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그 어떤 종교도 부활절을 기념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기독교의 성경 만큼 사후세계에 대해 선명하게 가르쳐 주는 경전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1절에서 58절까지 부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부활의 계절을 맞이 하면서 고린도전서 15장을 6번으로 나누어 부활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바울사도는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이라고 로마서 10:9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1:25,26에서,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사실이 믿어집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는 것은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2000년 전에 유대 땅에서 태어나시고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답시고 그 당시의 제일 극형인 십자가형을 당하실 때 두 죄수들 사이에 죽으셨다는 그 분의 부활이 믿어집니까? 그런 분이 즉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믿어진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부활이 믿어지는 것은 내가 믿고 싶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믿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지 않거나 의심쩍으면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 우리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또 우리가 죽은 후에 주님이 공중강림하실 때 다 부활하여 천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으로 삼은 고린도전서 15:1-11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우리 본문 말씀, 1-3에서도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에서 내가 부활에 대한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지만 또 전한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귀가 따갑도록 예수님의 부활을 들어야 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했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받아 굳게 믿고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3가지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3,4절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대로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고 창세기 3:15을  비롯해서 몇 천년 동안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죽을 것을 예언하신데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 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죽으시고 말씀에 의해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죽기 전에 이미 예언된 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메시야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다고 했는데 바로 예수님이 성경대로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죽음은 창3:15, 창세기 22장, 출애급기 12장, 시편 22편, 이사야 53장, 다니엘서 9:26, 스가랴 12:10에서 예언했으며, 부활은 시 16:10, 이사야 53:10, 호세아 6:2, 요나 2:10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수 없이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5-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증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증인들이 증거합니다. 물론 그들이 신앙이 좋아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에 모두 도망을 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180도로 변해 버립니다. 이제는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와 같이 변화될 수 있을까요? 그들 모두 특별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부활을 전해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 경험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전에는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서 도망을 쳤지만, 이제 이 세상의 삶 다음에 또 다른 영생의 삶이 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과 같이 자신들도 부활함을 믿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다가 모두 다 순교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증거에는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먼저 베드로와 12제자들에게 보이시고, 그리고 500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그 중에 바울사도가 고린도전서 15장을 기록할 당시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에게 보이셨다고 했는데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인 야고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본문 말씀에서 부활의 증인들의 세 가지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증인들의 배경이 다양합니다. 예수님의 아우, 어부 출신들, 지식이 많은 사람, 많은 제자들 그리고 12사도들과 5백명의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둘째, 증인들의 인격이 신뢰할만합니다. 사람들은 신뢰가 안가는 사람과 교제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가서라고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5절 전반에서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또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3장 10절 후반에서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이런 말씀을 남긴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분들의 말은 신뢰할만한 말입니다.
셋째, 증인들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오백여 형제가 일시에 주님의 부활을 보았는데 그 중에 일부는 죽었지만 태반이 살아있으므로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내가 증인을 무더기로 데려오겠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이 증인들은 다양한 증인들이고, 신뢰할 만하며, 언제라도 동원할 수 있는 증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기록하여 전해준 역사적인 사실인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는 베드로이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는 바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이들이 설교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예수가 그리스도요 그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22절에는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이라고 기록되었고, 2장 32절에도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4장 33절에는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라고 기록되었고, 5장 30절에도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10장 39- 40절에도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부터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전도여행이 계속됩니다. 바울은 4차에 걸쳐서 선교여행을 했는데 바울도 가는 곳곳마다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사도행전 13:30에서,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라고 증거 했습니다. 또 데살로니가에서도 증거 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3절에는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덴에서도 사도행전 17:31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고 증거 했습니다. 또한 아그립바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도 사도행전26:8에서,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라며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므로 죽은 자를 살리실 능력이 충분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사도인 베드로 설교의 핵심도,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 설교의 핵심도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사도들 설교의 핵심이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교인들 중에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는 자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도시대에는 이렇게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열심히 증거했는데 오늘날의 교회가 사도들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그렇게 열심히 증거하고 있습니까? 겨우 부활절기 때에만 언급하는 것으로 끝내지는 않습니까?

 

셋째는 8-11절에서, 바울 자신과 같은 사람이 회심했다는 것이 증거라는 말입니다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바울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5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잡아오기 위해 다메색으로 가던 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고 죽이던 자가 그리스도의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에 대한 감격이 바울사도가 죽기살기로 복음을 전하는 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이 두 번이나 자기가 부활한 주님을 만난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6-11절에는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분노한 예루살렘 군중들 앞에서 간증했습니다. 사도행전 26장 12-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왕 앞에서도 동일한 간증을 했습니다

결 론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에는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빨리 아버지께 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40일 동안 세상에 계셨던 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실히 증거하기 위해서라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많은 증거로 자신의 살아나셨음을 친히 증거했다 했습니다. 삼중으로 주님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100% 신성과, 100% 인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내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나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소망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돈, 지식, 출세와 같은 세상의 욕망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심으로 죽음 후에 부활과 영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 인류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것이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거짓과의 싸움에서 진리의 승리이며, 미움과의 싸움에서 사랑의 승리이고, 사망과의 싸움에서 생명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55-58 의 부활장의 결론부분에서 부활을 믿는 자들의 사망으로부터의 승리의 개가를 외치고 있는 것을 들어 봅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사람은 인생을 승리합니다. 부활을 믿는 자들은 결코 자살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에게 질병, 고통, 가난이 있고, 마음속에 패배, 좌절, 절망의식 있으면 다 버리시고 부활의 승리의식을 가지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 죽음에 대한 승리의 개가 고린도전서 15:50-58 김준식목사 2014-07-18 5306
6 부활의 몸의 상태 고린도전서 15:35-49 file 김준식목사 2014-07-18 6081
5 부활이 일어나는 순서 고린도전서 15:20-28 김준식목사 2014-07-18 6471
4 성도의 부활의 확실성 고린도전서 15:12-20 김준식목사 2014-07-18 5434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 고린도전서 15:1-11 김준식목사 2014-07-18 5690
2 자연 속에 비친 부활의 신비 (고전 15:35-38) 김준식목사 2014-07-15 5883
1 성도의 부활 메카니즘 고린도전서 15:23-26,51 김준식목사 2014-07-15 17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