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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문 12절에서 바울사도는 주님의 부활을 4절 말씀에 이어 계속해서 현재 완료시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사도나 모든 사도들이 주님의 부활을 과거에 있었던 한 사건으로 넘기지 않고, 주님의 부활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실제적으로 역사하고 있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께서 단지 어떤 역사적 시간 속에 얽매여 계신 분이 아니라  연연세세 영원한 시간 속에서 구세주가 되시는 분임을 증거 해주는 사건입니다. 주님은 어느 한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영원한 구세주가 되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을 믿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과거의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회상하거나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속에서 역사 하시고 경험되는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다른 종교에서 하듯이 죽은 자를 찬양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생명의 신앙입니다.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오늘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내 곁에 계시고, 나를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이해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돌보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고민을 아시며, 나의 아픔을 어루만지시며, 나의 부족을 채워 주시며, 나의 허물을 용서하시며, 나의 손을 잡아 주시며,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부활의 믿음입니다.


또한 부활절이란 2000년 전에 거기서 다시 사신 주님을 기념하는 기념절이 아닙니다. 오늘도 여기 나의 삶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이 참 부활신앙입니다. 부활하시어서 오늘 내 삶 속에, 내 생활 속에, 나의 가정 속에, 나의 하는 일 가운데, 나의 미래 위에 살아 계신 주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는 것이 부활절의 의미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예수 믿고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것을 증명하기 위해 먼저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을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예언한대로 부활하셨고, 그 당시 까지도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을 직접 목격한 성도들이 태반이나 살아서 그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으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박해하던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회심한 것을 보더라도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I.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근거 위에 오늘은 성도의 부활의 확실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죽은 성도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결국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들의 부활을 가르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부활신앙에 굳게 서 있었는데 바울 사도 후에 고린도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정하지만 성도들이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부활신앙에 대한 혼돈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고린도전서 15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으면서 그리스도인들, 즉 자신들이 믿다가 죽으면 부활할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본문 14절에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성도들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되겠습니까? 바울사도는 7가지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13절에서, 성도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했습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죽으려 오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한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 가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부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영생이라 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도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성도들을 부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속에 성도들의 부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성도들의 부활도 있다는 것을 믿으야 합니다. 이 말은 성도들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부활이 있다고 하는 성경도 믿지 않는 것이기에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믿지 않고 성경도 믿지 않기에 이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입니다.

 

둘째로 14절에서, 사도들이나 복음 전하는 자들의 복음전파도 헛것이라 했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3:15절에,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했습니다. 사도행전 4:2에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30에서도,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3:6에서,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했는데 이들의 복음전파가 다 헛것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성도들의 부활인데 성도들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않은 것이니 사도들이나 복음전하는 자들의 복음전파가 헛것이란 말입니다.

 

셋째로 14절 하반절에 믿음도 헛것이라 했습니다.
14절에서 성도들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사도들이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우리들의 믿음도 헛것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믿습니다라고 하는데 무엇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예수를 믿습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는데 완전한 사람이시요 완전한 하나님으로 사셨다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그 예수님을 믿습니다. 만약 성도들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었고, 우리를 위해 죽을 필요도 없었고 부활하실 필요도 없었습니다. 성도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도 부활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믿을 수 없고 그렇다면 우리가 죄사함 받은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했는데 그 전파한 복음을 받아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이것들이 다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이 복음의 핵심인데 성도들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도 믿지 않는 것이요 그 결과는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이 다헛것이란 말입니다.

 

넷째로 15절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나 복음 전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된다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복음전파를 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복음을 전파한 자들이 거짓을 전한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짓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요, 하나님을 거짓 하나님으로 증거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성도들의 부활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17절에서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지 않으면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왜 죄 가운데 있습니까? 죽은 자가 다시 살지 않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은 것은 성도들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인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했으므로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고 자신의 죄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살지 못한 결과가 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이시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셔야 하고 다시 살아나신다면 그는 우리의 죄를 속량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셔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고 우리가 죄를 용서받음으로 영생을 가졌으므로 우리도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자굴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봅시다. “내가 사자굴에 들어가 면 사자를 때려잡고 3일 만에 사자 시체를 메고 걸어서 나올 것입니다”라 고 말했던 사람이 3일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아무 소식도 없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저 사자 먹이 노릇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3일 만에 사자 시체를 걸쳐 메고 걸어 나온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이었다 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내가 너희 죄 값을 갚기 위해서 죽는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살아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대로 3일 만에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는 사함 받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준하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섯째로 18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후에 죽은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성도들은 망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삽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 살면서 모든 권리와 삶을 포기한 자들이 수백만 수천만이요 수억이었습니다. 그들은 산속과 토굴에서 대대로 숨어 살다가 죽었고, 불로 태워죽임을 당했고, 칼로 베임을 당했고, 낭뜨러지에서 떨어저 죽었고, 총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짐승의 밥이 되었고, 갖은 수모와 수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면서 그런 박해를 감당한 것은 부활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계 전역에서 부활신앙을 의지하고 온갖 박해와 핍박을 받으며 사는 자들이 수백만, 수천만이나 됩니다.

제가 로마황제 시대에 박해 받던 성도들의 순교사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콜로세움에 수만명의 군경꾼들이 둘러쌓인 가운데 굶주린 사자들이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달려 옵니다. 그 때에 한 어린 딸이 엄마 무서워 했습니다. 그 엄마가 어린 딸을 달래기를 조금만 참으라. 그러면 우리는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단다 하고 위로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함을 당한 것은 천국에서는 누릴 영원한 복락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시에는 우리가 누릴 영광이 모두 다르다고 했습니다. 해와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듯이 부활할 때의 영광은 모두 다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고 헌신한 사람들은 부활시에 큰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리스도 일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은 사람은 부활을 할지는 몰라도 그 영광은 미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썩어 없어질 이 땅의 영광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한 영광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곱째로 19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 했습니다.
여섯째는 예수 믿고 죽은 자들에 대한 말씀이라면, 일곱째는 살아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도의 부활이 없으면 왜 우리가 불쌍합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죽으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온갖 죄의 생활과 방탕과 탐욕과 불의와 향락을 즐기며, 소원이 없을 정도로 살다가 죽어갑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경건하게 살려고, 믿음생활 잘하려고 새벽예배,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를 드립니다. 세금도 두 군데나 냅니다. 지상 나라에 세금 내고, 하나님이 나라에 십일조와 헌물로 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드리는 그 시간에 불신자들은 온갖 향락을 즐기며 누리는데, 만약 부활이 없다면, 천국이 없다면, 지옥이 없다면, 예수 믿는 것같이 억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참으로 헛되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이 있다면 지금 밖에 나가서 노는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주일예배는 나가서 노는 시간이 아닙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이 아까운 시간에 앉아서 예배드리고, 헌금 드리고, 찬송 드리는 일이 헛되지만,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부활시에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갚아주십니다. 우리의 헌금은 헛되지 않습니다.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는 하늘의 창고에 쌓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헌신하며 봉사하고 교회를 세우는 모든 노력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모든 수고는 부활로 말미암아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은 58절의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누가복음 16:19-31에서 거지 나사로와 홍포부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홍포부자는 이 세상에서 최상의 호화찬란한 삶을 가졌고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저 세상에서는 홍포부자는 지옥불에서 영원한 형벌을 살고 있고 나사로는 낙원에서 영원한 복락의 삶을 살게 된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의 모든 수고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고, 영혼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상급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고린도전서 15:20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첫 열매가 무엇입니까? 제자 몇년 전에 집 앞에 사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사과나무묘목을 심은지 3년 만에 그 나무에 사과 한개가 열였습니다. 그 사과의 껍질색갈은 붉었고 그 맛은 시큼달큼하고 바삭바삭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 열린 사과 색갈은 무슨 색이겠습니까? 맛은 어떤 맛이겠습니까? 사과 살은 어떻겠습니까? 과일 나무의 첫 열매를 보고 먹으면 그 다음 해 이후에 열릴 과일들에 대한 성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 어떻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여 주는 그대로 우리도 부활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이 세상에 40일 동안 계시면서 얼마나 당신의 부활의 몸을 알려 주시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21에서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한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습니다. 누가복음 24:36
예수님의 부활한 몸은 살과 뼈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4:38, 39, 40
예수님의 부활한 몸은 음식물을 먹습니다. 누가복음 24:41-42
부활의 첫 열매이신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같이 우리도 부활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것이요, 살과 뼈가 있을 것이요, 음식물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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