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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까지 아담에서 그의 10대 손 노아에게 아담이 범죄하기 전의 에덴의 삶과 하나님께서 전해 주신 창조기사와 인간창조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에덴에서 쫓겨 나고 그 때에 창세기 3:15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씨를 보내어 인간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입으로 직접 후대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살펴 보 았습니다. 그리고 셈은 홍수 이전에 97년, 그리고 홍수 세대에 503년을 살면서 셈 자신의 11대 손인 이삭에게 직접 아담에게서 시작된 복음의 전달을이행했습니다. 오늘은 아담의 16대 손이요, 셈의 6대 손인 르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담의 16대 후손 르우는 아담이 에덴에서 나온 이후 인간역사 1787년에 출생했 습니다. 32세에 스룩을 낳고 207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39세에 죽었습 니다. 이것은 아담 이후 인간역사 2026년이었습니다. 노아와는 219년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바벨탑 사건이후 르우는 계속 그 지역에 살면서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담의 17대손 스룩은 아담 이후 1819년에 출생했습니다. 그는32세에 나홀을 낳 고 2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30세에 죽었습니다. 이것은 아담 이후 인간 역사 2049년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섞어 짜다, 칭칭 감기다 입니다. 세상과 짝하여 그 속에서 칡넝쿨과 같이 칭칭 감기고 그 세상 가운데서 섞여 살자라는 의미 입니다. 스룩의 아버지 르우는 바벨탑 사건 이후에 계속 그 지역에 살면서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짝하여 살면서 아들을 낳았을 때에 이름을 섞어 짜다, 칭칭 감기다 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은 세상 가운데 묻혀 세상과 잘 어울려 살아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 름입니다.


아담 18대손 나홀은 아담 이후 인간역사 1849년에 출생했습니다. 29세에 데라를 낳고 119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8세에 죽었습니다. 이것은 아담 이후 인 간 역 사 1997년이었습니다. 나홀은 셋 계열의 20대 족장 가운데 가장 짧은 생애 를 가졌 습니다. 노아와는 148년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나홀의 이름의 뜻은 숨이차 다, 헐떡 거리다, 콧김을 내 뿜다 입니다. 나홀은 결코 자기 수명을 다하고 죽은 것 이 아닐 것 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어떤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것입니 다. 노아 홍수 이후 10대 가운데 가장 먼저 죽은 자가 벨렉이요, 그 다음 일년 후에 나홀이 148세에 갑자기 죽은 것입니다. 나홀은 수명이 가장 짧은 자입니다. 

경건한 셋 계열의 자손의 타락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 르우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인간관계를 우선했으며 나홀은 세속주의에 젖은 탐욕의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들은 하나님을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나 셈 계열의 댓수가 지날수록 불신이 더 욱 깊어지고 가증한 우상을 섬기는 비극적인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19대손 데라는 아담 이후 인간역사1875년에 출생했습니다. 데라의 이름의 뜻은 체류하다 지체하다입니다. 데라는130세에 아브라함을 낳고 205세에 죽습 니다, 대게 사람들이 창세기 11:26에, ‘데라는 70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 았더라.’에서 아브람이 데라 70세에 출생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아 니고 맏아들 하란이 데라의70세에 출생하였고 아브람은 데라 년세 130에 출생되 었습니다. 창세기 12:4에서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라고 했고 창세기 11: 32에서 데라는 205세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계산: 데라가 죽은 나이-데라가 아브 라함을 낳은 나이=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나이:205-130=75혹은 205-75=130). 


그리고 사도 행전 7:2-4의 말씀과도 일치 합니다, ’2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 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 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4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란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창세기 11장과 사도행전 7장을 종합해 볼 때에 아브람은 데라 나이 130세에 출생 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는 지시를 하셨습니다. 데라는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나님의 이 명령을 전해 듣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앞장서서 아브라함과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까지 왔다가 하란에 머물게 되고 아브라함만 롯과 함께 가나안으로 가게 됩니다..하란은 자기 아 들 나홀의 가족들이 사는 곳입니다.그곳에서 머뭅니다. 지체합니다. 그러다가 데라 가 205세에 죽자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 했을 때에 그의 나이 75세에 다시 가나안으로 향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서 24: 2 에서,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 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 랍비들의 글에 의하면 데라는 니므롯에 게 우상을 만들어 공급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니므롯은 함의  아들 구스의 아들입 니다. 니므롯은 노아의 4대손입니다. 그렇다면 니므롯은 셈 계열의 노아의 4대손 셀라와 같은 나이입니다. 셀라는 430년 살았으니 니므롯도 400년 정도 살았을 것 입니다.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창세기 11:31-32,”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 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세기 11장의 족보는 데라의 죽음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데라의 죽음은 아담 이후 인간 역사 2083년입니다. 노아와는 128년을 동 시대에 살았습니다. 셈의 족보는 누가 언 제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더라고 했는데 창세기 5장과 달리 몇 년을 향수하다 가 죽었더라 는 말이 생략되었습니다. 그러나 데라 한 사람에게만 향수하고 죽었다고 하여 창세 기 11장은 데라의 죽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항하기 위해 시끌벅적했던 바벨탑을 쌓던 소리도  멀리 사라졌고, 벨렉과 르우, 스룩과 나홀 등 신앙의 후손이라는 사람들이 보여준 육체주의, 인본 주의의 삶의 냄새도 더 이상 풍기지 않습니다. 이제 데라의 죽음과 함께 저 멀리 사라지고 잠잠 해졌습니다. 그리고 오직 아브라함 한 사람이 구속사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15대 손 벨렉부터 시작된 정통적인 신앙 계열의 셈 자손 조차 세상과 짝하여 우상 숭배로 얼룩진 생활을 하던 흑암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찾아 급히 이끌고 나오신 것입니 다. 바벨탑 사건 이후 인간들이 죄악의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감으로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단절 될 뻔 하였으나 데라의 죽음을 끝으로 셈 계열의 어둠의 역사는 종결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새로운 구원 역사를 진행시키신 것입니다. 셈의 하나님은 에벨의 하나님으로, 이제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아담의 20대 후손 아브라함은 아담 이후 인간역사 2008년에 출생하였습니다. 100세에 이삭을 낳고 175세에 죽었습니다. 이것은 아담 이후 인간역사 2183년입니다. 셈과는 150년 동시대에 살았고,  노아 10대 가운데 아브라함보다 먼저 죽은 자들은 아르박삿, 벨렉, 르우, 스룩, 나홀, 데 라이며 아브라함보다 오래 살은 자는 에벨(4년)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름 뜻은 많은 무리의 아버 지, 열국의 아버지 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새로운 중심 인물이 되었 음을 암시합니다.

아담은 인류의 첫 조상이었고, 노아는 홍수 후 새로운 인류의 시조였으며, 아브라함은 선택된 백 성 이스라엘의 조상이며, 모든 인류 중에서 믿는 자들의 믿음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이제 구속사 의 흐름은 아담의 아들 셋으로부터 시작하여 노아 홍수 시대를 지나 셈을 거쳐 마침내 아브라함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는 홍수 후 대략 350년 되는 해요,  바벨탑 사건이 있은 지 250여년 된 시기로 죄악이 다시 물 끊듯 차오를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두번 째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하란은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인 밧단 아람의 성읍 중 하나로  그 주변에 셈 계열의 일가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아담 의 14대손이요, 노아의 5대 손인 셈 계열의 에벨 왕국이 있었던 지역입니다.

창세기 24장에 밧단아람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고향입니다. 나홀성이라 했는데 나홀은 아브라 함의 형제입니다. 하란이 데라의 큰 아들이요, 그 다음은 아브라함 그리고 나홀입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 나홀 하란의 순서로 되었습니다. 나홀의 아내가 밀가인데 하란의 딸이라 했습니다. 유 대 인 전승에 의하면 본래 데라도 밧단아람에 살았는데 니므롯을 따라 갈대아 우르에 갈 때에 아 브 라함과 하란만 따라 가고 나홀은 밧단아람에 남았다고 합니다. 나홀은 리브가의 할아버지 입 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75년, 손자 야곱과 약 15년 함께 살았습니다. 이 때에 셈은 아브라함과 150 년 이삭과 50년 동시대에 살아 있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노아 셈에 전달된 구속사의 복음이 아 브라함에게 전달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5: 27에, ‘27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 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했는데 야곱이 조용한 사람 임으로 장막에 거주했다는 말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장막에 거주하여 할아버지 아브 라함에게서 아버지 이삭에게서, 어머니 리브가에게서 아담으로부터 전수되는 구속사 의 복음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성격이 들 사람이라서 집에 들어 박힐 수 없어 매일 들로 싸돌아 다녔 기에 복음을 전수 받을 기회가 없었으며 장자권의 중요성을 미쳐 깨닫지 못하고 팥 죽 한 그릇에 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손자 야곱에게 아브라함 자신이 갈 대아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부터 하란에 머무는 이야기를 비롯해 하란에서 가 나안으로 떠난 일, 75세에 하란을 떠난 이후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일어났던 하 나님의 놀라운 역사, 홍수 후의 시조 셈에게서 들은 창조기사, 홍수기사와 바벨탑 사 건들을 들었습니다.할아버지에게서 홍수 이전과 이후와 바벨탑 사건들을 전수 받았 기에 셋 계열의 구속사를 이해했고 장자권의 귀중성을 절실히 깨닫고 형으로부터 장 자권을 돌려받기 위한 전략을 오래 동안 구상하다가 에서의 행태를 연구했습니다.


항상 들사냥한 후 집으로 올 때는 허기져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어느 날 에서 가 들 사냥을 하다가 허급지급 집으로 돌아 오는 길 목에 팥죽을 준비했다가 밭죽과 장자권을 바꾸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장자권 계획은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리브가 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에 그런 계시를 주었습니다. 창세기 25:23,’2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 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했는데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다는 말씀에서 이스라엘이 에돔보다 강할 것을 예언하셨 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에서 큰 자는 에서, 어린 자는 야곱인데 에서가 야곱 을 섬기리라는 말씀으로 형제 간에는 동생이 형을 섬깁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장자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5:25-26에서, ‘25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후에 나온 아우는 손 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 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에서 이 쌍둥이가 태어날 때에 야곱이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상태로 출산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어쨌던 성경에 의하 면 둘 사이에 손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누가 형이요 동생인지 법적으로 따지기에 애매합니다.


만약 쌍둥이가 출산될 때에 형이 먼저 나오고 그 후에 1분 혹은 몇분 후에 출산되었 다면 몰라도 손으로 연결된 상태로 태어난 것은 기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에서를 가장해서 이삭에게 장자권을 인수하려 들어 갔을 때에 아무리 이삭이 눈이 멀었다고 하지만 가짜 털과 진짜 털을 쉽게 구별 할 수 있습니다. 눈이 먼 사람은 촉각과 청각이 예민합니다. 그런데 털은 에서인데 목소리는 야곱이로다고 하면서 야곱에게 축복을 한 것도 이상합니다. 눈먼 사람이 촉각과 청각의 시험에 실패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 순간에 역사 했다는 증거입니다.

창세기27:21-25, ‘21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 보려 하노라. 22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 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 다 하며 23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 였더라. 24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 5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 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창세기 27:32,33, ‘32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 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에서 왜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습니까? 에서의 음성은 듣고 에서인지 금방 알았습니다. 그 때에서야 이삭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에서에게 축복권을 주려 했다는 것을 깨닫고 심히 크게 놀래며 떨었던 것입니다. 

이삭이 에서를 좋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100세에 출생했습니다. 어머니 사라가 90세에 출생했기에 그리고 사라가 이삭을 출산한 것은 전적인 하나 님의 능력인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삭을 진짜 말 그대로 ‘놓으면 날아갈 까, 잡으면 꺼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로’ 키웠습니다. 이삭을 마마 보이 로 키웠습니다.이삭으로 하여금 꼼짝하지 못한 채로 키웠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과 사라 사이에 있었던 한 이야기가 창세기 21:8-10에 있습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때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때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사라가 보고 이스마엘을 당장 내 쫒아버 리도록 남편 아브라함에게 명령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민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 서 아브라함에게 아내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심으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보냅니 다. 유대인 기록에 의하면 3살 때에 젖을 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3살 때면 이스마엘은 17살입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아들이었 는데 이삭이 태어나면서 자신이 홀대 받게 되자 이삭을 미워하였을 것입니다. 17 살  먹은 큰 애가 세살짜리 애를 희롱하는 것을 목격한 사라가 격분했을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아버지 집에서 쫓겨 나기는 했지만 평소에 교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에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버지를 장사 지냈다고 했습니다. (창25:9). 사라가 죽고 난 후에 아브라함이 후처 그두라 사이에 정식 아들들이 여섯 이나 있었으나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에 이삭과 이스마엘이 장사 지냈다고 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친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아들 에서가 삼촌 이스마엘 과 평소에 소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28:6-9,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 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 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8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 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했습니다.


이삭은 자신보다 14살 많은 형 이스마엘은 너무나 자유롭고 분망한 상태로 사는 것을 보고 선망했습니다. 이스마엘을 선망했는데 아들 에서가 태어났을 때에 이스 마엘과 같은 성격이므로 에서를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어머니 사라의 사랑의 구속 을 뿌리칠 수 없었던 자신의 그 소망을 에서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 가서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산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브엘세바에서 예루살 렘 모리아 산까지 거리는 약 38마일 (60km)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지런히 걸으면 이틀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아들을 번제로 드리러 가는 그 길이 즐거운 길은 아니기에 사흘이 걸렸습 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을 향하여 가는 날 이른 아침이라 했습니다, 이삭과 두 사환과 함께 먼 길을 가기 위해 일찍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라가 잠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또한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바치기 위해 이삭을 데려 간다는 말을 사라에 게 이야기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사라가 일어나 보니 영감과 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었더니 아침 일찍 아들과 두 사환과 함께 길을 가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며칠이 지 나도 돌아 오지 않고 집안의 그 많은 사람들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며칠이 지나서야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려 갔었다는 말을 듣고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브엘세 바에서 헤브론으로 갑니다. 사라가 브엘세바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헤브론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 때의 이삭의 나이는 37살이었습니다, 헤브론는 브엘세바와 모리아 산 사이의 중간 지점입니 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브엘 세바로 돌아와 거기 거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창22: 19). 사라가 헤브론에 간 것은 두 가지로 생 각할 수 있습니다. 

이삭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근심과 두려움으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헤브 론까지 마중 나갔다가 이삭 일행을 만난 후에 남편 아브라함이 너무 미워서 헤브론에 머물러 있 었던지 아니면, 브엘세바 집에서 일주일이 지난 후에 집에 돌아온 남편과 이삭에게 자초지종 말을 듣고 너무나 놀랍고 황당해서 아들도 보기 싫고 남편도 보기 싫어 헤브론으로 가서 떨어져 살다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의 이주 초기에 20년 동안 살던 곳입니다(창 13:18). 그 후 아브라함은 그랄과 브엘세바에서 살았습니다. 성경은 사라의 죽 음 후에 아브라함 가족이 헤브론에 살았는가에 대해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삭이 브엘 라헤로이에서 살았다,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밧단아람으로 장가 들기 위해 출발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족들이 헤브론으로 가서 그곳 막벨라 굴에 사라를 장사 지냈습니다.
창세기 23:2-4,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에서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 소식을 듣고 브엘세바 에서 헤브론으로 와서 사라의 시체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일어나 매장지를 구하기 위해 헷 족속에게 가서 매장지를 찾은 것을 볼 때에 사라의 죽음을 갑자기 맞이한 것 같습니다.


모리아산 사건을 진술하는 창세기 22장이 끝나자 마자 창세기 23:1-3에 사라가 127세로 헤브 론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에서 추론해 본 것입니다. 그 당시 수명은 170-200세 정도인데 127세 로 죽었다는 것은 어떤 충격에 의해 단명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만 합니다. 그리고 브엘세바에 있어야 할 사라가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삭은 어머니 사라에게 이런 존재였습 니다.  다시 야곱에 대해 말하자면 인간관습에 의해 장자권이 야곱에게서 에서에게로 옮 겨 갈듯 하다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다시 야곱에게 되돌아 온 것인데 사람들은 이 과정에 야곱이 장자권을 불의로 탈취했다고 말하는 것은 고려해봐야 할 일입니다. 

이제 다시 아브라함으로 돌아 가겠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100세에 이삭을 낳았으며 175 세에 죽었습니다.  성경 연대상 아브라함이 출생할 때는 노아 이후 10대가 거의 모두 생존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르박삿과 88년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출생할 때 셈도 살아 있었습니다.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걸린 연대는 450년입니다. 이렇게 홍수 이후 하나님의 언약은 셈으로부터 아브라함에게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왔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전수 받았던 구속사의 복음이 10대손인 인류의 제 2 조상이었던 노아에게 전수 되었고 셈으로부터 10대인 아브라함에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세뮤얼 노아 크레이머가 지은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 었다’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주전 2500, 3000년 전에 살았던 수메르인들이 기록한  점토판의 내용 중에 대 홍수 기사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기의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창조 이야기가 모세가 구약 오경을 기록한 년대 보다 더 과거이기 때문에 성경의 창조 기사나 홍수기사가 그 당시 주변에 있었던 이야기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족장들에 대한 사실을 알지 못해서 하는 소리들입니다. 아담이 노아의 아버지 라멕과 동시대에 살았고, 셈이 이삭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슈메르 사람들은 셈족입니다. 바벨론의 함무라비법전에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홍수기사가 나왔다는 것은 노아 자손들이기 때문에 이미 고대 사람들에게 다 전달된 이야기들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 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인류 구속의 역사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인 아브라함 의 자손들과 새로운 하나님의 땅인 가나안을 중심으로 펼쳐지게 됩니다. 할렐루야 아멘


계산법:
1. 아담이 에덴에서 나온 이후 출생 년수: 아담 이후 출생년도 + 첫 아들 낳은 나이
셈의 경우: 1558+ 100=1658아르박삿의 아담 이후 출생년도,

셀라의 경우: 1693+30= 1723에벨의 아담 이후 출생년도

2. 죽음의 아담 이후 년대: 아담 이후 출생년도 + 향수 년수
에벨의 경우: 1723+464=2187, 셀라의 경우 : 1693+433=2126, 르우의 경우: 1787+239=2026
3. 아담이 에덴에서 나온 이후 아담 혹은 노아와 동시대 살은 년수


아담이  죽은 년수 –그 후손의 출생 년도= 아담 혹은 노아, 셈과 동시대에 살은 년수
 야렛의 경우 : 930- 460=470  마할랄렐의 경우 : 930-395=535 
노아와의 비교: 아르박삿의 경우: 2006-1658=348, 에벨의 경우 2006-1723=283


①  노아가 600세 된 그 해 1월 17일에 방주에 들어감 이날부터 홍수가 시작됨(셈의 나이 97). 노아601세 2월 17에 방주에서 나옴( 창7: 11,8:14, 셈의 나이 97세)‘셈이 아르박삿을 홍수 2년 100세에 나음. 홍수 시작 때 셈의 나 이 97세. 일년 후 98세에 방주에서 나왔고 2년후인 100세에  아르박삿을 낳음.노아 년세 셈의 출생 때의 노아 년세는 503세 ( 600-97=503)


②  데라는130세에 아브라함을 낳고 205세에 죽음. 대게 사람들이 창세기 11:26에, ‘데라는 70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에서 아브람이 데라 70세에 출생한 것으로 생각 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아니고 맏아들 하란이 데라의70세에 출생하였고 아브람은 데라 년세 130에 출생되 었습니다. 창세기 12:4에서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라고 했고 창세기 11: 32에서 데라는 205세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계산: 데라가 죽은 나이- 아브 라함이 가나안으로 떠난 나이=아브라함의 출생 시 데나의 나이:205-75=130혹은 205-130=75아브라함 하란을 떠난 나이). 사도행전 7:2-4에서 데라가 죽은 해에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갔다했음


셋-계열의-20대-족장-역대-족보-1.gif


셋-계열-셈에서-야곱까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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