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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처녀 비유 (마태복음 25:1-13)

조회 수 6960 추천 수 0 2014.06.23 22:50:42


(주님은 이 비유에서 공중 휴거되는 조건에 대해 정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조건 에 해당되지 못하면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휴거되지 못하고 미련한 다섯 처녀들과 같이 남겨둠을 당합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13).

지난 주일에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빛 자체입니다. 너희는 빛이 되라라 든지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 빛은 어둠을 물리칩니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물러 갑니다. 이 세상에 죄와 악으로 가득찼지만 그나마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망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지만 교회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물러가면  이 세상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빛의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열처녀 비유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의 역할이 어떻게 작용하는 가를 생각해 보고져 합니다.

본문 속에 나오는 열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불을 밝혀 놓았습니다. 불을 밝히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그 하나는 등잔이요 다른 하나는 기름 입니다. 등불을 밝히려면 등잔에 기름을 넣어 불을 붙여야 합니다.
 
열 처녀들이 초저녁부터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불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늦게까지 오지 않으므로 졸며 잤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 생각하지 않으면 성경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3-4은 왜 슬기 있는 처녀이며 왜 미련한 처녀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했습니다. 여기에서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라는 말은 등에 기름을 넣지 않아 불을 켜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등만 가지되 등에 기름을 채우지 않아, 초저녁부터 아예 불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오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 처녀 비유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할 때에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에 기름을 채워 넣었기에 슬기로운 처녀였고, 미련한 처녀들은 등만 가졌지 정작 기름은 채우지 않았기에 미련한 처녀들이라고 말하면서 등에 기름을 채우자고 강조합니다.


열 처녀 모두 등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밤새 불을 밝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이성적이요 합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그들은 밤에 신랑을 맞이 하러 나왔기 때문입니다. 불을 밝히지 않고서는 캄캄한 밤에 신랑을 맞이하러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적어도 등에 기름을 가득 채워 불을 밝히고 나왔 습니다. 두 번째로 8절에 신랑이 왔다는 말을 듣고 다 함께 깨어 일어나 등을 준비할 때에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있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기름을 좀 빌려 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미련한 자들이 밤이 맞도록, 신랑이 오기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3절의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은 등잔에는 기름을 가득 채웠지만 여분의 기름통에 따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4절 슬기로운 자들에 대한 묘사에서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라고 한 말씀에서, 기름을 가득 담은 등잔 외에 따로 기름병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때의 광경을 상상해 보면,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러 등에 불을 켜서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랑이 더디 오기에 곤하여 모두 졸았습니다. 사람이 밤에 잠을 자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모습을 봅니다. 그렇게 졸다가 나중에는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에 곯아 떨어졌음을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의도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슬기로운 자들과 미련한 자들 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슬기로운 자들과 미련한 자들의 공통점

1) 두 그룹 모두 신랑을 맞이하려는 마음을 가졌다(1절). 2) 두 그룹 모두 신랑을 맞이하려 나갔다(1절). 실천하는 믿음을 보여 준다. 3) 두 그룹 모두 등불을 밝혔다(8절). 4) 두 그룹 모두 오래 기다리다가 졸았고 나중에 깊은 잠에 떨어졌다. 5) 두 그룹 모두 신랑이 왔다는 말에 잠에서 깨어나 등불을 준비했다. 등을 준비했다는 말은 밤새 등불이 켜져 있었기에 불똥을 따고, 심지를 돋우고, 기름을 채우는 일을 말합니다.


※ 슬기로운 자들과 미련한 자들의 차이점

1) 슬기로운 자들은 등에 기름을 가득 채웠을 뿐만 아니라, 다른 기름병에도
여분의 기름을 많이 준비하고 있었다.
2) 미련한 자들은 등에만 기름을 채웠고 여분의 기름병과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

이 두 그룹의 차이점은 기름을 가득 채운 등잔 외에 따로 다른 기름병에 기름을 준비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슬기로웠느냐, 미련했느냐가 결정되었습니다. 기름을 준비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슬기로운 처녀, 미련한 처녀로 규정짓고 설교를 마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 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사람들이 말하기를, 미련한 처녀들은 등에는 기름을 채웠지만 따로 여분의 기름병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미련한 처녀들이요, 그렇기에 신랑이 올 때에 기름이 다 떨어져 불을 밝히지 못해서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는 자가 되자 라고 하며 설교의 결론을 맺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설교를 마치면 열 처녀 비유를 하신 주님의 의도를 잘 못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기름을 채웠느냐 못 채웠느냐가 아니라 신랑을 맞이하기 까지 끝까지 불을 밝혔느냐 밝히지 못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기름이 있다 해도, 기름을 많이 가졌다고 해도 불을 밝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불을 밝히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왜 불을 밝혀야 합니까? 밤새 신랑을 기다렸는데 잠깐 불을 밝히지 않았다고 잔칫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다니,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불, 빛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빛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한복음 1:1,4,9).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1-5).

 영원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에 세상을 만드시기로 예정하시고, 우주를 창조하실 때에 이 우주에 빛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구에 육신의 몸으로 오시면서 흑암에 처한 지구에 빛을 주셨습니다. 이 빛은 곧 사람들의 빛이요 생명입니다. 주님께서 이 지상에 계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12)라고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입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빛을 얻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에 빛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산상수훈에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말씀하실 때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4-16)


3. 빛의 기능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는데 빛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빛은 어두움을 물리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빛은 생명을 줍니다. 이 빛이 없으면 생물들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이 빛이 없으면 생물들은 생명작용을 할 수 없어 죽습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해서 영양분을 공급받고 동물들이나 사람들은 이 식물들을 양식으로 삼습니다. 빛이 없으면 생물들은 죽습니다. 빛이 약하면 열매를 맺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겨우 맺힌 것도 결국 결실치 못하고 떨어져 버립니다. 또한 빛은 살균작용을 합니다. 빛을 받지 못하면 면역성이 떨어지게 되고 병균들을 죽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냥 빛이라고 하시지 않고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빛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향하여 빛의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빛인 교회가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밝혀야 하며, 생명이 없는 세상에 생명을 주며, 어두움 속에 득실거리는 병균들인 죄와 악들을 소멸해야 합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 생명작용이 충만 해야 하고, 어두운 죄악들이 물러가야 합니다. 불신자들이 모여 음담패설을 하고 있을 때에 신자가 그들 가까이에 접근하면 이들이 입의 말을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빛 된 착한 행실을 보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8-10)

예수 믿기 전에는 우리가 어둠이었는데 거듭난 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빛이 되었습니다. 빛의 자녀, 주님의 자녀들로서 빛 가운데 행하라 했습니다.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이라 했습니다. 착한 행동이 빛 된 자녀들의 첫째 덕목입니다. 의롭게 행하라. 죄 짓는 삶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빛 된 자녀들은 진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두운 세상에, 불신자들 가운데서 빛으로 나타나라고 당부하십니다. 빛을 발하고 빛의 자녀로서 옳은 행실과 의로움과 진실하게 행하라 하십니다. 등에 기름이 없으면 불을 밝히지 못합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기름은 성령 충만을 말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빛은 능동적이요, 능력입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거하여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물론 착하게 행하는 것도 착한 행실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착한 행실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빛으로 이끌어 내어야 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처음에는 등에 기름을 충분히 확보해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고, 오실 주님을 고대하는 삶을 살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기름이 메말랐습니다. 성령 충만함이 식었습니다. 빛을 끝까지 발하지 못했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빛을 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한번 반짝하다가 불이 꺼졌습니다.
 
주님은 열 처녀 비유에서 신랑을 예수 그리스도로 묘사하시고, 열 처녀들은 믿음 생활하는 성도들을 의미했습니다. 절대로 미련한 처녀들이 불신자, 신앙생활하지 않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교회 다니고 믿음생활하며,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해야할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혼인잔치는 공중 휴거되어 하나님 보좌 앞에서 우주잔치를 하게 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은 들림 받은 성도들이 하늘 보좌 앞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광경을 보여 줍니다. 그 때에 들림 받은 성도들이 입고 있는 옷은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옷인데 흰 세마포 옷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어린 양의 혼인예식이 준비되었고, 신부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신 빛나고 아름다운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혼인식장에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이 땅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동안 빛을 발하는 삶을 끝까지 잘 살아온 성도들에게 입혀 주시는 웨딩드레스가 우리들의 옳은 행실로 만들어진 웨딩드레스라고 합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마태복음 22:1-14의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잔치비유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임금이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결혼예식을 준비했습니다. 임금님의 잔치요 왕궁에서 결혼예식을 하게 되니 예식장이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예식에 참여할 축하객들을 초청하였고 초청된 그들에게는 결혼식에 참여할 자격으로 왕이 주는 예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복을 주었는데도 입지 않고, 결혼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임금님의 노여움을 크게 샀습니다. 어린 양의 빛나고 흰 웨딩드레스는 하나님이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 웨딩드레스는 그 신부의 옳은 행실로 짜서 만든 옷입니다. 빛인 성도는 옳은 행실을 행해야 합니다. 빛을 발하지 못하는 자는 공중 휴거되지 못합니다. 옳은 행실을 행하지 않은 자는 휴거되지 못합니다. 당신은 빛을 발하고 있습니까? 끝까지 빛을 발할 수 있는 기름, 성령 충만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가서 확보하여 등에 기름을 채우고 불을 밝혀서 혼인잔치 집 문 앞에 왔는데 잔칫집 문이 닫혔습니다.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주여, 주여 외쳤는데 잔칫집 안에서 들리는 주님의 소리는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음성입니다. 여기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이 상징하는 것은 공중으로 들림 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왜 미련한 처녀들이라고 합니까?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신랑이 올 때쯤에 기름이 떨어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잔칫집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미련하다는 것입니다. 평생토록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다가 오실 때쯤에 기다림에 지쳐 낙심하거나 의심하거나 시험에 빠져 신앙생활을 포기한 사람들이거나 주저하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왜 미련한 자들이라고 했느냐 하면 공중휴거 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남겨둠을 당해, 적그리스도에게 후 삼년 반의 핍박, 박해와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남겨졌기에 미련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늦게나마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다른 성도들, 신앙생활을 같이 하던 다섯 슬기로운 처녀들이 공중 휴거되는 것을 목격하고 난 후에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그래도 늦게라도 성령 충만하여, 후 삼년 반에 피난처에서 신랑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입니다. 미련하기는 하지만 신앙생활을 했기에 공중휴거가 무엇인 줄을 알고 그때라도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 불신자들은 공중휴거를 목격했어도 깨닫지 못하고 그것으로 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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