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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생각지 않았던 사실을 말하려고 합니다. 우 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성탄절에 대한 이야기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누가복음서에는 목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기사인데, 마태복음에서는 동방 박사들을 중심으로 하 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성경에서 보여 주는 예수님 탄생 시점도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데 우리들 은 같은 시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기사를 이야기 하 기 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1:18에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 혼한 사이라고 합니다. 유대전승에는 정혼한 여인이 신랑과 함께 살 수는 있으나 결혼하기 전까 지는 성관계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은 했지만 같이 살지는 않았 습니다. 18절에 의하면 ‘마리아가 요셉과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고 했 습니다. 임신한 사실이 나타났다는 것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러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 습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성령으로 임신된 사실을 요셉에게 차마 이야기 하지 못하고 차일 피일 미루다 가 이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어 남편 요셉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요셉이 이 해 할 리가 없지만 그는 의로운 사람이라 자신을 받아 주면 살고 만약 배반감을 느끼고 사람들 에게 소문을 내면 마리아는 처녀가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했을 것입 니다. 마리아의 이 임신 소식을 들은 요셉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를 사랑했고 믿지만 그녀가 한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으로 임신을 했다고? 고민 하던 중에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둘이서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조용히 끝맺기로 합의 를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밤에 잠을 자는데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의 임신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인간을 구원하려 오시는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 니다.

그제야 요셉은 이해하게 되고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두 사람이 정혼한 상태로 각각 따로 있었는데 요셉은 나사렛 동네에 살았고 누가복음1:26-27 에 의하면 마리아도 나사렛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봅니다.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 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이 사실을 볼 때에 요셉과 마리아는 같은 동네 나사렛의 총각, 처녀였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다 유다지파 출신들입니다. 그런데 마 태복음 1:16에서는 요셉이 야곱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누가복음 3장의 예수님 족보에서는 요셉이 헬리(눅 3:23)의 아들로 되어 있습니다. 주석 책에 의하면 요셉은 장가 들 때에 마리아의 아버지 헬리에게 데릴 사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다윗의 아들을 솔로몬으로 되었는데 누가 복음의 예수님 족보에는 다윗의 아들을 나단(눅3:31)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솔로몬과 나단은 모두 다윗의 아내 밧세바의 소생이었습니다(역상 3:5). 그래서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서는 다윗 의 아들을 밧세바의 네번째 소생 솔로몬이라 하였고 누가복음에서는 다윗의 아들을 밧세바의 세 번째 소생 나단이라 하였습니다. 이 두 족보가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과 나단으로 분리되어 내려 오다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마리아의 아버지 헬리의 데릴사위가 됨으로 예수님의 두 가계가 합치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장 1절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그 말씀의 정점이 예수님께 집중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한 예수님 탄생기사
누가복음의 탄생 이야기는 누가복음 1:26-38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나사렛동네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고지를 알려 주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장으로 탄생 이야기는 연결 됩니다. 임신 후에 마리아는 요셉의 보호 아래 두문불출하고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생활을 합니 다. 유대법은 약혼자들은 한 집에서 살수는 있지만 결혼식을 갖기 전에는 성관계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정혼한 사이의 두 사람에게 아기가 태어나게 되었으니 이 두 사람들의 고민 은 깊어 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고향으 로  가서 호적을 하라는 정부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므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식구들이 다 갈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이나 가족의 대표 자가 가서 대표로 호적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출산할 날이 임박한 마리아를 먼 길에 대동합니다. 출산 날이 임박한 임신부를 먼 길에 대동하는 것은 극히 위험합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45km라고 합니다. 임신부 를 나귀에 태워 천천히 가야 합니다. 하루에 30(48km)마일씩 가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3 일 길입니다. 길에서 출산할 수도 있습니다. 임신이 임박한 때에는 임신부는 안정을 취해야 하 는데 나귀를 타고 하루 종일 여행을 해야 할 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 간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야는 베들레헴에서 출생한다는 성경(미가 5:2)의 예언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이 미가 5:2의 예언을 알고 행동했는지는 모르겠지 만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요셉은 임산이 가까운 마리아를 데리고 가는 것도 위험합니다.  길가다 아이를 출산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산모의 생명에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출 산 날이 가까운 마리아를 혼자 집에 내버려 두고 먼 길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리아를 혼 자 두고 갔다가 아이를 낳으면 동네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고 길을 떠나게 됩니다. 

누가복음 2:3-7, ‘모든 사람이 호적 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 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 라.’했습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호적을 끝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시간에 맞추어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그리고 로마 통치 모든 지역에 흩어져 살던 베들레헴이 고향인 사람들이 모여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천천히 오다 보니 거할 집이 없었습니다. 호적을 하려 베들레헴에 온 사람들 중에 부모친척이 있는 자들은 부모나 친척, 형제들에게 들어갔을 것이요,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은 여관이나 민가에 민박을 했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호적 마감시간에 임박해서 도착했었기에 여관이나 민박할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마구간을 발견했습니다. 마구간은 길거리 보다는 아늑하겠지만 온방장 치가 없는 곳입니다.  어느 날 베들레헴 마을 주변 들판에서 목자들이 밤에 양떼를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환해지면서 한 천사가 나타나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할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천군천사가 나타나 하나님을 찬송하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평화로다 ‘했습니다. 지구 상의 인간들에게 천상의 천군천사들이 이렇게 많이 보여 준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번 더 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예수님의 재림 때 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시에 이렇게 천사들의 활동이 빈번해 집니다.

이때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온 백성들에게 전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이 시간에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받을 사람들은 밤을 지키는 이 목자들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 들이시요 온 인류의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 주님이 오심을 가장 미천하고 소외된 목자들에게 전 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천사들이 전하여 준 소식을 확증하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강보 에 싸여 구유에 눕힌 아기가 바로 그리스도 주라고 합니다. 만약 아기가 여관이나 집에서 태어 났다면 목자들이 그 아기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들은 베들레헴 사람들입니다. 작은 마을 모든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집에 외양간이 있다는 것과 그 외양간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또 외양간이니까 문을 두드릴 필 요도 없이 그 외양간에 들어가 아기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자기들에게 일어난 일을 상세히 말할 때에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기이히 여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이 말 을 듣고 누가복음 2:19에서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했는데 무슨 생각을 했겠 습니까?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할 것이라 가브리엘 천사가 말했는데 그렇다면 아기가 탄생할 때에 하나님께서 따뜻하고 아늑한 자리에서 아기를 출산하도록 해 주셔야 할 텐데 마구 간에서 태어나 여물통에 눕힌 아기를 보면서 이 아이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 맞나, 내가 천사의 수태고지를 받은 것이 정말인가 의심하고 있었을 텐데 마침 그 때에 목자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위로와 확신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21에서 아기가 난지 팔 일이 되어 할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대관습에 새 아기가 태어날 때에 여자 아이는 나자마자 이름을 받습니다. 그러나 남자 아이는 할례를 받는 날에 이름을 받습니다. 할례는 집에서 아버지 요셉이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22로 나아가는데, 22절은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다고 합니다. 여기 ‘결례’의 날의 결례는 산모가 행하는 결례입니다. 레위기 12:1-8말씀에 아이를 낳은 산모들은 부정하게 되는데 부정을 씻어내는 정결의식을 행하는 날을 말합니다. 남자아이를 낳은 산모는 40일 만에 정결예식을 행하고 여자아이를 낳은 산모는 80일이라 했습니다.

누가복음 2:22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40일이 되었는데도 자신들이 살던 나사렛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다가 결례를 행하려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렇다면 이 40일 동안에 이들이 마구간에는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 동안 살 집을 마련했을 것이고, 그 때로부터 1-2년 후에 일어날 사건인 마태복음 2장에서 동방박사들이 왔을 때에 집에서 아기 예수와 모친 마리아를 만났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23절에서 마리아가 정결예식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가면서 아기를 데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23절, 24절에,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했습니다.

 예수님 가족이 애급으로 피난 가기 전에 베들레헴에 오래 살았다는 다른 증거는 마태복음 2:19 -23에 있습니다.‘19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급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 되 20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 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에서 요셉가족이 천사의 지시를 받고 이스 라엘 땅으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어느 지역에 왔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이스라엘에 들어와서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한다고 했는데 거기가 어디입니 까? 아켈라오가 다스리는 유대지역의 거기는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곳은 자신 들이 애급으로 피신 가기 전에 살았던 베들레헴인 것입니다. 요셉은 애급에서 이스 라엘로 돌아 올 때에 나사렛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와 서 들으니 예수님을 죽이려던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땅을 지배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는 가지 않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는데 밤에 천 사가 나타나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고 나사렛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 가게 된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나사렛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면 유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일에 아켈라오 때 문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갈릴리의 나사렛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렛은 요셉의 염두에도 없었는데 나사렛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은 후에 나사렛으로 돌아 갑니다. 이 사실 을 볼 때에 요셉 가족은 베들레헴에 2년 가까이 살다가 애급으로 피난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39에 이 모든 일을 마쳤다고 합니다.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했습니다. 여기에서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동방 박사에 대한 기사를 생략합니다. 이 39절에서는 바로 나사렛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39절에서 시간을 건너 뛰어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의 방문으로 연결됩니다. 나사렛으로 돌아 간 것 이 아니고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동방박사들을 만나고 이어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그 후에 나사 렛으로 돌아갑니다(마2:22, 23). 

둘째로 마태복음서가 보여 주는 성탄의 신비

마태복음 2장에서는 동방박사들이 등장합니다. 이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님을 만난 장소는 베 들레헴의 마굿간이 아닌 집이라 했습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 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 을 예물로 드리니라 ….’ 여기 말씀에 동방박사들이 집으로 들어가 아기께 경배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누가복음 2장과 마태복음 2장을 연결해서 성탄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예루살렘에 결례를 행하려 가기까지 40일 동안 베들레헴에(눅2:22) 머물렀습 니다. 이 40일 동안에 계속 마굿간에 머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호적이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떠납니다. 그러나 예수님 가족은 출산을 했기에 결례를 치루는 동안까지는 출산의 몸을 추서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호적이 끝나는 동시에 산모의 몸조리를 위해서 평안한 집으 로 옮겼을 것입니다. 만약 누가복음 2:39에서 예루살렘에서 결례를 치른 후에 바로 나사렛으로 갔다면 동방박사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은 결례를 치르기 전에는 베 들레헴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결례를 치르기 전에 동방박사들이 방문했다면 예수님 가족 은 결례도 치루기 전에 애급으로 망명 가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아기께 경배했다고 하는데 이 때에 요셉은 없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마도 가족 생계를 위해 목수의 일을 하려 나가지 않았을 까 생각이 듭니다. 박사들이 경배한 분은 구유 위에 누인 갓난아기가 아닌 집에서 엄마 마리아 곁에 놀던 최소한 2살 정도의 어린아이 예수였습니다.

예수님 가족은 예루살렘에서 결례를 치른 후에 나사렛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호적 하려 올 때에 나사렛으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왜냐 하 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에 와서 호적하고 또 예루살렘에서 결례를 치루었다 할지라도 그 기간은 40 여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40일 기간 동안 나사렛을 비웠는데 그 후에 돌아 갈 때에 아기 를 안고 갔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 아이가 누구 아이냐고 물을 것이 아니겠습 니까? 나사렛 사람들은 요셉과 마리아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약혼한 사이인데 호적 하고 돌아 오는 사이에 아이를 낳아 그들 앞에 섰다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임신했을 때는 숨어 지낼 수 있지만 아이가 생기면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렛을 떠날 때에 나사렛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의 헤롯 궁에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은 것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왕으로 나신 이를 경배하려 왔기에 당연히 왕이 사는 예루살렘 의 왕궁으로 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동방에서부터 그의 별을 보고 따라 왔다’고 했습니다. 이때 에 헤롯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소동했다 했습니다. 헤롯이 생각하기를 내가 왕인데 또 무슨 왕이 태어났느냐고 경계를 하면서. 그 아기 왕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왔 다고 했을 때에 마태복음 2:7에서,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했습니다. 별이 나타난 때를 물은 것은 유대인의 왕이 언제 태어났을까를 알아 보기 위해서 입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아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난 후에,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 게도 알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헤롯에게 가지 않고 다른 길로 도망쳤습니 다. 

그 후에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베들레헴과 그 인근 마을에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 를 다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마태복음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 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했습니다. 헤롯이 두살 이하의 아이들을 죽이라고 했 습니다. 왜 두살입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 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죽일 때도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했다고 하 였습니다. 이 말을 볼 때에 헤롯이 아무렇게나 두살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두 번이나 헤롯이 아이의 출생에 대해서 자세히 물었다고 했습니다(마2:7,8). 이 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족이 동방박사들이 오기 전 베들레헴에 적어도 2년 정도 살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는 일에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범위도 베들레헴 뿐만 아니라 그 주 변의 마을까지 포함하고 나이도 두살 아래로 하면 틀림없이 아기 예수를 죽일 수 있으리라 해서 넉넉 잡고 2살 이하라고 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근거 없이 두살 이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두 중요한 근거가 ‘아기’에 대한 헬라 원어에 있습니다. 한글 개역성경에서는 누가복음에서 목 자들이 방문했던 아기와 동방박사들이 방문했을 때의 아기를 똑같이 아기라고 했는데 이 말의 헬라어 원어는 전혀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 의미도 또한 같지 않습니다. 목자들이 방문 하여 만났던 누가복음 2장의 아기는 헬라어 ‘브레포스(βρεφος, 12절,16절)인데,동방 박사들이 방문하여 만났던 마태복음 2장의 아기는 헬라어 ‘파이디온(παιδιου, 8절, 9절, 11절, 13절 14절, 20절)’이 사용되었습니다.헬라어 사전에 의하면 브레포스’는 갓난아기(baby)를 뜻하는 말이고 ‘파이디온’은 어린아이(child)를 뜻 하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의 모든 용례를 살펴보면 이 두 단어는 나이의 개념을 분명히 할 때 즉 ‘덜 어리’고 ‘더 어린’ 아이를 묘사할 때 쓰입니다. 영어성경은 원문에 맞게 누가복음2 장의 아기는 ‘baby’로, 마태복음 2장의 아기는 ‘child’로 구분하여 잘 번역했습니 다. 이와같이 헬라원어의 분명한 차이점을 미루어 볼 때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 이 야기와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 이야기는 틀림없이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의 아기가 누가복음 2장의 아기보다 더 자란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의 사건과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의 사건은 어느 정도 의 시간적 차이가 있을까요? 최하 1년 이상 최고 2년이하의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 다. 왜냐하면 헤롯이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일 때에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기 때문 입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별을 처음 본 때를 자세히 물었습니다. 마태복음 2: 7, ‘7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했는데 이 것이 이 어린 왕을 제거하는 음모를 꾸미는 결정적인 정보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갓난아이였다면 결코 두살부터 그 아래로 죽일 필요가 없었을 것입 니다.
한 살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들만 다 죽여도 헤롯은 충분히 안심했을 것입니다. 동 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예수님은 이미 2살은 조금 못됐겠지만 상당히 자 란 아이였을 것이란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약 2년에 걸쳐 여행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셋째로 동방박사들의 정체

동방에서 박사들을 인도한 이 별은 아기가 탄생할 것을 예고하는 별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이 유 대 땅에 탄생하신 것을 알려 주는 별인 것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2에서 동방박사들이 ‘유대 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에. 이 별이 동방에 나타났음에 틀림없습니다. 이 별의 정체는 아마도 하늘에서 빛을 발하며 사람의 속 도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그렇게 높이 떠있지도 않은 극히 작은 별일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빛을 발하면 움직이는 것을 모두 별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 를 나타내는 어떤 물체였을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 때에 그들의 앞에서 인도하던 불기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밤 하늘에 날아 다니는 인공위성을 볼 때에 멀리서 별이 움직이는 것 같이 보입 니다. 동방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은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님이 계셨던 집 위에 머물러 섰다는 말 씀으로 볼 때에 그렇게 크지 않으면서 낫게 떠서 그리고 사람들을 인도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 는 초자연적 별이었을 것입니다.  그 집 위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볼 때에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 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 밤에 천사에게서  메시야 탄생 소식을 들은 목자들이 즉시 마 구간으로 갔으며, 동방의 박사들은 바로 그 때부터 출발하여 약 2년간 긴 기간 동안 여행을 해 서 마침내 유대 땅에 이르러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바치며 경배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먼 거리에서 2년 동안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려 온 동방박사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서양 주석가들은 이 동방박사들을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에서 온 자들이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BC  722년과 BC 586년에 북국 이스라엘과 남국 유다가 포로로 잡혀 갔다가 70년 후에 그 중 극히 일부가 고토로 돌아오긴 했지만 대부분 바벨론과 페르시아에 남아 살고 있었으므로 이 박 사들이 그 유대인들을 통해서 메시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로부터 예루살렘까지는 가까운 동방으로서 아무리 길게 잡아도 보름 정도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동방박사들이 유대나라를 내방하는 데 약 2년이라는 긴 시간을 여행 하였다면 이들의 고향은 유대 땅으로부터 아주 먼 동방이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동방의 나라는 아시아 동쪽 땅끝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입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신라인이 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BC4년에 신라인에 의해 관측된 특별한 별이 있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시조 박혁거세 편에 보면 ‘54년 봄 2월(음력)에 패성(혜성)이 하고(견우 성)에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박혁거세 54년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년도인 BC4년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신라인에 의해 관측된 그 혜성은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메시아의 별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예수님 탄생 당시 천문학이 가장 발달한 곳은 중근동 지역이 아닌 극동지역이었다는 사실 이 현대 천문학계의 정설입니다. 신라는 천문학 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였습니다. 지금도 경주에 가면 신라인들이 별을 관측했던 세계 최고의 천문대인 첨성대가 서 있습니다. 

영국의 천문학회에서는 1977년 학회기관지 12월호에 메시아의 별이 나타났었다는 2천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천문학이 발달한 곳이 중동과 극동이었고, 중동에서는 태양력을 주로 연구한 반 면 극동에서는 별의 운행을 주로 연구했기 때문에 만약 메시야의 별이 나타났다면 그 기록은 반 드시 극동 쪽에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한국의 문헌을 뒤져서 앞서 소개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해서 이 별의 출현을 유대인의 왕의 탄생과 직결시키고 있는가 하 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메시야를 별로 상징하는 것이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민수기 24:17과 계시록 22:16입니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메시야의 별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가 요셉 아이델버그에 의하면 BC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 망했을 때에 북왕국 10부족 중 일부가 천산산맥-중앙아시아-지나-한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 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후 허황옥 은 인도 중부 ‘아유타’ 국의 공주인데 그 ‘아유타’국은 유다 공동체였다고 합니다. 

아유타의 ‘아’ 는 히브리어 정관사 ‘하’(הַ)’이고 ‘유타’는 ‘유다’란 말로서 아유타국은 바벨론 포 로 이후 흩어진 남 유다 왕국의 유민이 세운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이 허황옥이 가야에 오기 전 에 아유타국과 가야국이 이전부터 이미 교류가 있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이때에 메시야 의 별에 대한 지식이 우리 나라 신라인들에게 전파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이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하신 목적

마태복음 2:2에서,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했는데 이 말씀에서 박사들은 동방에서부 터 이 별을 따라 왔었는데 예루살렘에 와서는 그 별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박사들은 처음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려 왔었기에 당연히 헤롯 궁으로 찾아갔을 것입니다. 이 때에 헤롯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소동을 했다고 했습니다. 시야를 기다렸던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탄생한 줄도 캄캄하게 모르고 있었는데 이방인들이 와서 메시야의 탄생을 알려 주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 었을 것입니다.

신라의 천문박사들인 동방박사들이 메시야의 별을 보고 약 2년에 걸쳐 긴 여행을 하여 마침내 예수님이 계셨던 ‘집’에 도착해서 아기 예수께 경배했을 것입니다. 서쪽의 벨렉계 천손민족인 이스라엘백성에게 동쪽의 천손민족인 욕단계가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구세주 가 탄생했을 때에 메시야의 별이 왜 동방에 나타났는지 해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동방에는 하나 님이 감추어 두신 욕단계 선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2천년 전에도 메시야 탄 생의 기쁜 소식을 욕단계 선민인 ‘알이랑 민족’을 사용하셔서 벨렉계 선민 유대민족에게 전달하 기를 원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세기에 오실 재림의 주를 욕단계 선민이 가서 복음을 전 하는 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 이야기는 종말에 있을 한국교회의 예루살렘 복음전도운동을 미리 예시한 사 건이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한국교회성도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구원사적 사명인 유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동방박사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찍이 동방에 숨겨두신 욕단계 천손민족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계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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