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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38

조회 수 3621 추천 수 0 2018.03.31 08:45:46

첫째로 도마를 포함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요20:24-29)


‘4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 라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또한 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습 니다. 도마는 막달라 마리아가 증거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료 제 자들의 증거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만져 보 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도마의 태도는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 거하면서 예수님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확인했다고 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예 그는 한 술 더 떠서 눈으로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만져 보기 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도마라는 이름은 아람어이고 디두모는 헬라어인데 뜻은 모두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1: 16에서 디두모는 예수님께서 신변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유대 땅으로 건너가시려 하자 도마는 우 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려 가자 하고 예수님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내 보인 자입니다. 이로 보아 디두모는 비록 직접적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믿지 않으려는 성격의 소유자였 으나 의협심만은 남달리 강한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마는 꼼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겁 없 는 성격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도 다른 제자들은 다 모여 숨어있었는데 혼자 밖으로 나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의 진상을 확인해 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가롯 유다와 도마가 빠져 열명인데도 열두 제자들이라고 한 것은 사도들에 관한 관용적 표현으로 열두 제자로 정형화 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열 제자들이나 도마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의심으로 말미암아 후세의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많은 증거들을 얻 게 하셨습니다.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 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 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 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 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 라.’


예수님이 열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후에 꼭 일주일째 되는 날에 전과 똑 같은 정황이 이번에는 도 마를 위해 제공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신 것은 도마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 을 위한 것입니다. 아마도 이 때에 도마는 자신이 했던 말이 당시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던 예수 님에 의해 그대로 인용되는 데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도마는 그 손의 못자국을 보 며 했는데 예수님은 내 손을 보고 했으며 도마는 내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으며 했는데 예수님은 네 손을 내 밀어 했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했는데 예수님은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에서 예수님은 도마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극진하신 사랑은 부드 러운 어조로 도마의 요구를 하나하나 충족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런 주님의 말씀에 도마가 실제로 주님의 몸을 만져 보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 한일서 1:1에서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는 진술을 통 해서 도마가 주님을 만져 보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몸을 직접 만져 본 후에 나 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 도마는 철저히 문제의식을 가지고 예수 님의 부활을 의심해 본 후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확신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도마의 이 사건 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실히 믿게 된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더 복되도다라고 하셨는데  도마는 예수님의 사도요 또한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지만 후세대의 우리들은 부활의 주님을 볼 수 없으므로 복음서를 통해 믿게 되는데 복음서를 통해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했습니다.


둘째로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신 예수님 (요21:1-25)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 니라.’


요한복음은 20:31에서 사실상 일단락 지워졌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끝부분에 특별한 목적으 로 첨부된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이 이 21장을 기록한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두 가지 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베드로를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함으 로써 실추된 베드로의 수 제자로서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 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세 번의 질문과 내 양을 치라는 세 번의 목양 명령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셨 음을 명백히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 림이 사도 요한이 죽기 전에 있을 것이라고 믿은 오해를 분명하게 풀기 위해서 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마태복음 24:34과 누가 복음 21:32에서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상당히 널리 퍼져 있 었는데 특히 그 기한이 사도 요한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1:20-23에서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20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 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따라서 요한복음의 기록자인 요한은 자신과 연관된 그 당시 성도들의 억측을 바로잡기 위해 21 장을 첨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이유에 대해서 상세히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한편 이런 요한복음 21장의 첫 머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열 제자들과 도마를 비롯한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후에 또 다시 디베랴 바다 곧 갈리리 호수에 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의 제자들을 찾아 가신 것은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전과 부활 직후에 주신 두 차례의 약속인 갈릴 리에서 만나자 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2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 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3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 하였더니’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두번째 만남까지는 예루살렘이었는데 제자들이 이제 갈릴리에 내려 온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그 하나는 예수님께서 부활 전후에 약속하신 데로 갈릴리 에서 만나자 하셨기 때문이요 둘째는 산헤드린 공회원들로부터의 위험이 심했을 예루살렘보다는 지방인 갈릴리가 피신하기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나타나신 두번째 까 지는 자신의 부활을 확인시키고 제자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할 제자들의 선교적 사명을 일깨우고 저들로 하여금 준비케 하기 위해 보다 진일보한 목적이었습니다.
제자들에 대한 언급 중에 베드로의 이름이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은 그의 예수 부인 사건에도 불구 하고 그의 통회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셨던 베드로 에 대한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베드로의 권위가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도 마의 이름이 두번째로 나오는데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에 보다 높은 신앙 의 경지에 이른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은 공관복음서에서는 바돌로매로 불리운 제 자입니다.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 외에 다른 두 제자들이라 해서 일곱 제자들이 소개 되고 있습니 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려 간다고 했을 때에 다른 제자들도 함께 나가서 고기를 잡는데 밤 새도 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로 돌아와서 물고기를 잡으려 간 것은 사람을 낚 는 어부로서의 사명을 버리고 그 전의 일터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고 갈릴리에 나타나실 주님을 기다리는 중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소일 삼아 고기잡이를 하러 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마와 나다나엘은 어부 출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 봄직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쓸 것을 충당하고도 남아 가난한 이웃을 돕는 구제사업을 할 정도 로 재정 상의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육 개월 전에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실 때에 갈릴리에서 따르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6개월 동안 숙식한 것과 또 고난 주간 동안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숙박 한 비용들이 다 누군가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 복음 사역을 하게 될 이들 에게 재정 상의 문제에 대해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예수님께로부터 나 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고기를 한 마 리도 잡지 못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들로 실패케 해서 보다 많은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주님의 섭 리였습니다.


이 일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비록 오랫동안 익숙해 있던 인간의 기술과 경험을 총동원하였어도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을 때에 많은 물고기 를 잡을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람 낚는 전도 사업에 있어서 사람의 생각으로 하려고 하면 실패한다 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이며 한편으로 복음 사업을 하는 모든 재정상의 문제도 인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밤을 새우고 어두움이 아직 가시기 전 이른 새벽이 되기 까지 그물질을 하고 있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이 해변에 서 계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인 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 라 5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6이르시 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 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이 장면을 보면서 누가복음 5장에서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의 생각이 납니다. 예 수님께서 어느 날 해변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해변에서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의 배를 빌려 타신 후 말씀을 전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 니다. 이 날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밤새워 고기잡이를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아침에 그물을 씻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그 물이 찢어질 정도로 그리고 베드로의 배와 요한과 야고보의 배가 잠길 정도로 고기 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이제부터는 너희가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좇았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공생애도 끝났고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실 것이고 제자들 이 천국 복음을 전해야할 시점에서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교훈을 하십니다. 사람 낚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이루어진 다는 것입니다.


‘7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8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성경에는 간단하게 입은 것도 벗었다고 합니다(막14:51,삼상 19:24). 막일을 하는 일꾼들은 일 을 할 때에 간편한 옷을 입고 일을 합니다. 베드로도 간편한 옷을 입고 그물질을 하다가 예수님이 해변에서 계신 것을 확인 하고는 겉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물에 뛰어 들기 위해서 는 입고 있던 옷도 벗어야 하는데 베드로는 겉옷을 입고 허리를 동이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헤 엄을 쳐 예수님 앞에 선 것은 예수님께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드로는 많은 물고기가 가득 찬 그물을 처리하기 보다는 먼저 주님을 만나려는 열망에 불타 올랐습니다.


배에서 해변까지는 90m정도였지만 성격이 급한 베드로는 노를 저어 만선인 배로써 천천히 해변 에 이르기 보다는 헤엄쳐 보다 빨리 해변에 닿아 예수님을 뵈오려고 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제 자들이 예수님 앞에 섰을 때에 그들 앞에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과 빵이 있었습니다. 이 숯불 을 본 베드로는 요한복음 18:18에서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던 때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이 숯불을 보고서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던 후회스러운 때의 기억 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켜서 영적 구령 사업에로 부르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베드로를 찾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밤새 고기잡이 하느라 지쳐 있을 제자들을 위 하여 숯불을 피워 따끈한 아침 식사를 마련해 놓고 계셨습니다. 이 숯불과 생선과 떡은 예수님께 서 초자연적으로 마련 하신 것입니다.


‘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 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 어지지 아니하였더라.’예수님께서 방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 오라고 했을 때에 베드 로가 먼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물론 그물을 끌어 올리는 데는 베드로 혼자만으로 할 수 없고 다른 제자들이 도왔었겠지만 제자 들의 말이나 행동에 있어 베드로를 대표로 하여 기록하던 복음서 기자들의 경향을 보여 주는 것으로 향후 제자 공동체의 사역에 베드로가 중심이 되는 특징적인 양상 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베드로가 먼저 입을 열어 증거하고 다른 제자들은 합세하여 함께 사 역했던 것을 봅니다. 그물을 올려 물고기들을 세워 보니 백 쉰 세 마리나 되었습니다. 여기 물고기 이름이 ‘익뒤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데 오스 휘오스 소테르’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구세주’의 각 단어들의 첫 글 자를 종합하면 ‘익뒤스’가 됩니다. 이 때문에 초대 교회 성도들은 물고기 모양을 기 독교인을 상징하는 부호로 삼았습니다. 
                                            
‘14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에서 요한 자신도 명백히 기록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이 구절에서 생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 세 번의 출현 이외에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당일에 베드로에게, 다른 여 자들에게,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에게,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먹는 때에 열 한 제자에게, 갈릴리 의 어떤 산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주의 형제 야고보, 500여 형제들에게, 열한 사도에게 감람산 에서 나타나 보였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 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을 생략하고 베드로부터 예수님을 만났다고 진술하는 것을 볼 때에 14절에서 세 번째라고 한 말에 대해 요한은 예수님의 출현 기사를 다루른 방법에서 그의 복음서 요한복음 21:25 마지막의 진술인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 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에서 확인해 주는 대로 복음서의 자료가 취사선택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을 보여 줍니다.


셋째로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님(요한복음 21:15-24)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 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 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신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사건으로 인해 위신이 실추된 베드로에게 사도로서의  권위를 회복시켜 주며 아울러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사도들에게 선교적 사명을 일깨워 주시는 격려의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번 이나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냐고 물으심으로 세번이나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당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시면서 베드로에게 목양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의 본래 이 름이 시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첫 대면을 하실 때에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 차 게바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바란 반석이란 뜻의 아람어이며, 헬라어 표기가 베드로 입니다. 아마 이와 같은 호칭을 통해서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반석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처신을 하였는지 돌이켜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호칭을 사용하신 주님의 의도는 처음 사 도로 부름 받던 때의 추억을 되살려 소명 의식을 새롭게 고취시켜 목양의 사명을 부여 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번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 으심으로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을 더욱 확고히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 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 려가리라. 19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순교당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리 스도를 위해 순교 당하는 것을 지상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요한이 요한복음을 쓸 때에 이미 베드로의 죽음이 전 교회에 알려졌을 것이므로 본절을 읽던 초대교회 교인들은 다 시 한번 베드로의 죽음을 상기하며 자신도 순교할 상황에 처했을 때 담대히 순교할 각오를 다짐 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주간에 베드로에게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하신 것을 이해하게 되며 그 때에 베드로는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라고 했었는 데 그 목숨은 장차 맞이할 순교의 순간에 주님을 위해 내던졌던 것입니다.


외경 베드로행전에 의하면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시에 베드로가 처음 박해 때에 박해를 피해 로마를 빠져 나가던 베드로는 피신 도중에 예수를 만났는데 예수께서 ‘네가 십자가를 회피하니 내가 다시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달리고자 한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즉시 회개하고 다시 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똑바로 달리신 십자가에 자신은 똑바로 달리기도 외람되더 거꾸로 자청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승은 오리겐, 터툴리안, 이레니우스, 키프리안, 순교자 저스틴, 유세비우스 등의 교부들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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