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가인과 아벨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인물들입니다. 이 두 사람 모두 예배가 있었습니다. 아벨도 제사가 있었고 가인도 제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이 '받는다'는 말의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눈이 주도면밀하게 들여다 본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드리려 오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빼앗는 사람과 그 사람이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나가시다가 그 눈이 머무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머물게 하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인과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거들더 보지도 않는 예배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배당에 앉아서 우리 모두가 예배를 보고 있지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과 그 사람의 예배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거들더 보지도 않는 사람과 그 사람의 예배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다 같은 예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석책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은 것은 피의 제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을 때에 그들의 허물과 죄를 가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고 그 가죽으로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이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그들의 죄를 가려주는 짐승의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그들의 부모들이 드리는 제사에 어릴 때부터 참여했습니다. 어떻게 제사를 드리며 왜 제사를 드리며 무엇을 드리며, 누구에게 제사를 드리는 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짐승의 피를 바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사법은 모세 이후에 나온 것입니다. 레위기 2장에 보면 2장 전체가 소제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소제는 곡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인이 드린 제사를 받지 않은 것은 곡물이나 농산물을 바쳤기 때문 만은 아닌 것입니다.


그 증거가 오늘 본문 4절과 5절에 있습니다. 아벨과 그 제물이란 말씀 속에서 아벨의 제물만 받았다는 말이 아니고 아벨을 받으시고 아벨의 제물도 받으셨다고 했으며,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가인을 받지 않으시고 그의 제물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와 제물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제물을 보시기 전에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먼저 보십니다. 5절에는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가인과 그 제물은 처다보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 예배를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드리려 온 사람을 먼저 보시고 그 사람이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23,24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성전에 가서 예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어떤 형제와 불화한 일이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놓고 형제에게 가서 사과하고 화목한 후에 와서 그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가인과 그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고 아벨은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예배를 드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의인의 예배입니다.
악인의 예배는 거절하십니다. 요한일서 3:12말씀에,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했습니다. 가인은 악했다고 하는데 악하다는 말과 아벨은 의로웠다고 할 때 의로움은 헬라어 문법의 시제가 미완료 과거시제입니다. 이것은 가인의 악함과 아벨의 의로움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인 상태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미완료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인이 악했다는 것입니다. 이 악하다는 말의 원 의미 포내리아를 직역하면 '나 혼자의 유익과 편안함을 위하여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고 합니다.


내가 좀 편하려고 내가 좀더 큰 유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행위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가인은 내가 편안하고 좀 더 큰 유익을 위한 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악하게 행동해 왔다는 것입니다 미완료과거시제란 가인은 과거부터 현재 제사를 드리기 전까지의 그의 삶이 자신의 편안함과 유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와 제물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의 과거의 삶이 자신의 유익과 편안함을 위해서 타인에게 해를 끼졌던 사람들의 제사는 거들더 보지도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1. 악인 가인
1). 그렇다면 가인이 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했습니까? 무슨 행동을 했기에 가인을 악하다고 보십니까? 그 당시는 농경사회입니다. 농사를 짓는 것이 최고의 직업입니다. 그 당시는 먹고 살기만 하면 되는 사회입니다. 지금과 같이 산업활동이나 경제활동이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먹는 것만 해결되면 최고 행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농업은 장자가 차지했습니다. 가인이 장자 이기에 농사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양을 치는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 당시는 육식을 먹지 않은 때입니다. 양을 치는 이유가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서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입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을 치는 더 중요한 목적은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지낼 때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양을 치면 그것에서 먹을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 당시는 물물교환입니다. 가죽옷을 주고 곡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이 양식을 가지고 작난질을 했습니다. 곡식을 공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인의 마음이 악한 것은 가인이 이 곡식을 주지 않기 위해서 양과 교환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이 곡식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농간을 부렸습니다. 아벨에게 공급해 주지 않았습니다. 가인이 자신이 지은 농산물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아벨에게 곡식을 주고 양을 사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를 싫어해서 농산물로 제사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인을 악하게 본 것입니다. 가인의 심보를 보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가인이 왜 악한 가를 분명히 알려 주지 않으므로 본문 속에서 힌트를 찾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인은 농사를 짓는 자라고 했고, 피의 제사를 드리는 줄 알면서도 농산물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에서 성경이 왜 가인이 악한 자라고 했는가를 생각해 볼 때에 아벨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가인은 평소에 아우 아벨을 멍청한 놈, 가난한 놈, 먹는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양치기를 멸시했습니다. 자신은 먹을 양식을 가진 자입니다. 물물교환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한 위치에 있습니다. 가죽옷은 한 번 해 입으면 몇년간 사용할 수 있지만 양식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양식이 없으면 굶어 죽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우월하고 똑똑하고 부자고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아우는 머리가 모자라고 열등한 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과 같이 월등하고 탁월한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분노와 모멸감과 배반감과 질투심으로 충만했습니다. 그가 평소에 이런 완악한 마음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았다고 심히 분하게 여기고 아벨을 죽이려는 생각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가인의 마음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이 악했습니다. 가인은 평소에 마음 씀씀이가 악했습니다.


3). 가인이 악했던 것은 하나님께 대꾸하는 태도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인으로 하여금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9절에,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묻습니다. 가인의 대꾸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고 합니다. 죄에 대한 찔림이 전혀 없습니다. 마음이 심히 뻔뻔스럽고 강퍅합니다. 심령이 화인맞은 자입니다. 아우를 죽이고도 하나님 앞에서 전혀 두려움이 없는 태도입니다. 이런 가인의 마음을 하나님이 보신 것입니다. 이런 자의 후손들이 모여 살면서 얼마나 큰 죄악들을 생산해 내겠습니까? 온 세상을 죄와 악으로 물들이고 의인들 까지도 타락시켜 결국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시게 되지 않았습니까?


2. 의인 아벨
한편 의인이란 과거부터 현재까지 타인의 유익과 타인의 편안함을 위해 내가 봉사하고 수고하고 희생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벨은 왜 의인입니까? 아벨은 양을 치는 자라 했습니다. 아벨은 먹을 것을 공급받지 못했지만 양을 치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제물을 준비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런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들여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즐겨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제물을 어마어마하게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쁘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제물을, 제사를 드리는, 예배를 드리는 네가 누구냐에 더 관심이 있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1:11 -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했습니다.


이사야 66:3-4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악을 행하면서 드리는 제사, 제물은 하나님이 신물이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부부지간에도 남편이 내가 좀더 편안하고 내 유익을 위해 행동한다면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며,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내가 좀더 편안하고 내 유익을 위한다면 남편에게 악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을 가져온 아벨은 이 예배를 위해 타인의 행복과 타인의 유익과 타인의 편안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수고한 아름다운 행위를 하나님은 주목하신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4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했습니다.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이유를 신약성경에 기록했습니다. 가인은 믿음이 없었고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11장에서 말하는 믿음은 단 한가지 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는데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 사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산꼭대기에 배를 짓고 순종한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생명을 걸고 순종했던 사람,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상천하지에 이런 신은 없다고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건 여자 등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한 믿음의 정의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벨의 믿음의 특징은 아벨은 예배를 드리기 바로 직전까지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따라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왜 안색이 변하느냐, 너는 왜 분하여 하느냐 너는 왜 선을 행하지 않느냐 '너는 왜'를 세번이나 말씀하십니다. 가인은 자신의 감정과 자존심에 반응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움직이게 하고 반응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 나가서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반응하고 감정에 반응하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한시간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이 예배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예배을 통해서 우리가 많은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이 한 시간 예배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이 예배를 드리기 전까지 나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는가를 주목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를 기뻐했던 이유와 가인의 예배를 거절하셨던 이유가 8절에 나옵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우리가 들로 나가자고 말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위해서 들로 데리고 나갑니다. 왜 들로 나갑니까? 그곳에는 사람이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만 의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 제사를 드릴 때만 하나님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에 나가면 하나님은 없습니다. 내 말을 들으신다. 하나님이 내 말에 귀기울이신다. 하나님이 내 생각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읽고 계신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 계신다는 임재의식이 없습니다. 오늘 제사를 드리는 이 시간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리는 그런 예배를 하나님이 거절하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찬양하며 경배하며 예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만 우리가 교회를 떠나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면전,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드리려 오는 직전까지 하나님을 의식한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적이 있습니까? 교인들이 예배당 안에서는 교인으로 행세하지만 교회 밖을 나가면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창세기 28장에 야곱이 벧엘 들판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잠깨어 가로되 여호와가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곳이 하나님의 전의 문이로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당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닙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하나님께 찬미하고 기도했더니 천사가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감옥에도 계시고 들판에도 계시고 나의 삶의 현장에서 나를 보고 계시고 나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삶이 예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 창세기 원역사의 비밀 (2) 마태복음 24:37-39, 누가복음 17:26-30 김준식목사 2016-11-02 4767
25 창세기 원 역사의 비밀(1) 창세기 6:1-7, 11:1-5 김준식목사 2016-11-02 4947
24 창세기 원 역사의 비밀 차례 김준식목사 2016-11-02 4436
23 (동영상) 천지창조, 창세기 1:1 김준식목사 2014-11-25 8799
22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 많은 아들을 얻기 위함 창세기 1:26, 27요한복음 1:12 김준식목사 2014-11-12 8478
21 아담의 생애와 그의 사명 창세기 2:18-25 김준식목사 2014-10-19 8333
20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III) 창세기 6:1-4 김준식목사 2014-10-19 9048
19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II) 창세기 6:1-4 김준식목사 2014-10-19 8178
18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I) 네피림(거인족들) 창세기 6:1-7 김준식목사 2014-10-19 8391
17 노아집안의 여인들 창세기 7:6-7, 13, 8:13-19 김준식목사 2014-09-14 7570
16 노아의 생애와 그의 사명 창세기 7:1-2 김준식목사 2014-09-04 7932
15 므두셀라의 생애와 그의 사명 성경말씀: 창세기5:25-32 김준식목사 2014-09-04 15163
14 에녹의 생애 창세기 5:21, 유다서 14,15 김준식목사 2014-08-18 10001
13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 창세기 4:9-12 김준식목사 2014-08-11 7237
12 인간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 창세기 4:16-24, 요한계시록 18장 김준식목사 2014-08-11 7671
11 셈 함 야벳이 노아 500세 이후에 출생된 의미 창세기 5:1-32, 11:10, 마태복음 24:37-39, 김준식목사 2014-07-31 8089
10 가인과 아벨시대의 사람들 창세기 4:11-17 김준식목사 2014-07-27 9795
» 아벨의 예배와 가인의 예배 창세기 4:1-10 김준식목사 2014-07-20 10345
8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8-19 김준식목사 2014-07-15 8053
7 뱀과 사탄, 창세기 3:1-15 김준식목사 2014-07-06 12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