은 살아 계신 주권자이시다. 둘째는 성도는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는다. 셋째는 세상 나라는 성도구원을 위한 연단의 도구요 성 도를 징치하는 기구이다. 넷째는 세상 나라는 종말이 있고 메시야 왕국은 영원하다 입니다. 다니 엘 서는 성도들에게 성도의 궁극적 승리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교회는 결국 승리합니다. 또한 다 니엘서는 우리들에게 신앙과 행위가 일치한다는 진리를 보여 줍니다. 

다니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유대왕국이 망하는 종말 의 비운 때에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동료들과 함께 바벨론 땅으로 포로가 되어 갈 때 그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소년’이라 했는데 히브리어 엘라딤(םיְלָדִי)은 15세에서 20세에 이르는 청년을 말합니다.유대왕족의 핏줄을 타고난 왕가의 자손이 아니면 귀족출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레미야, 에스겔 등과 함께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갔던 시기에 예언 활동을 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포로귀환 때에 백성들을 이끌고 왔던 제사장 여호수아와 스룹바벨과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세살때부터(BC 605) 고레스(BC 530)까지 오랫동 안 사역하면서 세상 제국 멸망과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살았던 기 간은 느부갓네살 1년부터 바벨론 5대왕을 거치고 바사 제국 고레스 3년까지 이릅니다. 이 기간 은 유대가 포로된 첫해부터 포로 귀한 후 2년까지의 기간입니다.

다니엘서는 다니엘이 BC 605년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유다 제 1 차 침입 당시 포로로 바벨 론에 끌려와 황실에 설치된 일종의 각 속국 출신 별 황실 종교자문위원 또는 비서관 등의 지위로 황실에 입문하기까지의 배경 및 다니엘의 전반적 활동 연대가 간략히 소개 됩니다. 이 때 역사 지 리적 배경을 객 관적으로 밝히는 부분과 함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신앙인격을 한 눈에 가름할 수 있는 일화로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우상제물로 바쳐졌던 산해진미를 거부하고 물과 채소만 을 먹었으며 또 그러한 이들 네 청년들이 영육간에 더욱 준수하고 강건하였던 사건이 소개 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이방 대 제국들의 황실 한 가운데서 일사 각오의 신앙으로 여호와 절대 신 앙의 지조를 지키려는 와중에 겪어야 했던 극한 위기에서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의 궁극적 개입과 강력한 구원 행동으로 오히려 더욱 더 큰 승리로 귀결되어 일평생을 통해 세 제국을 거치면서 부 동의 정치적 지위와 명망을 누림으로써 여호와의 영광과 선민의 기상을 만방에 펼쳤던 다니엘이 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은 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원년이었습니다.  그 때 유다왕은 여호 야김인데 여호야김은 위에 있은 지 3년째 되던 해 였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 범한 것은 세 번이나 계속되었는데 1차는  BC 605년, 2차는 BC 597, 3차는 BC 586년이었 습니다. 본문은 제 1차 침입 때이며 이때에 다니엘과 세 친구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왔었던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유다 제 18대 왕으로 25살에 즉위했습니다. 그는 선왕의 악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그 본명은 엘리야김이었습니다. 애굽왕  느고가 유다를 침략하여 고친 이름이 여호야김입니다.  그의 형제 여호아하스가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애굽왕 느고에 의해 폐위되어 애굽으로 잡혀가고 대신에 여호야김이 애굽에 조공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은 애굽에 바칠 조공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을 압박하고 악한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였건만 바벨론 대신에 애굽을 바라보다가 그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고 선왕 므낫세의 악을 답습할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침공해서 여호야김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 갈 때에 많은 왕족들과 귀족들과 백성 들을 끌고 갔습니다. 이 때에 다니엘과 세 청년도 끌려 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1차 침공한 이유는 그가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왕 바로느고를 격파하고 근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후 그 여세를 몰아  아프리카 대륙과 근동 아시아 지역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남 유다왕국을 자신의 세력권 안으로 복속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야긴은 여호야김의 아들이었습니다. 여호야긴은 아버지가 바벨론에 끌려가는 것을 목격했음 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않았고 바벨론 대신에 애굽을 섬기다가 다시 바벨론의 침을 당했습 니다. 세번째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략했을 때는 여호야긴의 삼촌, 요시야의 아들인 시드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1차, 2차, 3차에 걸쳐 침략할 때마다 왕들과 귀족, 백 성들을 사로잡아가고 왕궁과 성전의 보물들을 앗아가고 3차 때는 성전을 불태우고 예루살렘 성 도 불태워서 유다국을 패망시켰습니다. 이것은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 그리고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의 한결 같은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하나님은 징치의 도구로 이방의 강국인 애굽과 바벨론으로 하여금 침략케 했습니다.

다니엘서 1:1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웠더니’했습니다. 예루살 렘은 시온산이 있는 성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 축복의 성지입니다. 이러한 성지에 적 기독인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침략하여 그 성이 포위를 당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재앙이 도 래했습니다. 성지가 원수의 침략을 당하여 포위를 당한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신 결과입니다. 그것은 선민들의 범죄의 결과입니다. 할례 없는 이방의 사나운 개들이 성지를 침략하고 공략하며 애워싸고 짓밟는 일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불명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할 땐 언제나 이방인의 침략을 당했습니다. 죽음의 수치를 겪게 됩니다.

유다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다니엘 1:2에 ‘주께서 유다와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유다는 정치적으로 왕과 왕족과 귀족과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포로로 끌려갔고 이 때 다니엘을 위시한 왕족들 일부와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 갔습니다. 왕은 나라의 주권의 표식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자입니다. 왕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정치적 수욕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를 거의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라고 했는 데 이 ‘얼마’는 히브리어 미크찻 (תמִקְצָ)은 본래 ‘끝’ 또는 ‘극단’을 의미하는 말로 끝에 서 끝까지 그 분깃을 가지는 것으로 거의 대부분을 의미합니다. 이 성전 기구를 가져 다가 자기 신의 묘의 신의 보고에 넣었다고 했습니다. 이 신의 묘는 신을 섬기는 신 전을 말합니다. 바벨론의 최고 신은 므로닥, 혹은 마르둑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유다 성전의 성전기구들을 모야 므로닥 신전에 바친 것은 바벨론 신 므로닥이 전쟁에서 이 기게 해 주셔서 감사한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과 왕과 왕족이 이방 정복자의 전리품으로 전략했습니다. 예루살 렘의 하나님의 성전 기명들이 이방인의 손아귀에 들어가 전리품이 되어 그 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마음의 성전을 지키지 못할 때 저들이 보이는 예루살 렘 성전을 타락하고 부패한 종교의식과 외식으로 악용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 성전과 성전기명 마저도 이방인들의 발굽 아래 짓밟히게 하고 빼앗기게 하고 더욱 이방 우상 신전의 창고 속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다니엘 1:2에 ‘주께서 이 일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얼마’라고 했습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 1차 침략 시에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어쨌던 유다는 종교적, 정치적 수치를 당했 습니다. 이제 유다는 종교적 자유가 침해를 당했습니다. 정치적 권력이 약탈당했습니 다. 백성의 주권이 상실당했습니다. 생존권의 억압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선 민이 범죄한 결과입니다. 범죄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는 힘이 없습니다. 범죄한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됩니다. 그 결과로 영적, 육신적, 경제적 힘이 없어집니다. 결국은 이방의 강자에게 침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다니엘과 세 청년에게 미친 시험 (다니엘 1:3-7)

포로가 된 히브리 소년들은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현 주소가 유다에서 바벨론으로 바뀌었고, 생활양식이 바뀌고, 종교적 행위에 압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입는 것, 살 아가는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포로가 당하는 수욕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시험인 것입 니다. 또한 이방학문이 시험이었습니다. 다니엘 1:3-4에,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 언을 가르치게 하였고’했습니다. 갈대아 학문과 언어는 바벨론 제국의 역사와 문화와 정치, 종교 를 가르쳐 바벨론화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결코 학문이나 언어 자체가 악하거나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애굽이나 바벨론 제국들은 이런 학문들을 미신과 결부시켜 다루기 때문입니다. 

세상 학문 자체가 죄가 될 수 없으나 학문을 우상숭배나 미신의 도구나 불신앙의 도구로 악용할 때 그것이 시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연과학에 거짓과 미신인 진화론이 죄요 악인 것 입니다. 철학이나 과학이나 문학, 예술, 음악 등의 세상지식을 가지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 식을 도전하거나 의심하거나 불신앙 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들입니다. 세상 학문을 연구하는 핑계 로 성경을 읽지 않거나 예배에 등한 하거나 세상 지식을 숭상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 학문들은 신 앙생활에 시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소년들은 이러한 미신적이요 우상숭배요, 반신 적인 바벨론 학문을 열심히 배운 것은 적을 더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포로된 이 소년들에게 이방 음식이 시험이었습니다. 다니엘 1: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 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했습니다. 왕의 진미는 그 당시 최고의 음식입니다. 없어서 못 먹을 음식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맛보기를 원하는 최고의 음식을 이 포로 소년들이 3년 동안이나 먹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왕궁에는 유다에서 포로로 잡혀 온 소년들만 있은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바 벨론에 패망한 여러 나라의 왕족, 귀족 청소년들의 집단입니다. 이들이 왕의 진미를 먹게 되었으 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기뻐했겠습니까?

그러나 히브리 청소년들에게는 이 왕의 음식이 시험거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진미 가운데는 레위기 11:44-47 중에 부정한 짐승이나 생물들을 먹지 못하게 함으로서 선민의 몸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바벨론 임금의 음식물은 언제나 므로닥 신전 앞에 먼저 제사를 드린 후에 먹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제물은 선민들에게는 금하는 음식물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시험 거리는 창씨 개명의 시험이었습니다.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 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뜻은 하나 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 였으나 벨드사살은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존하소서란 의미입니다. 벨은 바벨론에서 가장 중요한 신의 명칭입니다. 하나냐의 뜻은 주의 은혜인데 사드락은 갈대아인이 숭배하는 태양의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미사엘은 강하신 하나님이란 뜻인데 메삭은  삭 여신에 속했다는 뜻입니다. 아사랴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다인데 아벳느고는 밝은 느보의 종 이라는 뜻입니다. 이러 창씨 개명은 인격적 굴욕이었습니다. 또한 민족 동화의 정치적 수단이 었습니다. 히브리식 이름을 바벨론식 이름으로 개정함은 히브리 민족의 말살을 뜻하는 것입니다. 

종교적 의미로는 히브리 소년들의 이름의 뜻은 모두 유일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 러나 바벨론식 이름은 우상신과 관계된 이름들입니다. 이런 적 기독적 운동이 하나님의 사람들 에게는 시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다니엘의 세 친구이 이름을 바벨론식 이름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잘 못된 습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름을 우상신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이 세 사람들이 통탄하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유년주일학교 에서부터 히브리식 이름인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로 바로 가르쳐야 될 것입니다.

다섯째로 다니엘과 세 청년의 도전과 승리 (다니엘 1:8-14)

다니엘과 그 친구들 뿐만 아니라 점령국의 왕족과 귀족의 자제들에게 왕의 진미가 주어진 것은 단 지 그들을 우대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을 속히 바벨론식 생활에 적응하고 바벨론 왕에게 절 대 복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청소년들에게는 자신들의 순수한 신앙적 인 동기에서 유대율법에 어긋나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이라 하여 왕의 진미를 거부한다는 것은 바벨론의 입장에서 볼 때에 일종의 반항으로 여겨질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한 행위인 것입니다.  당 시에 지배국의 신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거부하는 행위는 곧 그 신에게 복종치 않는 행위로 여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상에게 바쳐졌던 왕의 진미를 거부하고 물과 채소 만 먹기로 결심한 것은 목숨을 건 신앙적 용기가 아니고는 참으로 힘든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위기에 처할 때에 그가 무슨 결심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생사가 판가름 납니다. 특히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결심이 중요합니다. 그 결심이 신앙적인 결단일 때는 하나님의 권능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이들은 청소년들입니다. 인생의 출발기에 거룩 한 결심을 하면 그 만큼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 조용히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환관장 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환관장이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 것은 매우 위험한 모험입니다. 다니엘에 게는 자신의 신앙의 결단이지만 이방인 환관장에게는 위험천만입니다. 만약 다나엘과 세 청소년 들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것이 왕에게 알려지게 되는 날에는 환관장은 죽게 됩 니다. 그리고 만약 10일 후에 이 청소년들의 몰골이 다른 청소년들에 비해 좋지 않게 된 사실을 왕이 알게 되어도 환관장에게 위험이 닥칩니다. 그렇지만 환관장이 다니엘의 결심대로 10일간 물과 채소를 먹도록 허락한 것이 하나님이 환관장에게 다니엘에게 은혜를 베풀게 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니엘은 환관장과의 대화에서 환관장이 무조건 거절하지는 않고 도와줄 의사가 있다 는 것을 확인한 후에 도전장을 내 밀었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기간을 갖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는 절대자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이는 이런 목숨을 건 도전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열 흘 후에 결과는 그들의 얼굴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들의 체질도 왕의 진미를 먹 은 다른 소년들 보다 더욱 좋게 되어 계속 그렇게 하도록 허락을 받게 됩니다.

이제 3년간의 바벨론 왕실에서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함께 교육받은 다른 소년들과 함께 느부갓 네살 왕 앞에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목숨을 걸고 자기를 절대 신뢰한 이 히브리 소년들에게 당대의 모든 지식과 학문과 기술을 습득하게 하셨으며 거기에 지혜와 총명을 더해 그들을 양육하셨습니다. 이들은 이방의 학문으로 지혜와 지식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의 학문과 함께 유입되기 쉬운 각종 불경한 요소들인 우상숭배와 마술, 술객들의 가증한 행위 등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수천년 동안의 경험으로 집적한 예언 해석능력과 해몽 등 바벨론의 각종 학문과 지식을 능가하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습니다. 

왕은 모든 소년들을 일일이 면접시험을 보았을 때에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뛰어난 자질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뛰어난 풍모와 신체를 구비하였음은 물론이거니와 탁월한 지식 과 지혜와 모든 학문과 재주를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이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왕실 종교자문 기관의 관리로 등용되었습니다. 이 기관은 종교자문기관이지만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권세를 가진 고관들인 것입니다. 다니엘 1:20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당시의 지식계급인 박수, 술객들과 비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에게 정사에 관해서 이것 저것 물었을 때에 박수 술객들에 비해 열배나 나은 줄을 왕이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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